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 5월21일
1762년 5월 21일..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인 균이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辛壬士禍)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파를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노·소론의 치열한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면하고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을 썼다. 그러나 고질화된 붕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만무했다.
영조의 유일한 혈육인 세자 선을 둘러싸고 당쟁이 재연된 것이다.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자 세자를 등에 업으려는 소론·남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론이 다시 맞붙었다. 한때는 총명했던 세자도 잦은 무고(誣告)와 되풀이되는 영조의 질책으로 정신병적 성향을 보이며 잇단 비행을
저지른다. 영조도 편집증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영조는 못마땅한 세자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킨 후 1762년 5월 13일(음력) 뒤주 속에 가둔다. 초여름 8일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세자는 뒤주에 갇혀 절망과 분노를 토해내며 몸부림치다 숨을 거둔다. 5월 21일이었다. 사도(思悼)는 훗날 이를 후회하고 애도한다는 뜻으로 영조가 내린 시호이다.
🌹오늘의역사(1900년대)5월21일🌹
🌳02년 개성-한양 간 전화 개통
🌳21년 민족주체성세운 사학자 신채호, 독립투쟁 단체인 "통일책진회" 조직
🌳26년 양기택, 중국 길림서 고려혁명당 결성
🌳47년 제2차 미소공동위(미 대표 브라운 소장, 소 대표 스티코프 중장) 개최.
🌳60년 내각책임제개헌안 공고, 6월15일 국회 통과. 공포(제2공화국 성립)
🌳60년 초중고 교사, 대학교수 300여명, 대한교육 노조 연합회(전교조) 결성
🌳61년 이정재등 깡패200여명, 서울시내 가두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64년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구속된 학생들의 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공수단 소속 군인들이 난입.
🌳69년 신민당 제3차 전당대회, 당헌 개정안 채택하고 총재단 선출
🌳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접수
🌳73년 대전.중부신문통합(25일<충남일보> 발족)
🌳75년 박정희 대통령,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요담
🌳80년 광주 '시민군' 본격적으로 무장 나주경찰서 등지 에서 무기 확보,
11공수여단 집단 발포.
🌳84년 제63ㆍ64차 관세협력이사회(CCC) 개막(25일 관세기술협력기금창설-
서울선언 채택)
🌳86년 서울대, 고려대생 21명, 부산 미문화원 검거 농성
🌳87년 제16회 전국소년체전 개막(∼25일, 부산)
🌳87년 박종철 고문 축소 조작 드러나-박처원 치안감 등 3명 더 있다
🌳87년 북경밀담-등, 심천보고 가시오
🌳87년 출판인 359명, 시국 성명
🌳90년 문교부, 91년부터 중.고교에 월반. 유급 제도 도입을 허용키로
🌳90년 근로소득세 7월부터 경감
🌳92년 국무회의,「교원 지위향상을 위한 교섭 협의에 관한 규정안」을 의결.
🌳92년 보병3사단 180GP 남방 800m(3명 사살) 간첩침투
🌳93년 교통부, 642억원의 총사업비를 들여 세운 김해 국제공항
국내선 여객터미널 개관.
🌳95년 한.러시아, 방위산업군수협력 양해각서에 가서명
🌳96년 이수성 국무총리, 루마니아 방문중 바타로이유 총리와 회담
🌳97년 레흐 바웬사 전폴란드 대통령 한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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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21일...
이정재등 깡패200여명, 서울시내 가두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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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5월 21알..대한극장 철거
좌석수 1924석이란 엄청난 크기로 대형극장 시대를 주도했던
대한극장이 2000년 5월 21일 ‘징기스칸’ 상영을 마지막으로
멀티플렉스(상영관 6개 이상에 각종 편의-
오락시설을 갖춘 극장) 변신을 위해 철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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