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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부 33
"그런데 아이들은 잘 있나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네흘류도프는 누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기 시어머니인 할머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왔노라고 대답했다. 남편과 동생의 논쟁이 끝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 그녀는, 옛날에 네흘류도프가 검둥이와 프랑스 계집애라고 이름 붙인 인형을 상대로 곧잘 놀던 것처럼 요즘 자기 아이들도 인형을 가지고 여행 놀이를 하며 논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네흘류도프는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 애들도 너하고 똑같이 그렇게 놀지 않겠니!"
불쾌한 대화는 끝났다. 나탈리야는 마음이 놓였지만,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동생하고만 통하는 얘기를 하는 것도 어색해서 공통된 화제를 꺼내려고 페테르부르크의 최근 소식을 얘기하기 시작햇다. 결투로 외아들인 카멘스키를 잃은 그 어머니의 슬픔에 대해서였다.
라고진스키는 질투에서 비롯된 살인을 일반적인 형사범에서 제외한다는 제도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말했다.
그의 이 의견은 네흘류도프의 반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다 토론해버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논쟁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으나, 이번에는 양쪽 다 생각하는 바를 죄다 말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자기 신념만을 고집했다.
라고진스키는 네흘류도프가 자기를 비판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경멸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므로 상대방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주려 했다. 한편 네흘류도프는 자형이 자신의 토지 문제에 대해 쓸데없이 참견을 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음은 물론이고(하긴 마음속으로 자형이나 누나나 그 아들이 자신의 상속자로서 발언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지만), 이 시야가 좁은 사나이가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고 침착한 태도로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우열하고 범죄적인 것으로 여기는 문제를 여전히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내심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만만한 태도가 네흘류도프의 비위를 몹시 건드렸다.
"그럼 재판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요?"하고 네흘류도프는 물었다.
"결투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은 보통 살인범으로 다루어 징역형을 내려야 해요."
네흘류도프는 또다시 손끝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열띤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그는 물었다.
"공평해지는 거죠."
"마치 공평이라는 게 재판의 목적인 양 말씀하시는군요"하고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그럼 달리 무슨 목적이 있다는 거요?"
"계급적 이익의 옹호에 불과해요. 내가 보기에 재판이란 우리 지주 계급에게 유리한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상의 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뭇 새로운 견해로군." 침착한 웃음을 띠고 라고진스키는 말햇다. "그러나 보통 재판소는 좀 다른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지만, 내가 보기에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재판소의 목적은 다만 현재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재판소는 일반 사회의 수준보다도 위에 서서 이를 향상시키려 드는 사람들, 이른바 정치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수준 이하에 서 있는 이른바 범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벌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는데요. 우선 정치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일반 수준보다 우수하다는 데 어폐가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대부분 역시 좀 다른 데가 있긴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일반 수준보다 낮다고 보는 범죄자 유형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사회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봐요."
"그렇지만 나는 재판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저 분리파 교도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견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라고진스키는 좀처럼 제 말이 꺾이는 일 없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네흘류도프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럼으로써 상대방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면서 자기 얘기만 계속해댔다.
"그리고 재판소가 현행 제도의 유지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말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어요. 재판소는 재판소대로 자기 목적을 추구하고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죄인을 교도한다든지....."
"감옥에 가둬놓고 교도한다니, 고마운 말씀이군요."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혹은 배제한다든지"하고 라고진스키는 끄떡않고 자기 말을 계속했다. "즉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타락 분자, 야수 같은 친구들을 배제하는 거예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재판소는 그 무엇도 안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사회에서는 그것을 실행할 만한 수단이 없는 겁니다."
"그건 어째서죠? 모를 소리군요." 억지로 웃음을 띠면서 라고진스키는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원래 합리적 형벌이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사용되던 체형과 사형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성격이 온화해짐에 따라 점차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요." 네흘류도프가 말했다.
"그런 말을 당신 입에서 듣다니, 신기하다 해야 할까 놀랍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인간을 혼내주고 그런 짓을 두 번 다시 못 하도록 만드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유해하고 위험한 분자의 목을 베는 것도 아주 이치에 닿는 일이겠죠. 어쨌든 이 형벌은 두 가지 다 합리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무위도식과 나쁜 본보기로서 타락해버린 인간을 감옥에 가둬놓고 먹는 데 곤란이 없는 의무적인 무위의 환경과 가장 타락한 인간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슨 심사인지 모르겠으나 한 사람당 5백 루블 이상이나 비용을 들여, 그것도 국비로 툴라에서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로, 혹은 쿠르스크에서 다른 먼 변방으로 그들을 이송하는 것은 또 무슨 의의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국비 여행을 겁내고 있잖소. 더욱이 그 국비 여행이나 감옥이 없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태평스레 앉아 있지는 못할 거요."
