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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K는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원래 교복과 비디오테이프, 스마트자전거 등과 함께 정유회사 유공을 경영하는 기업이었으며, 현재는 한국의 최대 석유기업인 SK이노베이션, 한국의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을 보유한 재벌로 부상했다.
2022년부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산업의 강세에 힘입어 기존의 재계서열 2위였던 현대자동차그룹을 누르고 재계서열 2위의 그룹으로 부상하였다.
2. 특징
현재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은 이동통신과 정유 사업에서 각각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동통신 사업이나 정유나 사실상 과점 시장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들의 시장 지배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룹의 양대 축인 석유와 이동통신산업이 그 특성상 현금이 꾸준히, 매출에 비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과 비교했을 때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현금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과 석유는 필수 소비재이므로 매달 현금이 수천억원씩 안정적으로 들어온다. 물론 석유는 국제유가와 환율, 국내외 경기 상황에서 비롯되는 수요-공급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에 한여름 가뭄 같은 불경기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통신 분야 회사들은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정되어 외인 주식 보유량에 제한이 걸려 있고, 통신설비만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주파수만 잘 낙찰 받아서 통신망만 잘 유지하면 매달 수천억 원 단위의 현금을 뽑아내는 등 충분히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빵빵한 캐시카우 사업 덕분에 SK텔레콤이 지주회사 SK의 지원없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이다.
그리고 인수 이후 SK하이닉스는 최태원의 결정으로 인해 수십조 단위의 투자를 받은 데다, 경쟁업체였던 일본의 엘피다 메모리가 파산하면서 공급자 중심으로 바뀐 반도체 업계 호황을 맞은 덕분에 실적과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여기에 힘입어 SK텔레콤 또한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로서 주가가 올라갔다. 네이트나 싸이월드, 네이트온 등 SK의 인터넷 사업부문(SK커뮤니케이션즈)이 거대한 자금력에도 침몰했던 것도 SK텔레콤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너무 크다보니 SK텔레콤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컸던 이들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있을 지경이다.
이러한 위의 결과물들로 현재 SK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망하기 힘든 포트폴리오를 형성한 대기업이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은 이동통신부문과 정유부문에서 업계 1위 자리를 유지 중이며 안정적인 현금창출을 바탕으로 SK는 ICT사업과 2차전지라는 미래지향적 사업에 개발 및 투자를 진행 중이다. 또한, SK텔레콤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인수한 SK하이닉스를 메모리 반도체 부분 매출 세계 2위의 회사로 성장시키는 등 현재와 미래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기반으로 한 국내 최대의 멤버십 마일리지 프로그램인 OK캐쉬백을 운영 중이며, 하나금융지주와 합작하여 하나SK카드를 설립, 신용카드 사업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2014년 외환은행 카드부문을 분리된 외환카드와 합병하여 하나카드가 된 상태이며 하나카드에 25%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선경은 교복과 자전거, 그리고 그랜드 워커힐 서울을 인수한 기업으로, 1980년대는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로 유명했다. 그 밖에도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SKC 플로피 디스크 사업을 하던 적이 있다. 더불어 영화광들이라면 기억하실 영상사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SKC를 통해 비디오 사업을 하면서 미도영화사와 제휴한 바 있으며,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 및 MGM/UA 영화들을 비디오로 정식 발매했던 역사도 있다.
또한 70년대 ~ 80년대 사람들에게 선경에 대해 꽤 괜찮은 호감을 가지게 만든 것 중 하나가 MBC의 학생대상 장수 프로그램 장학퀴즈의 스폰서를 오래도록 했던 것도 있다. 중국에서도 '좡위안방(壮元榜)'이라는 이름의 중국판 장학퀴즈를 장기간 후원하면서 중국에서의 네임벨류도 상당하다.
