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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한국의 美_ 매듭 / 지어야 할 매듭
ysoo 추천 0 조회 81 17.02.01 17: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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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 김종제(시인, 1958~)

 

내게 뱀처럼 또아리 튼

새끼줄 하나 있어서

그 줄을 길게 펴놓고

풀어지지 않게 매듭을 지었습니다

태어난 날부터 시작하여

사랑하여 밤새워 편지 썼던 그날에도

기쁨으로 환하게 웃었던 그 며칠에도

피눈물 흘렸던 그 수 많았던 날마다

매듭을 묶었습니다

내 앞에 내가 묶은 내가 있습니다

묶여서, 묶여서 매듭만 남은 내가 있습니다

매듭뿐인 나와 마주합니다

중간중간에

나를 구원해준 사람도 몇 있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도 몇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딛고

아직 숨쉬고 살아온

자랑스러운 내가 있습니다

이제 새끼줄에 불을 붙이겠습니다

활활 태워 우주로 보내겠습니다

나를 칭칭 엮었으니 다 날려버리고

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궁의 중심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행위 같은

나를 다시 배열하는 치료 같은

나를 묶고 나를 불태워 버리는 것

 

 

표지를 장식한 궁중 옥노리개와 대삼작 노리개는 담연제품.

속표지에 부용화가 수놓인 서랍좌경은 예가크래프트 제품, 바늘꽂이ㆍ꽃주머니는 변인자 선생의 작품이며, 해인규방 판매, 낙지발노리개는 매듭장 심영미 선생의 작품이며, 동림매듭박물관 판매.

 

 

 

 

한국의 美_매듭

 

한올 한올 엮어 만든 우리의 전통 매듭에는 균형과 절제된 아름다움은 물론, 영원한 삶과 끝없는 행복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지어야 할 매듭

풀어야 할 매듭

 

인류가 발명한 최대의 문명이‘불’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럼, 그다음 위대한 발명은?

나는 감히‘매듭’을 드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최초의 매듭은 무엇이 엉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동굴 속에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깔았던 풀 줄기나 나뭇가지가 뒤엉켜 긴 줄이되는 것을보고 생각해 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류는그 매듭의 전 단계인 묶는 것을 발견하는순간부터 바야흐로 문명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되었다.

돌촉에 나무막대를 묶어서 창을 만들고, 짐승의 가죽을 서로 꿰어 옷을 만들고, 가로와 세로로 날줄과 씨줄을 엮어 고기를 잡을 그물을만들고…. 구리와 주석을 묶으면(혼합하면) 다른 성질의 우수한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까지 깨우치면서 말이다.

 

사람끼리의 관계에서도 제법 깊은 사이가 되면 우리는 그를일러 인연(因緣)이라 말한다. 인연의‘緣’이라는 글자가 바로 ‘묶음’ 의 뜻 아닌가. 그리고 ‘매듭’은 그것의 가장 진보한, 아름다운 형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인연과 매듭이라는 것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돌촉이나 청동족을 막대에 묶어 창이나 화살을 만들었던 처음에는 분명 짐승을 잡는 용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조금 흐르고 어쩌다 보니 그것들이 애초의 수렵 용도보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로 더 활약하게 되지 않았던가.

 

사랑하고, 은혜하고, 연민하며, 언제나 반갑고 그립기만 할 줄 알았던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밉고, 두렵고, 증오하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인연. 때론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내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떠나 버리고 차가움이 들어앉은 것이 더 아프고 서럽기도 하다. 한번 들어앉은 차가움은 다시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에게 도무지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벌써 또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가, 그것도 한 해가 저물어가는 건 언제나 아쉽고 서럽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하면 인생에서 그렇게나마 매듭을 정리할 고비가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안고 가야 할지 두려운, 언제까지 목놓아 기다리며 가슴 태워야 할지 모르는 그 매듭을 저무는 해를 핑계로 풀고 지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돌아본다.

나와 인연 지어진 어떤 이에게 내 실수와 잘못으로 그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있다.

아무래도 해가 마저 저물기 전에 그를찾아보고 진심으로 고개 숙여 그 가슴에 엉켜있는 매듭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 아직 말은 꺼내지 못했어도 턱밑까지 차 올라 가르릉 거리고 있는 무엇은 없는가? 그도 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첫눈이라도 내린다면 그 눈길을 솔방 솔방 가슴 설레며 걸어가 우정의, 사랑의, 은혜의 인연 매듭을 마저 지어야겠다.