"그러나 감옥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줄 만한 힘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 죄수들은 한평생 거기 갇혀 있는 게 아니고 형기가 차면 석방되니까요. 뿐만 아니라 이런 제도에서는 도리어 사람들을 악과 타락의 극단에까지 몰아넣고 말기 때문에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징벌 제도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감옥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감옥을 완전하게 하려면 국민 교육에 들이는 비용보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 테니까, 국민에게 새로운 부담을 더할 뿐입니다."
"그러나 징벌 제도의 결함을 내세워 재판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소?" 다시금 라고진스키는 처음의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결함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목청을 돋우며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오?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가요? 아니면 어느 정치가가 말한 대로 눈알을 빼버려야 한다는 건가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라고진스키는 말했다.
"그렇죠, 진학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목적에는 맞겠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는 잔학할 뿐만 아니라 목적에도 부합되지 않고, 게다가 우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이지 정신이 올바른 인간이 어떻게 이런 졸렬하고 잔악한 형사재판 일에 참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나는 바로 그런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오."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라고진스키는 말했다.
"그야 당신 자유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군요."라고진스키는 떨리는 소리로 말햇다.
"재판소에서 나는 보았습니다. 어느 검사보 따위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행한 소년을 무슨 수를 쓰든 유죄로 만들려고 기를 쓰며 날뛰더군요. 그리고 분리파 교도가 성서를 읽었다 해서 그걸 유죄로 만들려는 다른 검사 한 명도 보았습니다. 요컨대 재판소에서 하는 일이란 이처럼 무의미하고 잔학한 행동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나도 근무할 수 없겠군요." 라고진스키는 이렇게 대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흘류도프는 자형의 안경 밑이 이상하게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눈물이 아닐까?'하고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분통의 눈물이었다. 라고진스키는 창가로 다가가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안경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안경을 벗고 눈을 닦았다. 소파로 돌아온 라고진스키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까지 자형과 누나를 슬프게 한 것이 마음 아프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내일 출발하면 이제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될 게 아닌가? 그는 혼란스런 심정으로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적어도 자형은 반박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어. 불쾌감을 참지 못해 자형한테 모욕적인 말을 하고 가엾은 누님까지 슬프게 만들다니, 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군'하고 그는 생각했다.
부활 2부 34
마슬로바를 포함한 죄수 이송대는 오후 3시에 역을 출발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네흘류도프는 감옥에서 이송대가 나오기를 기다려 철도역까지 함께 따라가기 위해 12시 전까지 감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짐과 서류를 정리하다가 네흘류도프는 자기 일기를 펼쳐 들고 그중 몇 군데와 제일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마지막 부분은 그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직전에 쓴 것이었다. '카튜사는 내 희생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희생하려 한다. 그녀도 이겼고 나도 이긴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일고 있는 변화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그렇다고 믿기엔 가슴 떨리는 일이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확실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믿기엔 너무나 가슴 벅찬 일이지만, 확실히 그녀는 갱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계속해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심한 고통과 동시에 커다란 기쁨을 경험했다. 오늘 병원에서 그녀의 행실이 나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이렇게 못 견디게 괴로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말할 때도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금할 길 없었지만, 다음 순간 문득 나 자신의 일을 상기하고 과거에 수없이 죄를 저질러 왔으며 현재도 마음속으로 그녈르 증오함으로써 죄를 짓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나 자신이 미워지는 동시에 그녀가 측은해졌다. 나는 곧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기 자신의 흠을 항상 제때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날짜로 이렇게 써 넣었다. '오늘 나는 나탈리야 누님을 찾아갔었으나, 나 자신의 불쾌한 기분 때문에 공연히 좋지 않은 태도로 짓궂게 대햇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마음이 괴롭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내일부터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낡은 생활은 이것으로 작별이다. 영원히! 여러 가지 감명 깊은 일이 많았지만, 아직도 그것들을 하나로 정리할 수가 없다.'
그가 이튿날 아침 눈을 뜬 즉시 느낀 기분은 자형과의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뉘우침이었다.
'이대로 그냥 출발할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호텔로 찾아가서 사과하고 와야지.'
그러나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죄수들이 출발하기 전에 도착하려면 급히 서둘러야만 했다. 황급히 준비해서 문지기와 페도시야의 남편 타라스를 시켜 역으로 짐을 지워 보내고 나서, 네흘류도프는 처음 눈에 띈 마차를 잡아타고 감옥으로 몰았다. 타라스는 그와 함께 시베리아로 가게 되어 있었다. 죄수 열차느 넨흘류도프가 탈 우편 열차보다 두 시간 앞서 출발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하숙집 셈을 모두 치렀다.
