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포럼-이라는 곳에서 동학때문에...토론과 논쟁이 벌어졋고....멍청한 카페운영자로부터 오늘 활동정지됐습니다.자유대한민국에서 사상과 언론자유,표현의 자유가 없는 카페도 있습니다.그것이 바로 이덕일선생과 그를 따르는 이상한 무리들의 편협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인 ,진보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갑질'의 카페인데요.....이럴때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쓰시기를 "참 우습다~!"...혹은 " 참 가소롭다~!"라고 표현을 하셧죠.....하하....그냥 한번 보세요...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포럼'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자료가 몇개 보일겁니다..보기싫으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될거고.....못하면...평생등신 되는거죠...
범털과개털님의 요지는 "동학도들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을 편취했다"는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2004년 정부에서 혁명으로 인정한 것에 하자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용하신 자료의 출처를 유추해보면 양반과 지방토호들의 기록인듯합니다. 역사는 기록된 것만 갖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록한 사람의 관점, 처한 상황, 기록 의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공부가 어려운 것이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 사료만 갖고 주장을 하거나, 특정사료와 유사한 몇가지 사료를 통해 입증을 하는 것은 설득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당시 농민군 측에서는 ‘동학교도’라는 뜻의 ‘동도’, 또는 ‘의병’이라 했습니다. 당대의 지배 세력이었던 민씨 정권과 개화파 정권, 일본군, 그리고 유림에서는 한결같이 ‘비적·비도’ 즉 ‘도둑떼’라는 뜻으로 불렀습니다. 당시의 지배층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매천 황현도 이들을 ‘동비(東匪)’라 할 정도였습니다. 만약 동학도들이 무고한 인명을 살상했다면 국가에서 혁명으로 인정한 것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범털과개털님께서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추가 사료나 근거를 올려주시면 이러한 역사 바로잡기에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활동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내용 보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료를 계속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하는데로 해보겠습니다....그런데..자료를 100개를 올려봐도 이미 동학란을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인식하는 사람들한테는 안먹혀 들겠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안하는 의병전쟁 전적지 답사를 저혼자 하고 있습니다.물론 의병자료도 꾸준히 보고있지요....의병을 연구하는 학자는 그래도 손을 꼽을 수는 있겟는데요...아무도 답사를 안하고 있죠....광복회,국가보훈처,의병정신선양회,순국선열유족회...국방부,육군사관학교...재향군인회...시민단체...아무도 관심이 없어요...그래놓고는 친일파는 억수로 욕을 합니다....자기 고향의 의병장과 독립투사 이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래서 제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고향 의병장이름,독립투사이름 한사람도 모르면서... 친일파 욕하지 말라~!!고 큰소리칩니다...모르는 사람일수록...대통령과 정치인과 공무원을 욕합디다....
레오님의 지적대로 '독립신문'에서는 의병을 '토비'라고 불렀죠.....ㅎ
경북 안동권은 조선조 300년 가까이 차별을 이겨내고 영남 남인들의 종갓집은 살아 남았습니다.경주최부자등의 가훈에도 있듯이 남에게 배풀어서 인심을 잃지 않았기에 동학란,6.25전쟁에도 살아남은 종택들이죠...그러나 영남의 남인들을 공격햇던 서인들은 종택이 거의 사라졌습니다.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은, 학문도....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져야 합니다...'미수 허목'선생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만...
위자료는...동학란을 피해서 피란간 시골선비의 시각으로 본 ,당시의 일기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안하는 의병전쟁 전적지 답사를 저혼자 하고 있습니다.물론 의병자료도 꾸준히 보고있지요....의병을 연구하는 학자는 그래도 손을 꼽을 수는 있겟는데요...아무도 답사를 안하고 있죠....광복회,국가보훈처,의병정신선양회,순국선열유족회...국방부,육군사관학교...재향군인회...시민단체...아무도 관심이 없어요...그래놓고는 친일파는 억수로 욕을 합니다....자기 고향의 의병장과 독립투사 이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레오님의 지적대로 '독립신문'에서는 의병을 '토비'라고 불렀죠.....ㅎ
경북 안동권은 조선조 300년 가까이 차별을 이겨내고 영남 남인들의 종갓집은 살아 남았습니다.경주최부자등의 가훈에도 있듯이 남에게 배풀어서 인심을 잃지 않았기에 동학란,6.25전쟁에도 살아남은 종택들이죠...그러나 영남의 남인들을 공격햇던 서인들은 종택이 거의 사라졌습니다.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