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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23.07.17 00:46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
철조망 건너편의 스님이 말했다. “길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걸어가면 길이지요.” 20년도 더 된 일이다. 북한산 산행의 시작 무렵에 변경된 입구로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선택한 길을 걷노라니 곧 무성한 잡초가 나타나고 길은 끊겼다. 어찌하나 망설이는데 철조망 밖으로 평화롭게 거니는 스님이 나타났다. “스님, 어디로 가야 길이 있습니까?” 우리가 물었다. ‘길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걸어가면 길이지요.’ 이따금 어디인가 무엇인가가 그리운 심정이 되면 이름 모르는 스님의 말과 당시의 정경을 복기하곤 했다.
길은 막힌 곳 뚫는 자유의 상징
‘길 없는 길’ 말한 조국 전 장관
진영이 아닌 상식의 길 걸어야
김지윤 기자
‘길’은 치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시인 서정주의 ‘파도’에 실려 왔다.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 중략/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중략/ 알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길은 바다이고 파도이고, 혼돈이고 해결이고, 떠나야 하는 열정이었다.
‘길’은 개방과 역동으로도 왔다. 고정을 거부하고 이동을 숙명으로 아는 ‘노마드’(유목민)와 ‘노마디즘’(『차이와 반복』, 들뢰즈)이었다. 특정 가치와 방식에 매달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이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유목민의 믿음은 길이란 열린 세계에 이르는 사통팔달을 의미했다. 꼬질꼬질하게 닫힌 폐쇄가 아니었다.
경허(鏡虛) 선사를 탐구한 고 최인호 선생의 소설 『길 없는 길』의 길은 장엄했다. “그 모든 학문, 그 모든 교리, 그 모든 교법, 그 모든 경전이 깃들여 있는” 경허도 “욕망이 불타는 생사의 세계 차안(此岸)에서 열반상락(涅槃常樂)의 오성(悟性)의 세계 피안(彼岸)에 이르는 길”을 위해 “송곳을 얼굴 아래 턱밑에 받쳐 들고 앉아” 정진했다. “송곳은 얼굴을 꿰찌르고 턱밑을 꿰뚫어 그곳에서 흘러 내린 핏물이 온통 얼굴과 턱으로 흘러내려 그토록 처참한 귀신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경허의 발심은 “시방세계의 모든 진리(十方世界 現全身)를 보기 위해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작대기 끝에서 다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행위”(百尺竿頭 如何進步)였다. 길은 자신과 중생의 구제를 위한 심연의 고행이었다.
‘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든 것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문재인 전임 대통령을 찾아가서 책방지기도 하고 밥과 반주도 한 후에 페이스북에 올린 후기 때문이었다. “저와 제 가족에게는 무간지옥의 시련이 닥쳐 지금까지 진행 중”이라면서 “지도도 나침판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가겠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逆進)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무간지옥은 중생의 세계인 삼계육도(三界六道)의 가장 하층에 있는 8개 지옥 중에서 제일 밑바닥에 위치하며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혹독한 고통을 거의 무제한·무한정으로 겪는 곳이다. 물론 자신의 업에 따른 인과법칙에 따라 스스로가 자초하는 고통이다.(『불교의 영혼과 윤회관: 천국과 지옥』, 오형근) 아내가 감옥에 있고, 자신의 행적과 자녀의 탈법적인 대학 입학에 대한 수사와 재판으로 큰 고통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래 대한민국이 겪은 무간지옥의 시련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극렬 팬덤들의 비방·저주·조롱·혐오·폭력의 언행으로 아수라장이 된 광장, 무법천지 혼돈에 대한 공권력의 수수방관. 이해찬 전 대표 등이 호언장담한 20년 30년 100년 집권이 몽상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겪은 우리 사회의 아픔만 하겠는가. ‘조국의 강’은 여전히 범람을 멈추지 않고 아픔을 낳고 있다.
지도도 나침판도 없는 길이라도 스님의 말씀처럼 걸어가면 길이 될 것이다. 루쉰도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죽창가와 적개심을 유발하는 진영의 길이 아닌 상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무오류와 진리를 자처하고, 국민을 편 가르고, 내로남불의 불량 저울(sliding scale)로 재단한 ‘적폐’를 압살하려던 시대는 더는 안 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대한민국의 역사에 트집을 잡고 부정하는 시대는 더는 안된다. ‘길 없는 길’을 위한 지도를 뉘라 알겠는가. 대신 나침판이 될 만한 서산대사의 선시를 하나 부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그대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