7월의 무더위가 깔려 있었다. 간밤의 무더웠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거리의 포석이며 집이며 함석지붕들이 움직이지 않는 뜨거운 대기 속으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간혹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먼지와 페인트 냄새가 뒤섞인 후텁지근한 공기를 불어 끼얹을 뿐이었다. 한길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적었고, 길 가는 사람도 건물 그늘 쪽을 걸어가고 있었다. 다만 까맣게 햇볕에 그을린 도로 인부들만이 짚신을 신고 길 복판에 앉아서 뜨거운 모래 속에 깔아놓은 돌을 망치로 두들기고 있었다. 표백이 잘 안 된 흰 여름 제복에 오렌지 빛 권총 끈을 늘어뜨린 표정이 음울한 순경은 기운 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흰 눈가리개 사이로 양쪽 귀만 삐죽 나온 말들을 달고 햇살을 받는 쪽에만 커튼을 내려 친 철도마차가 방울을 울리면서 거리를 오갔다.
네흘류도프가 감옥에 이르렀을 때 죄수 이송대는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였고, 감옥에서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이송 죄수 인수인계라는 성가신 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에 보내지는 인원수는 남자 죄수 623명, 여자 죄수 64명이었다. 이들 전원을 일일이 죄수 명부와 대조하고 병약자를 가려내어 호송병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신임 소장과 두 부소장, 감옥 의사와 그 조수, 호송 장교와 서기 등은 뜰 안의 담 그늘에 마련된, 서류며 사무용품이 놓인 탁자 옆에 앉아서 연달아 차례대로 나오는 죄수들을 한 사람씩 검사하고, 조사하고, 신문하고는 장부에 기록했다.
탁자는 벌써 반쯤이나 햇살을 받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다 바람마저 없고, 모여 서 있는 죄수들의 입김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웠다.
"도대체 어찌 된 셈이야, 언제 끝날지 모르겠군!" 키 크고 뚱뚱한 몸집에 어깨가 솟아오른, 팔이 짧고 얼굴이 빨간 호송대장은 콧수염으로 덮인 입술에 노상 담배를 물고 있었는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서 이렇게 말햇다. "이거 정말 못해먹겠는걸. 도대체 어디서 이러헥 많이 긁어모아 왔지? 아직도 많이 남았나?"
서기가 장부를 조사해보았다.
"아직 남자 죄수 24명에 여자 죄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봐, 뭘 그러고 서 있어! 빨리 이리로 오라고!" 호송대장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한곳에 몰려 서 있는 죄수들을 보고 야단쳤다.
죄수들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면서, 그것도 그늘이 아닌 뙤약볕에서 벌써 세 시간 넘게 서 있었다.
감옥 안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문 옆에 여전히 총을 든 경비병이 서 있고 죄수들의 짐과 병약자들을 태워 가기 위한 짐마차가 스무 대가량 대기하고 있었다. 한 귀퉁이에는 집안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다만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하려고, 그리고 가능하면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무슨 선물이라도 쥐여주려고 죄수들이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도 이 사람들 속에 끼어들었다.
그는 거기서 한 시간가량 서 있었다. 한 시간이 거의 다 지나서야 정문 안쪽에서 쇠사슬 소리와 발걸음 소리, 호령 치는 소리, 기침 소리, 숱한 사람들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5분쯤 그러고 있는 동안 간수들은 옆문을 들락날락햇다. 드디어 출발이라는 호령이 들렸다.
정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자 쇠사슬 소리가 한층 똑똑히 들려왔다. 흰 제복에 총을 멘 호송병들이 밖으로 나와서 익숙하고 잘 훈련된 동작으로 문 앞에 넓고 정연한 원을 그리며 정렬했다. 그들이 정렬을 마치자 새로운 구령 소리가 들리고, 박박 깎은 머리에 납작한 모자를 쓰고 어깨에 베낭을 멘 죄수들이 한 손으로는 등의 배낭을 붙잡고 다른 빈손은 보조에 맞춰 흔들면서 족쇄 찬 발을 끌며 2열 종대로 나왔다. 맨 처음 나온 것은 남자 징역수들로, 모두가 똑같은 회색 바지에 등에 기호가 들어 있는 수의를 입고 있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홀쭉이도, 뚱뚱이도, 창백한 이도, 머리털 붉은 이도, 새까만 이도, 못수염을 기른 이도, 턱수염을 늘어뜨린 이도, 턱수염이 없는 이도, 러시아인도, 타타르인도, 유대인도 모두가 족쇄 소리를 내면서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씩씩하게 손을 흔들면서 나왓는데, 열 걸음쯤 나오더니 멈추어 서서 조용히 4열 종대로 열을 지었다. 뒤이어 계속해서 똑같이 머리를 깎고 똑같은 복장을 한 죄수들이, 족쇄만 차지 않았을 뿐 역시 두 사람씩 수갑을 찬 채 연이어 나왔다. 유형수들이었다.....이들도 역시 씩씩하게 걸어 나와 멈추어 서자 4열 종대로 늘어섰다. 다음은 농민조합의 추방인들이었고, 그 뒤를 이어 여죄수들이 같은 순서로 걸어 나왔다. 처음엔 잿빛 수의에 머릿수건을 쓴 징역수, 다음은 유형수와 자원해서 따라가는 도시 복장이나 시골 복장을 한 여자들이 잇따랐다. 잿빛 수의 옷자락에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자들도 몇 명 있었다.
