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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큰 자는 형을 삼고 적은 자는 아우를 삼을지니라. 큰 자는 형이 되고 적은 자는 아우가 되라! 이 말입니다. 할 爲자를 “삼는다” 해도 되고, “된다” 고 해도 되고, “위한다” 라고도 하고 여러가지로 하잖아. 그렇지? 큰 자는 형이 되고 적은 자는 아우가 될지니라.
▮세속에서는 五年以長이면 兄事之하고, 十年以長이면 父事之라.
5년이 더 많으면 큰형님으로 받들어 모시고, 十年以長이면, 10년이 자기보다 나이 많으면 아버지처럼 섬기라! 그 말. 세속에도 그런 말이 있다 이 말입니다. 세속 儒家에 있는 말 같아...
▮律에서는... 五夏이상은 사려위요, 十夏이상이면 和尙이라.
五夏이상은 사려. 아사리. 사리라는 말이지. 사리라고 하는 軌範師라는 뜻입니다. 五夏이상은 아사리 지위에 속하고, 軌範師. 나한테 모범이 되는 사람. 規範師라고 해도 되고. 十夏이상은 和尙이라. 십하 이상이면 화상의 지위가 된다,고 그랬거든. 사리라고 하는 궤범사라는 뜻이고, 和尙이라는 것은 力生이라고 그래. 힘이 거기서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 스님으로 말미암아서, 스승으로 말미암아서 힘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和尙이라는 것은, 10년 이상이면 은사스님 자격이 있고, 10년 이상이 안 되면 은사스님 자격이 없어. 자기보다 법랍이 10년 이상 높은 사람이라야만 은사스님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된지 3년 밖에 안 된 사람이 상좌들인다는 것은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겁니다.
부처님당시에 다손 비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수기한지 한 2, 3년밖에 안 됐는데, 상좌를 뒀거든. 그것이 시비가 되니까 부처님이 묻기를
“다손 아” “예” “네가 몇 살이냐?” “세 살입니다” 세 살이라는 소리는 중 된지 3년 됐습니다” 법랍이 세살이라는 말입니다. “세 살이면 젖 떨어지느냐?”하니... 完
제 8 강
“덜 떨어집니다” “汝未斷乳하고, 네가 젖도 떨어지지 아니했는데 누구 젖을 먹느냐?” 고 이랬거든. 汝未斷乳. 네가 아직 斷乳하지 못했다. 젖을 떼지 못했다 이겁니다. 여미단유라는 말씀을 거기서 하셨어. 그러니까 10년 이상 되어야 상좌를 둘 수 있다! 이겁니다. 법랍이 10년 이상이라는 말입니다. 세속 나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 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스승이라는 뜻과 같고, 그래서 형을 師兄이라고 그러잖아. 아우라고 하는 것은, 아우 弟자는 弟子라고 그래. 스님보다 배우는 것이 뒤에 배우기 시작 했으니까 아우 弟자고. 뒤에 났으니까 동생 아닙니까? 스님으로 말미암아서 그런 법을 알게 되었으니까 비로소 생겼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子라는 겁니다. 아들子자요. 弟子...
그래서 5년 이하는 ▮소비구라고 그러고, ▮적은 비구라고 그러고, 10년 이하는 ▮중비구라고 그러고, 20년 이상은 ▮대비구라고 그래. 대비구를 ▮마하테라라고 그래요. ▮대장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20년 이상 된 마하테라라야 비구니 절에 가서 교수를 할 수 있다고 그랬어. 20년 안 된 사람은 비구니 절에 가서 교수를 할 수가 없어. 비구니 절에 가서 비구니를 가르칠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저도 나이 40전에는 비구니 절에 가서 법문 아니 했어. 비구니 절에 가서 포살 같은 것 아니 했어. 40ㆍ50넘어가지고는 비구니 절에 가서 해도 괜찮다 그런 것이지.
그래서 ▮대장로는 부처님과 법에게만 절을 해. 다른 데는 일체 절하는 법이 없어. ▮중비구는 부처님과 법과 대 장로에게 절하고. ▮소비구는 부처님과 법과 대장로와 중비구에게 절을 해야 되지. 그 나머지에는 절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비구니는 100세 비구니라도 초하비구에게 절을 해야 돼. 初夏비구. 올 여름 처음 계를 받은 비구한테 절을 해야. 비구한테는 무조건 다 절을 해야 돼.
