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매화신검(梅花神劍)
-내가 살아 있다면 그분 또한 살아 있습니다.-2
태평객잔은 별관 뒤쪽으로 제법 높은 산을 끼고 있었으며
그 산을 약 이십여 장 정도 올라가면 사방 십 장 정도의
제법 높은 공터가 나타난다.
이 공터는 별관에 머무는 무인들의 연공을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연무장으로 태평객잔에 묵는 무인들에겐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공터의 사방은 대나무로 가득해서 세상과 차단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공터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앞으로 나온 것은 화산의 젊은 기재라
일컬어지는 우보였다.
먼저 우 모가 한 수 겨루기를 청합니다.
우보가 앞으로 나서자 관패와 풍백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둘은 이미 각자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고 싸울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선배, 나에게 양보하시오.
앉아라! 내가 먼저다.
선배는 무식해서 싸우다 상대를 죽일지도 모르오. 그러니 내게 맡기쇼.
내가 살살 다뤄줄 테니.
말이 많군.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한번 겨루자.
그거 좋은 생각이오.
우보는 그만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자신은 화산의 용이라 불리며 천하의 기재 소리를 듣던 인물이었고,
우내육존의 제자로 그 자부심은 능히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그의 눈엔 사공운 이외의 사람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사공운이 우내육존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던 그였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반드시 겨루어 보리라 얼마나 다짐을 했던가.
한데 사공운과 겨루기도 전에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자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자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우보의 얼굴이 굳어 있거나 말거나 관패와 풍백은
당장이라도 겨룰 듯한 기세였다.
관패와 풍백이 조금도 지지 않고 말싸움을 할 때
사공운이 유수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동안 너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사형.
관패와 풍백은 멍한 표정으로 사공운을 보았다.
무척 서운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사공운은 단호했다.
이미 유수아는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우보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관패나 풍백이 아니라 그들보다도 더 약해 보이는 여자라니.
사공운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히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명가의 제자답게 참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은 실력이 말해 줄 뿐이다.
그는 빨리 이 여자를 밀어내고 사공운과 겨루고 싶을 뿐이었다.
우보의 생각이 어떻거나 유수아는 그의 앞에 선 채 검을 들어올렸다.
유령문의 유수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보입니다.
둘은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섰다.
간편한 차림의 유수아는 날렵하고 길지 않은 장검을 들고 있었다.
검의 차가운 예기와 유수아의 단아한 모습이 하나가 되어 잘 어울렸다.
그녀의 모습은 다시 보기 어려운 미모와 함께 한폭의 그림처럼 우아했다.
우보는 그 모습이 늦가을의 차가운 서리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볼수록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언젠가 백진화 사숙이 여자에 대해서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극상품의 여자란 처음 볼 때 아름답고, 두 번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세 번 볼 땐 눈이 부셔서 감히 마주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만나기 어렵다.
왜 갑자기 사숙의 말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여자가 바로 사숙이 말한 극상품의 여자란 사실이었다.
우보는 피식 웃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그는 천천히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수아의 모습이 서리 같다면,
조금 긴 장검을 들고 선 우보의 모습은 마치 선비 같았다.
고요하고 장중하지만 언제 태풍이 불지 모르는 바다를 닮은 모습이었다.
둘의 기세가 일어나 조금씩 상대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의 경중이 비슷해 어느 한쪽이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고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맴돌다 사라졌다.
우보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유수아의 나이를 보아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오만함을 버렸다.
작은 충돌이었지만 상대의 실력을 아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해서령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백진화는
조금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허, 과연 유령의 제자들은 대단하구나. 저 나이에 벌써…
백진화는 가볍게 찬탄을 하며 다시 한 번 유수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아가씨로다.
그 실력 또한 미모에 뒤지지 않으니
앞으로 여중 제일 고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중얼거리듯이 한 말이지만,
조용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듣기에 충분했다.
이는 유수아를 칭찬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우보에게
유수아를 얕보지 말란 충고의 의미도 있었다.
우보가 어찌 그것을 못 알아 들으랴.
지금까지 오만으로 가득 했던 그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대신 들어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팽팽한 긴장감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모두들 백진화의 말에 동감하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 때,
우보가 오른발을 앞으로 천천히 내디뎠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찰나
우보의 신형이 질풍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며 장검을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그었다 싶은 순간 이미 그의 검은 수평을 이루며 찔러가고 있었다.
