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질병, 진실 혹은 거짓
- 건강 상식사전
드라마에서 질병은 매력적인 소재다.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니까.
하지만 드라마에 넘쳐나는 질병들, 과연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 걸까.
▲ SBS <괜찮아 사랑이야> -조현병
정신질환이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모은 드라마다. 지난여름 인기리에 방영된 <괜찮아 사랑이야>는 어릴 적 받은 폭력 등으로 인해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인기 작가 겸 라디오DJ인 장재열(조인성 분)이 주인공이다. 환시(幻視)와 공포 등으로 겪는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리는 조현병은 뇌의 도파민이 과잉돼 있는 상태로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환청이 주된 증상이며, 증상이 심해짐에 따라 현실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평생에 걸쳐 약을 먹고 조절해야 하는 병이다.
그러나 극중 장재열처럼 주변사람들의 지지에 힘입어 적극적인 치료를 한다면 얼마든지 경과가 좋아질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장재열의 어린 시절 모습이 투영된 한강우(도경수 분)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한 환시인 걸 알고 떠나보내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는 정신질환의 대표적인 인지행동치료 중 하나다. 중요한 치료법 중 하나지만 조현병의 증상 중 환시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시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드라마 특성상 실제 질병과는 다르게 묘사됐다.
▲ MBC <킬미, 힐미>-해리성 정체감 장애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무려 7개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다.
드라마 <킬미, 힐미>는 '다중인격 장애'로도 알려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장애의 시작점인 과거 상처와 연결된 여자 오리진(황정음 분)을 만나면서 극복한다는 설정이다. 18회에서는 남자 주인공 차도현(지성 분)이 오리진 주위를 배회하며 신세기, 페리박, 안요섭, 안요나 등 각 인격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성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인지 다중인격과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연일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여타 정신질환보다 드물게 발생한다.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경우 성장 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론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의 일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도현처럼 다른 인격 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치료는 정신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된다.
여러 성격에 대해 파악하고, 그중 좀더 부정적이고 문제 있는 성격에 대한 심리치료를 시행한다.
▲ SBS <펀치>-악성뇌종양
통쾌한 복수극으로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펀치>는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얘기를 그렸다.
주인공 박정환(김래원 분)은 병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악과 맞서 싸웠다. 15회에서는 극중 박정환의 동생이자 의사인 박현선(이영은 분)이 전 부인 신하경(김아중 분)에게 그의 상태를 전한다. "앞으로 두통이 더 심해지고 언어장애가 오며, 걷는 것도 불편해질 거예요." 의사의 말처럼 주인공은 일을 하던 중 두통이 심해졌고, 걷는 것 역시 어려움을 겪어 자신의 다리를 치며 분노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이다. 참지 못할 수준으로 지속되다 말기가 되면 의식을 잃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술을 마셔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증상이다.
또 악성 뇌종양 말기가 되면 종양이 커져서 신경을 자극한다. 언어중추에 종양이 생기면 언어 장애가 오는 것처럼 뇌의 어느 부분에 종양이 생겼느냐에 따라 고유 기능이 망가진다.
▲ tvN <하트 투 하트>-사회공포증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유난히 꺼리는 사람이 있다. 단순히 수줍음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지나쳐서 사회생활을 힘들어하는 경우는 염려해봐야 한다. 드라마 <하트 투 하트>의 주인공 차홍도(최강희 분)는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리거나 할머니 분장을 해야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
사회공포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주변과의 관계를 사고하는 수준이 민감하면 사회공포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혼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티를 내지 않으면 주변에서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길게 지속되면 만성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사회공포증 치료는 공포 상황에 단계적으로 노출시키면서 극복하는 행동치료가 주로 쓰인다. 본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극이나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서서히 사회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 KBS <가족끼리 왜이래>-위암
주말 내내 울고 웃게 만들었던 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는 막장 요소가 없는 착한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도 뻔한 소재가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단골 소재인 암. 다소 코믹한 분위기로 전개되다 아버지 차순봉(유동근 분)의 위암 투병 사실이 밝혀지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위암 말기 소식을 전해들은 동생 차순금(양희경 분)은 평소 음식을 짜게 만들던 자신을 탓하며 오열했다.
위암에 걸리는 원인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 선천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해 발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저염식을 섭취하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예방 효과는 있다. 생활습관도 중요하지만 정기적인 검진 역시 필수로 받아야 한다. 위암은 초기에 특별한 증세가 없어 차순봉처럼 병원 갔을 때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MBC <내 생애 봄날>-확장성 심근증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의 사랑 얘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확장성 심근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자와 심장을 기증한 여인의 남편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그렸다.
확장성 심근증은 심근 세포가 약해져 심실이 커지고 심장 근육의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건 원발성 확장성 심근증, 원인이 있을 때는 속발성 확장성 심근증이라 부른다. 극중 주인공 이봄이(최수영 분)의 경우는 전자에 속한다.
이봄이처럼 심장이식을 받는 것도 흔하진 않지만 가능하다. 속발성 확장성 심근증의 원인으로는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바이러스성, 유전성 등이 있는데,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 MBC <장미빛 연인들>-췌장암
"저 많이 안 좋은가요? 어디가 안 좋은지 말씀해주세요." "췌장암입니다."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에서는 고연화(장미희 분)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충격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췌장암은 초기에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시간이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늦게 발견되는 만큼 수술로 절제가 가능한 케이스가 적어서 예후가 나쁜 암에 속한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발병 요인이 있다. 45세 이상의 연령, 흡연 경력, 당뇨가 있는 경우, 고지방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 등은 주의해야 한다. 뚜렷한 예방수칙은 없지만 이런 위험요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게 좋다. (2015년 4월 20일 헬스조선) - 월간헬스조선 4월호에 실린 기사
* 도움말 박상진(연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도움말 이규성(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