또 비구니도 계급이 있잖아. ▮대비구니 ▮중비구니 ▮소비구니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역시 소비구니는 중비구니에게, 중비구니는 대비구니에게 절을 해야 되지. 그 위에 비구한테는 무조건 다 절을 해야 돼.
그러니 100세 비구니라도 초하 비구의 발에다 절을 해야 합니다. 비구한테 절하라 그랬지, 사미한테 절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사미들은 100세 먹은 사미라 하더라도 사미들은 비구니에게 절을 해야 되는 겁니다. 비구니에게 절을 하고, 자기가 비구계를 딱 받았다 하면 그 날부터 절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지금 남방 태국 같은데 보면 박사학위 받은 스님 교수들이 많거든. 보통 많은 것이 아니고 아주 많아. 국립대학이든지 일반대학이든지 스님들은 세상만사 모르고 오직 공부밖에 모르니까 스님박사들이 꽉 찼어. 스님박사들이 꽉 찼으니까 세상의 여자들이 스님들을 대할 때는 으레 존경 대상입니다. “스님”할 때는 “박사님” 하는 말하고 같아요. “교수님” 하는 소리하고 같아. 젊은 스님을 보더라도 ‘저 스님도 학식이 많고, 머지않아 곧 다 박사학위 받을 사람들 아니냐?’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 자체가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아무리 신심 있는 보살들이라도 아들하나 중 만들려고 하면 어지간히 핑계를 대며 안 된다는 식이지. 그것이 이조 500년간에 척불숭유정책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이 그렇게 되어버렸어. 승려를 아주 下視하는 경향이 우리나라만 그래. 다른 나라는 그런 것이 없어. 일본만 하더라도 스님을 아주 높이 생각하고, 미국은 성직자한테는 뭘 꼬치꼬치 묻고 따지지도 않아. 그만큼 우대 하거든. 영주권 내주는데도 1순위가 부부간이고, 2순위가 성직자거든. 그만큼 어디든지 성직자는 전 세계적으로 다 알아주게 되어 있어.
그리고 타일랜드나 스리랑카 같은 데는 버스에도 스님자리, 성직자 자리가 되어있어. 우리나라 보호석과 같이. 태국에는 버스 타면 으레 제일 뒷자리 거기는 스님이 없으면 그 자리에 앉지만, 스님이 타면 사람들이 다 일어나거든. 여자들은 뚝 떨어져 앉고. 그렇게 스님을 우대하고 존경하고 그러거든.
그런데 교수노릇을 하다가, 10년ㆍ20년 된 중들이 나이 3ㆍ40 중진교수가 어떻게 좋지 않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여자들이 달라붙는단 말입니다. 과부댁도 있고, 과부댁이 아닌 여인도 있고. 어릴 때부터 그 사람만 생각하고 시집 안 가고 늙은 여자도 있고 그래... 짝사랑을 하다가, 하다가 나중에는 공양구를 맨 날 지가 갖다 올리고 그러다가 정이 들고 그러면, “스님, 나한테 재산이 얼마 있고, 얼마 있고 집도 있고 하니까 나가서 나랑 같이 살자”고 자꾸, 살려달라고 자꾸 졸라대거든. 그리되면 할 수 없이 還俗을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딱 환속을 했다 그러면, 그 이튿날부터는 양복입고 나오잖아. 환속을 하게 되면 어제까지 내 상좌 했던 놈들이 “어이”하고, 저의 스님보고 말을 그냥“해라” 해버려. 그러면 “예”“예”합니다. ▮스님으로서 가사를 입고 나와서 강의를 할 때는 전체 학생들이 일단 합장을 하고 절을 하고 강의를 듣는데, 그런데 ▮양복을 갈아입고 나오면 강의 하는, 즉 어제까지 학생들에게 절을 받던 스님이 학생들에게 “학생스님들께 강의 올리겠습니다.” 하고, 절을 하고서 강의합니다. 表變이라고 하더니 밤새 안녕하십니까? 하듯이 하룻밤사이에 바꿔져 버리는 겁니다.
