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여교에서 큰고개를 경유 용화산을 오를려고 하였으나 이동거리를 감안 큰고개(해발 약 600m)에서 바로 붙기로 하였다.
사여교 원점회귀는 자차(自車)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수 코스일 것.
필자는 오래전에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찍고 청량사로 내려서 유람선을 타고 소양댐으로 하산한 적이 있다.
배후령(해발 약 600m)은 국도 제46호선이 지나가는 춘천시 신북읍과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고개로서 통한의 삼팔선이 그어진 곳.
삼팔선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美蘇) 점령군이 한반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선에 그은 군사분할선(軍事分割線)이다.
그러니까 용화산과 오봉산은 삼팔선 이북지방으로 한국전쟁 전에는 모두 북한땅이었던 셈.
산행궤적
9km가 채 못되는 길 3시간 40분이 걸렸다.
큰고개가 해발 약 600m이지만 오름길은 다소 가파른 편. 도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가파르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참고 개념도에서 우리 버스는 '들꽃향기펜션에 주차하고 있었다. 펜션은 사여교에서 불과 3~400m의 거리.
중앙고속도로를 계속 타고가다 춘천Ic에서 내려 큰고개(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삼화리 산102-7)에 닿았다.
큰고개는 춘천방향에선 오를 수 없어 407번 도로에서 날머리인 용화산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부다리터널'을 빠져나온 후 좌측 '새고개로'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 버스 앞의 흰색 승용차가 있는 곳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 큰고개는 화천과 춘천의 경계지점인 셈.
버스는 작은 주차장에서 회차를 하여야 한다.
토어(tor)란 금이 가고 부서진 암괴들이 노출된 암체를 말한다.
용화산 등산로 안내도엔 '새남바위'를 '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세 남자가 살았다고 '세남바위'란 이야기와 동떨어진 이야기.
산길입구의 '큰고개' 푯말.
제법 가파른 산길을 일렬로 줄을 서서...
계단도 오르며...
밧줄에 의지한 채...
마사토 푸석바위를 오르게 된다.
경사도가 얼추 끝났을 때 나타나는 명품 소나무.
용화산의 '제1경'이라 할 만하다. 기암 벼랑에 고고한 자태로 수백 년을 버티고 서 있는 적송 한 그루.
더 한 찬사를 붙일 수 없는 필자의 무능을 탓할 수밖에...
일기예보는 전국에 비가 온다고 하였지만 이곳은 다행히 비는 멎었다. 초 단위로 산정이 변화무쌍하는 건 쓸고 다니는 운무의 작품.
미옥 씨가 도드라진 암괴에 올랐다. 산정엔 세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 곳.
만장대, 하늘벽, 새가 난 곳이라 새남바위 등 숱한 스토리텔링이 엮어졌다.
남자가 한 사람 모자라서 이 남자가 기어 오른다. 용화산엔 네 여자(사여고개)와 세 남자(세남바위)의 이야기가 엮어져 있다.
이제 4:4 짝지가 맞아 짝지가 없었던 여자의 질투가 사라져서 산삼이 나고, 세남바위가 네남바위로 바뀔려나?
큰고개에서 300m 오른 지점에 춘천방향 사여교에서 오르는 '폭발물처리장' 갈림길이 있다.
'발가락바위'라 명명했다. 남군자산에선 '손가락바위'가 있었다.
어릴적 이곳에서 살았던 장수 씨는 이 바위를 세남바위(새남바위)라 기억하고 있다.
사여교에서 큰고개로 오르는 계곡을 '새남바위골' 또는 '양통개울'이라고 부른다.
氣가 살아있는 화강암 암릉 저편에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바위. '촛대바위' 또는 '칼바위', 로 부르고, 입석대(立石臺)라고도 한다.
잘 그린 한 폭의 수묵화가 이러할까? 촌각을 다투며 각양각색의 암릉미를 연출하는 운무(雲霧).
고고한 자태의 소나무.
지금 이곳은 신들의 영역.
만장대에 오르면 산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고, 도열한 분재 소나무가 진경산수를 펼치고 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촛대바위.
암릉으로 이어지는 곳을 만장대(萬丈臺) 또는 하늘벽이라고 부른다.
건너편 촛대바위의 모습.
만장대의 정점.
867.4 삼각점봉을 지나면...
삼각점.
정상이 100m 좌전방에 있다.
계단을 올라...
세멘트 구조물 정상석에 섰다.
화천군에서 세운 정상석은 미적 감각은 외면한 채 덩치만 키운 세멘트 구조물.
정상석 뒷면엔 용화산의 개요와 맥국(貊國) 산성을 알리고 있다. 거기다 화천군수의 이름을 새겼지만 ㅉㅉ.
맥국은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고대 소국을 말한다.
정상석이 삼단 받침돌위 상좌에 올랐으니 위세가 더 세어질려나?
정상을 지난 뒤 사여교로 내려설 양통계곡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고...
전망바위에 서면...
용화산의 수려한 암괴가 다다온다.
고개내민 민둥머리. 무얼까?
돌아본 모습.
민둥 돌머리는 휴양림이 있는 산행종점에서 도드라져 보이고...
