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3. 일곱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김정수 권사(549)
성경말씀 마가복음 11:20~2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봄처럼 살면 좋겠네.
찬송 474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광고 코로나19 델타 변이 54,000명대,
세계 교회연합회 익산시 총회 창립 예배, 총재 피종진 목사, 사무총장 정진배 목사
(3월 21,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WESTERNLIFE HOTEL)
찬송 826 심령이 가난한 자는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봄이 왔습니다.
금방이라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노랑 개나리꽃이 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코로나19 때문에 꿈쩍도 못하고 살았던 기나긴 세월도
사라질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지난주에는 우리 석문분 권사님 이가 두 번째 빠져서
혹시 삼키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급히 치과에 모시고 갔습니다.
그동안 치매가 너무나 심하다 보니
치과에 모시고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큰맘 먹고 영차영차 제 차에 모시고 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치과가 없어서 김제 시장 바닥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겨우 치과를 찾아 들어갔지만
입을 벌리지 않아 마취도 못하고 발치를 두 개 하고서 지열을 하는데
지혈하는 거즈까지 삼켜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모습이 슬펐습니다.
그놈의 치매 때문에 마취가 의미도 없이 아픈 줄도 모르고
아들도 몰라보고
이제 목사님도 몰라보고 그냥 목사님 손을 매만지기만 하는 모습이
처량하기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이렇습니다.
얼마 전 가족오락관에서 몇 대 몇 외치던 허참 씨도 73세 청춘인데도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목사님 친구들도 한 분씩 낙엽이 떨어지듯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엊그제 텔레비전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통령 후보들은 세상을 천년만년 뒤흔들며 살 것처럼 요란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어드립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목사님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봄날에는 산에라도 가고 싶습니다.
먹고 사느라 머리만 희었지 아직도 철없는 나我를 봅니다.
매일매일 나를 착하게 바꾸어 보려고 기도하며 노력하지만
잠시 잠깐입니다.
그래서 산은 날 보고
산처럼 살라고 합니다.
물은 날 보고
물처럼 살라고 합니다.
바람은 날 보고
낙엽처럼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얼마나 옹졸합니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눈물입니다.
20절입니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저는 얼마 전 햇살 가득한 봄을 맞이하는 가로수 나무를 보았습니다.
겨울을 잘 견딘 겨울나무는 금방이라도 새싹이 터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고사했습니다.
이 슬픈 모습을 베드로가 보았습니다.
우리 요양원에는 폐암 환자 등의 성도님들입니다.
목사인 저는 10년이 넘도록 이런 환자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장례 예배도 많이 드렸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뭔지를 깨달아 압니다.
지금도 우리 남기열 권사님께서 금방이라도 고사할 것 같습니다.
왜? 따듯한 국에 밥 말아서 시큼한 김치 얹어 드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밥 냄새만이라도 맛고 싶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애처롭습니까?
목사인 제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마에 손을 얹고서 기도를 드릴 때면 목이 멥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20절입니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렇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미 뿌리째 말라비틀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뿌리째 폐망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부패한 종교는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의 의미도 되새겨봐야겠습니다.
코로나19의 온상지였던 신천지를 비롯 기독교의 파멸은 아닌지?
뼈아픈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2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아름답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곧 축복입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 고집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다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지잖은 돈의 권력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5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다시 산다는 것은 용서입니다.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용서입니다.
여기에 허물이 없는 성도님 계십니까?
그래서 부족하기만 한 우리들끼리 서로 용서하는 겁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용서하는 겁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고 나면 우리의 좁은 가슴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시기와 질투가 없는 곳이 없겠지만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옹졸해서 그렇습니다.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목사님 마음이 옹졸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곧 죽게 됩니다.
엊그제 우리를 웃게 한 허참 씨도 73세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서로서로 용서하면서
서로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면 되는 겁니다.
목사님이랑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