마을에서도 그래. 아들이 중 되었으면 어머니 아버지가 다~~ 따라 나서거든. 아들이 중 될 때는 부잣집에서는 코끼리 태워가지고, 부처님 태자 때와 같이 관을 씌우고 잘 꾸며가지고, 뒤에서 일산대 받치고, 재주꾼들이 앞에서 재주를 부리고 나팔 불고 뒤에서는 三絃六角을 베푸는 겁니다. 아버지가 발우대 쳐들고 “우리 집에 부처님 났다” “우리 집에 부처님 났다!”하면서 따라가고, 어머니는 가사를 받들고 머리에 이고 따라가고. 출가할 때 그래.
초등학생들은 거의가 다 “아무개 스님 시봉해라”하면 그냥 절에 와서 살아. 스님들 밑에서 스님 먹던 밥 먹고, 스님들 걸식하러 나가면 걸식통 들고 꼬마들이 뒤에 졸랑졸랑졸랑 따라가고. 자기 집에서 다니는 놈도 있지만. 나중에 중학생 되면 단체적으로 임시 수계를 받아. 단체적으로 여름한철 석 달 동안 수련대회를 하면서 흰옷 다 입고 사미계 받아가지고 나갔다가, 출가할 적에는 막 바로 비구계를 받아서 승가대학에 갑니다. 스님들만 다니는 대학도 있고 그래. 스님들만 가는 병원도 있고.
어제까지 자기가 법랍이 높다고
뻐기고 절 받고 하던 사람들이,
속인이 됐다 하면 자기보다 새카맣던 놈들한테
굽신굽신 절하지.
자기 어머니 자기 아버지에게 오늘 비구계 받는 날, 옷 갈아입기 전에 부모한테 절하거든. 계 받고 가사 장삼 딱 입고 나면 부모한테 절 받아. 태국 같은 데는 언어도, 스님들 쓰는 말이 따로 있어.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옛날 임금님, “내가” 소리는 아니 하거든. “짐 이” 그러잖아. 임금님 먹는 밥을 수라라고 그러고. 그러듯이 거기도 그래. 마을 사람들은 감히 스님 언어를 못 씁니다. 스님들의 말과 마을 사람들의 말이 차이가 있어. 스님이 환속하게 되면 스님 언어를 안 써야...
사미는 비구니한테 절을 합니다. 사미수계는 출가는 출가로되 그것은 승랍을 소유하는 출가가 못 되거든. 그것은 入寺式... 절에 들어오는 법식이라는 것입니다. 비구계는 만법을 구족하는 具足戒라고 그래. 사미계는 생년으로 차별합니다. 뒤에 받았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이 윗자리에 앉아.
사미법은 그래. 사미는 아직 중이 아니니까. 6, 7살 동진 출가해서 중이 되어 17살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제야 사미계를 받은 19살짜리가 윗자리에 앉아. 철없는 어린 아이를 사미계를 먼저 받았다 해서 윗자리에 앉히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사미는 미성년이고 비구는 성년입니다.
▮미성년에 있어서는 연령으로 차제를 하고, ▮성인이 된 사람들은 법랍으로서 차제를 삼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차제는 도를 깨친 사람. 과를 증득한 사람.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4과 가운데서 과를 증득해서 일체 범부를 초월한 사람. 범부에서 한 가닥 넘어선 사람. 이런 사람은 연령하고 상관없어. 8살이라 하더라도 견성했다할 것 같으면 최고 윗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勝義比丘라고 그래. 그것이 大者입니다. 大者가 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했잖아요. 어떤 것이 대자냐? 하는 얘기거든.
▮사미에 있어서는 수계 먼저하고 나중하고를 막론하고 나이 많은 것이 大者이고, ▮비구에 있어서는 나이를 막론하고 먼저 계 받은 사람이 大者이고, 그런데 ▮승의비구에 한해서는 연령이 상관없다 이 말입니다.
