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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비밀: 하나님의 자기희생 |
히브리서 9:11-14 (18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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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
1863년, 아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한 일로 인해서 괴한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흑인들의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바친 것입니다. 흑인들은 평생 아브라함 링컨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링컨이 땅에 묻힌 뒤 수년이 지난 어느날, 역사학자가 남부 알라바마에 있는 농장에서 여전히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흑인에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링컨을 압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링컨에 관한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링컨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해방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노예들의 무식함을 농장 주인들은 최대한 이용했던 것입니다. '무식한 채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일만 시키자.' 이것이 노예 주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기에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안에 담겨있는 영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는 영적 지식이 부족하면 마귀만 좋아합니다. 마귀는 '모르는 것이 좋다. 교회만 다녀라. 그 정도면 됐어.' 하고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문을 전부 걸어 잠구어 버립니다. 이런 잠긴 문 속에 갇힌 성도들이 교회 안에 한두 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행입니다. 비극입니다.
십자가는 몇 마디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그 은혜를 다 알려면 죽을 때까지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아도 모자랍니다.
2009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십자가의 담겨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좀 더 깊히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푸는 말 |
1. 십자가에 대해 배웁시다.
십자가는 묵상할 때마다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실존의 자아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을 때,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해는 빛을 잃었고 땅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진동했습니다.
십자가의 전율은, 십자가의 감동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까지의 감동은 더 강하게 흔들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내용은 알지만, 영적인 의미와 은혜를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거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너무 많이 들어서 십자가의 은혜에 대해서 둔감해진 사람들입니다. 성경도 많이 읽었고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가슴으로 느꼈을 때는, 감격해서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울기도 하고, 가슴이 뜨거워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열정을 보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감동이 줄어들었고 십자가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병입니다. 좋은 이야기, 감격적인 이야기라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감동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런 현상을 용인하면 안됩니다. 2003년 대구지하철 대참사에서 방화범은 수백명의 생명을 희생했으면서 정작 자심은 멀쩡하게 살아서 밖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 방화범과 저 자신을 비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이지만 200여명의 생명을 희생하고 대신 살아 남았다. 너는 어떤가? 너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덕분에 지금 살고 있지 않는가? 지금 저 사람을 속으로 욕하면서 차라리 저 사람이 죽었으면 하고 있는데, 진짜 죽어야 될 사람은 너야. 너는 얼마만큼 떳떳한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
그러다 보니 남을 비판하던 것이 결국은 나를 비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을 탓하다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듣고 또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영적회복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느끼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십자가의 은혜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더 알기를 원한다면,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들고 이 놀라운 은혜를 알아보려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둔감해진 사람이 있습니까? 어디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둔감해집니까?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아닙니다. 거기에 달리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죄는 벌하고 죄인을 살릴 수 있는가 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배상을 책임지기 위해서 자신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배상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 사람이 되셔야 했고 배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셔야 됐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는 하나님이요 사람이신 그 분이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야기> 이태리의 어느 성당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의 성화가 그려져 있답니다. 겉으로는 흔히 보는 십자가의 벽화인데, 자세히 보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예수님 뒤에 희미한 모습으로 더 큰 어떤 분이 계시는 것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못에 찔린 손바닥 뒤에는 그 분의 손바닥도 함께 포개져 있고 옆구리에는 예수님과 함께 찔려 있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희생한 겁니다. 이 사실이 가슴에 젖어 들어와야 됩니다. 그래야만 십자가의 영적인 의미를 우리가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이야기> 2002년 3월 10일 오전 10시 15분. 고등부 교사인 이원형 집사는 19년 동안 그랬듯이 예배에 참석해 학생들을 돌보고, 마지막 기도로 예배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천정에서 석고보드가 덜어지면서 기도하고 있던 이원형 집사를 덮쳤고, 극장식으로 되어 있는 건물의 2층에 있던 이 집사는 석고보드가 1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막으면서 1층의 사람들이 급하게 대피한 후 석고보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랫층으로 떨어졌고, 인근에 위치한 서울백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졌으나 머리와 갈비뼈 등의 심한 부상으로 6시간만에 숨졌습니다.
영락교회의 안수집수로 교회에 봉사하며, 정년을 4년 앞두고 서라벌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리학을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던 그는 30대 중반에 신앙을 가진 이후 만 58세 되던 올해까지 고등부 교사로 봉사해 왔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한 명의 학생들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그 무거운 석고보드를 온 몸으로 막으셨던 그 희생과 사랑이 집사님의 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의 희생, 그 죽음이 얼마나 능력 있었는지 온 교인들의 마음을 울렸고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시험에 들었던 영락교회는 기도의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의 죽음이 능력이 있었는지 교우들을 변화시키고 교회의 정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떤 의인의 죽음도 선한 사람의 죽음도 이처럼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 자신의 죽음이,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능력이 없겠습니까? 세상을 구원할 능력은 오늘도 살아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은혜 받으면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나 같은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나 같은 것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 없는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그 은혜가 감격스러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자기 생을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능력이 있어서 영원한 속죄를 주시고 순종하고 헌신하게 만들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 꼭 사로 잡혀 살게 만듭니다.
닫는 말 |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성령 앞에 기도하십시오.
답답한 마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십자가에 있는 놀라운 비밀과 은혜를 알 수 있도록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대로 머물지 마십시오. 그 십자가의 은혜에 우리가 붙들리기만 하면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감격, 십자가의 능력으로 뜨거워지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