혹여 내 가슴에 쌓인 두려움과 미움, 분노와 증오는 없는가? 아뿔싸! 그것도 있다.

본디 매듭은 짓고 푸는 것이지 끊어버리는 것이아닌데 자꾸만 끊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 이를 어찌할꼬….

 

난 어떤 한 사람을 내 인생의 ‘주군’ 이자 ‘스승’ 으로 삼고 있다.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고, 때론 시쳇말로 ‘허걱!’ 할 때도 있지만 그가 들려준,‘이제 우리는 후대에게 다시 한(恨)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마음에 맺힌 것은 발목을 잡는 것이네 그것을 끊어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말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은 그리하면서도 막상 내문제에 닥치면 그게 잘 안 된다.

맺힌 것을끊어 버리면 결국 떨어져 나간 한쪽 끝은 영원히 내가슴 속에 앙금으로 남는 것이니 용서와 화해로 풀어야만 하는데….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히 풀어지지 않으면 그래도 이번 해에 이는 끊지 않고 다시 짊어지고 내년까지 가 보련다.

 

 

글 김정현(소설가)

사진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승헌

소품 협찬 동심결 매듭법으로 묶은 청단ㆍ나비 뒤꽂이(담연)

 

 

이서지 ‘혼수감’ ⓒ선바위미술관

 

 

끈으로 엮은 매듭의 멋과 지혜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며 외길 인생을 걸었던 장인의 인생처럼 한 줄의 실과 실로 맺는 우리네 전통매듭에는 선조들의 고귀한 숨결과 정성이 깃들어있다. ‘마음과 손끝이 빚어낸 언어이자, 인품의 향기’로 불리는 전통매듭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다.

 

매듭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아주 작은 새가 풀잎을 바느질하듯 엮어서 둥지를 틀 듯이, 두 손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의 묶는 행위는 그 존재와 함께 시작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듭이 나타난 역사적 흔적은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돌도끼나 돌칼의 구멍에 끈을 꿴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문헌에서도 매듭에 관한 내용이 종종 등장해 무척 흥미롭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 궁인들은 공사로 모일 때 공복으로 비단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요대에 장식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벽화 가운데 황해도 안악군 유순리에 있는 안악 3호분의 묘주와 그 부인의 초상에 나타난 방장장식에서매듭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삼국 사기>에는 비단에 대한 기록이 많은데 그 하나로 문무왕이 복식 금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곧 부인들이 나라에서 중국의 의복을 입으라는 명령에 따라 처음에는 가죽으로 만든 띠와 천으로 만든 띠를 띠었으나 날이 갈수록 비단옷의 허리 장식이 화려해져서 내린 금령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신라인은 매듭을 맺은 끈이나 띠로 치장하기를 즐겼다는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의 <고려도경> ‘귀부조’에는 ‘귀부인들이 채색 끈에 금방울을 달고 비단으로 만든 향낭을 찼는데 이것이 많을수록 귀히 여긴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불화인 ‘버들 관음도’ 에선 머리장식, 허리띠 표현에서 매듭장식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듭과 끈목이 실생활에 쓰이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 용도가 다양해져 실생활 전반에 널리 애용되었다.

 

<성종 실록>에 ‘왕자와 군· 옹주의 가례 때 혼인하는 집에서 다투어 사치하기를 힘써 수를 놓거나 매듭을 지어 그 화려하고 사치함을 극진히 하였고…’라는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당시 매듭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 자리했음을 알 수 있고,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가례 행사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에서는 다회장(多繪匠: 끈 짜기 장인)· 매듭장· 침선비 등으로 구분하여, 물품을 준비케 한 것으로 미루어 그 모양새가 더욱 정교해지고 탐미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매듭은 왕실뿐만 아니라, 벼슬아치의 공복이나 상류층의 평상복뿐 아니라 평민의 가례에도 쓰였다. 혼례 때 쓰이는 의복이나 꽃가마 등에도 반드시 매듭을 사용했다. 의례에 쓰이는 악기나 장신구 중 매듭이 없는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매듭은 조선 시대 대표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규방 여인들의 손 맵시가 빚어낸 단아하고 은근한 미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복에 다는 노리개, 주머니 매듭, 귀걸이술 등의 장신구나 보석류, 방한모(防寒帽)인 조바위에 장식한 잔 술, 남바위의 매듭과 술 장식 등의 복식류 의주로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의 향수 대신 여자들이 항상 몸에 간직한 향낭도 매듭과 술이 특히 아름다웠다.

