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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15≫ 교황
◆교황◆
1. 명칭과 직위 : 교황이라는 명칭의 원어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
2.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
①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 주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순전한 사상운동으로만 선포하지 않으시고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우셨다. 그는 교회의 이념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열두 사도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시어 파견하셨다.(마태 10:1-4, 마르 16:15, 마태 18:18, 28:19-20, 사도 1:8). 그리스도는 사도단을 구성하실 때에 그들 중에서 시몬을 베드로(반석)이라고 개명하시어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마태 16:15-19),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신 것(루가 22:31-32), 베드로에게 양들을 맡기신 일(요한 21:15-17) 등은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실 의향을 명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는 마티아를 사도로 보선하고(사도 1:15) 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고(사도 2:14이하),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 4:8, 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 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 15:7-22) 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행세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 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였고, 거기서 그의 첫째 편지를 썼으며(1베드 5:13),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글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으며, 2세기 말에 교황 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再洗禮)를 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전에 이미 고대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기복을 거쳐서 (교회사 참조)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신조(信條)로 정의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가 재확인하였다(교회헌장 22).
②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 :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는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교회헌장 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 교회(교구)안에서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 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 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된다. 주교단의 단체성은 세계 공의회에서 잘 나타난다. 공의회의 결의는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제에 대한 보편적인 사목지침이 되는 것이다.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교황도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에 다른 주교들과 함께 유일한 주교직에 참여하고 있다. 일찌기 치프리아노는 3세기에 다음과 같이 주교직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주교직은 하나이고 각 주교는 여기에 연대적으로 참여한다”(De unitate, 5). 전체 교황의 수위권은 모든 교회문제에 대한 완전한 것이고(plena),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 개인과 단체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이고(universalis), 공의회보다 더 높은 최고의 것이고(suprema), 직책상 당연히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것이고(ordinaria),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이고(immediata),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다(libera).
3. 교황의 직무 : 교황의 직무도 교회의 직무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豫言職)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敎導權),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司祭職)과 신품권(神品權),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王職)과 통치권(統治權)으로 대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① 교도권(potestas magisterii) :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헌장 25).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이라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莊嚴) 교도권이라 한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해설, 사목교서, 교구회의 등으로 하고, 또 교황령(敎皇領) 회칙(回勅) 등 문서로도 하며, 교황청의 행정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한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 한다(무류지권 참조). 교황이 교좌에서(Ex cathedra)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하여 다음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다. ㉯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 권유 · 해설 · 반박 ·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다. ㉰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된다. 따라서 과학 · 예술 · 사회 · 경제 · 정치 · 기타 문제에 관한 교황의 선언은 무류하지 않다.
② 신품권(potestas ordinis) :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한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신품권을 받는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된다. 교황이 전례의 유효성에 관한 절차나 조건을 정하고, 전례문을 제정하거나 변경하거나 또는 전례상의 관면이나 제한을 하는 것과 성년을 선포하고 시성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주교보다 더 큰 신품권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에 말할 더 큰 교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③ 통치권(potestas jurisdictionis) :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기관(법원, 행정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이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분립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장엄 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하고, 교회의 현세적 조건(정교조약, 재산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교황직 약사(略史)
① 고대 교회 : 초대 교회에서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전체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으므로, 이단자들도 자기네 주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로마로 갔으며(마르치온, 노바시아노, 몬타노, 그노시스 이단파의 지도자들), 교부들도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하여 로마의 보호를 청하였다(아타나시오 등).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틴(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칭)으로 옮긴 후부터 로마의 정치적 비중은 줄었지만 로마 주교의 종교적 권위는 더욱 커졌다. 박해 후에 신학적 사색이 발전하면서 동방에서 논쟁이 분분할 때에 로마 황제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개최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주로 동방 주교들이 참석하여 결의하였지만 그 결의는 언제나 교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야만 공의회로 인정되었으며, 칼체돈 공의회(451년)는 성 레오 1세 교황의 사절들이 사회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명실공이 교황의 수위권이 확립된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무렵부터(476년) 서유럽의 정치적 혼란에 즈음하여 교황은 교회뿐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하였고, 게르만민족을 교화시키고 수도회와 성당을 통하여 로마 문화를 전수하였다. 6세기 말에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영국을 개종시키고 로마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세유럽의 형성자가 되었다.
한편 동로마 황제의 후광을 입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은 계속하여 로마 교황과 대등한 동방에서의 수위권을 요구하여 사소한 교리 해석의 차이와 전례의 차이 등을 핑계로 삼아 교황의 수위권에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교회가 분리될 소지를 만들어 갔다.
② 중세 교회 : 중세는 로마 교황과 신흥 세력인 게르만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게르만 민족들이 개종하고 교화되면서 서유럽에 많은 왕국이 형성되었고, 교황은 이들 신생 국가들의 왕권에 교회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시초에는 교황이 왕권의 후견인이었으나, 왕권이 비대해지고 교회를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왕권이 교권에 간섭하게 되자 양자의 충돌이 일어났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은 강력해지고 칼 대제는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하여 서유럽의 황제로 대관식을 받아서(800년) 교회를 옹호함과 동시에 교권에 깊이 간여하였다. 그 동안에 동프랑크(독일)도 개종하여 오토 대제가 교황 요한 12세에 의하여 황제로 대관되고(962년) 소위 신성 로마제국을 형성함으로써 교권에 간섭하였다.
