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펜서 웰스 박사,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2005년부터 인류의 기원 추적하는 제노그래픽 프로젝트 추진 ⊙ 필자의 검사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2.6% 나와, 필자 남편에게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전자 2% 나와
필자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제노프로젝트 분석 결과. 동남아시아인의 유전자가 28% 섞인 것으로 나왔다.
2000년 6월 29일 미국 워싱턴. 유전학자 두 명이 백악관 이스트 룸에 입장해 빌 클린턴 대통령 옆에 섰다. 이날은 이 두 사람의 과학자가 걸어온 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었다. 이들은 그간 서로 인간 게놈(유전자를 구성하는 28억5천 염기쌍) 배열을 최초로 완성했다며 신경전을 벌여온 학자들이었다. 국가기금으로 운영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HGP)를 이끈 내과의사 프랜시스 콜린스와 이 목적으로 벤처기업을 만든 크레이그 벤터였다. 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간 게놈 배열의 완성은 예정(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미국 에너지국에서 15년 프로젝트로 지원한 연구였다)보다 1년이나 앞당겨 성과를 냈다. 과학계에서는 이 순간을 가슴 설레며 지켜보았다. 이 연구의 중요성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결과를 발표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클린턴은 이날 인류가 만든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지도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 유전학자인 스펜서 웰스는 DNA를 통한 과거로의 탐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버드대 유전학 박사이기도 한 웰스는 여러 준비단계를 거쳐 2005년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함께 제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까지 5년간 4000만 달러를 들여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를 찾아내고, 그 이후 현 세대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진화됐는가를 밝히는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웰스 박사가 이 일을 맡게 된 계기는, 그가 2002년 8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Y염색체 분석에서 이뤄진 진척 사항들을 담은 《인류의 여행(The Journey of Man)》이라는 영화와 책을 낸 데서 비롯됐다. 이 내용에 흥미를 가진 《내셔널지오그래픽》 측과 다음 사업으로 전 세계 인류 10만명의 DNA 샘플을 수집해 분석해 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미국 국립지리학회와 IBM이 투자하고, 전 세계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한 샘플 수집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사업은 전 세계의 《내셔널지오그래픽》 독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DNA 샘플 키트를 개발해 내고 이를 판매해서 얻은 수익으로 오지(奧地) 토착민들의 DNA 샘플까지 얻어내는 선순환의 구조로 진행됐다. 샘플 키트 가격은 199달러 정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연구에 참여해 공공성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에 순식간에 이 사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2010년까지 현 인류의 계보를 밝히는 데 필요한 10만 샘플을 얻는다는 목표는 반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달성됐다.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참가자는 7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백인종·흑인종·황인종이 어디 있나? 스펜서 웰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밝힌 흥미로운 결과를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Deep Ancestry)》(2006, National Geographic)라는 단행본에 담아냈다. 여기에 담긴 핵심적인 발견 중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종과 무관하게 전 세계 모든 사람은 85%의 동질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 백인종, 흑인종, 아시아인종이라는 말은 허구라는 이야기이다. 인류가 사실상 거대한 가족인 것이다. 지구에 핵폭탄이 떨어져 어느 민족 소수만 살아남아 다시 개체수를 불린다 하더라도 지금의 분포와 달라질 것이 없다는 말이다. 둘째, 인류의 번성은 비옥한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 시작됐다. 이 유전적 분석을 뒷받침하듯 700만 년 전의 원시인류 투마이(Toumai)의 흔적을 2002년 차드 사막에서 발견했고, 사람 속(Homo genus)에 속하는 최초 일원들의 흔적도 동아프리카지구대에서 발견했다. 아담과 이브로 상징 지어진 인류 최초의 남성과 여성은 아프리카인이다. 백인과 아시아인 등 다양하게 형태가 나뉜 것은 약 5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한 집단이 세계의 다른 부분으로 흩어지면서 오랜 기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전적 변이가 지속적으로 일어난 결과이다. 