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왈덴스인들의 생활
1). 왈덴스인들의 출현
하나님의 눈에 사랑스럽던 광야의 교회 , 하나님의 참 교회였던 왈덴스인들은 교황권의 거짓 교리와 오류와 미신의 가르침들을 저항하고 성경의 진리와 교리에 기초된 참된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하여 초래되는 박해를 피해 궁벽하고 험한 산골짜기에서 그들의 삶을 시작하였다. 이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교황권의 박해를 피해 참 신앙을 지키려고 함께 모여 살게 되었다. 이렇게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안락한 집과 생계수단과 안일한 삶을 버리고 험한 산골짜기로 피신하여 살던 사람들을 왈덴스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신실한 사람들이 역사에서 가지게 된 왈도파 , 혹은 왈덴스 인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 에게서 유래한다. 왈도는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전도하였다. 그는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는 복음대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고 그들을 성직자에게 데려오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서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 먼저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복종할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 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여겨졌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들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챤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는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으므로 왈도파는 그 정부하에서는 어디에서고 안전을 기약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였던 이 왈덴스인들은, 예언에 기록된 것처럼, 로마 교황권이 진리를 땅에 내어 던지고 (단 7장 참조), 또 사람이 만든 유전과 관습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높이며, 또 하나님의 계명을 변조하고 하나님의 법을 짓밟는 것을 보고, 성경과 맞지 않는 로마 교황권의 교리와 신조에 동의 하지 않기로 하여, 힘을 다하여 그들의 선조들이 물려주었던 신앙을 지키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고수하며 교황권에 저항하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진리를 위하여 안일하고 평화로웠던 삶을 포기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2).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삶
그들이 삶의 정착지로 선택한 알프스 산의 첩첩이 싸인 산악들의 높은 성채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박해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왈덴스인들은 거기서 은신처를 얻었다. 이곳에서 중세기의 암흑을 뚫고 진리의 횃불이 계속하여 타올랐다. 이곳에서 천여 년 동안 진리의 증인들은 옛날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지켜왔다. 비록 궁색하고 불편한 삶이었지만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산과 골짜기들은 그들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었다. 그 신실한 유랑인들에게는 산들이 여호와의 변하지 않는 의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산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궁벽한 산중에 외로이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핍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때때로 원수들의 추격을 받았지만 험준한 그 산들이 견고한 산성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절벽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로마의 군대들은 그들의 감사의 찬미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왈덴스인들은 험한 땅을 개간하고 열심히 일하여 수확을 얻어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왈덴스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세속적 번영과 유익을 다 버리고 어려운 산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꾸준한 인내로써 그들의 양식을 얻기 위해 수고하였다.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경작할 만한 토지를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잘 개간하였으므로 드디어 골짜기와 언덕의 사면(斜面)들은 많은 수확을 내는 농토로 변했다.
그들은 진리의 원칙을 집이나 토지나 친구나 친척이나, 심지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원칙들을 그들의 자녀들과 청년들의 마음에 철저히 새겨 주기 위하여 열성을 다하였다.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의 명령을 신성하게 여기도록 교육을 받았다. 성경의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던 왈덴스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교황권의 타락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박해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신앙적인 타협을 하여 그 분명한 원칙을 차츰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에 굳게 서서 암흑과 배교의 전기간을 통하여 로마교황권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상(聖像) 숭배를 우상 숭배로 보고 거부하며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가장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였다.
3). 왈덴스인들의 교육의 좋은 모본
왈덴스인 부모들은 인정 있고 자애로우면서도 매우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함으로 그들이 방종의 나쁜 버릇을 가지지 않게 하였다. 그들의 앞길에는 시련과 고난, 심지어는 순교자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었다. 왈덴스인들이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환난을 견디고, 통제에 복종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과 말을 삼가는 것과 침묵의 지혜를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한마디의 경솔한 말이라도 그들을 찾는 로마 군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그 말을 한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의 생명 또한 위험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진리의 적들이 마치 이리가 먹이를 사냥하듯이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소와 엄격한 극기의 정신은 그 자녀들에게 유일한 유산으로써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 사는 생애의 소중한 유산을 배웠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훈련시키려는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그들의 궁핍은 모두 각 개인들의 수고와 생각과 주의와 신앙으로만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의 생애는 실로 수고스럽고 고달픈 것이었지만, 그들의 삶은 건전하고 성실한 삶이었다. 젊은이들은 수고와 고난에 단련되어 있었으나 정신과 지능의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더욱 발달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4). 왈덴스인들의 교회
왈덴스인들의 모든 교회는 순결하고 단순한 점에서 사도 시대의 교회와 비슷하였다. 그들은 교황권과 주교들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경만이 가장 높고 틀림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믿었다. 왈덴스인 목사들은 거만한 로마천주교의 사제들과는 달리,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양떼들을 섬기신 주님의 모본을 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떼를 푸른 풀밭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샘터로 인도하여 먹였다. 왈덴스인들은 인간의 허영과 화려한 교만을 나타내는 거대한 교회당이나 굉장한 수도원 대신에 멀리 뻗은 산줄기의 기슭에나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에 모였으며, 위험이 있을 때는 큰 바위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종들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목사들은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병자를 위문하고, 아이들에게 문답식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잘못하는 자를 견책하고, 다툼을 해결하여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화합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들은 평화로운 때에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는 천막을 만들던 바울처럼 자기의 생계를 자기가 유지할 수 있도록 장사나 그 밖의 어떤 직업을 배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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