이렇게 7 · 8 · 9 · 10세기의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고,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정권의 동요와 경제의 불황으로 사회는 혼란하였으며, 교황권의 약화는 성직자들의 기강 문란과 주교 서임권에 관한 왕권과의 다툼을 초래하여 서유럽 사회와 교회는 암담한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시기에 편승하여 동방교회는 해묵은 수위권 시비로 결국 1054년에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로마 교회는 꾸준히 복음 선포에 힘써서 7세기에 스페인, 8세기에 독일, 9세기에 슬라브족과 스칸디나비아족, 10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 11세기에 유럽의 대부분을 그리스도교화 하였다. 동방교회의 이교(離敎) 후에는 교황의 권위는 서방 교회에 국한되었다. 11세기에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집요한 투쟁으로 교권을 왕권에서 해방시켰고, 12~13세기의 교황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열어서 교회의 개혁과 분리된 동서방 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하였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활약과 새로 등장한 대학의 노력으로 13세기에는 중세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전성기는 쇠쾨기의 시작이었으니 14세기에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하여 소위 대이교(大離敎, 1378~1417년) 사태가 벌어져서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피렌체 공의회(1438~1445년)로 이교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교황의 지위는 약화되고 때마침 일어난 문예부흥 사조와 지리상의 대발견 등으로 서유럽의 통일과 정신적 일치의 구심점으로서의 교황의 위치는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신학의 퇴조와 교회생활의 타락은 새로운 사조의 발흥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종교개혁이라는 정신적 대혁명을 겪게 되었다. 14 · 15세기의 교황들 중에서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 한 분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③ 근세 교회 : 종교개혁 운동으로 독일 · 영국 · 북유럽의 여러 교회들이 로마와 절연하는 와중에서 교황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개혁에 착수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하여 개혁론자들의 이단을 배격하고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조처를 취하였고, 성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들은 정력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를 실시하였다. 활력을 다시 찾은 교회는 신생 예수회를 비롯한 많은 선교수도회를 통하여 극동 선교에 나섰으며, 로마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설립하여 포교사업을 지휘하였다(1622년). 17세기에는 프랑스에, 18세기에는 독일에 국수주의적 교회관이 생겨서 소위 정교분리 사상(政敎分離思想)이 강력히 대두되어(갈리카니즘, 페브로니아니즘, 요세피니즘) 교황의 수위권은 또 한 번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로써 속사에 대한 교황의 간섭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는 전반적인 교황권의 실추를 초래하였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통일 기운이 성숙하여 1870년에 근 천년 동안 유지해 온 교황영토가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속권(俗權)은 영구히 무산되었다. 한편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에 심취하고, 과학만능주의 · 유물론 등이 성행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을 때에, 교황의 교권이나마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비오 9세 교황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신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오류를 배척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속권에서 벗어난 위대한 교황들이 속출하여 교회뿐 아니라 현대의 사회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문제에 빛을 던졌으며, 성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고 전례운동을 촉진하였다. 베네딕토 15세는 교회법을 개혁하였고(1917년), 비오 11세는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세계의 선교사업을 크게 촉진하였으며,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달성하였다(1929년). 또 비오 12세는 성모승천 교리를 선포하고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고통을 겪었다. 위대한 교황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탈(脫)그리스도교화하는 과정에 있는데,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과 개방을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바오로 6세와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교황의 위신은 교회 내에서는 물론 교회 밖에서도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5. 교황의 법적 지위
①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Ordinarius)이다 : 이 점은 다른 교구의 주교의 경우와 같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티칸이 아니고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교황은 로마 교구 사목을 위하여 총대리 추기경의 보좌를 받고 있다.
② 교황은 로마 관구의 수도(首都) 대주교(Metropolita)이다 : 로마 교구와 그 주변 7교구를 합한 로마 관구의 관구장이며, 7개 속교구에는 전통적으로 주교급 추기경을 두고 있다.
③ 교황은 이탈리아의 수좌(首座) 대주교(Primas)이다 : 이탈리아의 모든 교구 중에 수석 교구의 교구장으로서의 명예직이다.
④ 서방(西方) 교회의 총주교(Patriarcha)이다 :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모교회(母敎會)로 하여 발전한 라틴식 전례를 가진 모든 교회들을 총괄하는 대주교를 뜻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예직이다.
⑤ 교황은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원수이다 :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영토는 몰수되고 교황의 주거지인 바티칸 언덕과 몇 개 기관들만 교황의 관할로 남았었는데, 1929년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바티칸 시는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었고, 교황은 국가원수로서 불가침 특권과 외교특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이 파견한 교황대사는 주재국에 대하여 교황의 전권대사이며, 주재국의 교회에 대하여 감독과 연락의 책임을 지고 있다. (鄭夏權)
◆교황청◆
교황청은 흔히 바티칸이라고도 불린다. 바티칸은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로마의 한 언덕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지금은 그곳에 베드로 성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교황님이 머무르시고 계신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티칸은 사도좌(使徒座), 또는 성좌(聖座)라 불리는 전세계 교회의 최상 사목자인 교황 자신과 그를 보필하는 기구를 뜻하기도 하며, 하나의 독립된 국가인 바티칸시국(市國)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황청은 전세계 교회의 최상 사목자인 교황을 보필하는 교황청의 각 부서, 즉 성성(聖省)들을 총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최상 사목권은 두 가지 양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단체적인 행동으로 교황을 그 으뜸으로 하는 세계 주교단, 즉 세계공의회(世界公議會)라고 불리는 주교단의 활동인데 이는 사도단의 후예인 주교단의 활동이다. 또 다른 하나는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교황 자신이 개인적으로 스스로 교회 최상 사목권을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 자신이 홀로 세계 교회의 최상 사목자로서 최상권을 이행하는 위해서는 그를 보필하는 기관이 필연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1. 교황청 기구의 발전 : 교황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며 그의 수위권을 계승하고 있는 자로서 전세계 그리스도 교회의 최상권을 가진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따라서 교황은 전세계 교회에 대한 일상업무를 몸소 결정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결정에 반드시 다른 이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역대 교황은 보필자들의 의견을 참작하여 왔다. 그러나 이 보필자들의 직책이나 기능은 시대환경에 따라 물론 각기 달랐다.