취업시 학벌을 가장 많이 보는 회사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바이킹 전형같은 특별 전형도 있고 정식 공채에서도 원서 평가시 학벌 배제 및 블라인드 면접 실시로 출신 성분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기존에 SK가 영위하던 주요 사업이 정유와 통신사인데, 이 두 사업은 대우는 좋지만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산업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소수 인원들만 뽑아서 이러한 인식이 커진 것. SK 메인 계열사라지만 SK온이나 SK하이닉스 같이 배터리, 반도체 산업군에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보니 학벌도 다양한 편이다.
상술했듯 정유와 이동통신 산업의 메이저인지라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내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었다. 하지만 사실 정유산업부터가 엄연한 주력 수출산업이고 2000년대 들어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이는 잘못된 인식이 되었다. 이후 대표적인 반도체 수출기업인 SK하이닉스가 빠르게 성장해 그룹의 중추 중 하나로 발돋움함에 따라, 2020년대 기준 이러한 인식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역사
1953년 담연 최종건 창업주가 귀속재산 '선경직물'을 귀속재산 불하받은 게 그룹의 시초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옷까지 만들어 파는게 아니라 SK는 원래 직물회사로 시작했다. 1966년 해외통상을 인수한 후 일본 테이진 사와 합작해 '선경화섬'을 세워 아세테이트 생산을 시작했고, 1969년 선경합섬도 세워 종합 섬유사업군을 형성했다.
1973년 최종건이 사망하면서 동생 최종현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내세우며 컨트롤타워 조직 '기획실'을 발족한 뒤, 1979년 고유 경영관리체계 'SKMS(Sunkyoung Management System)'를 정립해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주력 업종을 에너지/화학 분야로 바꾸었고, 1985년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조직해 정보통신 사업 준비에도 주력한 후 1989년 'SUPEX 추구법'을 도입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SKC가 주력 계열사 중 하나였기에 대중들에게 공테이프 등 기록매체 메이커로 유명했다. 요즘도 SK가 예전에는 테이프 만들던 회사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지만 실제로 1980~90년대 카세트, 비디오 테이프를 만드는 회사 중 1위 기업이었다. 테이프 만들던 회사라고 아주 우습게 볼게 아니라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시대에는 전파로 수신되는 라디오, TV 방송을 제외하면 전부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로 음악과 영상을 감상하던 시기였다. 특히 비디오 보급이 활성화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비디오 가게가 편의점만큼 많았고, 각 가정에는 음악용, 영화용 테이프가 수십개 내지 수백개씩 있던 시절이었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려 계산대 바로 아래 진열되던 상품이 공테이프였다.
SKC는 워너 브라더스 영화를 주로 비디오로 배급했으며 서륭프로덕션과 미도영화사 등과 제휴를 하는가 하면,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등 영화 제작에도 관여했다. SK 공테이프는 TV 광고로도 자주 나왔는데, 특히 장학퀴즈 방영 시간 전에 꼭 SKC 테이프 광고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테이프 회사인 만큼 영화 테이프를 틀면 본편이 나오기 전 광고로 꼭 SK 광고가 나왔다. 이렇게 SK는 1980~90년대에 대중들에게 매우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다. 테이프 만들던 회사라고 아주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닌게 당시 테이프 제조도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첨언하자면 SK 테이프는 당시 테이프 시장에서 점유율 1위였을 뿐만아니라 프리미엄 고가 테이프는 죄다 SK 제품이었다. 당시 '크롬' 시리즈라고 해서 테이프에 크롬을 입혔다 해서 다른 공테이프보다 몇 백원이나 비쌌지만 잘 팔렸다. 게다가 90년대부터 가정용 PC가 보급되자 필수 저장매체인 플로피 디스크 제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플로피 디스크 역시 SK제품이 타사보다 비싼 편이었다.
