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보검의 뜻으로
보배로운 가치나 자랑거리,그리고 난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요즘은 곤란한 문제에서 벗어나는 상투적 수단을 뜻하는 언어유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통과 진실의 가치를 가진 전가의 보도는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을 판단하는 진실의 실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외국 영화를 보다보면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하는 데 자막은 "제기랄"로 번역되어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서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크리스챤의 문화가 있는가 하면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제기랄, 우라질이라는 욕설로 사용하는 불신의 문화가 공존합니다.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과 불신의 차이는창조주와 구세주에 대한 믿음의 반동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라는 예수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욕이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성서지대 전가의 보도, 그 최상은
어버지 하나님 안에 있는 예수의 믿음,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일 것입니다.
전가의 보도는 그 가치의 전통적 진실성 떄문에
진실과 정의를 어필하는 표현이자 진실과 거짓의 상투적 수단의 언어유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가의 보도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
사용하는 사람의 교양과 지적 능력이 되었습니다.
변희재 대표는 정규재 대표를 비판하는 말로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은 자유 한국당이 보수를 유지하는 전가의 보도인가라고 하였고
인터넷의 어떤 기사는 우리 나라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만으로도 전가의 보도라고 하였습니다.
전가의 보도는 그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떄로는 디펜스 공격용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코스푸레의 허상을 비꼬는 비판의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가의 보도는 입술의 검으로
공격과 방어, 그리고 회피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성서지대, 그 전가의 보도는
성서지대, 그 자체에 쌓여있는 각골난망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실사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지대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문제를 다루며
일반적으로 1600여년 동안의 기록물입니다.
그 교훈과 내용의 방대함과
성서지대 , 그 안에 담겨진 역사의 흔적을 전가의 보도로 탐색하는 것은
성서지대를 트래킹하는 또 다른 별미가 될 것입니다.
성서지대의 오늘이라는 시제는
성서의 내용, 그 현제의 시점인 경우와 성서 저자의 시점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는 말씀에서
오늘의 시제는 가인 시대의 오늘입니다.
또한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창19:36-38)는 말씀에서
오늘의 시점은 창세기를 기록하는 저자의 시대의 오늘입니다.
이와같이 성경 저자 시대의 오늘날의 유적과 유물은
성서지대 , 그 전가의 보도를 탐색하는 자취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역사요,
현제는 어제와 내일의 가교입니다.
오늘 존재하고 발견되는 그 무엇은
어제의 자취요, 그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지대, 그 전가의 보도를 추적하는 것은
성서의 진실을 깨닫는 단초요, 그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의 내적 증거가 되어
성서의 역사성, 그 진실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의 유물 가운데 모세의 광야시대에 브사렐이 만든 놋 제단은
사사 시대를 거쳐 다윗 시대 기브온의 성막에 있었고 솔로몬이 기드온 산당의 성막에서
일천 번제를 드릴 때 시공을 초월하여 역대기 저자의 시선에 보였습니다.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출38:22)
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이것으로 회막 문 기둥 받침과 놋 제단과 놋 그물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뜰 주위의 기둥 받침과 그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주위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출38:29-31)
모세 성막의 놋 제단은 엘리 시대 실로의 성막에 있었고 다윗 시대 놉의 성막과 기브온 성막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드린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모세 성막의 상징인 놋 제단의 증거가 된 것을
역대기 저자는 전가의 보도로 사사하였습니다.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쳐 두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 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1:4-6)
역대기 저자는 기브온의 여호와 장막 앞에 놓인 놋 제단뿐만 아니라
모세의 성막, 그 지성소에 있었던 하나님의 궤를 세월의 풍상을 겪은 전가의 보도로 증거하였습니다.
모세의 언약궤는 출애굽의 노정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였고 요단강을 건넜으며
실로의 성막에 안치한 후 베냐민 자파와 전쟁 때 벧엘로 옮겨졌으며
엘리 시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참패하여 언약궤는 빼앗겼고 실로의 성막은 파괴되었습니다.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간 언약궤는 많은 재앙을 일으키며
에벤에셀에서 아스돗과 가드와 에그론과 벧세메스와
기럇여아림과 오벧에돔의 집과 다윗성을 거처 솔로몬의 성전에 안치되었습니다.
솔로몬 시대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 안에 여전히 십계명의 두 돌판이 있었습니다.
☞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8:6-11)
법궤는 여호와의 궤, 하나님의 궤, 주의 능력의 궤, 증거궤, 언약궤, 거룩한 궤로 불리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전가의 보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가의 보도로 삼았던 최고의 인물은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던 다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신앙의 중심은 언약궤요, 그 언약궤는 여호와의 율법, 그 자체였으며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과 증거와 율례에 대한 다윗의 찬양은 시편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솔로몬은 언약궤를 주의 능력의 궤라고 하였고
언약궤를 전가의 보도로 계승한 마지막 주자인 요시야는 거룩한 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종말론적인 이해를 하였습니다.
☞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렘3:15-19)
이처럼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내 마음에 합한 목자"에 귀속시키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종말론적인 영원한 메시야의 나라를 계시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전가의 보도는
내 마음에 합한 목자라는 메시야 신탁의 계시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하늘의 성전, 그 안에 있는 언약궤를 보이며
구약 시대 하나님의 언약과 임재의 상징이었던 언약궤를 하늘의 성전으로 완성된 것을 보였습니다.
☞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성서지대 최대의 전가의 보도가 된 언약궤는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의 상징이요,
다윗 왕국 통치의 중심이었으며 하늘의 성전으로 영원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서지대, 그 전가의 보도는 최고인 하나님의 언약궤의 정상에서
그 나머지는 전가의 보도에 값어치가 떨어져 추적을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세 시대 광야의 성막은 가나안 땅의 실로의 성막과 놉의 성막과 기브온의 성막으로 이어져
브사렐이 만든 놋 제단과 언약궤는 성서지대, 그 전가의 보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언약궤는 성막과 성전을 연결하는 언약의 중심이 되었고
내 마음에 합한 목자, 바로 그 메시야가 영원히 성취할 하늘 성전, 그 보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문득 자유 대한민국, 그 전가의 보도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유 대한민국, 그 전가의 보도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변과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 통일의 정신이요,
그것을 정통으로 계승하는 대한의 노아방주에 승선한 태극기 애국 시민의 나라 사랑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의 내 一生 祖國과 民族울 爲하여라는 휘호는
보수 우파의 자유 대한민국, 그 애국을 상징하는 전가의 보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