① 로마 시노두스 시대 : 초세기에는 교황이 세계교회의 임무를 이행하기 위한 정상적인 수단은 이 로마 시노두스였다. 교황은 필요에 따라 로마 변두리 주교들과, 부제들을 포함한 로마 교회의 사제단, 그리고 로마에 임시로 거주하는 주교들 및 로마 주교좌의 관할 교구 주교들로 간주되는 주교들을 불러 회의를 소집하여 임무를 의논 결정하여 왔다. 그러나 차차 현실적으로 이런 방대한 회의를 자주 소집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교회의 제도가 확정되어 가고 모든 지역 교회가 그들의 문제 해결을 교황께 의뢰하게 됨에 따라 교황은 차차 번거로운 전체회의보다는 시노두스 위원 중 소수만을 불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② 추기원(樞機院) 시대 : 한 걸을 더 나아가 교회가 발전하고 신앙이 더욱 널리 전파됨에 따라 교회의 업무가 날로 급증하여 갔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로마 시노두스를 제때에 소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황은 로사 사제단에 근원을 두고 있는 원로원을 구성하게 되었고, 그 의원들을 추기경이라 칭하였으며, 이 추기경들은 처음에는 교황의 전례집전을 보좌하였으나 차차 교황의 위임에 의해 교회행정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 뒤 이 명칭도 배타적으로 이 원로원에만 사용토록 하여 지금의 추기경단을 이루게 되었다. 이 추기경단은 로마 사제단에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25개 로마 본당신부의 명칭을 받는 사제 추기경들과 로마의 7개의 부제 관할구역과 6개의 부제 관할 지역의 명칭을 받는 부제 추기경들, 그리고 후에 교황의 협조자인 7개의 로마 근교 주교좌 칭호를 받는 주교 추기경들로써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세를 돕던 70인 장로를 따라 70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수적 제한을 폐지하였으며, 동방교회의 총대주교들도 주교 추기경으로 임명되며 물론 지금도 주교 추기경은 다른 계층의 추기경보다 상급자들로 여겨진다. 추기경단을 이루는 이 추기경들은 일반 주교들보다는 상위였으며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원로원을 이루고 있었고 세계 교회를 위한 교황을 보필하는 중요한 자문기관이 되었다. 즉 교황의 정상적인 자문기관으로 교황이 임석하는 추기원회의에서 교회의 중요한 업무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교황께 상신되는 업무와 안건이 더욱 증가함에 따라, 이를 일일이 추기원회의로 돌리기가 다시 어려워졌고, 더욱이 교황 자신이 결정하여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또 다른 새로운 제도를 요구하게 되었다.
③ 성의회 신설시대 : 교세가 더욱 확장됨에 따라 업무량이 폭주하게 되어 모든 추기경들이 매주 2, 3회 총회를 개최하여 일을 처리함은 극히 비능률적이 되었다. 따라서 일의 성질상 여러 분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소수의 추기경 회의들을 설정하게 되었고, 이를 성의회라 칭하였으며, 모든 추기경들이 모든 의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분담한 의회에만 참석하게 되었다. 따라서 업무 결재가 신속하여졌으며 소관업무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들을 보좌하는 전문위원들도 필연적으로 두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횡적인 연락이 적은 독립적 기구들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 이 교황청 기구들은 1588년 교황 식스토 5세에 의하여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 뒤 교황 성 비오 10세는 현실에 맞는 로마 성의회들의 재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그 업무 취급을 새로이 개선하여 교회 법전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 각 의회는 재판의 형식으로 안건을 다루어 왔는데, 이는 업무의 성격상 적합지 않으므로 그 성의회 신설시의 성격에 따라 행적적인 방법을 이행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웠으며, 같은 내용의 업무를 관장하는 의회가 여럿이고 이들 사이에 혼돈이 야기되지 않도록 획일성이 결여되어 있는 성의회들을 대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이 1917년 공포된 교회법전에 실려 지금까지 교회 행정의 근간을 이루어 오게 되었다.
2. 현행 교황청 기구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급격한 변혁을 겪게 된 교회는 발전된 국가의 행정조직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입각, 교황청 기구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다. 각 부서의 책임자들의 임기제를 도입하여 각 부서의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국무원(國務院)을 최고의 부서로 격상시켜 다른 부서들을 통괄할 수 있도록 하여 정기적 국무회의를 열 수 있도록 현대화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하여 세계 교회를 관할하는 교황청 여러 기관에 지역교회의 주교들이 직접 참여케 하여 모든 교회의 생각과 소망, 그리고 필요성들을 교황께 직접 알려 드릴 수 있도록 하였으며, 탈(脫)이탈리아화를 이룩하여 명실 공히 세계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였다. 또한 공의회 정신에 따라 사회에 대한 관심과 대화를 이루도록 새로운 연구기관들도 설립하게 되었다. 현행 교황청 기구의 중요 부서들을 살펴보면,
① 국무성성(國務聖省) : 국무성은 교황청의 총괄적이고 중추적인 기구로서 국무원(國務院)과 외무평의원(外務評議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개인의 비서국이었던 국무원은 그 기구가 확대되고 격상되어 교황을 직접 보좌하며 모든 성성(聖省)들을 통괄하고 국무회의를 주관한다. 이 성성장관은 또한 교회의 대(對)정부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외무평의원장을 겸임하는 강력한 국무성성장관이 되도록 하였다. 즉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을 겸하는 정부들의 조직을 따르고 있다.