마을에서는 연령으로써 나이 많은 것이 어른입니다. 노인을 “어르신 네”라고 그러잖아. 관청에서는 계급이거든. 자기가 나이 많다고 큰소리치면 되는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계급이... 나이 많은 계장이 30군수한테 너 라는 소리 할 수 있는가? 안 되잖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사회에서는 덕이 높은 사람. 덕이 많아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장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치문에도 그런 것이 있지. 범망경에 보면 구마라습이라는 소리는 童壽라. 아이 童 = 나이는 어린 아이인데, 목숨 壽 = 노인 네 같다 이 말입니다. 노인 네 같은 그런 덕이 있다 이 말입니다.
아침에 게송을 1000개를 외우고, 오후에 게송을 1000개를 쓴다고 그랬어. 그런 아주 천재. 대천재지. 구마라습이 처음에는 소승법을 배울 때, 반두달다 에게 절을 했어. 자기 은사스님이니까 절을 하고 항상 글을 배우고, 나중에 반두 달다가 구마라습에게 대승법을 배울 때는 반두달다가 구마라습에게 절 했다!고 그랬잖아.
그것은 ▮구마라습이 반두달다 에게 절하는 것은 下敬上이고, 아랫사람이 위를 공경하는 것이고, 이것을 승의종이라. 높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두달다가 대승법을 배우기 위해서 구마라습에게 절하는 것은 上敬下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從賢(?)이다. 어진 이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랬거든. 종사를 위하는 법이 다 그래.
옛날에 ▮계현법사라고 하는 스님 밑에 ▮신찬이라는 사람이 중이 되었는데, 나중에 신찬 선사가 계현 법사 밑을 떠나서 백장 스님 밑에 가서 공부를 해가지고, 마음을 깨쳐가지고 돌아오니 계현 법사가 “離吾在하여 作化事業고?” 네가 나를 떠나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했느냐?” “아무 한 것은 따로 없습니다”“에끼 놈! 아무 한 것도 없으면서 네 맘대로 나를 떠나서 돌아다니기만 하다니, 산에 가서 나무나 해오너라”나무 해오니까 “저 목욕탕에 물이나 좀 데워라” 목욕을 하면서 “등을 밀어라”등을 쓱쓱 밀면서 한다는 소리가 “好好法堂)이여, 좋고 좋은 법당이여, 법당은 좋다만 佛無靈驗이로다. 부처가 영험이 없는 것 같다”하니까“이 눔의 아가 뭐라 카노?”휙 쳐다보니까 떡 한다는 소리가 “佛無靈驗이나 時時放光하는구나. 부처가 영험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방광은 할 줄 아네” 잠꼬대 같은 소리 하는가 보다하고 그러고 말았어. 목욕하다 말고 어쩔 수도 없고.
그래 스님이 창문 앞에서 경책을 보고 있는데, 벌이 한 마리 들어와서 나가려고 당당당당 당당당당 설치거든... 이쪽 문은 열어 놨는데 열어놓은 문으론 안 나가려고 그러고 닫아놓은 문에서 나가려고 자꾸 벌이 그러거든. 그러니까 한다는 소리가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한 소리입니다.
空門에 不肯出하고, 텅 빈 문으로 나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投窓也大痴로다. 창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참 어리석구나. 百年을 鑽古紙한들, 이것은 벌을 보고 하는 소리지. 百年을 鑽古紙한들, 백 년 동안을 古紙를 뚫은들, 古紙 = 옛 종이라는 말이지. 옛 종이는 옛날 스님들이 말씀 해놓으신 경전 책이라 이 말입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은들
何日出頭日이리요. 어느 날에 생사를 벗어날 날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계현스님이, 요전에 목욕탕에서 한 말도 있고 심상치 않거든. 그래서 “네 바른 대로 말해라, 어느 스님을 찾아다니면서 공부 했느냐?”“예, 제가 백장회해 선사를 찾아가서 공부하여 한 생각 달라졌습니다”“그래?”그 소리 듣자마자 쫓아나가 가지고 대종을 그냥 꽝꽝 울리면서“내 상좌 성불했으니 법문듣자”산중대중을 모아 놓고 상좌한테 절을 하면서 법문 한 마디 청했거든, 서슴지 않고 떡~ 올라가서 법문을 하는데...