1988년 최종현의 장남 최태원이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과의 결혼하면서 정경유착 우려가 뜨기도 했다. 일단 본인들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시작하여 5년간에 걸친 자유연애결혼이라고는 밝혔지만 본인들의 연애사와 무관하게 뒷배경이 뒷배경이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말들이 나왔다. 특히 1992년 대한텔레콤을 통해 쌍용, 동부, 동양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할 당시 정경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는데, 결국 여론에 밀려서인지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의 권유로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도로 반납했다.
하지만 포기를 못했는지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사세를 더욱 키워간다. 이후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라이코스코리아, 싸이월드, 이글루스, 엠파스 등의 IT업체들, SK텔레콤을 통해 신세기통신, 하나로텔레콤 등 통신업체들, SK에너지를 통해 인천정유 등 각종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과 함께 단숨에 대한민국 4대 재벌로 급부상하게 된다. 1998년 SK 현 명칭으로 바꾼 후 1999년에는 을지로입구에 있던 지상 13층짜리 사옥을 헐고 종각역 인근 종로구 서린동 사옥으로 그룹 본사를 이전하였다. 2003년 구조조정본부를 없앤 후 2013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런 점을 보면 SK그룹의 주요사업이 M&A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IT 계열, 특히 인터넷 사업 인수합병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정말로 규모가 큰 인수합병은 승부사적 기질과 다방면의 노력으로 성공시킨 게 SK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게 2010년대 SK하이닉스 인수합병 건으로 2020년대까지 진행된 그룹 내 인수합병에서 가장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2022년 SK는 16년만에 재계 서열 3위에서 2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 2위를 지켜온 현대를 꺾고 2위에 오른 것이라 더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SK하이닉스 인수와 반도체 시장에서의 성과였다.
그 외에도 SK그룹은 한국 경제사에 2번 큰 흔적을 남긴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사태.
일개 무역회사인 SK글로벌이 1조 5,000억이 넘는 금액을 장부에서 몰래 누락시켜 오다가 적발된 사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수법은 지극히 전형적이고 단순한데 수 십년 간 누적돼온 1조원 대의 외상 채무를 장부에서 누락시키고, 있지도 않은 가공자산을 계상하는 등 수법이 너무 간단해 감독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됐다면 충분히 적발해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코스피지수가 530선이 깨지는 등 여파가 상당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코스피를 뒤로 밀더니 뒤이어 일어난 사건으로 코스피를 다시 끌어당겼다.
외국 투자펀드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 위협.
소버린자산운용은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주)의 지분을 14.99%까지 확보하여 2대 주주로 등극한 후 SK경영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SK(주)의 투명경영으로 SK 오너인 최씨 일가와 현 경영진의 퇴진. 당시 최태원의 SK(주)지분은 1%가 채 안되는 상황이었고, 단일 외국인이 15% 이상 지분을 취득하여 최대 주주가 되면 SK(주)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SK(주)의 SK텔레콤 지분의 의결권이 반토막으로 제한되어 SK텔레콤의 경영권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팬택 등 백기사들이 도와줘 표대결에서 승리해 최태원의 경영권은 지켜냈으나, 경영권 분쟁 중 주가가 엄청나게 상승하여 소버린은 1,800억원에 매입했던 지분을 1조가 넘는 가격에 매각하여 매각 차익이 7,800억원에 달했다. 그것도 세금 한 푼 안내고(자본거래는 비과세). 한 마디로 대한민국 경제계가 외국펀드에 제대로 관광당한 호구 인증 사건. 이 사건 이후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져 대부분 재벌들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였다. 물론, 삼성이나 현대차처럼 완전히 순환고리를 해소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 자금문제로 유지하고 있는 그룹도 있다. 법적으로도 소급적용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고리가 생기거나 고리가 강화만 되지 않으면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4. 역대 임원
경영기획실장: 구 기획실장
최무현 (1973~1974)
강석웅 (1974~1978)
손길승 (1978~1998)
구조조정추진본부장
손길승 (1998)
유승렬 (1998~2000)
김창근 (2000~2003)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창근 (2013~2016)
조대식 (2017~2023)
최창원 (2023~ )
5. 비판 및 논란
5.1. 응시자 개인정보 유출
2021년 11월 SK그룹 채용 시험에 지원했던 응시자의 개인정보 1,600여 건이 외부로 유출됐었다.
