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잠 19:11~19).
노하기를 더디하라~~~~~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생존 경쟁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무슨 일이든지 성급하게 해결하려 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삶 속에서 인내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체적으로 작은 일에도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경향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소위 ‘묻지 마 범죄’를 비롯해 ‘보복 운전’ 등 각종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를 보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현대인들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면서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풍습을 지녀왔고, 양반들은 비가와도 뛰지 않는 여유로움이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매사에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 ‘네 탓’이라고 언성을 높여 싸우기 일쑤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네 탓’이 아닌 ‘내 탓’이라고 하는 겸허한 자세로 분을 자제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란 화를 참고 억제하는 행위로,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다툼을 피하고 분쟁을 없애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에 야고보서 기자는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권면했다(약 1:19).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말한다. 우리는 화를 내기에 앞서 먼저 우리와 같은 죄인을 향해 끝까지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벧후 3:9). 아울러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을 힘입어 살 때만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오래 참고 인내함으로 노하기를 더디 할 수 있기 때문이다(갈 5:22, 23).
옛말에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을 인(忍) 자는 칼날 인(刃) 자 밑에 마음 심(心) 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움직여 봤자 나만 상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화를 참지 못해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소위 ‘분노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온 국민의 입에 회자됐던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도 일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 저자 마크 트웨인은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그를 저주하는 편지를 써서 바로 부치지 않고 사흘간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을 때 보냈다고 합니다. 삶의 지혜가 넘쳐나는 방법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까지 참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인내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