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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근혜 비대위원장, 이재오 의원, 김무성 의원, 정몽준 의원 |
그래서 항간에서는 ‘친이연대’ 창당 혹은 친이계의 대거 ‘국민생각’ 입당 등의 관측이 나돌았다. 특히, 전여옥이 전격적으로 ‘국민생각’으로 옮겨가면서 대변인까지 자임, 그러한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김무성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움직임은 크게 위축되어 사실상 정계개편 동력은 상실되었다. 아울러 새누리당으로부터의 대규모 이삭줍기를 기대했던 ‘국민생각’도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전여옥도 기운이 빠졌을 거다.
왜 ‘친이연대’ 창당이 좌절되었을까? 대다수 언론에서 보도하듯이 이재오의 정치적 역량과 결단력이 부족해서일까? 물론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2008년의 정치 로드맵과 2012년의 정치 로드맵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착안할 경우 이와 사뭇 다른 분석이 가능해진다.
무엇이 다를까? 4년 전에는 겨우 총선 하나만 있었지만 올해에는 총선이 끝나고 난 후 8개월 후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2008년에는 권력의 일부만 변동되는 것인데, 2012년에는 권력의 전부가 변동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4월 총선 성적표가 12월 대선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래서 시나리오도 다르다.
이재오와 친이계의 전략… 박근혜에게 총선 독박 씌우겠다
진수희, 권택기, 진성호 등이 공천에서 탈락한 후 이들은 집요하게 이재오에게 큰 결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이 요구한 결단이란 공천 반납 및 이재오계 행동 통일이었다. 이재오도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끝내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보복공천 더이상 하지 말라”는 경고만 보냈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 김무성의 백의종군이 나왔고, 폭음을 하며 분기탱천했던 친이계들도 일제히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분명 이재오-김무성-정몽준-김문수 등 반박 리더그룹 간 의견조율이 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여옥의 ‘국민생각’ 행도 결코 그녀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다. 정몽준 측의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행보라고 보아야 한다.
만일 친이계가 ‘국민생각’ 및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하여 ‘반박 보수신당’을 창당할 경우 박근혜는 예상치 못한 두 가지 호재를 동시에 얻게 된다.
첫째, 보수분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경우 자연스럽게 표가 새누리당으로 결집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형성된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련, 선진당을 제외하고 꼬마민주당, 국민당, 민국당 등 특정 지역기반 없이 전국 보수정당을 지향했던 세력이 성공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힘의 논리에 휘둘릴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민주개혁세력보다 영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뭉친다는 것은 그만큼 박근혜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명도 있는 중진들이 당 밖에서 박근혜를 집단공격 하는 듯한 이미지가 형성됨으로써 박근혜에 대한 동정론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최악의 경우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야권에게 패배하더라도 그 책임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보수분열의 책임을 박근혜가 아닌 이재오가 뒤집어쓸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분명 패배한 후보는 한명숙인데 노회찬이 혼자 욕먹은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경우 박근혜는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의 압도적 세력과 영향력에 힘입어 새누리당 대선후보 고지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총선에서의 보수분열을 경험한 지지층이 12월 대선에서는 똘똘 뭉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이거 대단히 무서운 시나리오다.
바로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재오와 친이계가 숨 고르기를 하면서 사태를 관망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판단된다. 모두가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외치면서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줄 경우 총선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박근혜 한 사람이 부담할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했을 경우 ‘백의종군’했던 장수들은 졸지에 대거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박근혜가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 경우에도 최악은 아닌 차악으로 막은 셈이다. 대놓고 반기를 든 상황에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보다는 백의종군 상황에서 승리하는 것이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총선 후를 염두에 두며 절치부심하는 이재오와 친이계
이재오와 친이계는 그렇다 치고, 그럼 ‘국민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이건 조금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릴 수밖에 없다. 박세일, 전여옥, 박계동, 김경재 등 ‘국민생각’ 지도부에게 있어서 총선은 그다지 큰 관심이 안가는 이벤트다. 정말로 이들이 총선에서의 다수 의석을 노렸다면 최소한 현재의 정치 시간표보다 2~3개월 정도는 더 서둘렀어야 정상이다.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실적 목표가 총선이 아닌 대선에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총선에서 별 볼 일 없는 성적을 낸 놈들이 대선에서 무슨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재오 입장에서 아무리 박근혜가 밉더라도 총선 전까지는 대놓고 박근혜와 싸울 수가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러면 그럴수록 분열의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박근혜는 그만큼 동정여론과 지지층 결집의 혜택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가 국회의사당이기에 원내냐 원외냐에 따라 그 정치적 발언권과 영향력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고 난 이후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정권이 야로 넘어가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든 그들은 4년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세비 받고 떵떵거리며 다닐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그다음은? 당연히 대놓고 박근혜와 싸울 가능성이 커진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가 새누리당을 더욱 강력한 자신의 사당세력으로 몰고 간다면? 이미 금배지를 달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이재오와 친이계가 대거 ‘국민생각’으로 입당하여 일거에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을 사실상의 식물정당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꾸~욱 참고 기다리는 거다.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들 입장에서는 견딜 만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5년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2년만 고개 숙이고 인내하면 결국 당권 및 차기 대권의 주도권은 이들에게 넘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MB정부 초기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 2010년부터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사실상 한나라당 조직을 장악해나간 것과 비슷한 이치다. 더욱이 박근혜는 혼자 싸워야 하지만 이들은 이재오-김문수-정몽준-김무성-임태희 등 각 리더그룹들이 서로 공조하고 협력하면서 박근혜를 협공할 수 있는 유리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새누리당의 진짜 피 터지는 전쟁은 총선 이전이 아닌 총선 이후에 벌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와 친이계 간 벌어지게 될 혈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박근혜의 총선 성적표, 그리고 이재오와 정몽준의 당선 여부, 그리고 김문수계(차명진, 임해규 등)의 선전 여부다. 이들 정치적 변수가 어떤 형태로 결론이 나고 정리되느냐에 따라 새누리당 권력투쟁의 향방은 또다시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흑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