5.2. 계열사 쪼개기 상장
카카오와 더불어 쪼개기 상장의 대명사 격으로 불린다. 인적분할 및 물적분할 이후 기업공개를 통해 섹터별 집중도를 높히며 자본을 조달하고 채권 및 차입 발행량을 늘리며 규모를 불리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뽑히며, 경영권 행사가 힘든 소액주주들에 막심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2020년대에만 SK스퀘어,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룹 내 계열사 대부분의 주가가 매우 심각한 편인데, 각종 자본 변동으로 인해 SK하이닉스 정도를 제외한다면 SK이노베이션,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사실상 거의 모든 SK 계열사의 주식은 장기 존속성이 실종된 편이다. 또한, 2023년 이차 전지 관련주 붐이 일어났을 때 유일하게 큰 상승이 오지 않은 관련주 종목들 중 하나가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다. 심지어 SK이노베이션의 주가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최태원 회장도 인지하고 있다.
6. CI
창립 이래 마름모꼴 로고를 많이 써왔는데, 1960~70년대 내내 사업 확장, 수출 증대가 점차 진행되면서 관계사별로 영자 사명 표기를 독자적으로 행한 탓에 혼란을 빚었다. 이에 따라 1975년 6월 3일부로 경영기획실은 선경직물의 'Sunkyong Limited' 등 영자명 통일안을 운영위원회에서 확정을 본 후, 상표, 제품포장, 표식물, 인쇄물 등에 쓰이는 서체를 일중체(한문), 환고딕(한글)으로 각각 하고 고유색상을 스카이 블루로 하여 종전의 마름모 마크에 영자체를 신규 서체로 했다.
또한 일부 계열사는 빨간색 원에 하얀색 3선에 SKI나 SKP라는 영문 로고를 넣은 개별 로고를 쓰기도 했다. 1988년 선경합섬에서 선경인더스트리로 사명을 변경했던 현재의 SK케미칼과 선경제약(현재의 SK케미칼 제약부)이 그러하였다.
1988년 2월부터 CIS(Coporate Identification System) 체계를 도입하여 그룹 심벌로고를 만들었는데, 해당 로고는 수평선과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반복된 수평선은 첨단과학기술, 떠오르는 태양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세계 일류기업으로서의 선경을 의미한다. 로고타입은 식별성 및 가독성을 고려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했고, 기업 이미지 통일을 위해 서체도 똑같이 만들었다.
1997년에는 선경에서 영문 약칭인 현재의 SK로 사명을 완전히 변경하였다. 앞서 2년 전인 1995년 럭키금성이 LG로 사명을 바꾼 영향을 받았는데 이후 현대와 대우 등 당대 재벌 그룹을 제외하고 LG와 SK가 영문 머리글자의 약칭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이 HD라는 영문 약칭의 사명을 쓰게 되었다.
2005년 10월 5일에 제정한 '행복날개' 로고는 통신위성, 연, 나비 등을 모티브로 비상하는 두 날개를 상징하며, 이 그룹의 양대 성장축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산업의 약진, 글로벌 시장을 향한 진취적 기상과 행복 추구 의지를 표상한다. 2020년 12월 21일, 기존 행복날개 로고는 유지하되 다양한 디자인, 색상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에서 개발한 새 디자인은 색상 10가지, 디자인 2가지를 추가한 형태다. 그와 동시에 행복날개의 의미를 SK DBL(Double Bottom Line) 경영의 양대축인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SK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재정의했다.
