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수영강변 자전거전용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원동 인터체인지를 조금 지나 고수부지에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심어 놓았다.
며칠전만 해도 모종들이 땅에 붙어 있었는데 장마철 비를 맞고 어느새
훌쩍 커서 하나 둘 꽃을 피우고 있다.
코스모스 하면 시골길이 생각난다.
가을 철 이따금 짐 실은 화물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뽀얗게 나는 신작로가에
코스모스가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거리며 피어 있고
쪽빛 물감을 풀어 놓은듯 구름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었지
코흘리개 아동들이 한바탕 놀고 간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에는
운동회가 끝나고 만국기만 펄럭이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여름에 피고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벌써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고 있으니(일부만 피긴 했지만)
가을이 저 만큼 다가 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함안 강주에서는 동네밭에 해바라기를 많이 심어 놓고
해바라기 축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지방마다 축제행사를 한다고 야단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과 같이 지방단체장들이 자기돈 안들이고 얼굴 알리기에 안성맞춤 아닌가.
내가 해바라기를 인상깊게 본 것은 유럽여행중에 이탈리아를 갔을 때였다.
아마 피렌체 인근지방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온통 해바라기꽃 천지였다.
개미새끼 하나 얼씬도 않는 광활한 벌판에 노란 꽃을 피운 해바라기만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해바릭 밭 옆을 지나가다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때는 햇빛이 사진의 생명을 좌우하는데 때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그냥 지나가는 길에 셔터만 몇 번 눌린 꼴이었다.
광활한 벌판에 노랗게 핀 해바라기를 보니
예전에 배 탈 때 본 '해바라기(sunflower)'라는 영화가 생각 났다.
당시 산꼬라인(Sanko Line)의 벌크선 '미다스 프린스'호를 탔는데 프랑스회사에 차터되어
주로 동남아에서 원목을 싣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유럽 여러 항구에 들어가 하역을 하였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면 정비작업을 마치고 저녁때는 시내 술집으로 가거나 영화보러 갔다.
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때 영화를 많이 보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해바라기를 비롯해서 길, 성처녀,임마뉴엘 등등.
'해바라기' 영화는 1970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서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여배우 소피아 로렌과 남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태리의 평화스런 정경과 함께 헨리맨시니의 테마 음악이 잔잔히 흐르면서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폴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골에 살던 지오바나(소피아 로렌 분)는
밀라노에서 온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군대에 징집되어 가지 않기 위해 안토니오와
지오바나는 결혼식을 올리지만 남편 안토니오는 곧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다가 지오반나(소피아 로렌 역)는
남편의 전사 통보를 받고 오랫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남편의 전쟁 동료로부터 안토니오가 작전중 눈보라 속에서 낙오되어
행불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가닥의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 남편을 찾기 위한 긴 여정에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찾아내지만 그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이미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시 그는 부대에서 낙오되어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속에서 헤매다가 쓰러져 동사하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인근 마을의 처녀 마샤(루드밀라 사벨리에바)가
지나가다 기진맥진한 그를 발견하고는 자기집으로 간신히 업고와 정성껏 치료를 하여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구해 준 러시아 여인, 마샤를 만나 두 딸을 둔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운명을 탓한 채 눈물을 흘리면서 밀라노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술을 마시게 되고 춤도 추러 나간다.
그러다가 안토니오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이든 공장 일꾼 에토와 결혼한다.
아들도 한 명 낳고 그럭저럭 살아가던 지오바나에게 어느날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가 다시 나타나자,
지오바나는 재회를 거부한다. 우여곡절끝에 안토니오가 지오바나의 집에 들어가는 순간 세찬 폭우로 정전이 된다.
지오바나가 촛불을 켜고, 둘은 서로의 얼국을 가까이서 바라볼 때, 지오바나는 "너무 오래 보지 마세요. 이젠 많이 늙었어요. 당신도 늙었군요" "당신에겐 아내가 있고, 내게도 남편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ㄱ보다 저에겐 안토니오라는 아들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는 지오바나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지만,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엇갈려버린
채울 수 없는 그들의 간극 앞에서 둘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오바나는 "당신에게는 아내가 있고, 내게도 새로운 남편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겐 안토니오라는
아들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안토니오를 떠나보낸다.
안토니오가 탄 기차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지오바나의 모습은 끝가지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떠나보내야만 하는 한 여인의 가슴 시리고 절절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바라기처럼 서로만을 그리며 기다려온 그들이지만 전쟁이 훑어간 기구한 운명의 장난으로 이제는 각자 서로 다른 길을
살아가야할 뿐이다.
타이틀인 해바라기는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해를 따라 움직이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일정한 방향으로 고정된다고 한다.
'해바라기'는 1970년에 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1985년에야 개봉되었다고 한다. 촬영을 당시 최초로 소련에서 현지로케했기 때문이란다. 선원들도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유럽갈 때 모스크바를 경유하면 거리상 가깝지만 모스크바 경유가 금지됐었고 외국에이젠트가 잘못하여 모스크바를 경유하게 되면 한국에 들어와서 경위서를 적어내야 했다.
지금도 자동차로 유럽여행시에 보았던 해바라기밭과 영화속의 해바라기 밭이 오버랩되어 눈앞에 선하게 나타난다.
마지막 사진은 이태리 여행중에 찍은 사진임.
첫댓글 유럽것은 키가 작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