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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27일 월요일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었다고 따지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무아경 속에서 본 환시를 설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양들의 문이라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8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요한 10,11)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은 이처럼 ‘내주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사랑을 가장 분명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둘 다 양 떼를 돌보는데 위험이 닥쳤을 때 한쪽은 자신을 내주고 희생하지만, 다른 한쪽은 자기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결국 차이는 ‘방향성’에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눈길과 마음은 언제나 양들을 향합니다. 그 반면 삯꾼의 관심은 자기 자신, 자기 몫과 손해 여부에 머무릅니다. 우리 안에서도 삯꾼의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신앙마저 나의 평안과 이익을 지키는 수단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내 선택과 관심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되기를 요구하시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내주는 사랑’으로 한 걸음씩 옮기기를 바라십니다. 내 편의를 조금 양보하는 것, 내 시간을 조금 나누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내 것을 공동선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놓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희생입니다. 이제 그분을 ‘안다’고 고백하는 우리도 그분을 닮아 ‘내줌과 희생의 가치’를 삶 안에서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나만을 생각하는 삯꾼의 마음을 내려놓고, 착한 목자를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진정으로 ‘아는’ 제자의 모습입니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따뜻한 아버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저희 살레시오회를 포함한 살레시오 가족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인 및 복자, 가경자, 하느님의 종 등 교회로부터 성성에 대한 공식적 인정을 받은 인물이 많은 편입니다.
헤아려보니 성인 10분, 복자 19분, 가경자 13분, 하느님의 종 9분. 그 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돈보스코의 선한 영향력에 견인되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거룩한 분들 가운데 착한 목자이자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유명한 분이 돈보스코의 3대 후계자이신 복자 필립보 리날디(1856~1931) 신부입니다.
이 필립보 리날디 신부의 따뜻한 부성애는 정말 각별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그와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목소리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단 한 번도 그분을 윗사람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저의 행복을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 않는 제 친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오라토리오 생활은 아기자기하고 화목한 가정생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 출신의 나이 많은 요한이라는 지원자가 자신의 지적 무능력을 한탄하며 리날디 신부님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결코 훌륭한 살레시안 사제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형제가 겪고 있던 고초뿐만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던 많은 잠재력과 열정을 파악하고 있던 필립보 리날디 신부는 그의 지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그를 대성당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요한, 중앙 제대 위의 초들을 본적이 있는가?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지. 하지만 모든 초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거기 서 있는 것이라네. 사실 짧은 초가 긴 초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있다네.
동트기 전에 미사를 드릴 때, 긴 초들은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 반면에 짧은 초는 사제가 미사경본을 읽은 데 아주 큰 도움을 주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네. 교회는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키 작은 사제들을 더 필요로 한다네. 자네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거야.
필립보 리날디 신부의 진한 부성애와 잔잔한 위로에 크게 감동을 받은 요한 지원자는 다시 죽기보다 들기 싫었던 라틴어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애 오랜 양성 과정을 다 마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브라질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위기에 처한 인디언들의 사도이자 또 다른 돈보스코요, 제2의 필립보 리날디로 살다가 그곳에 뼈를 묻게 됩니다.
어제 오늘 복음은 계속 착한 목자가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우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따뜻한 아버지!