매끄럽고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아주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그의 검에서 매화를 닮은 검화 십여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이십사수 매화검법 중 직인매요(直引梅妖)라는 초식이었다.
보기엔 평범해 보였지만,
그 안에 숨은 검리가 괴이하고 신랄해서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초식이었으며, 이십사수 매화검법 중에서도
후 사식에 포함된 절기 중의 절기였다.
직인매요와 함께 펼친 신법 역시 제운종의 절기였다.
처음부터 강수로 나가는 것으로 보아 속전속결을 생각한 듯 했다.
유수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서리 같은 기상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백진화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감탄했다.
유수아의 검이 수평으로 누인다 싶은 순간 다시 아래위로 흔들리며
그녀의 신형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졌다.
순간 유수아의 검에서 뿜어진 무형의 검기는 마치 뱀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처럼 우보의 검기를 타고 그의 목을 노렸다.
그 기이함이 뱀처럼 신랄하고 표독스러웠다.
이는 구환유령검법 중 유령사로, 뱀이 닭의 부리를
피해 목을 무는 듯한 초식이었다.
우보는 유수아의 검에서 뿜어진 무형의 검기가 자신의
검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우보는 앞으로 달리던 속도를
갑자기 줄이며 무려 다섯 가지의 초식을 한꺼번에
펼쳐 유수아를 재차 공격했다.
지인매화(之因梅花), 오이매도(塢이梅道), 직원매도(直院梅刀),
풍운단매(風雲丹梅), 여운매화(如雲梅花)의 오초식은 이십사수
매화검법 중에서도 연환식으로 유명한 초식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화산의 제자들 중에 이 오초식을 한꺼번에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만큼 까다롭지만 하나하나가 절기라 부르기에 아깝지 않은 초식들이었다.
이십사수 매화검법 중 십육초부터 이십초까지의 이 다섯 초식을
화산에서는 따로 오매연(五梅連)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는 이 초식들이 연환으로 펼쳤을 때 위력이 배가 되기 때문이었다.
우보가 이 검초들을 한꺼번에 펼치는 순간,
사방이 매화 모양의 검기로 가득해졌으며,
그 검기는 당장이라도 유수아의 몸을 난도질할 것 같았다.
유수아는 유령보법으로 교묘하게 몸을 틀며 상대의 검기를 비켜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우보의 검식과 검식 사이를 비집고 틀어오려 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보는 연달아 매화검법을 펼치고도 상대를 어쩌지
못하자 갑자기 검식을 변화시켰다.
수십 송이의 검화가 하나로 뭉치는가 싶더니 하나의
홍매화로 변하여 유수아를 향해 날아갔다.
이십사수 매화검법에 없는 절기였다.
매화신검을 우내육존의 자리에 올려놓은 칠절매화천검(七絶梅花天劍)
중 다섯 번째 초식인 홍매몽강(紅梅朦剛)이란 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풍백과 관패 그리고 진충은 그 검화가 검강의 변형된 모습임을 알았다.
그들의 안색이 변할 때, 유수아의 신형이 갑자기 갈라지며
무려 열여덟 개로 늘어나더니 그녀의 검이 허공에서 천천히
맴을 돌며 우보를 향해 밀려갔다.
유령보법의 정화라 할 수 있는 유령십팔환과 유령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유령참인이었다.
우보는 자신의 검화가 마치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이 상대의 중심을
피해 가는 것을 느꼈다.
기겁을 해서 뒤로 물러서려는 찰나 무려 열여덟 명의
유수아가 자신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그는 급히 암향표와 제운종을 번갈아 펼치며 매화천검의 매화분분
(梅花紛紛)으로 몸을 보호했다.
매화분분은 수비와 공격에서 동시에 위력을 발휘하는 검초였다.
대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번에 승패가 갈릴 것이라 생각했다.
둘은 번개처럼 스쳤다가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왔다.
유수아와 우보는 천천히 자신의 검을 거두었다.
우보가 포권을 하고 유수아를 보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 모가 세상 넓은 줄 이제야 알았소. 내가 졌음을 인정하는 바요.
우보의 말에 공손명을 비롯한 용취아 등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사공운이나 관패 등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담담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우보에게 나름대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이 대결을 계기로 다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령은 이 기회에 우보의 자만심을 거두어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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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독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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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즐독!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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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