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프로이트와 아들러
정신 분석과 개인 심리학
■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업적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데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성이 아닌 본능적(성적) 측면을 부각한 데 있다.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의 본능적 욕구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 이론은 무의식의 본능적 욕구(성적 욕구)를 자아가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때 신경증적 불안과 같은 심리적 증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분석을 통해 억압된 무의식적 부분을 인식하는 순간 증상은 자연히 소실된다고 믿는다.
◇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분석가는 분석을 받는 사람과 두 사람 사이에 생기는 전이(과거 중요한 사람에게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치료자에게 투사하고 갖게 되는 생각과 감정)를 분석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와 중립적 관계를 유지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은 자연스러운 본능적 행위를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억압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신 분석 이론에 바탕을 둔 역동적 심리 치료는 지지적 치료와 분석적(심층, 통찰) 치료로 나누기도 한다.
지지적 치료는 치료받는 사람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건드리지 않고 지지해 주는 치료고, 분석적 치료는 심리적 방어 기제와 그 이면에 숨겨진 내적 갈등을 다룬다.
우월감을 과시하는 행동을 모른 척하고 내버려 두면 지지적 치료고, 유아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해주면 분석적 치료가 된다. 치료받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방어 기제를 건드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 개인 심리학 창시자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
아들러는 권력 의지 또는 우월성 추구를 행동의 동인(動因)으로 보았고, 열등감을 적절하게 보상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공헌하는 것을 강조했다.
아들러는 분석받는 사람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한 프로이트와 달리 수용적 태도와 공감을 강조한다.
또한 유아기의 상처로 인해 증상이 형성된다고 보는 프로이트의 인과론적 관점과 달리, 사회 적응을 위해 증상이 생긴다고 보는 목적론적 입장을 취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부적응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았다. 이는 인지 치료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예를 들면, 몸이 마비되는 듯한 증상은 어린 시절 상처 때문이라기보다 체면이 손상되는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치료는 마비 증상의 원인을 해석하기보다 처해 있는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적절하게 대처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증상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아들러의 심리학은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들러 이론은 단순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아들러는 열등감 보상과 우월성 추구를 주장한다. 융이 성격 유형에서 우월한 기능과 열등한 기능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과 달리, 한 개인의 열등한 부분과 우월한 부분을 구분하지 않고 열등감 극복과 우월성 추구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열등감 보상과 사회 적응을 지나치게 강조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열등한 기능도 개발이 필요하나 열등한 부분을 가지고 우월성을 추구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우월성 추구는 열등감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타고난 우월한 기능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들러 이론은 열등한 부분도 노력하기에 따라 우월한 기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열등감과 병적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일 수 있으나, 열등감과 타고난 우월한 기능은 별개의 것으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들러는 무의식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열등감과 우월감에 대한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융과 대비된다. 융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의식의 우월감이 의식의 열등감과 연관될 수 있고 무의식의 열등감은 의식의 우월감과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아들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듯하다. 아들러는 1937년 스코틀랜드에서 갑자기 심장 마비로 사망했는데, 한 독일 작가가 그를 애도하자 프로이트는 빈 교외 출신의 소년이 애버딘(Aberdeen)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전례 없는 출세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러는 정신 분석학을 반대해서 사람들에게 큰 보답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애도에 공감하지 않았다. 융은 아들러가 내향적 성격이라 열등한 외향적 기능에 대한 무의식의 보상 작용으로 자아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사회 적응을 강조한 것으로 보았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