② 성성(성의회) : 성성으로 흔히 불리는 성의회는 9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회의 일상업무를 맡고 있다. ㉮ 신앙교리성성(信仰敎理聖省)은 신앙과 도덕, 사상 등을 감독하고 가톨릭 교리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을 감시한다. ㉯ 동방교회(東方敎會)들의 성성은 전례가 다른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규율, 전례, 인사 등의 문제를 취급한다. ㉰ 주교성성(主敎聖省)은 완전한 교계제도를 이루고 있는 교구들의 문제와 그 교구장 주교들의 인사문제를 맡아 본다. ㉱ 성사경신성성(聖事敬神聖省)은 교구 사제와 부제들의 문제와 교구 신학생 양성을 위한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 시성시복성성(諡聖諡福聖省)은 시성 · 시복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 성직자성성(聖職者聖省)은 교구 사제와 부제들의 문제와 교구 신학생 양성을 위한 모든 업무를 관장한다. ㉴ 수도자(修道者) 및 재속수도회(在俗修道會)성성은 모든 수도자들과 재속수도회에 관한 업무를 맡아 본다. ㉵ 가톨릭 교육성성은 가톨릭적인 교육과 가톨릭 학교에 관한 업무를 맡는다. ㉶ 인류복음화성성(포교성성)은 아직 교계제도가 설정되지 않은 선교지방이나 교회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지역교회를 전반적으로 보살피고 지휘 감독한다.
③ 사무국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회에 대하여 눈길을 쏟게 된 교회는 그들과의 대화와 일치를 위한 3개의 연구기관을 신설하게 되었다. ㉮ 그리스도 일치 사무국은 우리와 공통 유산을 갖고 있는 유태교와 동서방 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인 동방 그리스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의 대화와 일치를 위한 업무를 담당한다. ㉯ 비(非)그리스도교도 사무국은 그 이외의 모든 종교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그 업무를 담당한다. ㉰ 무종교자 사무국은 아직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미신자이거나, 적극적인 무신론자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무종교인들을 위한 연구와 업무를 담당한다.
④ 법원 : 교회는 전통적으로 외정(外廷)에 관련된 법원 뿐 아니라 내정(內廷)에 관련된 3개 법원을 갖고 있다. ㉮ 대심원(大審院)은 교회 추기경들로 이루어진 교회 외정에 대한 최종판결을 위한 교회 최상의 재판소이다. ㉯ 항소원(抗訴院)은 교황청에 상소되는 모든 혼인문제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리는 재판소이다. ㉰ 내사원(內赦院)은 교회 내정에 관련된 양심의 비밀, 사죄, 면제, 대사 등의 문제를 취급하는 곳이다.
⑤ 사무처 : 교회 사무를 관장하는 곳으로 모두 6개 부서로 나누어 있는데 ㉮ 교황청 문서원(文書院)은 각종 교황문서를 통괄하여 교황 칙서의 반포를 맡아 본다. ㉯ 교황청 재무원은 교황청과 소속단체의 재경문제를 심의하며 감독 관할한다. ㉰ 교황 궁무원(宮務院)은 교황궁의 업무를 담당하며 교황의 모든 공식, 비공식 의전절차를 관할한다. ㉱ 교황청 재산관리원(財産管理院)은 교황궁의 재산을 관리하고 교황이 위탁하는 사업을 운영 감독한다. ㉲ 교황청 궁중사무국(宮中事務局)은 교황좌 공석 중에 교황청의 세속 권리와 재산을 보호 관리한다. 교황권을 임시 대리하는 기관이다. ㉳ 통계국(統計局)은 교회의 각종 통계에 관한 업무를 담당, 교황청 각 성성과 주교들에게 이를 제공하여 교황청 기구를 현대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⑥ 위원회 : 이 밖에도 교황청에는 특정 문제에 관하여 연구 심의하는 20여 개의 위원회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우리와 관련되는 것 몇 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평신도 위원회(平信徒委員會)는 아직 정식 성성으로는 발전하지 못하였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그 위치가 부각된 평신도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그 전반 정책을 관장하는 곳이다. ㉯ 정의평화위원회(正義平和委員會)는 현대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제반 문제를 연구 분석하고 세계 각처에서 인권과 윤리가 유린당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곳이다. ㉰ 가정사목위원회(家庭司牧委員會)는 1980년 제5차 세계주교대위원회의 결과 현재 위기에 처해 있는 혼인과 가정생활을 연구 분석하며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의 가정생활을 위한 사목을 관장하고 있다. ㉱ 사회사업위원회는 사회발전을 위해 상부상조하여 사회개발을 촉진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한 현행 교황청기구 개편은, 과거와는 달리 교회법전에 확정 수록치 않고, 국가 행정법과 같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교회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단행법으로 그대로 남아 유연성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때그때의 필요성에 의거 합당하게 교황청 기구들을 신설, 폐기 및 개편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朴俊榮)
◆교황선거◆
교황은 추기경단의 콘클라베(conclave)에 의하여 선출된다. 모든 추기경은 임명된 날로부터 교황의 선거권을 갖는다. 그러나 최초의 교황인 성 베드로는 사도들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교황으로 간택되었다. 그 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교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최선의 선거방법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교황선거라고 하면 오늘날 으레 추기경단을 연상하지만 이 제도가 확정되기까지 1천년의 세월이 걸렸다. 3세기의 자료에 의하면 로마주교, 즉 교황의 선거도 다른 주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지방의 성직자와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러나 교황이 로마의 주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 전체의 머리이며 서구의 총대주교이자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라는 권위로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교황선거에 외부 세력이 간섭을 하게 되었다. 4세기부터 시작된 이러한 간섭은 로마황제 · 로마귀족 · 독일왕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비잔틴 황제들은 교황선거에 승인권을 요구하였고, 6~8세기의 교황들은 그들의 당선을 황제에게 보고하고, 그 승인을 얻어야 했다. 9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로마귀족과 독일왕들이 교황을 해임하고 임명하는 등 교황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왕 하인리히 3세는 교황문제로 로마귀족들의 당파싸움이 그 절정에 도달했던 1046년에 3명의 교황을 해임하고, 독일 사람을 새 교황으로 임명하여, 그 후에도 한동안 독일인들이 교황좌를 차지한 때도 있었다. 황제는 말하자면 교황의 상전이었던 것이다.