 

또 혼례를 준비할 때는 노리개를 비롯해 수저집(수저를 넣어두던 주머니)에도 끈술이나 잔 술을 매듭과 함께 달아 부부간의 화합을 염원했다. 매듭은 각종 생활용품의 완성미를 높여주는 구실을 했는데, 여름에 대나무발에 걸던 발거리 매듭이 있으며 주로 딸기술을 드리웠으나 끈 술, 봉술도 달았다. 겨울에는 외풍을 막아주는 방장거리에 달던 방장유소(내려뜨리는 장식물)도 있다.

 

한편, 널리 번성한 만큼 그 모양과 기법이 다양한 우리 전통 매듭은 크게 동물형 매듭, 식물형 매듭, 사물형 매듭으로 나뉜다. 이 매듭들은 장식적인 용도뿐 아니라 몸에 지닌 사람의 행운이나 액막이를 비는 주술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병아리매듭은 수난을 이기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여인들의 은장도나 전쟁에 나가는 남자들의 칼자루에 쓰였다.

산호 매듭은 다채로운 모습이다. 산의 상징이 되어 출가를 앞둔 딸이 있는 집의 창가에 걸어두기도 했다.

 

 

 

매듭은 좋은날 ‘특별함’ 을 표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매다는 금줄에서부터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추녀 끝에 다는 등에도, 시집 가는날 신부가 타는 꽃가마에도, 궁중에서 연희나 큰 의식이 있을 때 풍악을 울리는 온갖 악기들에도 어김없이 화려하게 매듭이 장식되었다.

 

 

한 민족 정서를 담다

 

생활·장식용 매듭에 비해 민속적 측면에서는 매듭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우리 선조들은 매듭을 매는 것과 푸는 것의 양면성을 다각도로 해석하여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즉, 매는 행위는 봉쇄(封鎖, 굳게 막아버리거나 잠금)·약속·숫자의 뜻으로, 푸는 행위는 해방으로 보았다.

말과 소와 같은 가축에 전염병이 돌면 그 목에1] 왼 새끼줄을 일곱 매듭 또는 열네 매듭을 해서 걸어둠으로써 전염병을 막으려 했다. 시신을 묶을 때에는 일곱 마디로 묶는다는 말이 있고 관 뚜껑 위에도 2] 동심결 매듭을 맺는다. 사람이 명을 달리하려고 할 때는 혼백 매듭이라 해서 머리맡에서 청·홍색 실로 꼬아서 만든 끈으로 맺어 혼백상자 안에 넣어서 조석상식(朝夕上食)을 지냈다고 한다.

 

또, 보부상들은 통신이나 정보 교환을 약속된 방식으로 매듭을 지어 특정 장소나 요소에 걸어놓음으로써 인근 고을의 장세(場勢)며 원님의 수탈상 등의 정보를 교신했다. 민간 속설에 매듭을 맺을 줄 알다가 잊어버리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매듭을 잊어버리는 것을 기억력의 감퇴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긴장을 놓아버린 나태, 또는 맺음이란 관계를 소홀이 하는 것으로 본 경구(警句)의 말이었으리라.

 

반대로 푸는 행위는 해방·화해 등을 의미했다. 사람에게나 집안에 불행이 겹치면 팔자나 기운이 꼬인 것으로 판단해 그 꼬인 운명을 푸는 주술로 신변과 집안의 모든 매듭을 풀고, 풀 수 없는 매듭은 집 밖으로 치워버림의 로써 액땜을 하였다. 또한 젊은이가 눈 어두운 어른에게 바늘 실을 꿰어 줄 때도 끝매듭을 짓지 않고 넘겨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편, 매듭은 좋은 날 ‘특별함’ 을 표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매다는 금줄에서부터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3] 추녀 끝에다는 등에도, 시집가는 날 신부가 타는 꽃가마에도, 궁중에서 연회나 큰 의식이 있을 때 풍악을 울리는 온갖 악기들에도 어김없이 화려하게 매듭이 장식되었다.

 

주1] 일상적인 새끼줄은 오른쪽 방향으로 엮는데 비해 왼새끼는 왼쪽 방향으로 엮고, 흔히 금줄이라 일컫는다.
주2] 실 같은 것으로 두 고를 내어 맞죄어서 풀리지 않도록 묶은 매듭을 말함. 납폐(納幣)에 쓰는 실이나 염습(斂襲)의 띠를 매는 매듭 등이 그 예다.(네이버지식사전)
주3] 네모지고 끝이 번쩍 들린,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서까래. 또는그부분의처마.