▮靈光이 獨露하야 逈脫根塵하니, 신령한 광명이 홀로 드러나서 육근육진의 모든 분별을 다 벗어났으니, ▮體露眞常하야 不拘文字로다. 그 자체는 진리ㆍ항상된 자리. 진리의 진여의 자리를 턱~ 하니 증득했기 때문에 不拘文字로다. 문자에, 언어와 문자에 걸리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眞性은 無染하야 本自圓成이언만은, 마음, 진성자리는 턱~ 하니 본래 더러움을 타는 것이 아니다. 本自圓成이라. 본래 스스로 원만성취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但離妄緣이면 卽如如佛이라. 다만 망상 반연. 이것 하나만 똑 떨어지면 그냥 佛이라 이 말입니다.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는 것은 망상 떼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딴 것 없어. 망상만 떨어지면 그냥 佛입니다.
딱~ 그 법문하고 주장자를 굴리니까 자기 스님이 그 소리에서 크게 대 발심을 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절을 하면서 何其壽老하여 得聞如是 極則法門乎아? 내 어찌 다 늙어빠져 가지고 이런 極則法門을 들을 줄 기대나 했을까 보냐? 상좌한테 무수배를 했답니다, 승의 비구니까. 나이하고 상관없고 내상좌고 스님이고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거든...
6조 스님이 노 행자로 있을 때, 인종법사라고 하는 이를 만나가지고 수계를 하게 됐잖아.
風動幡動하는 얘기 있잖아. 바람이 동한 것이냐 번이 동한 것이냐 하는 얘기 있잖아.
거기에서 “바람이 동하는 것도 아니요, 번이 동하는 것도 아니요, 인자의 마음이 동하는 것이니라”하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종법사가 중도 안 된 노 행자한테 禮를 했다고 그랬잖아.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가 절[寺]이라고 하는 것은 절[拜]한다고 절이라고 한다고 제가 이 소리를 많이 하는데. 원래 사찰이라는 刹자 있잖아. 刹자가 그것이 별다른 세계를 표시하는 것인데, 그것이 절이라는 말로 변했다고 그러거든.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법이 들어온 곳이 성산보리사라고 하는데 毛禮네 집이라고 그러거든. 그것이 터럭 毛자 절할 禮자잖아요. 그것이 이두로 따지면 털절입니다. “털절네 집에 가자” 털도 변하면 절[寺]이 되고, 절[拜]도 절[寺]이 돼버리고. 그래서 절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졌다는 그런 말도 있고. 刹에서 절이 왔다는 말도 있고한데. 그렇건 저렇건 간에 절[寺]은 절[拜] 하는 곳이니까. 禮拜堂이라는 말과 같이 예배하는 곳이니까. 절[拜]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恭敬眞性하야 屈伏無明이라. 자기, 참 마음자리를 공경해서 자기의 무명을 굴복시킨다. 八識無明. 분별망상을 굴복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냥 적멸궁을 성취하는 길이고 성불하는 길이거든. 그러니까 아만을 다 꺾어버리고, 나라는 생각. 人ㆍ我想을 다 꺾어버리고 참 그야말로 無生法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말입니다. 만일 절 집안에 절이라는 것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절이 아니지요.
그리고 자기자신을 턱~ 하니 낮추고 자기 진성자리를 공경하는 거. 다시 말해가지고 이 몸뚱이에 끄달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참 그야말로 勤修해서 보리심을 발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절이다 이 말. 이런데 이것을 정밀하게 따지면 같은 날 중 되어도 머리를 어느 시간에 깎았느냐?에 따라서 먼저 앉히고 뒤에 앉힌다!는 소리까지 있거든.
부처님 당시에 글이 있어. 우바리 존자가 중 될 때, 4왕 8왕자가 있거든요. ▮4왕은 정반왕ㆍ백반왕ㆍ곡반왕ㆍ감로반왕. 4왕이 있었어. 4형제입니다. 4형제가 각각 아들 둘씩 낳았거든.
정반왕 原名이 “요안나”... 예수가 “요한”한테 ‘세례받았다’는 것이 여기서 딴거라.