황제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곧 교회 안에 반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속인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지키고 되찾으려는 교회개혁에서 나타났고, 그 일환으로 니콜라오 2세 교황은 마침내 1059년 이후에 교황선거를 추기경 주교들에게 국한시키는 교황선거법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교황선거에서 속인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한 점에서 교황선거사에 있어 전기를 마련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추기경은 교회가 만든 제도이고 교황이 임명한다. 그래서 추기경은 처음에는 로마에만 약 50명이 있었는데, 교황선거가 추기경단에 맡겨짐으로써 추기경의 지위는 크게 격상(格上)되었다. 교황선거가 추기경단에 유보된 데 이어 1179년 제3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3분의 2의 다수결 선출방식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교황령 에 의해 성문화되었다. 그러나 3분의 2의 다수결은 그 후 불행히도 선거의 지연과 아울러 교황의 공석(空席) 시기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교황선거의 안정성을 위해 추기경단과 3분의 2의 다수결 외에 또 하나의 요소가 첨가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인 것이다. 이 말은 월래 열쇠로 잠근다는 뜻에서 유폐(幽閉)당한 교황선거장을 말한다. 최초의 콘클라베는 1241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어쨌든 오늘날의 콘클라베는 그 후에 있는 비테르보(Viterbo)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 선거는 1268년 말에 시작되어 1271년까지 거의 3년이 걸렸다. 5년째 되던 해에 비테르보의 시당국과 시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좀 더 지혜롭고 신속한 결정을 자극하기 위해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그들에게 빵과 물밖에 공급하지 않았다. 새 교황(복자 그레고리오 10세)은 그 방법이 훌륭했음을 인정하고, 1274년 그것을 제도화하였다. 그 규정에 따르면 8일 지나도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선거가 성공되기까지 추기경단은 빵과 포도주와 물 밖에 공급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후에도 교황선거법은 계속 수정 보완되었지만 핵심의 세 요소, 즉 추기경단 3분의 2의 다수결, 콘클라베를 제외하면 세칙에 불과하다. 식스토 5세는 1586년 추기경수를 70명이 넘지 못하게 하였으나 요한 23세는 그 수를 증가시켰다. 비오 12세는 3분의 2표에 1표를 가하였고(자신의 표를 막기 위해), 요한 23세는 그것을 다시 3분의 2로 환원하였으며 바오로 6세는 다시 비오 12세의 결정으로 환원시켰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한 후, 15일(필요에 따라 사흘은 더 연장될 수 있음) 안에 열리도록 되어 있다. 오늘날 추기경들이 교황선거를 위해 유폐되는 장소는 바티칸 궁전 안의 시스틴 성당이다. 교황선거에는 전원 추천(만장일치) · 위임 등의 방법도 있으나 보통은 비밀투표로 결정된다. 오전 오후 두 번의 투표로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콘클라베는 계속된다. 그동안 외부 세계와는 접촉이 일절 차단되고, 촬영이나 녹음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며 선거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교황청 고문서실(古文書室)에 보관된다. 새 교황이 선출되는 동안 베드로 광장에서는 로마시민들이 기쁨의 흰 연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투표용지를 태운 연기에서 교황선거의 결과가 알려지게 되어 있다. 검은 연기이면 미결이라는 뜻이고, 흰 연기이면 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뜻이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교황직을 수락하면 그 즉시로 그는 교황이 된다. 이어 새 교황의 이름이 발표되고 추기경들의 순명선서가 있은 후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로마시와 전 세계를 향한 교황의 첫 강복이 내려진다.
