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성경이 있으니!(눅16:19-31)
갈등
1. 사람들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다가 언젠가부터 사후 세계를 생각합니다. 젊어서는 혹 무시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부터 죽음에 대해서-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어제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선교에 크게 헌신하신 분이에요. 가문이 대대로-몇 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그리고 세계 최고-최대의 선교단체를 만들어 훈련시키고(하와이 코너에 훈련센터) 전도와 선교를 담당해왔습니다. 국내에는 예수전도단이란 선교단체 이름으로(YWAM), 포항에도 지부가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우리 교회와도 좋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요. 커닝햄 목사님의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그와 함께 했던 사진을 공개하며, 추억담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종교를 떠나서 사후 세계를 대체로 인정합니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말합니다. 지금은 사람으로 살지만, 다음 생애에서는 짐승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업을 잘 쌓으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내세에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도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2. 불교에서는 천국을 극락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사후 세계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예수님도 사후 세계 이야기를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사후 세계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있었어요. 한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최고 명품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즐겼습니다. 손님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은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매일 최고급 파티를 즐겼어요. 그는 마음껏 왕처럼 살다가 죽었어요. 세상 최고의 복을 누리며 살다가 죽었으니, 그는 천국에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가 죽어서 간 곳은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간 곳은 천국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며 신음하는 지옥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이 장차 죽는다면 천국에 갈까요? 아니면 지옥에 갈까요? 이 질문에 답변을 하기가 곤란하지만, 나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혹시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바라는데, 예수님은 생전과 사후의 삶이 완전히 바뀐 사람이 있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3. 부자와 더불어 또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너무 가난하여서 집도 없었어요. 먹을 음식도 없었어요. 몸은 병들어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연명을 했습니다. 이 가난한 거지는 지상에서는 누구보다 불행했는데,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고 합니다. 천국을 의미해요. 인생의 역전 드라마가 일어났음을 말씀합니다.
갈등 심화
4. 이 두 사람의 인생 역전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살았던 삶의 자리로 가보아야 합니다. 부자가 입었던 자색 옷은 당시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니었어요. 왕궁에서 입는 겉옷입니다. 중동지역 왕족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보면 화려한 색깔의 겉옷과 같습니다. 부자는 화려한 겉옷에 고운 베옷을 입었어요. 이것은 이집트 산 최고급 속옷입니다. 부자는 초고가의 명품 옷을 입고, 최고급 음식을 날마다 즐겼습니다. 부자의 삶은 사치를 즐기는 왕처럼 살았습니다.
부자는 이렇게 호의호식하면서도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거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이 거지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면서, 그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해주지 않았어요. 오직 자기 삶을 즐기고 만족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주인의 재물을 함부로 사용했던 청지기와 같이요.(16:1-13) 부자는 자신이 누리는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여겼습니다. 부자는 온갖 쾌락을 누리며 살다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5. 거지 나사로는 어땠습니까?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졌습니다. 헌데 투성이는 그의 상처가 밖으로 노출된 상태를 말합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어요.‘배불리려 한다’는 말은 부자가 남은 음식을 주어서 얻어먹고 산 것이 아니라, 쓰레기처럼 버린 음식을 먹고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나사로의 상처를 보고 개들이 와서 핥아주었어요. 부자가 개만도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이 아닌가요? 짐승들은 이렇게 해서 상처가 낫습니다. 짐승에게는 침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개는 이렇게라도 거지 나사로를 도왔는데, 부자는 조금도 돕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나사로의 삶은 너무나 초라했고, 사람들이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병든 몸으로 죽지 못해서 사는 하루하루였어요. 그의 삶은 짐승보다 못한 멸시와 천대를 받았어요. 부자와 나사로의 삶은 이렇게 대조적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두 사람 모두 인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둘 다 죽음의 강을 건너가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습니다. 두 사람의 장례식도 대조적이었습니다.
6. 부자에게는 조문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장례식도 최고 화려하게 치렀습니다. 나사로의 장례식은 없었고, 무연고자로 아무도 모르게 처리되었어요. 지상에서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인생을 살았던 이들이, 죽음 이후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어요. 이 어찌 된 일인가요? 거지였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평안하고 행복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만으로 본다면, 지상에서 부자였던 부자는 지옥에 갔고 가난한 거지였던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부자는 모두 지옥에 가고, 가난한 자는 모두 천국에 간다는 말일까요?
실마리
7. 이 문제를 풀려면,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말씀하신 배경을 보아야 합니다. 16:1-13에,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비유를 들은 것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그곳에 있었어요. 그들의 반응이 심상치 낳았어요. 14절,“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고 말았습니다.”그들은 돈을 좋아하였기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조롱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한 것은, 그들의 잘못된 성경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부는 하나님을 잘 섬겨서 주신 복으로 여겼어요. 사람들이 불행하게 사는 것은 반대로 그들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을 잘 알고 설교에 인기가 있었던 예수가 이것도 모른다고 비웃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바리새인들의 입장이 맞았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다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로 갑니다.
8. 부자는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증거언해줍니다. 24절,“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물을 한 컵이나 한 바가지도 아니고,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어요. 사후 세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입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구분되었고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서 여기로 오고자 해도 올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세는 지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됨을 말씀하십니다. 사후에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지옥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알았으면 지상에서 제대로 살았을 것을 후회했어요. 부자는 아직 살아 있는 형제들을 생각했어요. 그들은 적어도 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습니다. 27-28절,“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9. 예수님은 이 일도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죽은 사람이 가서 말하면 자기 형제들이 들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어요. 죽은 자가 가서 말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주님은 아직 살아 있는 너희 형제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모세 오경과 예언서들-곧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죽은 자가 가서 회개를 전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해하고 있듯이, 그는 자신의 부가 누구에로부터 왔는지 아는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누리는 부의 복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자신은 청지기로 살아야 했어요.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가 천국이 아니라 음부로 간 것은 합리적인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의 부자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0. 바리새인들은 부자와 같이 주인의 재물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청지기가 아니라 왕처럼 살았어요. 그들은 부자인 것이 자기들이 의로워서 된 것으로 착각했어요. 그러면서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건한 것처럼 나타내면서, 부자와 같이 가난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말았어요. 주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들의 속마음을 알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은 애써서 무시하고 비웃었습니다.
복음 제시
11. 나사로가 왜 거지가 되었고,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아야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사로를 향하여 하는 말을 보세요. 25절,“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나사로가 어떤 상황에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입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셨어요.
부자는 자기 욕망으로 살다가 지옥에 간 것이고, 나사로는 고난-처절한 인생 가운데도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주님이 말씀하신 잃어버린 사람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나사로는 육신의 죽음으로 그 힘겨웠던 고난의 삶이 끝났어요. 아브라함의 말처럼, 나사로는 이제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천국은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러라.”예수님이 바로 이 천국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기대
12.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육신의 죽음은 단지 천국으로 가는 통과의례일 뿐이에요. 천국을 내세로 미루지 말고 이 땅에서부터 누리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저기 공간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에 그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면, 우리가 오늘 본문의 부자와 바리새인들과 같이 왕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고, 화평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살아가요. 영 분별은 매우 쉽습니다. 신비 현상의 정도가 아니라 삶을 보면 알아요. 우리에게 있는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가치관을 갖고 살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