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에 소재하는 미륵불골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에 ‘미륵불골’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서서학동은 전주시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학(棲鶴)은 “황혼 무렵에 학들이 숲속에 보금자리를 트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황학봉에 학이 살았다고도 하며, 산의 형세가 학이 날개를 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서서학동은 황학봉의 서쪽에 해당한다.
현재 서서학동 주민센터에서 10여 분 떨어진 거리에 ’미륵불‘이 소재해 있는데,
그곳을 ’미륵불골‘, ’이두리골‘ 등으로 부른다.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냥 다니는 이두리
옛날, 전주시 난전면 지역에 ‘이두리’라 부르는 총각이 한 명이 있었다.
이두리는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는 보리쌀 한 톨이 없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동냥 다녔다.
그러나 “건장한 몸으로 어찌 막일이라도 하지 않고,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날마다 비렁뱅이 신세를 면치 못하느냐?”라는 마을 사람들의 질책이 무서웠다.
그래서 마을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고달산 기슭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그 때 이두리 앞에 대여섯 발이 넘는 장죽을 짚은 백발노인이 한 명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어찌해서 너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서성거리느냐?”,
“인생이 불쌍하여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겠다.”,
“자자손손 영화를 누리고 싶으냐? 아니면 당대 영화를 누리고 싶으냐?”,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해라.”라고 하였다.
이에 이두리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자자손손이 뭡니까?
우선 당장 배부터 원 없이 채워 보고 싶습니다.”라고 백발노인에게 말을 하였다.
아버지 묘를 이장하고 부자가 된 이두리
이두리의 말을 들은 백발노인은 그를 가엾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두리의 손을 꼭 잡고 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죽장으로 땅을 쳤다.
“이곳에 네 조상의 뼈를 묻으라.”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두리는 신기하기도 하면서 놀랍기도 하였다.
그날로 바로 선친의 무덤을 백발노인이 알려준 곳으로 이장(移葬)하였다.
그리고는 몇 해를 지나지 않아 이두리는 당대에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다.
고달산 미륵불을 옮긴 이두리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선친(先親)의 이장지를 알려주었던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이두리에게
“고달산 서쪽 기슭 비바람 속에 묻혀 있는 미륵불을 옮겨 세우되,
상체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받게 하고,
하체는 땅에 묻어 달라.”라는 말을 하였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난 이두리는 백발노인이 꿈에서 했던 말처럼, 고달산 서쪽 기슭으로 가 보았다.
과연 그곳에 미륵이 땅에 묻혀 있었다.
이두리는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준 백발노인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백발노인이 말한 것처럼
미륵의 상체는 드러나게 하고, 하체는 땅에 묻는 형태로 미륵불을 옮겨 세웠다.
전주시 서서학동에 있는 미륵불이 이두리가 옮긴 미륵불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두리가 세상을 뜬 후에 그 인근에 이두리의 무덤도 썼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미륵불골’ 또는 ‘이두리골’로 불렀다고 한다.
곧, 「이두리가 미륵불을 옮겨 세운 전라북도 전주시의 미륵불골」은
미륵불과 이두리 무덤이 위치해 마을 지명이 생겼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두리가 선친의 무덤을 옮긴 후 부자가 되었고,
땅에 있던 미륵불을 백발노인의 꿈에 의해서 옮기게 되는 등 미륵불이 지니는 신비성을 더해주고 있다.
부가정보
서서학동 석불입상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 미륵암에 있는 불상(佛像)이다.
1984년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으며,
지명유래담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이 좌대 이하는 땅 속에 묻혀 있다.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