부성애,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훈훈해지는 단어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뿐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따뜻한 부성애를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유발 하라리의 ‘렉서스’를 읽고 있습니다. 역사의 과정에서 힘의 변화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봉건주의 시대 힘의 원천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복 전쟁이 있었습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창과 칼이 필요했습니다. 전차와 말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힘의 원천은 ‘기술’이었습니다. 증기기관, 총, 대포, 비행기, 미사일이 등장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열매를 먼저 차지한 나라가 식민지의 원자재를 들여와서 옷, 차, 커피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땅’은 중요한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땅을 옮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원은 특정한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시대 힘의 원천은 ‘데이터(정보)’라고 합니다. 땅과 기술은 한곳에 모을 수 없었지만, 정보는 한곳으로 모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곳으로 모인 정보는 인공지능과 만나서 인류의 고통과 아픔을 풀어 줄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고, 인류를 더 큰 파멸과 공포로 몰고 갈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지니’가 될 수도 있고,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코끼리’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힘의 원천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가 힘의 원천을 버리고 다른 것을 찾았던 적은 있었습니다. 교회가 힘의 원천인 ‘진리’와 함께 했을 때는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Pax Christi’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 힘의 원천인 ‘권력과 폭력’에 의지할 때는 어둠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류와 역사 앞에 교회의 어두웠던 과거를 이야기했습니다. 교회의 잘못에 관해서 겸허하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오늘 독서는 편견, 우월감, 선민의식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보지 말자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받은 이도, 할례받지 않은 이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남자도, 여자도, 부유한 이도 가난한 이도, 고아와 과부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짓과 욕망으로 굳게 닫힌 우리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위선과 미움으로 닫힌 우리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하면 이제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는 말을 못 하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만을 보고서도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의 눈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언어로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내가 나의 능력과 나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나를 이곳까지 이끌고 오셨음을 느끼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이웃을 주님께로 초대해야 합니다. 대화가 되지 않을 때, 혹시 내가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자존심과 욕심으로 나의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나의 선입견으로 내가 듣고 싶은 것들만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착한 목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그대 있기에
나 있으니
그대 있도록
나 없어지더라도
그대 있음에
나 있다네
오늘의 성인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Rafael Arnaiz Baron)
신분 : 수사
활동연도 : 1911-1938년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Raphael Arnaiz Baron)은 1911년 4월 9일 에스파냐 부르고스(Burgos)의 한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네 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몇몇 학교에 다녔고, 영성적 주제와 예술에 대한 감성은 어린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이러한 자질들은 그가 열정적인 유머와 존경심과 겸손함을 갖고 세상을 향해 개방적이고 활발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훌륭하게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러던 중 발열과 늑막염의 발작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그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 아버지는 그를 사라고사(Zaragoza)의 기둥의 성모 대성당에 있는 기둥의 성모에게 봉헌하도록 했고, 가족들은 그가 중등교육을 수료한 오비에도(Oviedo)로 이사했다.
1930년 성 라파엘은 마드리드(Madrid)에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스도께 헌신하려는 그의 마음이 더욱 깊어진 것도 그 해였다. 그는 중등교육을 완벽히 마친 후, 그 해 여름 마케다(Maqueda)의 공작과 공작부인인 그의 삼촌과 숙모의 집이 있는 아빌라(Avila) 근처에서 휴가를 보냈다. 삼촌과 숙모는 그에게 산 이시도로 데 두에나스(San Isidoro de Duenas)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소개해주었고, 그는 그곳의 아름다움과 기도 분위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소를 느꼈지만 분명 활동적인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드리드에서 건축학도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엄률 시토회(트라피스트회) 안에서 ‘절대자’의 신비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1934년 1월 16일 23세의 나이로 수도회에 입회하며 기쁘게 수도생활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입회 결정에 대해 고통이나 실망에 자극받아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 안에서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성 라파엘은 그레고리안 성가와 시간전례(성무일도)의 수도원 선율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삼촌과 숙모, 친분이 있던 사람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죽은 후에 이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 네 달이 지나고, 매우 엄격하고 소박한 사순시기를 보낸 뒤 그는 급작스럽고 심각한 상태의 당뇨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1935년과 1937년 사이에 네 번이나 어쩔 수 없이 집과 수도원 오가는 생활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때는 에스파냐 내전이 한창일 때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수도원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을 봉헌하며 공동체의 끝자리를 선택하고 바깥 가장자리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교회법은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수도 서원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었다. 그는 1938년 4월 26일,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질병의 마지막 공격을 받고 수도원 의무실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수도원 묘지에 묻혔고, 그의 유해는 나중에 대수도원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큼 순수한 방법으로 시토회의 은총을 온몸으로 구현해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순과 당혹스런 질병, 전쟁, 자신의 서원을 발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함, 온전히 자기 자신을 포기할 때까지의 비정상적 공동체 관계 등 이 모든 것을 연속해서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굴욕감은 그의 일상의 동반자였다.
그의 한 가지 소망은 예수님과 성모님, 십자가, 트라피스트 수도회를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에스파냐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산 이시도로에 있는 그의 무덤은 많은 은혜를 받는 순례지가 되었다.
