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일만성철용 | 날짜 : 11-05-11 14:06 조회 : 1833 |
| | | '인천(仁川)' 지명 이야기 -55회 인천고등학교 졸업생 ilman 성철용
학창 시절 무심코 남 따라 부르던 교가(校歌)도, 나이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무렵에 동창회에서 학창시절 친구 따라 부르면 감회가 깊어진다.
빛-나는 아침 해 문학에 오르고 검붉은 저녁 해 황해에 지는 곳 소성에 정기 감돌고 바다에 물새 나른다.
총 6행으로 된 가사 중 가장 중요한 1절과 2절의 전반부 3행은 3, 3, 3, 3/3, 3, 3, 3/3, 5, 3, 5로 시조형식이다. 1절에서는 ‘아침 해와 저녁노을이 문학산과 황해로 오르고 지는 곳’ 2절에서는 ‘세계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항구에 들고 해외로 나는 곳’이니 그 표현이 서로 대층을 이루고 있다. 소성(邵城)이란 말은 술꾼인 나에게는 전국 최초의 팩(Pack)으로 포장되었다는 ‘소성주(邵城酒)’로 우선 기억된다. 소성(邵城)에서 ‘邵’(소)는 옛날 중국 동정호 남쪽 호남성에 있는 읍 이름에서 따온 것 같다는 유추뿐 안타깝게도 그 어원이 불분명하다. 그 소성(邵城)이란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쓰이다가 고려 숙종 때와 공양왕 때에는 경원군(慶源郡)이라 하였다. 고려 숙종의 어머니 인예태후(仁睿太后)의 고향이 인천의 옛 이름 소성현이었기 때문에 경사 ‘慶’(경), 근원 ‘源’(원) 곧 경사의 근원이 되는 곳이라하여 ‘경원군(慶源郡)’이라 승격시킨 것이다. 그 경원군(慶源郡)이 그 후 인종 때는 왕의 모후 순덕왕후(順德王后)도 인주 이씨(仁州李氏)라서 어머니 출신지라 하여 ‘어머님이신 왕비에 대한 효심으로 인주(仁州)’라 개칭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고장 인천은 고려 문종 조부터 인종 조에 이르기까지 7대 왕 중 다섯 왕비가 인주이씨(仁州李氏) 집안에서 나온 곳이라 하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였다. 어향(御鄕)이란 내외향을 말하는 것이다. 내외향(內外鄕)은 임금의 외가나 왕비의 친가가 있던 곳을 말함이니, 어향(御鄕)이란 왕의 외가(外家)요. 처가(妻家)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고려시대 인천은 고려 최대의 귀족문벌이었던 인주 이씨(오늘의 인천 이씨)라는 외척이 80년 동안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던 명가의 고향이었다. 그 인주(仁州)를 조선 태종 때(1413년)부터는 인천(仁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인주(仁州)의 ‘州’(주)자가 고을 ‘주’(州) 자이니, 그 '주(州) '자를 인천(仁川)의 '천(川)' 자로 바꾼 것이다. 천(川)은 강(江)이다. 강은 바다로 흐르는 것이라(江注於海) 그래서 인천이라 하게 된 것이다. 우리 모교 인천고등학교에서 작년에 내게 졸업생을 대표해서 써 달라는 원고청탁이 왔는데 그 교지(校誌) 명이 ‘미추홀’이었다. ‘주몽의 두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온조는 하남(河南)의 땅을 택하고,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가서 살았다.’ 이처럼 미추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 나오는 이름이다. 인천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이었다. 열[十] 명의 신하가 온조를 도와[濟] 세운 나라라 하여 처음에는 십제(十濟)라 하다가, 비류가 미추홀에서 개국을 실패한 후 그 비류 신하까지 합하여 백(百)명의 신하가 도와서[濟] 세운 나라라 하여 백제(百濟)라고 국명을 바꿨다는 나라다. 백제 시절의 ‘미추홀’을 고구려 시절에는 ‘매소홀(買召忽)’이라고도 하였는데 어원으로는 ‘미’나 ‘매’는 한자로 물[水]이요, ‘홀’은 ‘성(城)’이란 뜻이다. 그 미추홀은 산골지방을 뜻하는 ‘두메’를 뜻하는 말로 쓰였는데 이는 물가에 있는 두메라 뜻인 것 같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 고장 인천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미추홀(백제) - ‘매소홀(고구려) - 소성현(신라)’이라 하여 오다가 ‘인주(고려) - 경원군(고려) - 인천(조선) - 부천군(일제) - 인천직할시-인천광역시“로 바뀌며 그 이름이 오늘날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
| 일만성철용 | 11-05-11 14:11 | | 위 글은 ilman의 모교 인천고등학교 재경동창회가 동창 소식지를 낸다 원고를 부탁해서 쓴 초고입니다. 인천에서 사시는 분이나 고향인 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우선 여기에 올립니다. | |
| | 이희순 | 11-05-12 15:50 | |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미'는 물이 가득하다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추'는 고을,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는 듯합니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도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큰 지역이므로 '미추홀'이 '물이 홀연히 가득 차오르는 고을'의 의미가 아닐까하는 황당한 상상을 해봅니다^^ '인'은 속살을 뜻하기도 하고 복숭아나 살구 등 핵과류의 씨를 뜻하기도 하니 갑작스럽게 차오른 물이 내(川)처럼 빠져나가며 바다의 속살인 갯벌과 핵과 형상의 여 따위가 드러나는 광경에서 '인천'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또 다른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 |
| | 최복희 | 11-05-12 16:19 | | 일만 선생님 그 연세에도 후배들을 위해 좋은 글을 보내고 계시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박원명화 | 11-05-15 23:44 | | 일만선생님의 박식한 정보를 한 편의 글을 통해 알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산천 방방곡곡 선생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듯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알고 탐방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언제 이렇듯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인지......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
| | 임병식 | 11-05-18 16:47 | | 일만 선생님, 인천 지명의 변천사를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보람된 나날 보내기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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