여죄수들과 함께 아이들도 따라갓다. 사내아이도 있고 계집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마치 말떼 속의 망아지처럼 여죄수들 틈에 끼여 따라가고 있었다. 남죄수들은 이따금 기침을 하거나 간혹 말을 주고받을 뿐 잠자코 서 있었으나, 여죄수들은 끊임없이 지껄였다.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가 나왔을 때 이내 그녀를 발견햇으나, 그녀의 모습은 곧 인파에 묻혀버렸다. 그다음엔 다만 인간다운 모습을 잃은, 특히 여자다운 특징을 잃어버린 동물, 아이들과 배낭을 짊어지고 남죄수 뒤를 줄레줄레 따라가는 잿빛 동물 무리만이 눈에 들어왔다.
감옥 안에서 이미 죄수 전원의 점호를 해놓고도 호송병들은 아까의 인원수와 맞춰보면서 또 인원 점검을 시작했다. 이 일은 무척 오래 걸렸다. 특히 죄수 여럿이 자리를 바꿔서 호송병의 계산을 헛갈리게 했으므로 더욱 시간이 걸렸다. 호송병들은 증오심을 품은 채 조용히 복종하고 있는 죄수들을 떠다밀고 욕을 퍼부으면서 다시 점검을 시작했다. 인원 조사가 끝나 호송대장이 구령을 내리자, 죄수 무리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몸이 약한 남죄수와 아이들이 서로 앞다퉈 짐마차로 달려가서 먼저 배낭을 처넣고는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울부짖는 젖먹이를 안은 여자와, 자리싸움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과, 표정이 어두운 남죄수들이 제각기 짐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죄수 몇 사람은 모자를 벗고 호송대장에게 다가가서 무엇인지 부탁을 했다. 나중에 네흘류도프가 안 일이지만, 그들은 짐마차에 태워달라고 청을 한 모양이었다. 네흘류도프가 보고 있노라니, 호송 지위간은 부탁하는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잠자코 담배를 피우다가 느닷없이 그 짧은 손을 죄수의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러자 죄수는 자기를 때리즌 줄 알고 중대가리를 움츠리면서 비켜낫다.
"그렇담 좀 편안하게 해줄까, 맛을 보게 말이야! 네놈이라면 걸어서도 갈 수 있어!" 장교가 호통을 쳤다.
장교는 오직 한 사람, 족쇄를 차고 비틀거리는 호리호리한 노인만을 마차에 타도록 허가했다. 네흘류도프가 보고 있노라니, 노인은 납작한 모자를 벗어 들고 성호를 그으면서 마차 옆으로 갔으나, 그 노쇠한 발에 채워진 족쇄 때문에 다리를 쳐들 수가 없어 오랫동안 마차에 기어오르지 못했다. 짐마차에 타고 있던 시골 여자가 노인의 손을 잡아끌어 올려주었다.
모든 짐마차가 배낭으로 가득 차고 그 배낭 위에 허가받은 죄수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호송대장은 군모를 벗어 이마와 대머리와 불그스름하게 살찐 목덜미를 손수건으로 닦고는 성호를 그었다.
"앞으로 가!" 하고 그는 구령을 내렸다.
호송병들은 총을 절그럭거리고, 죄수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성호를 긋는 자도 있었다. 전송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면 죄수들도 이에 대답해 고함을 지르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흰 제복을 입은 호송병들에 에워싸인 죄수 대열은 족쇄찬 발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송병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족쇄 소리를 울리면서 4열 종대 징역수들이 잇따르고, 다음은 유형수와 두 사람씩 손에 수갑을 찬 농민조합원들, 그다음이 여죄수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배낭과 병약자들을 가득 실은 짐마차가 따랐다. 한 짐마차 위에는 얼굴에 감싼 여자가 높이 앉아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