살짝 당겨보니 득남바위 또는 불알바위라 불리는 바위. 사내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곳이라 한다.
이미 식사가 끝나가는 일행들 뒤로 아까 그 거시기바위가 도드라져 보인다.
"아~ 이거 '19금'인데, 여성분들은 못들은 체 해라. 저쪽에 있는 바위가 '불알바위'다." 했더니 "추우면 오그라 든다."고 한 술 더 떤다.
하기사 슬하에 아들놈들을 다 키웠으니 그 농(弄)이사 예사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일행들은 식사를 마치고 벌써 떠난 858m 옆 전망암봉에서...
당겨보는 득남바위(불알바위).
건너편 산자락은 아직 안개가 덮혀있어...
가늠할 수 없지만...
방향을 짚어보니 춘천호 너머로 화악지맥인 듯.
배후령 6.6km 이정표를 지나면서...
능선길은 위험을 알리며...
등산로폐쇄라는 푯말을 세웠으니, 이제부터 능선 좌측 사면을 도는 육산의 산세로 바뀐다.
능선으로 시선을 옮겨보지만 앞서간 오형님을 따라 잡아야 하므로 계속 산사면을 따른다.
또다시 양통계곡 갈림길(탈출로)을 만나면...
고탄령은 1.6km가 남았다.
휴양림이 있는 산행종점 방향 양통을 가리키는 푯말.
살짝 오르면 만나는 832.2m 봉엔 쉼터 사각벤치가 있고...
암릉지대가 펼쳐진다. 'ㄷ'자 홀더엔 미끄럽지 않도록 천으로 감아 두었으니 안전 점수는 만점.
암릉에서 둘러보는 주위 산군들.
뒤돌아 본 산릉.
배후령 방면의 산릉들에는 오봉산을 위시하여 마적산과 부용산이 안개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을 것.
이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삼팔선'이 지나는 배후령과 그 너머 오래전에 올랐던 오봉산 기억이 있어서이다.
오래전 필름 카메라의 추억 오봉산과 소양감 댐.
이제 암릉을 조심 내려서며...
뒤돌아본 모습.
다시 빠른 걸음으로 좇아...
고탄령에 닿았다.
휴양림으로 내려갈 사여령은 1km가 남았다.
고탄령에서 휴양림 방향 탈출로를 내려다본 후...
수불무산(수풀무산) 갈림길을 지나서...
오형님과 박고문님을 따라 잡았다. 그때까지 미옥 씨가 두 분을 안내하며 전화를 걸어오더니 인계(?)를 한 후 앞서간다.
하늘문이든 통천문이든 석문을 지나...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굵은 붓으로 덤뿍 먹을 묻혀 일필휘지로 검은 획을 이리저리 그었다. 묵직한 수묵화 한 점이다.
소나무 뿌리가 화석처럼 엉켜붙은 암릉을 내려서...
사여령에 닿았다.
갈림길(사여령) 이정표에 배후령이 4km의 거리..
미옥 씨가 바닥에 놓고 간 캔맥주. 아직 얼은 맥주가 녹지 않아 배낭 옆 호주머니에 꽂았다.
계곡에 내려서서 열이 난 발을 탁족으로 열기를 식히고...
계곡을 건너...
이정표를 일별한 후...
안내도의 현위치를 짚어본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사방공사가 잘 된 계곡을 건너...
휴양림에 거의 다 내려왔다.
포장도로를 만나면...
휴양림 시설이 짙은 산림속에 펼쳐져 있고...
이후 모든 제반 시설은 '국립 용화산자연휴양림' 시설이다.
안내소 앞을 지나...
포장도로를 걸어...
고탄령 갈림길의 날머리인 하얀집이 있는 곳에 닿는다. 이 지점은 능선과 계곡 등 3개의 탈출로에서 내려서는 지점.
안내판을...
자세히 살핀다.
고탄령에서 내려오는 길과 좌측으로 또다른 등로를 살펴본다.
이 지점의 이정표.
휴양림에서 1.8km를 내려와서...
엘림수양관을 지나고...
프라임 캠핑장을 지나면...
사여교 삼거리에 닿는다.
다리 입구의 커다란 현수막엔 '대형버스 진입금지'라고 적혀있다.
우리 차는 여기에서 약 400m 거리의 '들꽃향기 팬션' 앞에 있고, 서울 '한마음 산악회'차가 주차해 있다.
신통암을 지나면서 우리 버스를 확인하고...
좌측 양통개울(새남바위골)과 우측 사여골의 합수지점이다.
들꽃향기펜션이 있는 골짜기 마을은 장수 씨가 어릴적 2년여 살았던 곳이라 한다.
이 펜션은 장수 씨 친구가 경영하는 곳이란다.
좌 직진 비포장 오름길은 큰고개로 오르는 길.
용화산(큰고개) 등산로 역할만 할 뿐 버스는 주행불가한 길.
큰고개 방향 비포장도로.
시원한 맥주로 목가심을 한 후 계곡으로 내려섰다.
-바 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 치 환>
친일과 애국적 행보 사이를 오락가락한 변절자로 평가되지만 그의 시는 바위처럼 아주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