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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개봉 / 107분 / 전체관람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프랑코 제피렐리
출연 : C. 토머스 하우웰 & 엘리자베스 테일러 & 소피아 워드
천재음악가 토스카니니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할 날을 꿈꾸며 음악적 정열을 불태운다. 그러던 어느 날 첼로 독주회를 위한 오디션의 일환으로 극장 이사진의 오찬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예의를 모르는 오찬장의 분위기에 화가 난 그는 연주 도중 퇴장해 버린다. 오디션이 무산되자 유명한 흥행 기획자인 로시(Rossi: 존 라이스-데이비스 분)가 남미 순회공연에 참가할 것을 권유한다. 이 공연은 유명한 가수이자 황제의 애인 나디아(Nadina: 엘리자베스 테일러 분)를 합류시킬 계획이다. 브라질로 가는 배에서 토스카니니는 마르게리타라는 수녀 견습생에게 사랑을 느끼고 노예를 위해 봉사하는 그녀에게 감동한다. 나디아의 호화로운 집에서 황제를 만난 그는 노예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황제를 일깨운다. 한편 개막식은 다가오는데 지휘자가 단원과의 불화로 떠나 버리자 연주곡인 베르디의 아이다를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가 지휘를 시작한다. 야유하던 관중은 그의 훌륭한 연주에 빠져들고, 나디아가 공연 도중 자신의 노예를 해방시키겠다는 폭탄선언으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 영화 해설 === <2013년 5월 9일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 속 클래식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토스카니니
이탈리아 출신 지휘의 거장 토스카니니는 ‘무대 위의 독재자’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소리를 얻기 위해 연주자들을 혹독하게 다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전횡도 서슴치 않았다. 연습 중에 하도 ‘노(no)’라는 소리를 많이 해서 ‘토스카니니’가 아니라 ‘토스카노노’로 불렸다. 불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해 늘 사람들과 마찰을 빚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나는 노인이다. 그런데 신은 왜 열일곱 소년의 피로 나를 괴롭히는 걸까?”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토스카니니는 1867년 이탈리아의 파르마에서 가난한 양복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에 소질이 있어 보이트 음악원과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했지만 학창 시절의 전공은 지휘가 아닌 첼로였다. 이런 그가 지휘자로 데뷔하게 된 데에는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사연이 숨어 있다.
1886년, 당시 19살이었던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의 흥행사 클라우디오 롯시가 조직한 오페라단의 첼리스트 겸 부합창 지휘자로 브라질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작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였다. 그런데 공연 직전에 오페라단 측과 마찰을 빚은 지휘자가 무책임하게 지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주최측은 서둘러 다른 사람을 물색했다. 그 결과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야유로 지휘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 바통을 이번에는 합창 지휘자가 물려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관객들의 야유를 받고 지휘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때 단원들이 토스카니니를 추천했다. 평소 지휘에 대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아이다 Aida]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오페라를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리허설도 없이 당장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관객들은 19살 짜리 애송이가 지휘대에 오르자 더 큰 소리로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가 보면대 위에 놓인 악보를 덮는 순간 청중들의 야유가 멈췄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리허설 한 번 하지 못한 이 젊은 지휘자는 [아이다]를 모두 외워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이끌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청중의 웅성거림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휘의 거장 토스카니니의 신화가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토스카니니]는 이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18살의 젊은이 토스카니니가 극장 관계자들 앞에서 비발디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다. 토스카니니는 온 정성을 다해 연주를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는 극장 관계자들은 그의 연주를 경청하지 않는다.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누고, 큰 소리로 웃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의자를 끌어당기는 등 음악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화가 난 토스카니니는 연주를 멈추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비발디의 음악에 무례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그러자 한 노인이 “그런 말은 사회주의자들에게나 들려줘. 네 출신 성분이 뭔지 다 알고 있어.”라고 화를 낸다.
이 자리에서 왜 뜬금없이 출신성분 이야기가 나오나 하겠지만, 영화를 보면 토스카니니의 ‘출신성분’이 이 영화의 주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피렐리는 토스카니니가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는 것과, 그가 처음 지휘봉을 잡은 작품이 에디오피아 노예가 나오는 [아이다]라는 것 그리고 당시 브라질에 여전히 노예제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음악에 재능이 있으면서 정치, 사회적 부조리에도 분노할 줄 아는’ 토스카니니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토스카니니는 흥행사 클라우디오 롯시로부터 자기가 이끄는 오페라단의 리허설 피아노 반주자로 브라질 공연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는다. 그는 롯시로부터 공연작은 베르디의 [아이다]이며, 아이다 역으로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나디나 블리쵸프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흥분한다. 여덟살 때, 아버지와 함께 스칼라 극장에 와서 블리쵸프가 부르는 [아이다]를 듣고 크게 감동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토스카니니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 위에 오른다. 항해 중에도 토스카니니는 음악가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구노의 [파우스트 Faust]에 나오는 [왈츠]를 연주하거나 성악가들과 함께 [리골레토 Rigoletto]의 4중창 [아름다운 사랑의 딸이여]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아름다운 음악, 향기로운 술과 음식이 어우러지는 호화만찬이 펼쳐지는 이 곳은 상류층만 이용할 수 있는 1등석. 화려한 샹들리에 밑에 드레스와 연미복으로 한껏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 사이에 흥겨운 대화가 오고 간다.
하지만 이렇게 호화스러운 연회장 바로 밑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1등석의 화려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누추하고 초라한 빈민석. 가난을 피해 남미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서 방금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 오랜 시간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다 마지막 남은 한 가닥 희망을 잡고 배에 올랐으나 결국 희망의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둔 사람. 로시니의 [윌리암텔 서곡]에 나오는 느린 첼로 선율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잔잔한 흐느낌이 이어진다.
