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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같은 사람 시원한 일보다는 가슴 답답한 일이 많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불만족해하고 그리고 삶에 지쳐 힘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중물처럼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어 살맛나게 하는 사람 말입니다. |
제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수도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펌프를 사용했습니다. 우물을 길러 다니던 때에 비하면 엄청난 문화 혜택이었고, 우물물을 긷던 고된 노역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던 문명의 산물이었습니다. 요즘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만큼 다양한 청량음료가 날개 돋치듯 팔리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청량음료보다 더 가슴속깊이 저릴 정도로 시원한 생수가 곧 펌프 물이었습니다. 에어컨이 없던 그 때는 펌프에 등을 대고 등물이라도 할라치면 어푸! 어푸! 하면서 숨이 막히도록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졌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따로 데운 물을 쓰지 않아도 손이 시리지 않을 만큼 따스한 물을 뱉어내던 마당 한켠에 서있는 펌프는 우리 집 재산 목록 1호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펌프에서 물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을 한 바가지 정도 붓고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옵니다. 펌프가 말라 있을 때는 아무리 펌프질을 해봐야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때 부어주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저 밑바닥 지하수를 마중 나가서 데려온다 하여 마중물이라 하였겠지만 다른 말로는 씨앗물 또는 종잣물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펌프질을 하는 것은 물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물을 얻으려면, 물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하니 마중물의 이치는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마중물은 물이지만 물이 아닙니다. 저 파이프 깊이 들어가 고인 물을 흔들고 일깨워 세상 밖으로 솟구치게 하고는 자신은 사라지는 물입니다.
놀라운 것은 경제학에도 마중물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수효과 또는 유수정책(pump - priming policy)이라고 부르는데, 경기가 불황일 때 정부가 지출을 늘려 경제를 자극해 주면 그 후부터는 더 이상 정부지출을 늘리지 않아도 경제가 알아서 잘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수정책이 처음으로 시행된 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에 처해 있었던 미국의 뉴딜 정책으로 대대적인 공공사업(즉 유수정책)을 실시하여 어려운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경제학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생활원리인 셈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마중물 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를 오른 손으로 잡아주는 마중물이 되었을 때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행3:3-8) 또한 바울이 고린도 교회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준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고전16:15-18) 이들은 마중물 같은 인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이런 마중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원한 일보다는 가슴 답답한 일이 많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불만족해하고 그리고 삶에 지쳐 힘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중물처럼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어 살맛나게 하는 사람 말입니다. 마중물을 조금 붓고 펌프질하면 지하수가 이끌려 나오듯 우리도 그런 마중물이 되어 시원한 사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톨스토이의 [마중물]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을 지나는데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집이 하나 있어서 들어가 보니 지하수를 샘물로 퍼 올리는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펌프가 바싹 말랐습니다. 마침 그 옆에 있는 그릇에 물이 한 그릇 있었는데, 그 그릇 위에 ‘이 물은 마중물입니다. 이 물을 마셔버리면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지 못합니다. 이 물을 펌프에 다 붓고 펌프질을 해야 시원한 물을 퍼 올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마신 후 다음 사람을 위해 또 한 그릇 채워 두세요. 라는 메모가 남겨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삭막한 세상, 나 혼자 마셔도 모자라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마중물 역할을 하면, 나도, 다른 사람도 시원한 생수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엄청나고 거대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작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면 됩니다. 마중물은 펌프로 땅 속의 물을 퍼 올리기 위하여 처음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입니다. 땅 속에는 물이 무진장하게 있지만 그 한 바가지 물이 없으면 퍼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중물은 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오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마중물이 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흥과 영광은 오직 열정 하나로 자신의 생명까지 바쳤던 우리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 속에 성장해 온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마중물이 되어 준 사람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과 성장은 소리 없이 사라진 수많은 순교자들의 마중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누군가가 마중물이 되지 못한다면 생명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속에 기꺼이 스며들고 자신은 사라지는 마중물입니다.
때로 우리에게도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기업가에게 돈을 향한 목마름이 있듯이, 정치가에게 권력을 향한 목마름이 있듯이, 스포츠인에게 파워를 향한 목마름이 있듯이, 때로 우리에게도 영적 육적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누군가를 시원하게 해주는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사회를 살맛나게 하는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보잘 것 없는 한바가지 물에 불과하지만 주님의 펌프에 부어지면 생명수가 콸콸 터져 나와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물이 될 것이며, 세상은 밝아지고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사랑의 샘물은 많이 퍼 올릴수록 더욱 달고 시원해집니다. 사랑의 샘물이 넘치려면 우리 모두 함께 나누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하며 자꾸 뒤로 물러서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들 각자에게 다 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능성을 발굴하고 계발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마중물로 드리면 됩니다.
숨어있는 물 끌어올리려/ 물이 물을 마중 나간다/ 숨어서 혼자선 어쩔 수 없는/ 지하 속 깊은 물/ 마중 나가 손 내밀어/ 손잡고 뿜어져 오는/ 마중 물/ 나도 너에게 마중물이고 싶다/ 너의 가슴속 깊이 들어가/ 너와 함께 살고 싶다/ 나를 기꺼이 너에게 주고 싶다/ 얼마큼 다가가 손 내밀면/ 네가 가까이 올까/ 비록 힘없는 작은 손이지만 너를 위해/ 오늘도 마중 나간다/ 너를 위해 내 소중한 것/ 기꺼이 던져 넣고/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도 잘 살았노라고 웃을 수 있을 텐데/ 수줍게 다가간 손/ 세상이 환하게 웃을 만큼/ 손잡고 나올 날 있으리라 (김정아/마중물)
숨어있는 물을 끌어올리는 한바가지 마중물은 수없이 많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된 자의 마중물이 되고, 있는 자가 없는 자의 마중물이 되고,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마중물이 된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베푸는 사랑과 위로의 한마디가 마른 펌프의 마중물이 될 수 있고, 말없이 잡아주는 우리의 손길과 가볍게 웃어주는 우리의 미소도 지쳐있는 사람에게 기쁨과 소망의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의 마중물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드리는 작은 물질과 기도가 축복의 생수가 터지게 하는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오늘의 수고와 눈물이 내일의 희망과 기쁨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도 합니다. 나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한바가지 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을 위해 부어지면 쓰고도 남는 풍부한 샘물이 되어질 것입니다. 마중물은 깊은 곳에 있는 풍부한 샘물을 길어 내는 것입니다. 넣은 것보다 더 귀하고, 더 많은 것을 꺼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하는 기도의 마중물, 은혜의 샘물이 차고 넘쳐 나도록 하는 은혜의 마중물,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귀한 일은 작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마중물이 되어 예수님의 펌프에 부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퍼다가 이제 우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더울 때는 시원한 물을 내게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한 물을 내어주며, 갈급한 영혼에게 생명수가 되어주는 예수 펌프의 마중물이 되어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