당시 인류는 20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피부색 유전자(MC1R)가 피부를 검게 만들었고,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햇빛을 몸에 더 쏘이게 하기 위해 점점 희게 변해갔다는 것이다. 셋째, 유전적 분석에 따르면 이브는 17만 년 전에 나타난다. 하지만 아담은 6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나서 자식을 낳았다고 하기엔 시간적 갭이 너무 크다.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유전적 특성 때문이다. 여성의 mtDNA는 아들과 딸 모두에게 전달되지만, 남성은 아들에게 Y염색체를 넘겨주는 역할밖에 못 한다. 인류 초기에는 우월한 남성만 종족 번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Y염색체가 골고루 전달될 기회가 적었다. 특정 혈통만 전달되므로 소멸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반면 mtDNA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했다. 즉 남성은 6만 년 전 혈통들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얘기이다. 여성은 수명만 긴 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우월한 위치를 차지해온 것 같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생식이 일어나는 방식 때문이다. 정자가 난자와 융합하면 정자의 머리에 있는 게놈 성분만 들어갈 뿐 다른 요소는 다 소멸한다. 태아의 성장, 즉 세포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작용은 어머니의 난자가 맡는 역할이다. 그래서 남성은 Y염색체 이외에 어떤 정보도 전달할 수가 없다. 인류가 승자가 된 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 넷째, 남자에게서 남자에게로만 전달되는 Y염색체와 여자의 미토콘드리아 안에 있는 mtDNA는 집안의 가보처럼 수세대에 걸쳐서 대물림한다. 이 때문에 이 두 염색체를 통해 유전적 혈통의 분포와 역사를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유전적 표지를 공유하는 집단을 하플로 그룹(haplo group)이라고 하는데, 유전학은 이런 하플로 그룹을 찾아서 계보도를 완성하는 일이다. 하플로 그룹은 바로 한국적 개념에서는 ‘조상’과 같다. 우리 몸속에는 아직도 수만 년 전 우리 첫 조상의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서 보면, 서부 유럽인 대다수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선조는 약 4만 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던 한 남자였다. 다섯째, 50만 년 전 인류의 조상과 똑같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원시인류 네안데르탈인은 현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기골이 장대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독일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유럽인의 조상이라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었다). 침팬지로 이어지는 혈통과 인간으로 이어지는 혈통이 약 600만 년 전에 갈라졌듯, 원생인류 안에서 다른 가지로 진화한 존재이다. 그들은 오히려 약 3만5000년 당시 서유럽으로 진출한 현 인류에 의해 수천 년 만에 멸종됐다. 하지만 이들과 공존하는 기간 동안 혼종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현재 우리 몸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게 됐다. 여섯째, 여러 원시인류 가운데, 인류가 최종적으로 유전적 승자가 된 것은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인류가 한 지역에 정착해 농사를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이다. 그전까지 인간은 수렵 채집 생활로 생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정보는 곧 생명이었다. 언어능력은 우리 선조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줬다. 5만 년 전 마른 초원에서 먹이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었다. 기후의 변화로 몰락하던 인류를 극심한 곤경에서 구하고 점점 번성해 아프리카를 벗어나 6대륙을 모두 점유한 것도 이 능력 덕분이었다. 언어학자들은 원시인류 중 오직 인간만이 부드러운 인중(人中)을 갖고 있어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간 인간이 쓴 언어는 1만5천 가지가 넘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수렵 채집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오지의 부족을 통해 조사를 해보면 역사가 오래된 초기 언어는 상당부분 의성어 체계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언어들이 문명에 밀려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에게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워낙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노프로젝트를 일일이 다 설명하는 데는 나의 학문적 한계도 있고, 양도 너무 방대해 여기서 다 거론할 수는 없다. 단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밝혀진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존재는 놀라운 역사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남편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자고 제안했고, 우린 바로 의기투합했다. 