그 ▮요안나왕=정반왕 밑에 싯달태자 부처님하고 이모가 낳은 난타가 있고, ▮감로반왕 밑에서 발제와 금비라가 나왔어. ▮백반왕 밑에서 조달이(제바달다)와 아란(아란존자)이가 나왔어. 제바달다가 아란 존자의 친형이라. ▮곡반왕 밑에서 마하남과 금비라 나왔고. 이것이 4왕 8왕자.
이 사람들이 한몫 중이 되었거든. 물론 부처님이 먼저 되었고. 7왕자들이 중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발제가 왕이었어. 발제가 중 되기 전에 우바리가 왕(발제)의 調髮師입니다. 머리해주는 이발사지요. 발제가 6왕자와 우바리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왕사성 기사굴산에 갔거든. 우바리 보고 “우리 머리 깎아라” “아이고 용서하십시오. 어떻게 하려고 머리 깎으라고 합니까?”비단 곤룡포, 그 좋은 옷들을 다 벗고 “네 다 가져라. 우리는 지금 중 되러 간다”가 버리거든. 우바리가 그 좋은 비단 옷, 목걸이 금팔찌 이런 보물을 많이 얻기는 얻었지만, “야~ 저렇게 귀한 왕자 공자님들이 다 중 되러 가는데, 나 같은 천민이 뭐 잘 났다고 세상에 밥 세 그릇에 목매달고 살겠는가?” ‘에라 떠그랄 것’스스로 자기 머리 홀랑 깎고 쫓아갔어.
그래 가서 “나도 중 되렵니다”하고 달려드니까 부처님이 떡~ 하니 우바리부터 계를 줬거든. 그래서 우바리가 그 가운데서 제일 사형입니다. 왕자 공자님은 귀족이라는 그 교만한 마음을 꺾기 위해서 “우바리를 먼저 시켜주십시오” 자기네들의 하인이지만, 노예거든. 우바리 존자를 제일 윗자리에 앉혔잖아. 모두들 “형님”이라고 하고...
부처님께서 그야말로 만인평등사상. 4성계급을 타파하고 만인평등사상을 인류사상 최초로 주장하신 분... 민주화를 제일 먼저 실천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얘기인데... 지금 우리가 신도들한테 절 받는 사람은 우리 스님 밖에 없잖아. 그렇지? 세상사람 누가 절 하나? 그런데 스님이라고 해가지고, 군수고 서장이고 오면 나한테 절 세 차례씩 꾸벅꾸벅 하잖아?
그런데 부처님당시 우타야나왕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빈두루 존자라고 하는 스님한테 법문을 아침마다 듣거든... 그런데 빈두루 존자한테 절을 하고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는 가만히 생각하니, 법문은 잘 듣지만, 법문이사 좋지만 떠그랄 것, 내가 왕인데 내가 절을 해도 고개도 까딱 않으니 괘씸한 생각이 슬며시 들어가지고, ‘내일 아침에 내가 절을 하는데도 고개를 까딱 않으면 목을 칠거라’... 이렇게 생각하고
빈두루 존자가 아침에 떡~ 하니 오면서 보니 타심통을 했으니까 알거든. 아~ 곤란한 일이 생겼거든.‘내가 절을 아니 하면 내 목을 친다? 내 목을 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아라한인데, 아라한 목을 치면 지는 아비지옥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된다. 내가 만약에 절을 한다? 절을 하면 지는 당장 減福을 해가지고 사흘 내로 당장 왕위에서 떨어져가지고 마부가 돼버려’이러기도 낭패요, 저러기도 곤란했지요. 그렇지만 지옥가게 하는 것 보다는 마부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낫겠거든... 그렇게 생각을 먹고 왕궁에 가서 우타야나왕을 보자, 우타야나왕은 오늘 절을 아니 하면 죽이려고 생각을 먹고 있었으니까 벌써 눈에 독기가 있거든. 가는 길로 보자마자 빈두루 존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넙죽 엎드려서“대왕 안녕하십니까?”하고 우타야나왕한테 절을 해버리거든. 우타야나왕이 깜짝 놀라서 어찌 알고 절을 하느냐?고, 대왕이 그렇게 생각 아니 했느냐?고,
“아이구 내가 생각을 잘 못했네”“잘 못했어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다 틀렸다는 겁니다.