◆교황주일◆
교황을 위해 특별히 정해놓은 주일. 한국 교회에서는 1930년경부터 베드로 · 바오로 대축일 (6월 29일) 다음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냈다. 이날 미사 때에는 교황에 대한 강론과 교황을 위한 특별헌금이 실시된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어부의 반지◆
공식문서에 서명, 날인하는데 사용되는 교황의 반지. 교황의 반지를 ‘어부의 반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도들의 지도자, 즉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다. 즉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으며, 예수께서 그를 제자로 삼으실 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마르 1:17, 루가 5:11)고 하셨던 것이다. 결국 교황의 ‘어부의 반지’는 금으로 만들며, 고기를 들고 있는 베드로상(像)과 교황명이 새겨져 있다. 교황으로 선출될 때 인도되고, 교황이 선종하게 되면 교황청 회계원장에 의해 교황의 유해와 함께 매장된다. (⇒) 교황인감
출처 : [가톨릭대사전]
◆무류지권◆
무류지권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법률적인 권한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교회가 신앙진리를 믿음에 있어서나 가르침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용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와 교도권의 무류성’이다. (⇒) 무류성
출처 : [가톨릭대사전]
◆전대사◆
죄에 대한 유한(有限)한 벌을 모두 취소할 수 있는 사면. 신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언제 전대사를 받을지, 혹은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신만이 인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전대사를 주거나, 주지 않는다. 전대사를 받기 위한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이 주어지는데, 내적 조건은 “소죄(小罪)를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고, 외적 조건은 고해성사, 성체배령, 교황이 지시한 기도 등 3가지다.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고, 만일 어느 하나라도 불충분하다면 한대사(限大赦)밖에 받을 수 없다. 전대사는 하루에 한 번만 주어진다. (⇒) 대사 출처 : [가톨릭대사전]
◆교황 미사◆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에 평화를 주었을 때 교황은 대사제 기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교황들은 아비뇽으로 유배를 갈 때까지 로마의 바실리카에서 전례를 거행하였다.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온 뒤에는 개인 경당을 사용하였다. 그 후 교황이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틴 경당을 지었다. 1870년 로마 점령 때부터 1929년 종교 협약에 서명할 때까지 교황은 장엄한 전례 행사를 거행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1870년 이전의 교황 대미사는 적어도 세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에는 교황 미사를 위한 공식적인 전례서가 없다. 교황 예식이 모두 개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황의 공적 미사는 회중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성가를 곁들인 현행 전례를 더욱 염두에 두고 있다. 교황에게만 유보된 전례복들은 개두포 위에 입는 파논, 풍부한 흰색 스커트인 팔다, 수대에 연결된 거들이다. 교황은 맨 위에 십자가가 붙어 있는 지팡이인 막대기(ferula)를 들고 다닌다. 교황 전례에 고유한 예식들은 희년 때 성문을 열고 닫음, 공의회 개회와 폐회, 시성, 추기경 임명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양 형상을 담은 밀랍 메달, 금장미, 대주교들을 위한 팔리움 축복이다.
출처 : [전례사전]
◆삼중관, 교황◆
값진 보석으로 장식되었으며 전에는 교황의 머리에 쓰던 삼중관 또는 긴 정복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교황 삼중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었다.
(1) 세 개의 교회, 곧 투쟁 교회, 정화 교회, 승리 교회를 가리킨다.
(2) 교황의 보편 주교직, 교황의 최고 관할권, 세상에서의 영향력을 가리킨다.
(3) 교황의 통치권, 교도권, 성화권을 가리킨다.
교황 삼중관은 전례가 아닌 의식에서만 사용되며 전례 행사 때에는 주교관이 사용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삼중관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삼중관이 사용되지 않는다. 교황 즉위식(敎皇 卽位式 Coronation of a Pope) 참조.
출처 : [전례사전]
◆교계 제도◆ 교황의 수위권성품 성사
1. 설립과 후계 : 교계란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가르치고 성화하고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자들의 집단이다. 이는 주교, 사제, 부제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심으로써, 교회를 질서 있는 조직으로 설립하셨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후계자가 아니라, 그분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다(마태 28,18-20; 요한 20,21-22).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종말까지 계속할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들에게 사목 권한을 주셨기에, 이 권한은 당연히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어야 한다(교회 헌장 18항 참조).
따라서 교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권한은 사도들로부터 주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사도 8,14; 1디모 4,14). 사도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도하였고(사도 9,22), 안수로써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목 권한을 후계자에게 전하여 공동체를 지도하게 하였다(사도 20,28). 이때 이들의 명칭은 감독 또는 장로였으며, 오늘날 주교, 사제, 부제로 불리기까지는 수세기 발전 과정을 거쳤다.
2. 교계의 명칭
가) 주교(主敎, Bishop)
1) 교황(敎皇, Pope, Holy Father)
2) 추기경(樞機卿, Cardinal)
3) 총대주교(總大主敎, Patriarch)
a) 상주(常住) 총대주교(Residential P.)
b) 명의(名義) 총대주교(Titular P.)
4) 대주교(大主敎, Archbishop)
a) 상주(常住) 대주교(R. A.)
- 수도(首都) 대주교(Metropolitan A.)
- 일반(一般) 대주교(Non M. A)
b) 명의(名義) 대주교(T. A.)
c) 교황 대사(大使, Nuntio, Pro Nuntio)
교황 공사(公使, Internuntio)
교황 사절(使節, Apostolic Delegate)
5) 주교(主敎, Bishop)
a) 상주(常住) 주교(Residential B.)
b) 명의(名義) 주교(Titular B.)
c) 대목구장(代牧, Vicar Apostolic)
부주교(副主敎, Coadjutor)
보좌 주교(補佐主敎, Auxiliary B.)
