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4년 8월 30일에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500가지>란 사전 1판 1쇄를 펴냈다. 4번의 증보판을 거쳐 2018년 오늘 현재 28쇄를 찍었다. 사실 이 책을 만들 때는 나 혼자만 몰래 봐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소설가가 자기 사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작가들이 모르는 우리말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만 갖고 있는 미출간 사전 자료가 몇 권 더 있다. 이런 책은 출간을 하지 않고 나만 보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500가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적어도 우리말에 관한 책은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어원사전인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나이 사전>을 펴냈다. 이 책은 1995년 1월 25일에 처음 펴내, 역시 4번의 증보판을 냈는데, 지금 교정 중인 게 4판 28쇄다. 이제 '이끄는 제목'(영어로 lead)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에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으로 바꾸었다. 내 취향은 아니고 d독자를 더 잘 아는 출판사 판단이라 나는 동의를 해주었다. 24년이나 되었으니 리드라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교정을 보던 중 참담한 경험을 했다. 어휘마다 생년월일 등 출생 기록을 찾는 게 <우리말 어원 사전> 일인데, 어휘 하나를 확인하는데 하루가 걸리기도 하고, 여러 날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자니 교정 보는 데 하루 종일 걸리는 어휘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쓰던 1994년만 해도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내 보조연구원들(직원)은 매일같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출근하여 자료를 열람했다. 하루에 한 개만 구해도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23년이 지난 지금은 내 책상에 앉아 나 스스로 어휘를 찾아내고, 논문을 검색하고, 관련 도서를 찾아 우리말의 출생 기록을 더듬는다. 어제는 양로원이란 어휘의 출생 기록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이전 판에는 이 어휘 출현 시기를 1919년 삼일운동 이후라고만 적고 있었다. 아마도 1995년 당시 자료로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나는 증보판을 낼 때마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어휘는 반드시 재점검을 하는데, 양로원은 1927년 경성양로원이 처음이라는 기록만 새로 보였다. 월일을 찾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세밀함이 너무나 부족해서 외국인 인명은 성을 빼고 이름만 적고, 날짜는 햇수만 적지 날짜는 빼버리고, 수를 표기할 때도 매우 부정확하다. 소숫점 이하는 아예 표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확한 날짜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다가 어찌어찌 일본인 학자의 논문을 발견했다. 아뿔싸, 경성양로원 설립자 이름만이 아니라 언제 등록되었는지, 수용 인원은 몇 명인지, 직원은 몇 명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양로원 이전에 이미 두 개가 더 있었다는 사실도 같은 방식으로 매우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래서 양로원이란 어휘의 출생을 1907년 10월 1일로 특정할 수 있었다. 우리 학자들이 쓴 사학 논문을 읽다 보면, 19세기 이전의 역사인물인데도 이름을 한글로만 적기도 하고, 음력인지 양력인지 구분 안한 채 날짜를 적는 경우도 많고, 숫자 개념이 없어 '천여 개', '수십 개' 같은 모호한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다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난 소설가다. 소설가는 우리말을 글로 엮는 직업인이다. 그런 내가 우리말 사전에 24년간 매달리는 것은, 목수가 대패와 끌과 톱날을 가는 정신과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이 작업을 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내가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노벨문학상? 지금의 이런 언어로 어떻게 좋은 문학이 나오겠는가? 어렵다. 노벨과학상? 뭐든 대충대충 떠벌이고, 거짓말로 논문 쓰고 쪽수만 적당히 채운 책을 내도 점수를 주는, 이런 환경에서는 어림 없다. 우리나라에도 해마다 수많은 과학논문이 쏟아지지만 국제기준으로 볼 때 논문 가치가 있는 건 아마도, 아마도 몇 편 안될 것같다. 그냥 석사 학위 주고, 그냥 박사 학위 주는 일이 많다. 딸 기를 때 돈내면 상 준다는 유혹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것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선배 먼저, 후배 나중에 식으로 줄 서서 받는 학위나 상도 있다. 20년 전에 내가 석사학위를 받던 시절에는 박사 논문 통과하려면 집 한 채 값이 나간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풍토에서 무슨 노벨과학상이 나오겠는가. 노벨문학상도 그렇다. 우리나라 소설가, 시인들은 떼지러 몰려다는 걸 좋아하지 혼자 몇 년이고 틀어박혀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만나서 술 마시고,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게 한국 문인들의 일상이다. 그러니 책이 나오면 1년 내에 다 사라진다. 신춘문예로 1년에 수십 명의 시인 소설가가 나오지만 1년 내에 거의 다 사라진다. 20년 전 발표 작품 중 살아 있는 책을 가진 소설가, 시인이 드문 시대다.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소설가, 시인 중에 자기 작품을 온전히 갖고 있는 사람조차 드물다. 글로 문학하지 않고 입으로 문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프로페셔널이 아니면 안되는 게 문학이요, 과학이다. 30년, 40년, 50년 매달려야 겨우 실마리가 풀리는 게 문학이요, 과학이다. 좋은 종이에, 좋은 붓으로, 좋은 물감을 갖고 그려야 그림이 제대로 나온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창의는 그 다음이다. 일단 기본이 돼야 그 다음에 창의를 말할 수 있다. 거기까지 가야 완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은 건너 뛰고 대뜸 프로를 흉내낸다. 우리 과학자들 중에도 폼은 노벨상 수상자나 다름없는데, 막상 자신의 학문적 성취는 볼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말은 화려한데 글은 초라하다. 학회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정부에서 부르고 정치 현장에서 나오라면 발 벗고 뛰어나가지만 막상 연구소에 깊숙이 몸을 묻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예술가들도 그렇다. 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자주 얼굴 내밀어야 상이라도 받고 정부지원금이라도 받으니 어쩔 수 없을 수 있다지만, 막상 작품의 질은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난 처녀작 아드반(1980년 창작, 1982년 출간)을 기준으로 보면 소설가로 산 지 36년이 지났다. 아직 멀었다. 1994년의 <우리말 500가지>로 보면 사전편찬자로서는 24년이 되었다. 까마득하다. 1990년에 연구를 시작한 바이오코드는 29년이 되었다. 올해에 기초를 완성했다. 나이 먹을수록 삶 자체가 두렵다. -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세워진 양로원 5곳에 관한 자세한 자료. 우리나라 학자의 논문에는 이런 자료가 보이지 않고 일본인 학자 논문에 이게 나온다. 남의 논문 베껴써 논문 쓰지 말고 제 손으로 제 논문 쓰자! - 바이오코드 연구에 나서면서 처음 출간한 책. 이 책은 번역 문제로 6개월만에 경기대 유병선 교수의 재번역 개정판으로 바꿔 냈다. 1990년 1월, 인도 여행 중에 이 책 원서를 만난 건 하늘의 도움이었다. - 1989년 5월 18일에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전두환 아바타 최규하 대통령이 휴교령을 내렸다. 이때 꼼짝 없이 발이 묶였는데, 그런 김에 이 작품을 썼다. - 글을 쓸 때마다 뜻이 모호한 어휘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곤 했다. 그러다가 그런 어휘 수가 100여 개쯤 모이자, 마침 밀리언셀러 <소설 토정비결> 덕분에 자금에 여유가 생겨 후배들 몇 명을 동원, 1994년 봄부터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
출처: 알탄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태이자 이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