그 날은 그럭저럭 하고, 빈두루 존자는 돌아가고 난 후에, 그 날 후원에 나갔다가, 동산에 나갔다가 파사익왕의 군대들이 지나가다가 그만 우타야나왕을 잡아가지고, 납치해 가 버렸어. 가서 말 조련을 시켰다는 겁니다. 말 조련하고 마구간 치웠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
그래서 하는 말이 나라의 태자가, 그러니까 동궁이지? 태자가 비록 나이는 어리더라도, 열댓 살 밖에 안 됐다 하더라도 대신들한테 절하는 법은 없다 이 말입니다. 대신들이 “동궁마마”하고 절을 해야지,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왕이 될 테니까...
사자가 소리를 한번 지를 것 같으면 뭇 짐승들이 뒷꼭지가 터질 정도로 놀란다고 하거든. 그것이 사자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사자 새끼는 그 젖을 먹고, 하나도 놀라지도 않아. 그래서 사자가 모든 짐승 뒤에 났지만, 세살만 먹으면 능히 大哮吼를 한다. 크게 울부짖음을 한다 이겁니다. 사자가 세 번 울부짖는데 그 뜻이 있다는 겁니다. ▮첫 째 “나는 왕이다. 이 골짜기의 왕이니 이 골짜기에 사는 모든 짐승들은 나를 의지하라. 나를 따르라. 너희들 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말아라” ▮두 번째 소리를 크르릉~ 지를 적에는, “이 골짜기는 내가 주인이니까 바깥 다른 산에서 만일 객군들이 달려들었다가는 너희들, 대가리 터질 줄 알아라. 얼쩡 하지 말아라. 내 백성들 건드리지 말아라”▮세 번째 크르릉~ 하는 소리는 “모든 애로 사항이 있거든 다 내한테 와서 해결 지어라. 너희는 내 소리에 다 마음 편안히 잘 살고 있거라”그래서 사자 왕이라고 그러잖아.
사자가 형상이 불파실각이라. 형상. 등치 큰 코끼리도 사자 소리에 놀라가지고 그냥 들이 뛰느라고 정신없다고 하잖아. 그래 사자를 갖다가 왕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사자가 새끼라도 무시 못 하고, 태자가 어린애라도 무시 못 하듯이, 旣如來者라. 우리는 이미 여래자가 됐다 이 말입니다.
머리 깎고 부처님의 제자가 돼버렸어.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갖고 싶은 것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지 않고, 연애 하고 싶어도 연애 아니하고, 술 담배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참고, 금은보화ㆍ돈 그것을 누가 싫어하랴만, 그것 다 아니 하고, 턱~ 하니 우리가 難忍을 能忍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으려고 달려들었으니 우리가 이것을 성취할 때는 그야말로 삼계의 도사요 사생의 자부가 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일체중생에게 공경을 받아야할 존재가 중생들에게 굽실거리고 절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도 범망경을 살살 꼭 읽어 보세요. 법망경에도 그런 것이 있거든. 출가한 사람은 부모에게 절하지 말고, 국왕에게도 절하지 않는 법이고, 귀신에게도 공경하지 않는 법이니라. 이런 법문이 있거든.
6ㆍ25 사변 전에, 봉암사에서 성철스님이 법을 내고,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청담스님ㆍ자운스님ㆍ홍경스님ㆍ오봉스님ㆍ최일도스님ㆍ보문스님... 쟁쟁한 아주 모두 근세의 선지식들입니다. 이런 스님들이 쭉~ 향곡스님도 그때 계시고 그런데, 자운스님이 그때 아주 참 그야말로 젊은 율사입니다. 젊은 율사로서 떡~ 하니 보살계를 법문을 하는데 출가한 사람은 국왕에게 절하지 않는 법이, 부모에게 절하지 않는 법이며, 귀신을 공경하지 않는 법이니라... 하고 읽거든.