나) 사제(司祭, Priest)
1) 지목구장(知牧區長, Apostolic Prefect)
2) 지구장(地區長, Rural Dean)
3) 본당 주임 신부(主任神父, Parish Priest)
4) 보좌 신부(補佐神父, Curate)
다) 부제(副祭, Deacon)
3. 행정 구역(行政區域)의 명칭
가) 정식 교구
1) 총대주교구(Patriarchate) - 교구장 총대주교
2) 대주교구(Archdiocese) - 교구장 대주교
a) 관구(管區, Province) - 관구장 대주교
관구 관하 교구(管區管下敎區, Suffragan)
b) 단독 대교구
3) 주교구(Diocese) - 교구장 주교(敎區長主敎)
a) 교구 내 지구(Vicariate Forane) - 지구장 신부(地區長神父, Dean)
b) 교회구(本堂, Parish) - 주임 신부(Pastor)
4) 교황청 직속 교구
나) 특례 또는 임시 교구(臨時敎區)
1) 면속(免屬) 고위 성직자구(高位聖職者區)
2) 면속(免屬) 대수도원장구(大修道院長區)
3) 교황청 임명 관리장구(管理長區)
4) 대목구(代牧區)
5) 지목구(知牧區)
6) 자치 선교 지구(自治宣敎地區)
4. 사목 권한 : 교황의 사목 권한은 신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교회 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이는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오는 것으로, 위임된 것이 아니라 고유의 것이다. 그리고 주교들은 해당 교구 내에서는 이 권한을 갖는다(1고린 7,17; 요한 20,21; 교회 헌장 18항).
출처 : [용어사전]
◆교황기◆
교황 삼층관은 맨 꼭대기에 십자가를 정점으로 하여 세 개의 층을 이룬다. 38㎝ 정도 높이의 원형이다. 이는 교황의 세 가지 권위, 즉 교도권, 사제권, 사목권을 나타낸다.
교황기는 바티칸 시국의 국기이다. 흰색, 황색이 세로로 똑같이 나뉘어 있으며, 중앙 하얀색 부분에 교황 삼층관과 십자가, 열쇠 등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어로 바티칸 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이라고 적혀 있다.
출처 : [용어사전]
◆면죄부의 진상◆
1. 면죄부 : 면죄부는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자에게 죄를 면하여 주었다는 뜻으로, 소위 교황청이 발행했던 증서라고 한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라틴어 인둘젠시아(Indulgentia : 은사, 관용, 후한 베풂)에서 비롯되었으며, 교회에서는 대사(大赦)라고 한다.
2. 진상 : 1507년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온 세계에 모금을 시작하고, 대사를 받을 수 있는 일반 조건에다 헌금 조항을 덧붙였다. 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때 독일 지방에서는 알베르토 대주교가 대사를 받기 위한 교서를 발표하였다.
1) 범한 죄를 참회한 후, 고해 성사를 받아야 한다. 2) 지정된 성당을 순례하고 그때마다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묵상하며, 주모경을 5번 하거나 시편 50편을 외운다. 3) 대성전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천국은 부자나 빈자가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공개되었기에, 빈자들은 헌금 대신 기도나 단식으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1, 2항을 실천하겠다는 조건하에서 먼저 헌금하는 이에게는 헌금 수령증을 써 주었다. 그런데 이 증서를 가진 자는 어느 지역에서든지 고해 신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당시 사제들에게 부여된 사죄권은 관할 구역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모금에 몰두하다 보니 문제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헌금 증서가 허무 맹랑하게도 소위 면죄부가 되었다는 데에 있다.
◆베드로와 바오로◆
1. 베드로 : 베드로는 갈릴래아 어부 요나의 아들로 태어나, 동생 안드레아와 어업에 종사하던 중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본명은 히브리어로 시몬이었으나 예수께서 게파(아람어 Kepa, 베드로)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여기 베드로의 뜻은 바위(盤石)를 의미한다(요한 1,42; 마태 16,18).그리스도 승천 후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지도적인 중심 인물이 되어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64년 네로 황제의 폭정하에서 순교하였다.
2. 바오로 : 바오로는 예수님의 직제자는 아니나, 초기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이방인의 전도사였다. 그는 칠리치아 타르소에서 유다인으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리사이파였다. 그의 유다인 이름은 사울(Saul)이었으며,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박해자였다.
그러나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인 개종을 하였다(사도 22,10).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개시하면서 보다 친근감을 갖도록 자신을 바오로 사도라고 스스로 불렀다.
그의 생애와 사상은 서간(27권 중 13권)과 사도 행전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예수 승천 후 3회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하였고, 67년경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독신으로 살았으며, 베드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초대 교회의 사도였다.
출처 : [용어사전]
◆대림절◆
1. 의의와 유래 : 대림절은 구세주 탄생을 기리고, 세말의 심판을 위한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로 성탄 전 4주간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다림의 기쁨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대림절은 교회와 신자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준비하는 시기이다(마태 3,3; 24,30).
오늘날 대림의 참회적 성격이 비록 교회의 전통적 의식에 다소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겸손한 참회의 정신과 회개로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겠다.
대림절은 6세기 중엽 스페인 교회에서 5주일 지낸 일이 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590~604년)에 의해 최초로 대림절 설교가 시작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투르의 주교 페르페투오(490년)에 의해 성 마르티노 축일(11월 11일)로부터 성탄 전까지 매주 3일씩을 축일로 정하여 지냈었다. 그러나 명칭은 대림절이 아니라 ‘성 마르티노 40일’이었다.
그리고 대림절을 속죄의 때로 지키게 된 것은 이 축일이 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부터였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속죄의 성격보다 성탄 준비를 위한 축제로 지내도록 하였다. 따라서 대림 시기는 기쁜 축제였고, 그 후 13세기부터 교회도 정식으로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2. 대림절과 신자 생활 : 대림절의 첫 주일은 교회력의 시작이다. 전례복의 색은 보라색이며, 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와 요한 세례자의 경고를 낭독한다. 특히 대림초를 켜 놓는데 싱싱한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한다. 사철나무는 우리에게 내려질 싱싱한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초는 구약의 4천 년을 의미한다.
