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던 어느 연예인이 마약복용 협의로 구속되었다. 나도 그 연예인의 팬이었던 터라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 다. 그런데 그녀를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은 그 동안 소비자 들에게 성을 상품화하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위해하다고 질책을 받는 스 포츠 신문들이었다. 신문들은 연예인도 공인이므로 사생활도 모범적이어 야 한다고 잘도 떠들어 댔다. 나 역시 배신당한 느낀이었지만 천하에 그 런 더러운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질타하는 것은 너무하다 싶었다. 그러 던 중 연기자의 이미지는 이미지일뿐인데 그것을 현실에 투사하는 것은 왜곡된 남성의 심리일 뿐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고 나서는 통쾌하기도 하 고, 부끄럽기도 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유부녀인지 매춘부인지 우리는 모른다. 먹 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했던 것인지, 비인간적 남편에 게 핍박받던 중 처음으로 애틋한 정을 느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게 된 것이지 우리는 그 사정을 모른다. 그러나 간음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먼저 돌을 던지려 드는 건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름이 없다. 그렇 지만 과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서 돌을 드는가, 하느 님의 정의를 위하여 돌을 드는가? 그 돌은 정작 위선과 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나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주님이 죄를 묻지 않으심에 내 구원의 희망의 싹을 본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 하심에도 또다시 죄에 떨어지더라도 "아까는 봐줬지만 이 젠 못 봐준다. 여봐라. 당장 돌로 쳐죽여라" 하시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의 자비를 남용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임문철 신부(제주교구 서문 천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