읽으니까 성철스님이“법사 스님, 방금 그 대목을 한 번 더 읽어주십시오”턱~ 또 읽고 나니까, 보살들 신도들 다 들었느냐고,
이것이 부처님 말씀 듣기만 하고 실행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냐고, 당장 우리가 시범부터 해봐야 될 것 아니냐고, “출가한 사람은 일체중생에게 공경 받아할 존재이지 일체중생에게 절해야 할 존재가 아니요. 왜 그러냐?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갖고 싶은 것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지 않고 오직 無上大道를 성취해서 일체중생의 스승이 되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절을 받아할 존재입니다”
신심이 없고 불자가 아닌 사람은 말할 것 없지만, 불자라 하면 출가한 승에게 절하는 법이라고, 좀 전에 말 아니 했더냐?고, 실행해 볼 것이냐? 안 해 볼 것이냐? 하니까 다 해본다 하거든.
해볼 사람 손 들라하니까 다 손들거든... 그럼 지금 당장 하자고, 뒤에 미룰 것 뭐 있느냐? 소뿔은 단김에 빼자고. “자 스님들은 부처님 밑에 쭉~ 앉으세요”스님들은 쭉~ 앉고, “신도들은 다 일어서세요”해서 신도들은 다 일어서고요. 스님한테 목탁 치게 하고, “신도들은 스님들한테 반배하고, 온 절하고, 옳지. 온 절 또 한 번 하고 ”스님들은 까딱 말고 앉아 있으라!는 겁니다. 삼배를 시켰거든. “자 오늘부터는 쪼끄만한 풋 중이라도 스님보거든 합장하고 절하라고.
그것이 우리나라 불교에 절하는, 참 그야말로 위계질서를 갖는 최초 嚆矢라 그래.
그 때부터 시작해가지고 신장단에도, 신장들은 전부 수염쟁이들, 머리 기른 속인들인데... 거기다 절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이 겁니다. 그러니까 신장단에도 절하지 말고, 그 전에는‘지심귀명례 화엄회상욕색제천중’하고, 지심귀명례 소리가 절 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것 다 치워버리고, 신장단에는 떡~ 하니 천수나 한 편씩 치자고, ‘옹호도량 신묘장구 대다라니...’이 도량을 옹호해주는 신장들한테 대다라니를 한 번씩 치자고 처음에는 하다가, 그것이 너무 길다고 법문이나 해주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그것이 지금 전부 통일이 돼버린 셈이지...
그래서 성철스님 공로가 한국 불교정화에 큰 것입니다. 발우대라든지 옛날에는 비단 가사를 모두 입었는데, 비단가사 다 제거해버리고 무명, 綿 가사를 입게 한다든지 전부 법이 달라졌거든...
그 전만 하더라도 신장단에 지심귀명례 삼귀의 다 절했어. 그러고 신도들 만나면 신도들한테도 같이 절하고. 다 그랬다고... 出家五衆ㆍ在家二衆이 불자 7중이거든요. ▮출가오중하면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ㆍ사미ㆍ사미니. 5중이거든요. ▮재가 이중은 우바새ㆍ우바이. 불자 7중이거든요.
불자 7중에도 위계질서가 서야된다 이 말입니다. 위계질서만 바로 설 것 같으면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하니라. 그것이 바로 실천이 되는 것이지. 이것이 안 서기 때문에 종단이 시끄러워진 겁니다.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이것만 바로 서면 종단은 안정 되는 것이지.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이것이 종단위계질서를 확립해야 된다고 하는 아주 기본 조칙입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이것만 바로 서면 율장 전체가 다 바로 서는 겁니다.
부처님말씀에, 장아함경 같은데 그런 말씀했거든.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옳네 그르네 소리하지 말고,
些小小戒. 소소한 것들은 다 버려도 좋다. 唯除四重구니라. 오직 사바라이만은 제한다. 사바라이만은 철저하게 지켜야 되지만, 그 나머지 소소한 계들은 버려도 좋다 이겁니다. 왜냐? 上敬下愛하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이렇게 해서 隨順和合하면, 서로 화합 할 것 같으면 이것이 수순하는 법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
오죽해야 그런 말씀까지 다 하셨겠습니까? 내가 제정해 놓은 소소한 계까지 다 버려도 좋다는 말씀까지 하시고, 서로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떡~ 하니 서로서로 화합해나가면 이것이 수순해탈이다! 그랬다는 말입니다. 해탈을 수순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참 아주 중요한 말씀이고, 위계질서라는 것이 바로 大者는 爲兄하고 小者는 爲弟니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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