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와 소몰이
비를 좋아했기에 어릴 적의 “비의 정서”를 되새겨보려 했으나 “정서”라 하기 엔 삶의 부분으로 여겨지고,
낭만은커녕 거친 환경 속에 모든 게 풍족치 못했기에 부족함의 불편 같은 걸 느낄 겨를도 없던 그 시절!
황순원님의 소설 “소나기” 만큼이야 아름답진 않겠지만 어느 여름방학 “소낙비 내리던 날”의 일화가,
그때는 삶의 수단 이였는데 지금은 참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긴 고삐를 소뿔에 8자로 감고 쇠똥묻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한 대 탁! 쳐놓으면
무리를 지어 숲 속 그곳으로 찾아가 한나절 풀을 뜯지요.
한낮엔 멱 감고 해거름이 되도록 “평평 바위”에 둘러앉아 넋 빠진 듯! 놀다보면
시원한 산 그림자가 지나가고 이내 어둠이 내릴 때면 갑자기 흑운이 짖게 깔린 하늘을 등에 지고 찾아오는 손님이
가끔씩 있었지요.
하늘에 나무뿌리 같은 불 그림이 그려지고 천지를 흔드는 천둥에 이어 쏴아! 하며 냉기와 함께 파고드는 장대 같은
소낙비가 온몸을 때리면 이내 젖은 생쥐모습이 되죠.
“소 눈을 닮았다!”하던 어린 내 눈엔, 소 걱정과 두려움이 이내 비치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고이지만,
한여름 산천초목들은 반갑다고 아우성입니다.
소들도 정황을 느끼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총총걸음으로 내려오며는 모두들 자기소를 찾아 장대비를 맞으며 어둑한 골목으로 몰고 사라지는데, 하필이면 간혹 몇 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우리 몇 이는 소를 찾아 컴컴한 거친 산등성이를 두려움에 질주하면서도 극도의 예리한 “텔레파시”를 쏘며 달리다보면
언 듯 “철렁”하는 “워낭소리”를 감지합니다.
찾아 가보면 시커먼 먹구름이 걸친 “마법의성”같은 공동묘지 언덕바지에 틀림없이 무리를 지어 새끼를 뒤로 보호하고 둘러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데, 다가가면 반가운 듯 일어서지요.
이때 우리는 구성원을 느끼고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한기를 느끼기 전에 서둘러 빼곡히 숲으로 둘러싸인 어둔 산길을 시커먼 하늘거울 틈에 비춰가며 소낙비와 소몰이를 하다 보면, 저벅이는 신발이 나무 “끌텅”에 찢어져 자주 벗겨지지만 그래도 맨발보단 낫기에 칡넝쿨로 묶어 신고 내려오다 평지에선 은근한 심술과 보상심리로 뜨뜻한 소등에 올라타는데,
우리 소는 `짊 소` 이지만 배꼬리가 너무 커서 짧은 내 다리로는 사타구니가 너무 벌어져 아파서 얼마 타질 못했어요.
한바탕 소란을 떨고 나면 나른함 속에 초저녁 들풀들이 뿜어내는 열기섞인 향기와,
흙에서 올라오는 대지의 순결한 냄새에 평온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듯 소낙비는 그렇게 우리게 가져다 주지요.
모든 것이 내겐 버거웠지만 사내였던지라
심호흡 하며 어둠속에 두 팔 뻗어 빗물 한 움큼 삼키고 한 동안 소낙비에 열기를 식히노라면.
넉넉함의 여유로움에 쇠파리 쫓는 듯! 마굿간 워낭 소리가 어른스런 나를 미소 짓게 합니다.
첫댓글 ㅎㅎ
공감가는 실제이야기 인거 같아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
요셉님, 그러세요.^^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