7. 슬로건
에너지와 정보통신의 선경그룹 (1997)
ok! SK (1998~ )
사람이 자원인 나라, 그 사람을 키우는 기업 SK (1998~2000)
8. 기업 정신
8.1. SKMS
8.1.1. 1979~2005
기업관
기업은 영구히 존속·발전해야 하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어느 기간 기여하여야 한다.
기업경영의 정의
기업의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게 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목표
상품의 질이 세계적으로 일류수준에 속하는 기업을 만드는 데 있다.
경영원칙
인간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
8.1.2. 2006~2016
기업관
기업은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영구히 존속·발전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고객, 구성원, 주주에 대한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경제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며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여야 한다.
추구가치
기업의 가치추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해와 행복이다.
경영원칙
인간위주의 경영을 통한 SUPEX 추구
8.1.3. 2016~
경영철학
구성원의 지속적 행복, VWBE를 통한 SUPEX 추구
구성원리
구성원 행복, VWBE 문화, SUPEX Company
8.2. 사회적 가치
모토
인간중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행복경영에 뿌리를 둔 사회적 가치 추구
방법론
DBL 추구를 통한 BM의 혁신, 기업 자산의 공유 인프라 전환,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 조성
8.3. 사가
선경 시절 - <선경의 노래>
1977년에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시인 조병화,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1절)새 역사 새 물결 파도치는 세계에 / 드높이 기를 세워 인류복지 앞장서
바다로 육지로 오대양 육대주로 / 우리는 선경가족 약진하는 새 일꾼
(후렴)아아~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거 / 선경은 창조의 기수 인류의 사랑
(2절)현실과 합리로 이념을 빛내고 / 창의와 성의로 몸과 마음 다하여
인류의 번영을 높여가는 그 이름 / 우리는 선경가족 슬기찬 새 일꾼
로고송 - <나는 SK>
아이유가 부르게 된 계기는 아이유의 소속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가 당시 SK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SK텔레콤 제휴 할인이 로엔의 음원서비스 멜론에서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다.
9. 그 밖의 이야기
9.1. 수원시와의 깊은 인연
SK그룹 오너 일가들이 모두 수원에서 태어났거나 자랐으며, 본관도 수원이다.(수성 최씨) 최종건 창업주, 최종현 선대회장, 최태원 회장,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등. SK그룹의 모태 계열사인 선경직물은 수원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수원시내 곳곳에 SK그룹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
과거 SK케미칼과 SKC 공장이 수원 정자동에 있었으며, SK케미칼 공장은 2009년에 아세테이트 설비를 울산으로 옮기면서 없어졌으나 SKC는 굳건히 공장과 중앙연구소를 운영하며 현재도 수원 정자동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선경도서관은 이름 그대로 SK에서 1991년에 도서관 부지를 기증, 1993년에 도서관을 착공하여 1995년도에 도서관을 완공, 수원시에 기부채납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도서관 정원에 최종건의 흉상이 있다.
또한 SK케미칼 구 공장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하였고, 공연장 수원SK아트리움 또한 단지 근처에 건립해 역시 수원시에 기부채납했다. 그리고 SK네트웍스의 본사는 서울이 아니라 수원에 있는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주유소를 주소지로 두고 있다. 원래는 권선구 평동에 있는 구 선경직물 공장 터를 본사 법인 주소지로 썼으나 수원시가 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본사를 영화동으로 옮긴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본사 기능을 하는 곳은 서울 을지로 사옥(SK네트웍스 서울지점)이 담당한다. 그러니까 영화동 주소는 서류상의 본사인 셈이다. 실제로 이 주소지에 가보면 주유소와 SK네트웍스 수원사옥이 있는데 수원사옥은 고객센터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SK네트웍스 회장을 맡고 있는 최신원은 2012년부터 18년까지 수원지역 경제단체인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았다.
공장이나 사옥 외에도 수원역 쪽, 평동에 SK건설이 2019년 수원 SK V1 모터스라는 중고차 매매 단지를 준공하여 수원시 내에서 SK 관련 주요 건물을 볼 수 있다. 해당 단지는 연면적 19만9431㎡로 잠실야구장 4배에 달하는 대형 단지이며, 특히 8753대의 실내 전시 공간을 갖춰 차량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 있다.
