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5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다른 신
호 13:4~8
<설교 제목 ‘다른 신’>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사연도 많고, 종교도 많고, 신도 참 많습니다. 그렇지요?
“신이 많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침 오늘 본문 4절에서 “다른 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다른 신”으로 정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절)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기독교인이 알아야 하는 기초적 이해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신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주 신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예배 받는 신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신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영’이라는 말은 ‘신’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육신으로 사는 인간이, 신으로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할렐루야~
신은 하나님 딱 한 분만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른 신”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습니다.
(1) 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많은 수의 천사를 거느리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 하인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만류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2) 사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거느리시는 한편 사탄을 거느리십니다.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천상의 회의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천상의 회의를 주재하십니다. 이 자리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입니다.
천사가 회의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사탄”이 회의에 참석합니다.
사탄이 왜 천상의 회의에 참석을 합니까?
욥기 1장 7절 이하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사탄의 역할은 참소입니다.
참소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아닙니다.”라고 하는 역할입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듯이 보이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역할을 참소라 합니다.
21세기 현대국가에 ‘참소’를 담당하는 직책이 있습니다.
입헌주의 국가의 검사입니다.
검사는 국법을 어기는 자를 색출해내는 일이 임무입니다.
“이 자가 나라 법을 어겼습니다. 형벌을 내려주십시오!” 이것이 검사의 임무입니다.
욥기 1장의 배경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천상의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욥을 칭찬합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 천사들은 부복하고 아무 말도 안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말합니다.
욥 1: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것이 참소입니다.
원래 참소란 공연히 헐뜯는 것이 아닙니다.
참소자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보고를 해야 합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아니라고 참소합니다.
사탄의 참소에 하나님은 사탄에게 “시험해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시험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신입니다.’에서 기본적으로 알아둘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천사, 사탄!
이 셋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주 신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신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 영으로 신으로 계신 하나님이 육신의 세계를 창조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왜 육신의 세상을 창조하실까?
그 대답이 제가 쓴 붕어빵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인데, 전능자라는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영으로 있지만, 물질로, 육신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자!”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누구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받는 일은 내가 마음 먹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사랑 받는 일은 전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미운짓을 해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희한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창안하셨습니다. 사랑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도록 억지로 강요하거나 꾸미지는 않습니다.
늘,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는다면, 거기서 나온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에덴동산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조성하실 때, 생명나무, 선악과나무 둘을 심어두셨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을 수도 있고, 선악과를 따 먹을 수도 있습니다.
피조물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택, 하나님을 미워하는 선택~ 모두 가능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다른 신>입니다.
하나님은 왜 자신 외에 다른 신을 두었을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면 피조물 인간은 모두 하나님만을 찾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받기가 아닙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랑이 싹트지 못합니다. 거기서는 복종, 맹종만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기 위한 풍토를 조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뿐 아니라 다른 신도 선택의 대상으로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붕어빵에 보면, 무당이 작두를 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당이 섬기는 신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만일 다른 신이 너무 볼품없다면 인간이 선택을 안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다른 신”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도록 수준을 올려놔야 합니다.
무당이 작두 타는 일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삼상 28장 신접한 여인
사무엘상 28장에 보면,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당입니다. 그 여인을 사울 왕이 찾아갑니다.
블레셋이 전쟁을 걸어왔기 때문에 사울 왕이 하나님께 여쭈었는데,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답답해진 사울이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청합니다.
무당이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사울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사울 왕이 절대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립니다.
이 장면은 매우 영험한 무당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족집게 무당의 모습니다.
사무엘상 28장은 기독교인을 매우 혼란스럽게 합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의 점괘는 매우 정확합니다.
길보아 전쟁에서 이 여인의 예언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이 전쟁에서 사울 왕과 세 아들이 전사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혼란스러워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궤계입니다.
사탄은 참소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무당의 점괘를 비롯하여 작두타기를 연출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용인 아래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용인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이러한 것 모두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비견되는 것들입니다.
생명과를 따 먹을 것인가,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인가?
이 질문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늘 선악과에서 돌아서서 생명과를 따 먹는 성도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예배 받는 신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지어 사랑의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신들을 허락합니다.
왜 허락하시는지 위에서 살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숱한 신들을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 천사들, 사탄들
특히 사탄은 참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끝없이 허탄한 신을 만들어냅니다.
허탄한 신을 섬길 것인가?
전능자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우리는 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예배를 합니다.
알고보면 하나님을 제외한 여타의 모든 신에게 제사하고 예배하는 일은 허탄한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참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