교회는 대림절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기는 교회력에서 주님의 공현과 연결된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사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영원한 영광과 보상을 교회 안에서 미리 맛보도록 당신의 신비체 안에 우리를 결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때 모든 신자들을 끌어들여 최후의 승리자로 종말에 영광스럽게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영신적 준비를 시킨다. 우리는 대림절 동안 기쁨이며 위안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 안에 기다려야 하겠다.
출처 : [용어사전]
◆성전◆ 경당성당
1. 의의 : 성당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지정된 거룩한 건물이다. 이곳은 신자들이 미사나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며,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거처하는 장소이다. 넓은 의미에서 성당은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모든 건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대성전, 경당, 사설 예배실 등도 성당에 해당한다.
2. 성전 :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훼 하느님을 섬기던 신전, 즉 시나고가(Synagoga)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대궐, 혹은 하느님의 집을 말한다. 당시의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뿐이었다. 오늘날 대성전(大聖殿)은 교황에 의해 특전이 부여되어 있으며, 역사, 예술,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성이 인정되는 성당이다.
이중에 상급 대성전은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대와 성년에만 열리는 성문이 있다. 예를 들어 라테라노 대성전, 베드로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四大 Basilica)이 그것이다.
그리고 하급 대성전은 휘장, 종, 성가대 특별 복장의 사용 등이 특전으로 부여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성전은 예루살렘의 성십자가 대성전, 카타콤바의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 트란스테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 12사도 대성전, 빈콜리 성 베드로 대성전,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 등이 있다.
3. 대성당 : 이는 주교좌(主敎座) 성당으로 주교의 교좌(敎座)를 고정적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이는 주교의 직위에 따라 총대주교좌, 수석 대주교좌, 대주교좌, 주교좌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준주교좌(準主敎座) 성당에는 준교구, 자치 수도원구, 대목구, 지목구좌 성당이 있다. 그리고 본당에는 성당(聖堂), 공소(公所), 수도원이나 신학교의 경당(經堂)이 있다.
◆제의색◆
1. 백색 : 제의 색깔은 13세기 초 교황 인노첸시오 3세 때, 오색을 공식적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비오 9세는 오늘날과 같은 제의색을 규정하였다. 백색(白色)은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다”(묵시 3,4)에서와 같이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따라서 부활, 성탄, 천사, 성모, 순교 성인 외의 성인 축일에 입는다.
2. 홍색, 녹색 : 홍색(紅色)은 피와 열과 사랑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령 강림, 사도, 순교자 축일에 입는다. 또한 녹색(綠色)은 생명의 희열과 희망 그리고 영생을 상징한다. 따라서 연중 주일에 입는다.
3. 자색, 흑색 : 자색(紫色)은 참회와 보속을 의미하므로 대림, 사순 시기에 입는다. 그리고 흑색(黑色)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장례, 위령 미사, 위령의 날 등에 입는다. 그러나 오늘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에 백색을 입는 경향이 많아졌다.
4. 기타 : 장미색과 금색은 사순 제4주일, 대림 제3주일에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엄격한 보속 중에 부활과 성탄의 서광을 앞둔 중간에, 휴식과 기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색은 미사의 성대성을 의미하고 미사 중 백색, 홍색, 녹색 등을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의 여러 가지 색을 따로 갖추지 못했을 때는 백색으로 대신할 수 있다.
출처 : [용어사전]
◆십자가◆
십자가는 구원과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상징이다. 원래 십자가는 이집트 와 고대 동방에서 사형에 처하던 도구(형틀)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죽음 후,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구원의 승리’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의 형태는 라틴, 그리스, 켈트(아일랜드 묘지), 교황, 총대주교, 티형, 안드레아 십자가 등이 있다. 그중 안드레아 십자가는 X자인데, 이유는 X자에 달려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십자가에는 그리스도께서 달려 있으며, 그분의 몸에는 오상(五傷 : 다섯 상처)이 있다. 그래서 가톨릭의 십자가를 십자 고상(十字苦像)이라고 한다. 신자들은 이 십자 고상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모시고, 바라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과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십자 고상 위 부분에 “I.N.R.I.(=J.N.R.J.)”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이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Jesus, Nazarenus, Rex, Judaeorum)”라는 말의 첫 글자만 딴 것이다(요한 19,19-22; 마태 27,37). 본시오 빌라도가 이 글을 판에 써서 박도록 하였다. 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각각 쓰여졌다.
출처 : [용어사전]
◆알로꾸시오◆
이는 라틴어로 ‘연설’ ‘훈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레지오 마리애 회합 시 지도 신부가 단원들에게 하는 훈화(訓話)를 말한다. 그런데 교황이 추기경 회의에서 하는 장엄 연설도 알로꾸시오라고 한다.
출처 : [용어사전]
◆교황 문장◆
십자로 교차된 열쇠의 도형.
교황관을 가운데 두고 금열쇠와 은열쇠가 교차된 모습으로 바티칸 시국의 국기인 교황기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열쇠는 (하늘과 땅에서) 죄(와의 유대)를 묶고 푸는 교황의 권능을 상징한다. 열쇠 문양은 베드로가 예수에게 받은 천국의 열쇠에서 유래했으며 교회의 표상으로 사용되어 왔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