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이렇습니다.
"1347년, 프랑스 칼레시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됩니다.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라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다해야 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초했던 시민 여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서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실천한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본당에 교부금 제도도 없고, 헌금도 그리 많이 내지 않지만, 본당을 위해서 후원하는 부유한 사람들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 그 자녀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후원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서 가난 때문에 의료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정부에서 의식주에 대해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듣곤 합니다. "미국에서 살려면 아주 잘 살거나, 아주 많이 못살아야 한다." 중산층은 세금에 대한 의무는 많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혜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4달 동안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였습니다. 직원들도 몇 년 동안 임금 인상 없이 근무해 주었습니다. 신문사를 떠나면서 후원금을 내고 왔습니다. 제가 5년 동안 뉴욕에서 잘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자리를 마련해 준 신문사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후임 신부님이 신문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니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에서 벗어난 부유한 사람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믿고 종업원들에게 막말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의무인 입대를 피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하고 부정한 청탁을 받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런 부당하고 부정한 청탁의 결과로 우리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수사권과 공소권을 남용해서 이득을 챙기려는 일부 검사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사회적인 약자와 억울한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권력과 정치인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블레서 오블리주'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가 '노브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았다면 살아서도 행복했고, 죽어서도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부유할지라도, 가난할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은행이라는 곳간에 재물을 쌓듯이, 천국이라는 곳간에도 재물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