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홈 9월 소식 드립니다. 화일에는 사진도 함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섬기시는 가정과 교회 위에 늘 함께 풍성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요즈음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날씨는 서늘하고 좋지만 환절기인 탓에 아이들은 돌아가며 기침을 하고 감기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처줄 실버 선교사로 조영준/권세실 집사님 가정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비젼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고3 아이들 3명(럭디와 마튜와 폰)과 고1인 마리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미리 침례교육을 하고 간증문을 쓰고 전체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본래는 폭포에 가서 침례식을 하는데 비가 많이 와서 집 앞의 수영장에서 침례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매일 오고 날씨가 흐려서 해가 나도록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너무도 정확하게 응답해주셨습니다. 아이들도 침례식이 끝난 후에는 수영을 하며 신나게 보냈습니다. 오랫만에 아이들하고 같이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학기를 마친 아이들의 행복한 9월의 그레이스 홈 소식 드립니다.
<두번째로 온 선교사의 행적을 찾아서, 함께 떠난 람빠지역 선교탐방 6일>
두번째는 누구나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치앙마이에 두번째로 온 선교사인 조나단 윌슨은 53년의 생애를 이 땅에 바치면서 두명의 자녀와 첫번째 아내를 콜레라로 잃어야 했고 자신도 몸이 아파서 여행을 자주 하지 못했던 선교사입니다. 조나단 윌슨은 치앙마이에 처음 온 선교사인 맥길버리와 같이 태국에 왔고 방콕에서 사역하다가 온지 2년만에 딸과 아내가 그만 콜레라에 걸려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재혼하고 치앙마이로 와서 10년이 지나 사역하는데 또 콜레라에 걸려 딸이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미국으로 안식년을 갔는데 아내가 아파서 자신은 먼저 태국으로 오고 회복되면 오겠다던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영면하였습니다. 게다가 삼촌을 좋아해서 선교지로 나왔던 조카가 15년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치앙마이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다가 펫부리에서 갑자기 소천한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을 보살피며 교회를 지키며 남은 30여년의 삶을 태국교회의 찬송가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을 찾아가보고 그의 묘비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공동묘지 한쪽 구석에 이름만 써있는 그의 묘비를 보며 그의 선교사로서의 삶이 마음으로 깊이 다가왔습니다.
<파얍신학교 신대원에서 맥길버리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특강을 하다 12일>
지난 달에는 파얍대학교 신대원에서 태국 선교역사 특강을 하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맥길버리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특강을 다시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신학교의 다른 이름은 맥길버리 신학교인데 정작 맥길버리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세시간이 부족하였지만 학생들과 함께 맥길버리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나누고 오늘날의 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 북부의 모든 가정에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했던 다니엘 맥길버리, 지금도 태국 북부의 기독교인들은 그를 북부 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컬으며 8월 22일 기일이 되면 예배와 함께 묘소에 꽃다발을 갖다놓는 것을 보게됩니다. 오늘날 태국 교회가 이나마라도 있게 된 것은 치앙마이 선교의 선구자였던 맥길버리의 수고와 헌신이 컸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엄마, 내가 가서 아이들에게 식사를 만들어 대접할께요, 아미의 방문 13일>
그레이스 홈에서 자라서 결혼하였고 두명의 자녀를 가진 3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아미가 전화가왔습니다. 자신은 치앙마이 외곽에 잇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레이스 홈을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일이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사실은 자신의 딸의 생일이라서 그레이스 홈 아이들에게 밥을 대접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몸소 시장을 봐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마쳐야 한다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두끼는 족히 먹을 그런 양이었씁니다. 대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에게 우리는 감사를 전하며 한국 신라면이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습니다. 아미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아이였는데 이젠 어른이 되어 섬기는 모습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또 한해의 거주를 위한 비자 연장을 시작해야 합니다. 14일>
비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거주의 정한 기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곳도 코로나 이후에 비자가 까다로와서 많은 실버들이 한국으로 철수를 하였습니다. 내년 1월이 비자 만료이지만 미리 넉달전부터 서류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종교국이나 외무부에서 인증서를 받아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EFT에서도 사역에 대한 업데이트를 하도록 설문서를 작성하도록 합니다.비자는 우리가 이 땅에 거주하게 하는 안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매년 비자 갱신을 해야 합니다. 그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구요. 우리가 이땅이 나그네임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여기 와서 이 아이들을 좀 도와주세요! 세명의 아이를 만나보고 오다. 21일>
우리가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을 알게된 학 교 선생님은 우리를 만나보자고 연락이 왔다. 갈 곳이 없는 할머니들과 어린 아이들, 유치원 아이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오빠는 지난 5월에 사원으로 갔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여 11월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그레이스 홈에 오기로 하였다. 어린 두 아이는 내년에 그레이스 홈에 오기로 하였다. 3명이 같이 와서 있으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YM 간사로 섬기고 있는 까이의 사역 나눔과 기도, 24일>
까이는 주일 예배에 사역보고를 하며 기도를 해달라고 하며 사역 기간중 치앙마이를 떠나 다른 지방 혹은 다른 나라로 가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간증을 하고 자신의 비젼을 이야기하였다. 그에 대해 필요한 비용을 더 모금해야 했다. 우리는 같이 기도하며 오늘 나온 헌금을 까이의 비젼을 위해 드리기로 했다. 비록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정성을 표하기로 했다. 까이가 더 큰 세상을 보고 더 준비된 사람으로 성숙해가기를 기도해본다.
<람푼에 있는 맹인 공동체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고 오다. 27일>
맹인 공동체를 돌보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달에는 한국에 오신 팀들과 함께 통역을 위해 갔을때 다시 오겠다고 하였는데 다시 연락이 와서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분들은 맹인들이지만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마사지를 배워서 같이 마사지샵을 운영하며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주 교회를 오게하고 한달에 한번은 선교사님이 그들의 일터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려주곤 한다는데 안타깝게도 선교사님은 인도에서 오셔서 통역을 통해서 일해야 했다. 이번에는 나더러 같이 가서 예배하며 설교도 하고 교제도 했으면 하여 같이 갔다. 이전에 같을 때 다시 오겠다고 하였는데 같이 가서 눈이 보이지 않은 그분들에게 나를 기억하냐고 하였더니 대번 권목사님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눅17장의 열명의 문둥병 환자의 이야기로 말씀을 나누고 같이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다가 돌아왔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신앙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레이스 홈을 위해 이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1) 그레이스 홈의 온가족이 영육간에 건강하며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2) 그레이스 홈에서 성장하여 30대가 된 찰랏이 신장 이식을 해야하는데 적절한 기증자를 만날 수 있도록, YM 스텝으로 섬기는 까이와 인턴을 하며 공부하는 남완이를 위하여
3) 1학기를 마친 아이들이12일부터 21일까지 고향을 방문한 아이들이 의미있게 방학시간을 보내고 이달말까지 방학을 잘 보내도록
4) 하영이와 기준이가 믿음 안에서 비젼을 갖고 신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5) 한국인에 의한 태국 선교 70년을 총정리하는 책무를 맡았는데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