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김춘식 교수님을 모시고 1박 2일 춘천과 홍천으로 엠티를 다녀왔다. 강의실에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던 학우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봄이 주는 화사함을 나누고 우리가 배우는 시와 소설등 문학이야기를 나누는등 수업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글을 쓰는 작가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지만, 다녀오게 되면 늘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번 엠티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봄봄 동백꽃 솥을 쓴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왔다. 그동안 춘천을 여러번 다녀왔지만 작가 김유정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 김유정은 33세 라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너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어린시절은 부유한 집안 환경에 약 6세에 서울로 유학 유모와 함께 생활 하며공부를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망은 그를 하고 안온 했던 사망의 추얙으로 말을 더듬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김유정은 연희 전문학교에 입해 했지만 결석이 잦아 결국 재적 당했다. 후에 귀향 하여 고향인 춘천에 금병 의숙학교를 세워 야학을 통해 농촌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글쓰기에 전념하여 잡지 제일선에 산골 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뱐표 한다. 이어서 소내비가 조선중앙일보에 입선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활동을 이어 갔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에 시달리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동창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 전 3.18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생전의 김유정은 음악과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찰리 채플린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작가 김유정을 낳고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소설들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쓰여 졌다고 한다. 이번 엠티를 통해서 작가란 어떤 글을 쓸것이며 어떻게 독자들의 가슴에 미세하지만 가슴 뭉클한 이미지를 남길것인지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투병중 통등으로 앉아 있지도 못한 상황에서도 글 쓰기를 쉬지 않았다. 이는 글에 대한 열망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작품속에 투영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혼신의 힘으로 마지막 눈을 감은 순간까지도 글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