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 김연종
이간난 외
구순 노파가 간난쟁이라니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호적에 올렸다니
결국 가난과 간난을 평생 떠받들고 살았다니
커피 맛을 알고는 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먹었다니
지팡이도 버리고 워커도 버리고 고립무원이 되었다니
씩씩한 독거노인으로 수십 년을 보냈다니
늘 푸른 요양원 최고령자가 되어 간난쟁이처럼 기저귀를 차고 있다니
문득 이간난 할머니를 묵상하다가
손에 쥐여 주었던 봉지 커피를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동의어가 되어버린 가난과 간난을 헤아려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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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서울 스테이 '작당' 모임
기자 회견장처럼 비장한 모습이다
흰색 가운을 벗고 나니 알몸이 통쾌하다
부산에 기거하는 한모 시인은 마침내 김연종이 돌팔이임을 커밍아웃했다고 말했다 돌바리(回巫, 돌아다니는 무당)는 여러 곳을 떠돌며 간단한 기도와 점을 쳐주고 잡다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해원解寃을 위한 씻김굿을 하는데 돌바리 특유의 언어와 춤과 노래는 詩가 된다고 돌팔이 의사의 생존법을 신통방통하게 들여다본다
여수에 개원한 치과의사 김모 시인은 돌팔이를 자칭하는 내과 의사가 시적 사유를 청진하다가 질병코드도 없이 내미는 내밀한 불법 처방이라는 기기묘묘한 분석을 내놓았다 의사 김연종이 메스를 든 외과 의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외과 의사의 예리한 메스보다는 고전적이고 운치 있는 메타포 같은 청진과 문진으로 환자를 어루만지는 내과 의사여서 그나마 안심이라고
돌팔이라고 밝히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단골마저 떠나고 나니 돌팔이에 대한 논란만 돌바리처럼 떠돈다 돌팔이는 돌팔이를 들키지 않으려 돌팔이 아닌 척 할 때 서투른 돌팔이가 되어버린다는 돌팔이 처방에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니 詩스루의 아랫도리가 뜨끔하다
김연종 | 2004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했으며 의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극락강역』,『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청진기 가라사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