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눈을 뜬 기쁨도 잠시,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버려지는 아기들이 늘어가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이종락 목사)에 따르면 올해 2월에만 총 26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됐다고 밝혔다. 이는 평균 한 명의 아이들이 방치된 셈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2009년 12월 국내에서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화제를 모았다. 교회 근처에 버려져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아기를 발견한 이종락 목사는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유기된 영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것.
2010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수가 4명에 그쳤던 것이 2011년에는 37명, 2012년 79명에서 2013년에 252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베이비박스 영아 유기수는 전체 유기아동 수의 80%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돼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또한 지난달에는 우리나라 아동이 두 번째로 많이 입양되는 스웨덴 정부에서 한국의 ‘베이비박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방한한 사실마저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 내에 우려와 자각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국내 유기 아동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입양특례법 개정안에서는 친부모가 입양 전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는 보호시설로 보내 입양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미성년자나 미혼모 등 신분을 노출하기를 꺼려하는 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버리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지는 유기 아동수가 늘어나자 최근 경기도 군포와 부산의 한 종교단체가 베이비박스 시설도입을 추진하려다 시로부터 현행법에 저촉돼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동보호시설이 없으며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어 사회복지법과 아동복지법에 위반된다는 것.
이번 사건으로 베이비박스 설치가 유기된 영아의 생명을 살리는 ‘최후의 보루’라는 시각과 오히려 유기 아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기독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베이비박스 설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기독교계의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이승구 교수(합동신대원)는 “교회에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베이비박스 설치에 대한 정부의 무조건적인 반대를 경계했다.
또한 그는 “교회 공동체에서 순수한 의도로 유기 영아를 돌보기 위한 흐름은 장려할만한 일”이라면서도 “무조건 정부와 대립하는 것보다는 기독교적인 생명 의식을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부와 기독교계 단체 간의 깊은 논의도 요청했다. 이 교수는 “실질적으로 입양의 어려움이 높아져 유기 아동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교회가 이 부분에 있어 네트워크 역할을 할 것”을 제안했다.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조성돈 교수(실천신대)는 베이비박스 도입에 대한 찬반논란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민간 차원에서 이를 실시해 수요가 있다는 것에 대한 정부의 자각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는 미혼모가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법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정부가 법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도움을 줄 수 없다며 무조건적인 통제를 하는 것은 실질적인 당사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며 “왜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된 아동이 늘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베이비박스가 설치가 오히려 영아의 유기를 조장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길거리에 아기들을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오늘날 ‘베이비박스’는 생존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윤리적 인식의 부재와 부모의 자격문제라는 시각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홀트아동복지회 김대열 회장은 “아동유기는 엄연한 범죄이나 베이비박스가 있으므로 아기가 다른 이들의 품 속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라면서 “베이비박스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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