관곡지(官谷池)의 수련(垂蓮)(1/2) 지금까지는 바위가 좋아 바위만 찾는라 꽃은 별로 였는데 7월은 연꽃의 계절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웬지 연꽃에 눈이 자주간다. 몸도 여의치 않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연짱 날씨마저 흐리니 달리 뽀족하게 다녀올 곳도 없다. 그래서 오늘은 관곡지의 수련을 보러 나갔다.
연꽃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뽀쪽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구려 벽화에서 연꽃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전래된 시기는 오래된 것 같은데 다만 드러난 기록으로는 조선의 농학자 강희맹(1424-1483)이 세조 9년(1463)에 중추원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올 때 남경에 있는 모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하여 귀국 후 시흥 하중동에 뿌렸는데 그 최초의 연꽃 시배지가 바로 지금의 경기도 시흥에 있는 관곡지라고 하는 기록이 전부다.
지금은 세미원과 더불어 서울 근교에서 연꽃 출사지로 유명한 관곡지는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208번에 위치하며 경기도 시흥시의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는 달리 꽃은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한 담홍색을 지니고 있는 게 특징이다.
관곡지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이다. 이 연못은 조선 전기의 농학자인 강희맹(1424~1483)이 세조 9년 명나라에 다녀와 중국 남경(난징)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 씨를 심어 재배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안산군의 별호를 따 관곡지로 했다가, 세조 12년부터는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곡지는 1463년(세조9)에 조성된 후에 한동안 관리부실로 황폐해 졌었으나 1844년(헌종10)에 안산군수로 부임한 권만형의 후손 권용정이 정비하고 6명의 연지기를 두어 관리한 덕에 후세까지 이어져 올수 있었다. 4년간 안산군수를 했던 권용정은 선정을 베풀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세불망비(1848)는 지금도 물왕저수지 인근에 있고, 강희맹의 막내 사위인(4째) 권망형의 재실과 그의 후손들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관곡지에 있는 사저(私邸)는 강희맹의 막내 사위인 권만형의 집 가까이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 소유로 관리 되어 오다가 지금은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일반인 출입은 제한되고 있다, 현재 시흥관내의 연성초등학교, 연성중학교 등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문화제 명칭인 《연성문화제》라는 이름은 이 못에서 유례 되었다고 한다.
7월의 3번째 일요일, 하늘은 잿빛처럼 흐려있는데도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차라리 비라도 한줄기 내려 하늘을 활짝 씻어주었으면 좋았으려만. 그래도 관곡지 수련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해 집을 나섰다. 행여나 운이 좋으면 밤에만 핀다는 빅토리아 아마조니카를 기대하면서.
흐린 날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과 진사님들이 북쩍거린다. 연꽃은 세미원에서 두차례나 둘러 보았기에 오늘은 연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관곡지는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왕복 2차선 도로가 모두 주차장 역활을 한다. 참 요상한 곳이다. 도로변 빈 곳을 찾아 주차하고 내려오는 데 요런 연잎이 보인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 보았더니 쇠물닭이다. 말로만 들었든 쇠물닭을 관곡지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몸은 온통 검은 색인데 부리만 붉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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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림의 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