이외에도 선경합섬 기부채납 회관을 수원시에 기증하여 SK케미칼-수원시 지정기탁 협약으로 복지관으로 착공한 SK청솔노인복지관이 정자동에 위치해있으며, 도내에서 선경 또는 SK 이름을 단 SK건설의 아파트들이 제일 많았을 정도로 시내 곳곳에서 해당 아파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현재는 kt wiz가 홈으로 쓰고 있는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 SK의 흔적이 있는데 1989년 이 구장을 새로 개장했을 때 있었던 원래 전광판 설치비를 SK그룹이 선경 시절에 부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가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광판 하단 부분의 광고권을 SK에게 줬다.
원래는 수원 야구장을 SK가 홈구장으로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 유니콘스가 연고지를 인천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SK 야구단의 새 연고지는 자리가 빈 인천으로 결정됐다. 공교롭게도 SK 와이번스가 현대 유니콘스 대신 인천광역시에 터를 잡고, 서울특별시로 가겠다던 현대 유니콘스는 정작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면서 둥지를 튼 연고지가 하필 수원시였으며 그로 인해서 SK그룹이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수원 창단이 물건너 갔고 향후 라이벌 기업인 KT가 수원에 10번째 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수원 지역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수원상공회의소에도 SK그룹 고위 인사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역대 11명의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중에서 SK그룹과 연관된 인물이 무려 5명이다. SK 창업주 최종건이 6~8대 수원상의회장을 맡았고 최종건 사망 후에는 동생인 최종현이 8~12대 수원상의회장을 맡았다. 최종현 퇴임 이후에는 조종태 전 선경건설 부회장이 12~14대 수원상의 회장을 맡았는데 조종태는 선경그룹 창업 원년 멤버였기에 오너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21대와 22대 수원상의 회장은 최종건의 아들인 최신원이 맡았다. 이후 23대와 24대는 SKC 고문인 홍지호 회장이 맡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현재는 SK그룹에서 수원의 흔적을 지우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평이 중론. 이는 창업주 최종건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경영권이 최종건의 동생인 최종현 그리고 아들 최태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최종건의 장남인 최윤원과 최태원 사이의 불화가 있었기에, 소위 작은집의 아들이라 정통성에 약점을 가진 최태원이 SK그룹 초기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원시에서 박물관 전시를 목적으로 SK케미칼 공장 철거 시 방적기 기증을 요청하였으나 SK에서 거부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최근 일도 아니고, 제대로 확인 된 바도 아니지만,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를 SK에서 조건 하에 인수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최태원 회장의 발언, "수도권 공대 인수 원한다."에서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
9.2. 기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삼성그룹처럼 이전 사명인 선경을 로마자로 표기하려 했다. 그러나 선경의 로마자 표기가 Sunkyoung이 sunk: 가라앉다 + young: 젊다란 단어와 발음이 같아 젊은 시절부터 침몰한다라는 기절초풍할 네이밍 센스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1998년에 '선' 과 '경'의 맨 앞 철자만 따와 SK로 사명을 변경했다.
발음 그대로 읽어서 '스크' 또는 '슼', '솩'이라고 읽기도 한다. 이렇게 줄여읽는 경우는 본래 프로야구 커뮤니티에서 한/영 전환을 귀찮아 한 유저들이 발음 그대로 부른데서 유래하지만 현재는 기업, 스포츠 구단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매우 화가 나는 어떤 회사와 SK의 합작회사는 화나스크. 진화하면 '솩'이 된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은하수공원은 SK그룹에서 만든 것이다. SK그룹이 건설한 뒤 세종시에 기부하여 현재 세종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한다. 그래서 은하수공원 개장 초기에는 타 장묘시설의 70~80% 수준으로 비용이 책정되었다. 원래는 최종현 회장의 유언에 따라 서울에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SK그룹에서 화장장 사업을 하려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있어서 무산되었다. 물론 화장장은 공공재 특성이 강해졌다.