과학도인 남편은 《내셔널지오그래픽》 20년 정기독자이기도 해 몇 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노프로젝트 홈피에 들어가 신청을 한 뒤 일주일 만에 프로젝트 키트가 미국에서 배달됐다. 단단한 종이 칫솔처럼 생긴 기구로 입 벽을 잘 문질러 세포를 채취한 후 다시 키트에 잘 넣어 반송하는 것으로 샘플 전달은 간단히 끝났다. 한 달 만에 분석 결과가 제노프로젝트 홈피에 떴다. 우리가 처음에 신청을 할 당시 설정한 비밀번호를 넣으면 결과 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다. 이 결과와 마주하는 건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의 유전자에서는 2.6%의 네안데르탈인과 1.8%의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나왔고, 남편 것에서는 1.4%의 네안데르탈인과 2.2%의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나왔다. 보통 비(非) 아프리카 인류에게서는 2%의 네안데르탈인의 흔적과 2% 데니소바인의 흔적이 나타난다. 2008년에 발견된 데니소바인의 흔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8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 인류가 나타나던 시기 네안데르탈인, 프로레스인과 함께 4대 원시인류로 존재했었다. 데니소바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인근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사람들과 가장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동남아시아 사람들과도 비슷했다. 호빗족으로 불리는 프로레스인은 1만~9만 년 사이에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인류였다. 최종적인 분석에서 내 모계 쪽 유전자는 B5a1c 하플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는 아주 먼 옛날 아프리카를 벗어난 어떤 여성이 중동을 거쳐 시베리아, 혹은 현재의 중국 북부로 넘어오면서 전달된 유전자와 해안가인 동남아시아를 통해 서쪽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형성된 유전자의 혼합으로 이뤄졌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최소 3만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일어난 일이다.
남편에게서 발견된 아메리카 인디언 유전자
2008년 화석이 발견된 데니소바인의 상상도. 현생 인류와 함께 존재했던 원시인류 중 하나로 현대인들에게도 그 유전자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 유전자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종족 중 중국인들과 가장 같았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72%의 동북아시아인 유전자와 28%의 동남아시아인 혼종으로 분석되는데, 나의 유전자 정보는 이들과 일치했다. 이 결과는 적어도 내 이전의 모계 6세대, 혹은 더 길게는 수천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인데, 나에게 유전자를 넘겨준 어머니들의 길고도 긴 여행길이 떠올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에 밀려왔다. 남편의 결과는 재밌었다. 남편은 동북아시아인 72%는 같았지만, 동남아시아인 26%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전자가 2%나 나왔다. 한국인으로는 드문 케이스일 듯하다. 소속된 하플로 그룹도 나와 달랐다. 그의 부계는 OCTS101045, 그의 모계는 N9a1'3이었다. 하플로 그룹의 숫자 배열이 긴 것은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다는 의미이다. 그의 아버지는 동남아시아계고, 어머니는 중국계에 속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에 도달했기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피가 그 사람에게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결과는 나에게 특히 의미가 있었다. 평소 여행에 나섰다 하면 지칠 때까지 끝을 보는 탐험을 좋아해 동반자를 녹초로 만드는 기질에, 각종 원시 사냥기구까지 큰 흥미를 보이는 남편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비로소 납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제노프로젝트는 가정의 평화에도 기여했다. 인간의 몸은 바로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이다. 이런 경이로움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생 길어야 백 년이라지만, 그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 연결되면서 인류는 진화해 왔고, 또 지금도 모든 인류는 또 어디로인가 향해가고 있다. 지금이 모처럼 돌아온 지구의 간빙기라고 하지 않는가. 이 간빙기가 끝나면 또 어떤 환경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지 모르는 일이다. 세상이 험해지고, 그악스러워져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이 걸어왔던 숭고한 투쟁의 시간을 잊고 살기 때문 아닐까 한다. 우리의 조상은 영하 100도를 이겨내며 생존한 사람들이며, 어떤 사나운 날짐승과 맨몸으로 맞서 싸우며 자손을 낳고 키워낸 장한 아버지, 어머니다. 머나먼 아프리카를 떠나 걷고 또 걷는 동안 지금 이 모습으로 변한 자식들을 낳아 한반도에 남겨놓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장엄한 삶에 대한 투쟁의 기록이 내 몸 안에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어떻게 내 몸과 네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한번쯤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자. 못 풀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