 

 

 

 

같은 듯 다른 동서양의 매듭의 美

 

우리의 전통매듭과 서양 매듭은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매듭의 시작과 끝남에서 서양 매듭은 평면 조직인 반면, 우리 매듭은 입체 조직이면서 일직선상으로 연속 구성이 된다. 그런가 하면 한국·중국·일본의 기본 매듭형은 유사하나 그 쓰임새가 다르고 매듭의 구성이 달라 민족성의 차이를 보여준다.

 

중국의 매듭은 단단한 구성과 단아한 모양이 특징인 우리나라 매듭에 비해 크기가 크고 화려하다. 또한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다. 중국인들은 대대로 끈을 숭배하고 이에 주술적인 힘이 깃들어있다고 믿었다. 중국인은 용의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신앙과 용의 모양을 하고 있는 긴 끈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를 맺어 매듭을 짓는 일은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신앙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매듭은 실용적이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매듭인 나비매듭과 국화매듭이 일본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특히 다도에서 쓰는 기구의 장식이나 선물을 싸서 끈을 매는데 매듭을 사용하며, 기모노의 허리끈은 우리의 광다회(廣多繪, 넓고 크게 짠 끈목)와 상당히 유사한 조직을 사용한다.

 

동방 지역뿐 아니라 서양의 여러 지역에서 매듭은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장식으로 사용되었지만, 동양의 그것에 비해 서양의 매듭은 장식품 의미가 강하며 그 종류도 적다. 세계 최고 품질의 카펫을 생산하는 페르시아와 터키의 매듭은 닮은 듯 다른 경향을 나타낸다.

 

페르시아 카펫은 왕정의 화려함과 힘을 상징하는 장식품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터키의 카펫은 지역에 따라 그 색과 무늬가 다양한데, 카펫에는 종교적 규율이나 아라베스크 문양을 새겨 그 의미를 높였고, 이슬람교 계율에 따라 카펫에 동물이나 인물을 새기지는 않았다. 또 빨간색은 부와 행복, 초록색은 천상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등 색의 사용도 굉장히 엄격했다.

 

스페인에서는 사보네리(Savonnerie)라는 특유의 매듭방식을 이용한 태피스트리가 번성했으며, 프랑스에서는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아 자수가 발전했는데, 이때 자수에 매듭을 지어 꽃의 수술 등 다양한 조형물을 나타냈다. 또한, 우리 전통술 장식과 유사한 ‘태슬(Tassel)’이 주로 카펫이나 커튼, 가구 등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되었다.

 

 

에디터 김정민 일러스트 김재민

자료 협조 선바위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참고도서 <한국인의 솜씨>(손영학 지음, 다할 미디어 펴냄) <전통매듭>(김은영 지음, 대원사 펴냄) <전통 매듭과 현대의 만남>(차명이 순 지음, 느림 펴냄)

 

 

 

서양 매듭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굉장히 어려운 문제나 일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한다.

이 말의 기원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 중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도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리 기아의 수도인 고르다움에는 산수유 껍질로 엮은 지극히 복잡하고 단단한 매듭이 있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는 세계의 왕이 된다’ 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 탓에 많은 이들이 이 복잡한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밧줄의 끝이라 생각한 부분에 또 다른 끝이 이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문을 들은 알렉산더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는 곳을 찾아가 단칼에 매듭을 절단해 버렸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더불어 발상의 전환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이 역사적인 에피소드는 ‘융통성 없이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도전 정신을 가진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해준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과격한 해결 방법은 동양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얽힌 실타래는 당기지 마라’ 는 우리네 옛 격언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억지로 잡아 당길수록 실타래는 더욱 꼬여들지만, 그렇다고 칼로 잘라서도 안 된다. 실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더욱 느슨하게 풀어줘야 한다’ 는 이 말에는 순리에 따른 삶을 추구하는 동양인의 지혜가 담겨있다.

 

 

 

 

 

손끝에서 피어난 전통 매듭의 팔색조 아름다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전통매듭은 다양한 기능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생활 속에서 자리 잡는다. 의복이나 주머니 등을 만들 때 마무리 역할을 했을뿐더러 작은 생활소품 하나에도 여유로운 멋을 표현하고자한 우리 선조의 미적감각의 도구였던 셈이다.

 

 

 

 

 

정성으로 매듭짓다, 보자기

 

음식을 싸거나 옷가지를 싸는데 다양하게 이용된 보자기는 옛 여인들의 최고의 수집품이자 실용품이며, 전하는 이의 정성이 깃들어있는 물건이었다. 보자기의 매듭은 잠금과 장식 역할을 겸했으며, 보자기 매듭을 아름답게 매는 이유는 보내는 이의 정성이 도착하는 순간까지 고이 담겨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중앙에 있는 연분홍과 진분홍색의 대비가 멋스러운 보자기는 효재 작품.

