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뿔났다」 코미디 유감
요즘 일요일 KBS 2TV 밤 9시 5분에 방영되는 개그콘서트에 ‘할매가 뿔났다’ 라는 프로가 있다. 싸가지 없는 손자 놈한테 온갖 놀림을 당하면서도 쓴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유상무 할배는 잔뜩 심술을 부리며 뒤이어 나타난 장동민 할매 한테 또 다시 후크를 얻어맞고 동네북 신세가 되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우습고 재미있어 주일 밤이면 이 프로를 기다린다.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손자 놈의 언행에 귀싸대기라도 한 대 후려칠 만도 한데 속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당하면서도 안으로 삭이며 온갖 응석을 다 받아주는 할배의 내리사랑 끝은 어디일까? 험한 세상을 살아오며 광기에 가까운 거시름만 남은 성질 고약한 할매의 뿔은 아무도 대적할 사람이 없다. 뿔이 나면 만만한 할배한테 몽땅 화풀이를 하기에 그냥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는 모습이 너무 안스럽고 바보스럽다. 어쩌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오늘의 할배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세대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코미디에 불과하지만 할매의 망상에 가까운 불평불만과 손자의 온갖 응석을 다 받아주며 삭여내는 할배의 모습은 왠지 측은하고 서글퍼 보였다. 세월 속에 저만치 먼 곳에서 보아야 겨우 보이는 노안으로 치약을 로션인줄 알고 남편의 얼굴에 발라주는 모습에서 문득 먼 훗날 우리부부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급속하게 여성 우위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영토를 확장하고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위력의 시대가 아닌 평화와 질서의 시대에는 남성들의 역할이 줄어들게 마련이라지만 일자리도 지위도 여성들이 대신하면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틈에 작아졌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정에서도 가장의 권위가 무너지고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들에게 마저 밀려 남자들의 존재는 이빨 빠진 호랑이의 존재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우스갯소리로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1순위가 영감이라고 한다. 이삿짐을 싸거든 마눌이 애지중지 하는 애완견을 안고 맨 먼저 차에 올라타 있어야 함께 갈 수 있다는 말은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어딘가 개운찮은 면이 있다. 잠이 들 때에도 마눌이 잠이 들었는지 살피고 나서 잠을 자고, 혹시 함께 여행을 하더라도 버려두고 갈 수 있기에 절대로 치맛자락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마누라가 곰국을 끓이면 ‘또 며칠 어디 다녀올 곳이 있는 모양이구나.’ 짐작만 하고 언제 오느냐고 물어서도 안 된다니 이쯤 되면 우리 사회도 갈 때까지 간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 이렇게 여성들의 파워가 커지고 남자들의 힘이 약해져 버렸는지 모르겠다. 젊고 노동력이 있고 일을 할 때에는 그나마 큰소리 치고 대접을 받는 것 같아도 직장을 잃거나 일을 하지 못하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오늘의 남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한 가정을 꾸려가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닌 희생과 열정은 어디에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홀대를 한다. 어쩌다 큰맘 먹고 소리라도 쳐 보지만 ‘늙거든 보자’ 는 협박에 속수무책이다.
TV채널은 연속극을 즐겨보는 마눌의 차지가 된지 오래이고 어쩌다 스포츠 중계라도 볼려고 하면 거실로 나가서 보라며 밀어낸다. 참다 못 해 입이라도 뻥긋할라치면 남자가 쪼잔하게 잔소리를 한다며 조용히 하란다. 눈만 부라려도 꼼짝 못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모두가 경제력을 가진 마눌 편이고 보니 이제 가정에서 더 이상 내편은 없다. 집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걷어차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덤벼든다.
반찬과 음식은 남편의 입이 아닌 아이들의 입에 맞아야 하고 외출도 아이들의 시간에 맞추어야 하고 식사도 아이들이 먼저다. 가정의 주인은 아내이고 아이들이고 그 다음이 남편 차례다. 오늘 우리들의 가장은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다.
요즘 이 프로의 영향으로 내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할매가 뿔났다' 를 교묘하게 ‘아내가 뿔났다’ 로 바꿔 툭하면 헤머급 펀치를 휘두르며 달려든다. 아이들한테는 지금 ‘엄마가 뿔났다’ 고 하며 또 윽박을 질러댄다. 비약과 편견이 있었지만 우리 모두 오늘을 편하게 살려면 아내가 뿔나지 않게 합시다. ㅋ<2009.4.29>
첫댓글 이 글을 여기에 올린 것을 알면 마눌한테 작살나니까 절대로 여기에 올렸다고 고자질 하지마세요.ㅎ~^^
여성 상위시대....할말이 없어지네...
ㅋㅋㅋㅋㅋ
서글픈 일이지만 당당하게 삽시다!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