1989년 8월 19일,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열린 제3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성 라파엘 수사를 현대 젊은이들의 모범으로 제안했고, 1992년 9월 27일 로마에서 그를 복자품에 올렸다. 시복미사 강론을 통해 교황은 이 에스파냐 출신 트라피스트 회원을 특별히 하느님의 부르심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범이라 칭송했다.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은 2009년 10월 1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은 이날 함께 시성된 다섯 복자들의 시성미사 강론에서 “새로 시성된 성인들은 인간의 이해와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기희생과 하느님에 대한 소명을 보여준 이들”이라며, 새 성인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라고 당부했다. 성 라파엘의 축일은 선종일인 4월 26일이나 그 다음날인 4월 27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녀 지타(Zita)
신분 : 동정녀, 하녀
활동연도 : 1218-1272년
같은이름 : 시따, 시타, 지따, 치따, 치타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Toscana) 지역의 루카(Lucca) 근처에 있는 몬사그라티(Monsagrat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성녀 지타는 가난하지만 신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과 신앙 교육으로 인해 그녀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루카의 파티넬리(Fatinelli) 가문의 하녀가 된 그녀는 그곳에 평생 머물며 48년 동안 하녀로 일하였다.
그녀는 근면하고 열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 관계로 주인 부부는 물론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일종의 보속행위라고 생각하고 감사와 순명의 정신으로 모두를 대해 끝내는 그들을 감동시켰다.
시간이 흐른 후 하인들의 책임자가 되고 주인 부부로부터도 많은 재산을 받았지만 그녀는 이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많은 기적적인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신심이 매우 깊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지곤 하였다. 탈혼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가 하던 빵 굽는 일 등을 천사가 와서 대신 해 주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죽음이 가까웠을 때 고통 속에서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되었고, 임종일이 되자 자청하여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272년 4월 27일 55세로 루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루카 지역을 중심으로 그녀를 공경하는 풍습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결국 영국까지 전해졌다. 특히 가사를 담당하거나 집사를 담당하던 이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성녀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몇 차례 성녀의 관을 공개할 때마다 시신이 썩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마침내 169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는 지타의 시성식을 거행하고 그녀에 대한 공경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그리고 1748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는 성녀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기입하였다. 그녀는 1953년 9월 26일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래서 성녀 지타는 교회미술에서 주로 하인 복장을 하고 열쇠 꾸러미와 물 항아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영국에서 시타(Sitha) 또는 치타(Citha)로 불린다.
성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오 (Peter Armengaudius)
활동년도 : 1238-1304년
신분 : 수사
지역 :
같은 이름 : 베드루스, 아르멘가우디우스, 아르멘골,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우스(Petrus Armengaudius)는 에스파냐의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우르겔(Urgell) 백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0대의 나이에 산적의 무리들 틈에 끼어들었다. 1258년 아라곤(Aragun)의 국왕 제임스는 이 지역의 산적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아버지를 대장으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전투가 임박하여 아들이 적장을 살펴보니 그의 부친임을 발견하고는 큰 충격을 받고 용서를 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보속을 하였으며, 메르체다리오 회원이 되어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맹활약하였다. 그는 두 번이나 아프리카로 가서 무어인들에게 잡힌 포로들을 석방시켰는데, 두 번째 여행에서 그는 돈이 부족하여 18세 된 소년을 석방시킬 수 없게 되자 자원하여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성 베드로는 교수형을 받았지만 목을 묶은 끈을 풀었을 때 되살아났기 때문에 무어인들이 그를 석방시켰다고 한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0여년을 더 살면서 덕을 닦다가 선종하였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8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베드로 아르멘골(Petrus Armengol)로도 불린다.
성 안티모 (Anthimus)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니코메디아(Nicomedia)
같은 이름 : 안띠모, 안띠무스, 안티무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니코메디아에는 특히 박해가 심하였는데, 그 이유는 황제의 칙서를 벽에 붙이면 신자들이 즉시 찢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경비가 삼엄하여 신자들은 이방신에게 희생물을 바치지 않고는 곡식과 식량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때 니코메디아의 주교인 성 안티무스(또는 안티모)는 용감하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이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왕궁 화재의 범인이라는 죄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복녀 마리아나(예수의)(Mariana of Jesus)
활동년도 : 1565-1624년
신분 : 동정녀
지역 : 마드리드(Madrid)
같은 이름 : 마리안나
에스파냐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마리아나 나바라 데 게바라(Mariana Navarra de Guevara)는 신심 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23세 때에 결혼 제의를 물리치고 고향에 있는 맨발의 메르체다리오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그녀의 삶은 참회와 성체성사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열정적인 기도로 특히 유명하다. '마드리드의 백합'으로도 불리는 그녀는 1624년 4월 17일 마드리드에서 선종하였고, 1784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