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의 최후는 애절하다.
우희가 곁에 있어 그러하다.
사방천지에는 구슬픈 초나라 노래가 가득하다.
멱라에서 몸을 던진 굴원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항우에겐 천하를 향해 내달렸던 지난 몇년의 세월이 아득한 꿈처럼 멀리있었을테다.
차라리 평범한 촌부로써 농사나 짓고 살아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으리라.
'해뜨면 나가 일하고 해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농사 지어 먹고 사는데,
임금의 권력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격양가)
사랑하는 우희를 생각하노라면 그 마음은 한참 더 무거워진다.
자신이 죽고나면 남의 손을 탈 수 밖에 없다.
성적인 능력외에 인간으로서의 다른 모든 행위는 면제받아왔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걸 독특한 미의식의 소유자 항우가 용납할 수 있겠는가.
항우는 그 유명한 '해하가'를 통해 우희의 사랑을 확인하려한다.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화답이라도 하듯 그녀는 대왕 앞에 마지막 춤을 선사하고,
그앞에 무릎꿇은 체 고개를 뒤로 젖힌다.
어린아이처럼 가늘고 하얀 목을 항우 앞에 드러낸 체...
지난 봄부터 동아일보에 이문열씨가 초한지를 연재하고 있다.
세상의 흐름과 이문열씨와의 풍파는 그 역사가 깊지만
작년이후 새롭게 일어난 풍파에 마음의 상처가 무척이나 컸을테다.
낙향하여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던 그가 의외롭게도
초한지를 써내려간다는 건 왜일까?
역사소설의 특성상 많은 자료수집과 현장답사가 필수인만큼
아마 오래전부터 계획해오던 일일터이지만
지금의 그의 처지와 초한지를 연관짓는 건 오바하는게 아닐수도 있다.
80년대 그가 '시대와의 불화'이후 절필을 선언한 동안
집필한게 지금은 울트라베스트셀러가 된 '삼국지'이다.
혹 그는 지금의 울적한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자신의 사상의 원천이랄 수 있는 고대중국으로 다시한번 달려간 것일까.
일주일에 겨우 한번 연재되기에 그의 초한지는 너무 더디다.
지지난주에 이르러서야 진시황이 드디어 죽었다. --;
갈증에 목말라하던차에 일본의 유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전3권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왔다.
'패왕별희'의 서글픈 정경을 우선 한번 훑을까 했지만 꾹 참고 처음부터 정독했다.
음식을 먹을때 맛있는 음식은 남겨뒀다가
마지막에 물한모금 마시고 느긋하게 먹는다. 쪼잔한 타입이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은 불친절하다.
연의의 서술방식에 기전체의 인물중심적 묘사를 섞어버려서
이전에 초한지를 읽어보지 않았거나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겐
정리가 힘들 수도 있다. 다른 초한지에는 들어있으나 빠져버린 부분도 많다.
전투묘사에 이르러서는 무책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략해버린다.
누군가 초한지를 처음 읽는다고 한다면
경박스럽긴 하지만 차라리 정비석초한지를 읽어보라 하겠다.
고우영의 만화초한지도 괜찮겠다.
하지만 대충 읽으라 하겠다. 대충대충 전체적인 내용만 살피라고...
그리고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을 꼭 읽어보라 하고 싶다.
역사소설은 한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여러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해 내기 때문에 그 편차가 크다.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의 폭이 무척이나 좁은 우리나라에서
시바 료타로의 품격있는 초한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대만태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순신 이후로
또 한명의 괜찮은 역사소설가를 만났다는 건 가슴 뿌듯한 일이다.
둘다 일본의 작가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이것이 혹 문화적 역량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기존했던 국내의 초한지들은 아마도 수십년전의 일본이나 중국권에서
발행된 초한지의 번역본이었을 테다.
조금 양심있는 사람이라면 '초한춘추'라도 읽고 썼을테다.
시바 료타로는 그 후기에서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를 참고로 하고
중국답사를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알기로 국내에서 '사기'의 본기.세가.표.서.열전이 전부 번역된 것은
겨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이다. 성균관대 교수인 정범진씨의 노고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무제 이전의 중국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은 이제야 시작된 듯 싶다.
시바 료타로의 초한지가 단지 이름높은 고서와 다양한 자료수집 덕분에
훌륭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내 개인적 취향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나열하기 보다는 그들의 심리적 고민과 정세분석에 더욱
집중하는 서술방식이 나는 좋다. 진순신의 소설과 닮은 듯도 하다.
혹 이런 면들이 일본역사소설의 한 경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문열씨의 삼국지는 미완의 소설이다.
지금 새로이 시작하는 이문열표 초한지에선 기대해도 좋을까?
우리는 누구나 다 삼국지를 읽어보았다. 그래서 불친절한 삼국지가 그립다.
삼국지의 내용은 모두가 안다. 굳이 다 아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삼국지의 인물론, 고증학, 고사명언, 역사기행 등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건
그러한 독자들의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96년에는 월간 삼국지라는 삼국지 전문잡지도 발행되었었다.(1년여만에 폐간..--)
마찬가지로 우리중 웬만한 사람은 초한지를 두서너 종류는 읽어보았다.
굳이 이문열씨가 재탕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뭘 얘기하든 만화영화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84년 여름에 일본에서 개봉된 '마크로스 극장판:사랑, 기억하시나요'의
마지막 전투는 최초의 스페이스 아이돌가수 린민메이의 라이브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춘추전국이라는 500년간의 혼란시대가 진제국의 10년집권이후
초한전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에도 노래가 울려퍼졌다.
후세사람들이 지어넣은 것이라고는 하나 우희가 항우의 해하가에 답하는
노래를 죽음의 직전에 지어불렀다 한다.
'대왕의 의기 저리 다하시니 이 몸은 살아 무엇을 하리'
'도도히 흐르는 물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으나
한초의 흥망은 이제 모두 언덕의 한줌 흙이라' - 증자고의 '우미인초'중 일부
*** 아까는 대혁이가 내게 전화하더니 머뭇머뭇 안부만 묻더니 끊는 것이다. 눈치를 봐서는 술먹자고 전화한 것 같은데 지난 번에 내가 먹자고 할때 튕긴게 걸려서 망설이는 듯 했다. 짜식 소심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 캬캬. 대혁아 나는 안 튕기마. 그만 방황하고 내 품에 돌아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