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 의자
이은봉
아무데나 불쑥 제 푹신한 엉덩이를 내밀어
사람들의 엉덩이를 편안하게 들어앉히는 접는 의자!
사람들의 엉덩이가 앉았다 떠날 때마다
접는 의자의 엉덩이는 반질반질 닦여진다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엉덩이를 들이밀고
사무실 한 구석에 우두커니 기대 서 있는 접는 의자!
더는 아무데나 불쑥 제 푹신한 엉덩이를 내밀 수 없어
세상 어디에도 그에게는 제자리가 없다
제자리가 없어 더욱 마음 편한 접는 의자!
엉덩이를 폈다 접으며 그는 하늘에 가 닿는다
시와 성스러운 경지
이 글자리에서 논의하려고 하는 졸시는 「접는 의자」이다. 『월간 현대시』(2003. 10)에 발표되었다가 제7시집 『책바위』(2008. 2. 25)에 수록된 시이기도 하다.
‘의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시는 무수히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수영의 시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이다. 김수영의 이 시는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놓은/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美製 磁器스탠드가 울린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1968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 만큼 이 시는 비교적 그의 말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의 이 시는 ‘걸린다’와 ‘울린다’라는 동사를 빠른 리듬으로 반복하면서 당대 사회의 모순을 빈정거려 두루 관심을 끈 바 있다.
의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또 다른 시로는 조병화의 시 「의자」를 예로 들 수 있다.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십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세대교체 혹은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내재하고 있어 3선 개헌 이후 젊은 세대로부터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그 밖에도 의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좋은 시는 많다. 이정록의 「의자」, 문인수의 「식당의자」 등이 의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좋은 시의 한 예이다. 하지만 예의 시는 모두 이 시 「접는 의자」보다 늦게 발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의 주제도 많이 다르다.
의자의 종류는 많다. 용도상으로 보면 사무의자, 학습의자, 식당의자, 이발의자, 의료의자, 극장의자, 만화방의자, 안락의자 등이 있고, 구조상으로 보면 고정의자, 접는 의자, 경사조절의자, 회전의자, 조립의자 등이 있으며, 재료상으로 보면 목제의자, 금속의자, 플라스틱의자, 성형합판의자, 강관(鋼管)의자, 알루미늄의자 등이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중심 대상인 ‘접는 의자’는 구조상으로 본 의자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에서의 ‘접는 의자’는 구조상으로 본 결과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의 ‘접는 의자’는 일종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너무도 많고 흔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그럴수록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것 중의 하나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접는 의자’이다. “사무실 한 구석에 우두커니 기대 서 있”다가 “아무데나 불쑥 제 푹신한 엉덩이를 내밀어/사람들의 엉덩이를 편안하게 들어앉히는” 것이 여기서의 ‘접는 의자’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의 ‘접는 의자’가 “사람들의 엉덩이가 앉았다 떠날 때마다” 그의 엉덩이도 또한 “반질반질 닦여”지는 존재라는 점이다. ‘접는 의자’의 엉덩이가 “반질반질 닦여진다”는 것은 그의 하단전이, 욕망의 토대가 절차탁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저 자신을 갈고 닦는 ‘접는 의자’……. 따라서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엉덩이를 들이밀고/사무실 한 구석에 우두커니 기대 서 있는 접는 의자”가 외롭고 높고 쓸쓸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외되어 “더는 아무데나 불쑥 제 푹신한 엉덩이를 내밀 수 없”는 것이,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제자리가 없”는 것이 ‘접는 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제자리가 없어 더욱 마음 편한” 존재인 ‘접는 의자’가 “엉덩이를 폈다 접으며” “하늘에 가 닿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에서는 이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그에 구애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저 자신을 좀 더 높은 정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애를 쓰는 존재를 노래하려고 했다. 이 시에서의 ‘접는 의자’가 나와 당신의 객관상관물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저 자신을 좀 더 성스러운 경지로 끌어올리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2년 · 하반기 제7호
이은봉
충남 공주 출생. 1984년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