흔히 5대 대기업이라 불리는 삼성-현대-SK-LG-롯데에서 유일하게 오프라인 유통업 경험이 적다. 1980~90년대에는 SK유통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체인 '선경 COMPLAZA'와 SKC의 기록매체 매장 'SKC Plaza'가 있었고, 1999~2012년까지 SK네트웍스도 자사 주유소에서 부수적으로나마 편의점 'OK Mart'를 운영했었다.
10. 스포츠
프로 스포츠와는 악연이 많은 재벌로 악명이 자자하다.
SK증권 여자 농구단과 SK케미칼 배구단 해체. 두 팀 모두 외환 위기 와중에 해체했다. 특히 SK증권 여자 농구단의 경우 농구대잔치 우승 다음 날에 전격적으로 해체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청주 SK 나이츠와 부천 SK의 연고지 이전.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한뒤 갈 곳 없어진 선수들과 개별적으로 계약하며 현대 유니콘스가 떠난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삼아 SK 와이번스를 창단. 신규 창단이기 때문에 일단 옛 쌍방울의 연고지인 전주시나 전라북도와의 관계는 일절 없다고 봐도 되나, SK와 똑같은 형태로 창단한 키움 히어로즈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 신세계그룹에 매각되었다.
2004년 4U를 인수하여 SKT T1이라는 팀을 창단하나, 이후 2005년 KeSPA 회장직을 꿰찬 이후부터.... 자세한 내용은 KeSPA 문서 참조. 그래도 SKT T1 자체는 게임단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게임단이다. 지원 규모도 매우 커진 것은 덤.
하지만 핸드볼, 펜싱은 아낌없이 지원해서 두 종목 관계자들에게 SK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기업이다. 실제 SK가 핸드볼, 펜싱에 쏟은 성과가 대단한데, 핸드볼의 경우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이기도 하고, 올림픽 2체육관을 리모델링하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으로 개장하는가 하면,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 팀을 인수하여 SK 슈가글라이더즈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운영하고 있다. 펜싱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효자 종목으로 급부상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스포츠 쪽에도 지원 규모가 큰 걸로 알려져 있다. e스포츠 자체의 규모가 커진 것도 있고 본가 게임단이 최고의 명문 게임단 중 하나가 되었으며 최고의 스타가 발굴된 것도 있으니.(이로 인한 브랜드 가치 상승도 있었을 것이다.)
11. 후원
장학퀴즈
대한민국 펜싱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
대한민국 핸드볼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
12. 참고/관련 문헌
선경 삼십년사 (1983)
선경 사십년사 (1993)
SK 50년: 패기와 지성의 여정 (2006)
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SK60년사 - 1953~2013 (2013)
세상을 개척하는 힘, 패기: SK60년사 - 글로벌리제이션 (2013)
세상의 디딤돌이 되는 행복: SK60년사 - 행복나눔
13. 관련 링크
Devocean (데보션): SK그룹에서 운영하는 개발자 커뮤니티
SK-II: 일본에서 처음 출시된 화장품 상표. 미국 P&G의 제품이므로 SK와는 전혀 상관없다. 여기서 SK는 Secret Key의 줄임말이고 ll는 핵심 성분인 피테라의 분자 구성이 ll와 비슷하여 붙여졌다.
T-모바일: SK텔레콤의 브랜드가 죄다 T로 시작하다 보니 헷갈리기도 한다.
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사건
SKT - Swallow Knights Tales
SK Gaming
갈라타사라이 SK: 이쪽 또한 SK랑 무관하다. 참고로 갈라타사라이 SK의 응원가는 몬더그린 때문에 김건모송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가수 김건모와 무관하다.
SK/계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