 

 

 

한복에 멋을 더하다, 노리개

 

여인들의 옷차림을 한층 아름답게 꾸며주는 노리개는 매듭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전통 장신구로, 간결하면서도 단아하고 우아한 매듭의 멋을 한껏 보여준다. 한복에 곱게 매달린 노리개를 보면 어떤 화려한 액세서리보다 기품있고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노리개가 단지 아름답게 꾸미는 데만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우리 한복 특유의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가 주는 비례미를 노리개에도 그대로 담아내어 매듭 부분은 짧게 하고, 술은 길게 늘어뜨린 것이라니 선조들의 미의식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허리 말기 부분에 자수를 놓은 우아한 꽃분홍빛 어우동 치마는 박경숙 한복.

은사 사각 향갑 노리개는 예가 크래프트. 낙지발대 삼작매듭으로 장식한 손수 귀주머니는 담연.

 

 

 

 

매듭, 가야금 선율과 함께 하다

 

아쟁이나 피리, 거문고와 가야금에 다회를 여러 줄 느슨히 엮어 장식한 것을 보아 우리 옛 악기의 장식으로 유소를 달았음을 알 수 있다. 또 가야금과 거문고 끝에 무명으로 굵게 매듭짓는 부들은 각 줄의 끝에 연결되어 줄을 죄고 푸는 역할을 한다. 길이가 길기 때문에 끝을 처리하는 방법, 즉 매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대개 얌전한 ‘∞’ 모양으로 마무리한다.

 

산조 가야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로 악기장 고흥군 선생 작품.

 

 

 

 

맛과 멋의 조화로움, 미나리·파강회

 

재료 : 오징어1마리, 새우10마리, 표고버섯50g, 황백지단각50g, 홍고 추3개, 실파12줄기, 미나리12줄기

 

만드는법

 

1오징어는 칼집을 넣어 데치고 새우는 껍질을 벗겨 내장을 빼낸 후 찜 통에 찐다.

2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 기둥을 떼어내고 1.5cm 너비로 썬다.

3 홍고추는 반으로 가르고 숟가락으로 속살을 긁어낸 다음 가로 1cm, 세로 3cm 크기로썬다.

4 황백지단도 홍고추와 같은 크기로 썬다.

5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실파와 미나리를 담갔다가 곧바로 꺼 내어 찬물에 헹군다.

6 준비한 재료를 색색으로 맞추어 미나리나 실파로 돌돌 감아 묶는다.

 

 

 

 

매듭 모양으로 빚은 한과, 매작과

 

재료 : 밀가루 6컵, 치자가루 1/2 큰술, 치즈가루 1큰술, 보리순가루 1큰술, 생강즙 100ml, 소금ㆍ설탕ㆍ식용유1½큰술씩, 시럽 6큰술(설탕·물6큰술씩)

 

만드는법

 

1 밀가루 2컵 당 각 재료와 소금을 넣고 체에 내린 다음 생강즙과 식용유를 ½ 큰 술씩 섞어 반죽한 후 랩에 싸서 30분간 숙성한다.

2 냄비에 설탕 과물을 동량으로 넣고 설탕이 녹을때까지 젓지말고 끓이다가 바글바글 끓으면 중간 불로 줄이고 설탕물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졸인다.

3 반죽을 밀대로 2mm 두께로 밀어서 가로 1cm 세로 4cm 크기로 잘라 위아래 0.5cm 간격을 남기고 세로방향으로 칼집을 3군데 넣는다.

4 양쪽 칼집 낸 부분을 잡아 가운데 칼집 낸 부분으로 넣고 뒤집어 타래를 만든다.

5 기름을 170℃로 달궈 매작과를 넣고 기름 위에 뜨면 바로 건져낸다.

6  튀긴 매작과의 기름을 빼고 시럽을 입혀낸다.

 

 

에디터 조민진 사진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승헌 제품스타일링 김은희(세컨드플로어)  어시스턴트 김현숙, 김다희, 권세영요리&스타일링 양은숙(스튜디오밥) 어시스턴트 김소혜

소품협찬  담연, 효재, 예가크래프트, 박경숙한복, 동림매듭박물관, 수수도예공간, 청봉옻칠공방, 대부앤틱

고흥곤국악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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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77  DECEMB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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