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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끝에 있는 모아이 석상 보존
가장 가까운 육지인 칠레 해안으로부터 3,800 ㎞ 떨어져 있고, 가장 가까운 섬인 타히티에서도 4,000 km도 더 떨어져 있는 섬이 있습니다.
1722년 4월 6일-부활절Easter이었다고 합니다-네덜란드의 로게벤Jacob Roggeveen이 이 섬을 발견하여 부활절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이스터 섬이라고 명명하였고,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령의 작은 폴리네시아 섬인 <라파>를 닮아 1863년 이후로 <큰 라파섬>이라는 뜻의 라파 누이 Rapa Nui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테-피토-테-헤누아Te-Pito-te-Henua(육지의 끝 또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랍니다)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1995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유산 목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섬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계로, 기원전 400년 경 이곳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또 유적군의 건조 시기도 10∼11세기라는 설과 13∼14세기라는 설 등으로, 분명하지도 않고, 제작 의도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섬이 유명한 이유는 '모아이(Moai)'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기 때문입니다. 석상의 높이는 4∼5m, 무게는 4∼5톤 정도입니다. 적어도 867개 이상의 석상들은 이스터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특히 섬의 해안선에 많이 있습니다. 황갈색 튜퍼tufa-다공질 탄산석회의 침전물, 화산성의 응회암-로 만들어졌고요, 하나의 석상을 만드는 데는 적어도 30여명의 인원이 꼬박 1년을 걸려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석상들은 다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형태로, 큰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마는 좁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코는 높고, 턱은 힘차게 앞으로 뻗고 귀는 무쟈게~ 깁니다. 이는 지배 계급이었던 하나우 에페족의 생김새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 부족은 귀가 무척 길고 커서 ‘장이족’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매우 위풍당당해 보입니다. 모두 바다를 등지고 섬을 바라보는 자세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아이 석상의 대부분은 부족의 제단에 서 있습니다. 부족 사람들은 그 모아이를 조상신으로 모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 석상에는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안구로는 흑요석과 붉은색의 안산암으로 만든 2종류의 안구가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눈동자를 복원한 모아이상
어쨌든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인위적으로, 자연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외부인들의 파괴 행위와 1960년 칠레 지진에서 발생한 해일이 밀려와 파괴된 모아이 유적입니다.
모아이 상을 만드는데 사용된 재료인 화산 튜퍼는 물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지하수나 빗물이 침투하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어 진흙으로 되는 재질입니다. 물의 흡수와 방출이 반복되면, 암석 표면에 염분이 석출되고, 염류 풍화도 일어나게 되고요. 그러면 석상의 붕괴를 촉진시키게 되는 겁니다. 무너진 석상의 경우는 무너질 때의 충격도 있어서 복원을 할 때, 석재 강화처리 뿐 아니라, 깨진 부분을 접합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크레인으로 머리 부분을 접합하고 있습니다. 접합에 사용하는 재료도 중요합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스터 섬에 미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건된 모아이 상이 있습니다. 시멘트를 접합에 사용했기 때문에, 석상에 빗물이 스며든 뒤에 물이 빠르게 빠지지 않아서 석상의 내부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따라서 염류 석출의 빈도가 높아지게 되어, 석상의 풍화를 촉진시키게 되는 겁니다.
시멘트로 접한한 모아이상입니다.
석재의 강화처리를 위해 골격을 만들고 있는 사진이 있네요.
http://www.pbs.org/wgbh/nova/easter/ 사와다 마사아키 문화재보존과학개설 http:// www.wikipedia.org Wacker, Preserving a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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