그 후 브라질에 도착한 토스카니니 일행은 서둘러 리허설을 준비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아이다 역을 맡은 나디나 블리쵸프가 콧대를 세우며 리허설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녀는 브라질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황제의 애첩이다. 황제를 믿고 매사에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결국 토스카니니가 그녀의 집을 찾아가 리허설에 참석해 달라고 설득하지만 나디나는 오히려 애송이를 보냈다며 화를 낸다. 그 후 토스카니니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여덟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스칼라 극장에서 그녀가 부르는 [아이다]를 듣고 음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이 말에 크게 감동을 받은 나디나는 그때부터 토스카니니를 집으로 불러 수시로 노래연습을 한다.
음악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토스카니니는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는 젊은이는 아니다. 나디나를 설득하려고 처음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후 틈 날 때마다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브라질 노예들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토스카니니는 나디나에게 “세상에는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나디나는 세상 일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라며 그의 말을 묵살한다.
드디어 [아이다]가 무대에 오르는 날, 지휘자 미구엘이 최종 리허설을 진행한다. 그런데 리허설을 하는 도중 미구엘과 성악가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다. 화가 난 미구엘은 지휘를 하지 않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공연에서는 세파티라는 이탈리아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지만 청중들이 계속해서 야유를 보내는 바람에 그냥 무대 뒤로 돌아오고 만다. 결국 지휘봉은 19살의 토스카니니에게 돌아간다. 토스카니니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보면대 위에 놓인 악보를 덮고 암보로 지휘를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놀란 관객들이 조용해 지고, 이것을 본 롯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페라 공연은 라다메스 장군이 부르는 [청아한 아이다]에 이어서 [개선행진곡]과 [이집트 처녀들의 춤]으로 이어진다. 에티오피아와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라다메스. 그 앞에 에티오피아에서 잡혀온 노예들이 끌려나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다 역의 나디나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드디어 나디나가 노래할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토스카니니가 몇 번 씩이나 사인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과 로열석에 앉아 있는 황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밤 오페라는 노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감동으로 이어져 영혼을 씻어주는 베르디의 음악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제게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는 음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노예 문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체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이 반지를 바치겠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께서 주신 더 없이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지만 오늘 밤 노예 폐지 운동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로써 제 집의 노예들을 모두 해방시키겠습니다. 자유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면 그들도 우리의 지난 과거를 용서할 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에 영광의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페라 [아이다]는 베르디가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이집트 국왕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이다.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가 한창 전쟁 중인데,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이지만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 와 현재 이집트 왕궁에서 노예로 일하고 있는 아이다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하지만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는 이 사실을 모르는 채 라다메스가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오면 그와 결혼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질투에 휩싸인다. 한편 전쟁터에서 잡혀 온 에티오피아 포로 중에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가 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아이다를 시켜 라다메스에게서 이집트 군대의 기밀을 알아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밀을 누설한 라다메스는 절망에 빠지고, 암네리스 공주가 나타나 라다메스를 반역죄로 체포한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지만, 라다메스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산 채로 돌무덤에 갇히는 사형선고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먼저 돌무덤에 와 있던 아이다와 함께 세상과 작별하는 노래를 부르며 의연히 죽음을 맞는다.
영화에서 나디나는 [아이다]가 노예에 관한 오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이 오페라에 노예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조국과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이지 조국애나 정의감 같은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다. 라다메스나 아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조국이 서로 적대하고 있다는 상황설정은 모든 것을 초극한 사랑의 절실함과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뿐 정치적 의미는 매우 희박하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이다의 아리아 제목도 [오! 나의 조국이여]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경건한 애국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 사랑하는 조국. 다시는 보지 못하겠구나.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푸른 하늘이여. 부드러운 산들 바람이여. 푸른 언덕이여. 향기로운 바닷가요. 오! 내 조국. 다시 보지 못하겠구나. 언젠가 사랑이 내게 약속해 주었던 축복받은 피난처인 시원한 계곡이여. 이제 사랑의 꿈은 사라졌으니 오! 내 조국. 다시 보지 못하겠구나.’
여기서 조국은 정서적으로 ‘고향’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이 노래는 고국 에티오피아에 대한 투철한 애국심보다 한때 행복을 안겨주었던 평화로운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노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오보에 소리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아이다가 부르는 [나의 조국이여]를 배경으로 “다음 해인 1888년 5월 13일, 브라질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라는 자막이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황제는 [아이다]를 보면서 포로로 잡혀온 에티오피아 노예들에게 측은지심을 품었던 것일까. 여하튼 그 이듬해 브라질에서 노예가 해방되었다.
노예해방으로 인간은 평등과 자유에 좀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순전히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상에 인간들이 동조했기 때문일까. 러시아의 농노해방도 그렇고, 미국의 노예해방과 브라질의 노예해방에는 모두 필연적인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관건은 초기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의 확보였다. 봉건 시대에는 토지에 예속된 노예들이 필요했지만 산업 사회로 넘어오면서 이제는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신분의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애첩의 요청 한 마디로 노예제도가 폐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첫댓글 학창시절 비디오로 수없이 봤던 영화...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그냥 잘 생긴 배우로만 생각했던 토마스 하우웰....첼로 레슨을 꽤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연기력도 좋았죠. 배위에서 폭풍우 치는 파도를 맞으면서 배경음악으로 깔렸던 곡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리베스투드....폭풍 감동.....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부르는 나의 조국...오보에와 인간의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죠. 암튼 이 작품은 제 마음의 보석과 같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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