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가는 길
김영호
출항한 지 이십여 분만에 배는 망망대해의 한 점이 되었다.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윤슬은, 풍어의 기쁨을 누리는 어부의 어깨춤인 양 흥에 겹다. 푸르디푸른 동해바다는 꾸밈없이 그 자체로 눈부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 바다라는 것이 기뻤다. 동해로 단독표기 되지 못하고 일본해와 병기되는 것도 모자라, 일본해로 단독표기 된 지도도 많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
“이달수, 앞으로 나와서 노래 한 곡 해봐.“
정 선배가 달수에게 노래를 시켰다. 신참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선배들은 무료할 때마다 노래 부르게 했다. 그때마다 달수는 당시 유행하던 ‘독도는 우리 땅’을 불렀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선배들은 즐거워했고, 기어이 달수에게 ‘독도’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 40년이나 된 이 노래가 아직 인기인 것은 일본 사람 덕분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우리의 TV와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30여 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한 정 선배가, 전역 기념으로 독도와 울릉도를 여행하겠다며 함께 하자고 했다. 달수는 흔쾌히 동행했다. 전역 후의 첫 행보가 독도 여행이라니,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열혈남아 정 선배다웠다.
육지와 울릉도를 이어주는 최 단거리 뱃길인 울진· 울릉 간을 운행하는 쾌속선을 탔다. 이 뱃길이 다른 뱃길보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건조돼 투입된 쾌속선은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안락하기까지 해, 멀미의 조짐도 없었다. 처음 가는 울릉도와 독도, 두 사람 가슴은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렜다. 애국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달수였지만 독도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을 무겁게 했었는데, 밀린 빚을 갚으러 가는 것 같아 홀가분했다.
정 선배의 군생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울릉도에 도착했다. 배를 타는 것은 멀미와 선실에 갇힌 듯한 고욕이라고 들은 것과는 달리, 쾌속선의 안락함이 시간을 삼켜버린 듯했다.
타고 온 쾌속선으로 독도까지 가는 일정이지만 울릉도에서 하선한 후, 한 시간 뒤 재승선해 독도로 이동한다고 했다. 바로 가지 않는 게 못마땅했지만, 난생처음 보는 울릉도의 풍광이 아쉬움을 달래줬다. 독도에 다녀온 후 여유를 가지고 울릉도를 탐방하기로 하고 선착장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시간 맞춰 배에 올랐다.
쾌속선은 거침없이 물살을 갈랐다. 최고속도에 이를 즈음 달수가 입을 열었다.
“정 선배, 일본이 잊을 만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우리의 대응은 규탄 대회나 하는 정도로 그쳐 아쉽습니다. 그것도 냄비에 물 끓듯이 그때만 잠시 그러다 마니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낮잡아 보고 자꾸 도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때를 한 번 보여줘야 합니다.”
“달리 뭐 뾰족한 수가 있나? 못된 이웃 만난 팔자를 원망할 수밖에.“
정 선배가 긴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왜 없습니까? 우리도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세계를 향해 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달수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참에 특수부대 출신인 우리가 거사를 한 번 도모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후배들 몇 명 모아서···.”
“뭘 어쩌자는 건가?” 정 선배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고무보트를 타고 가 대마도에 상륙해서 유명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면 어떨까요? 우리에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잖아요.”
톤 높은 말이 계속되자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수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일본 사람들도 한 번 당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들이 그럴 때마다 우리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 것 아닙니까.”
“맞다, 맞아!” 여기저기서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듣고만 있던 정 선배가 이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나보다 30년 먼저 전역했으면서 피는 아직 나보다 더 뜨겁네, 더 뜨거워 허허.”
슬며시 웃은 후 막냇동생 달래듯이 말을 이었다.
“이 사람아, 그러면 일본의 극우파들이 가만있겠는가? 아마 그들도 독도에 상륙하려고 들겠지. 그럼 더 복잡해져. 국제사회에 독도는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더 강하게 심어줄 뿐이야. 섣불리 그런 빌미를 줄 행동을 하면 안 되네. 냉정하면서도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네.”
“그 냉정하고 차분한 게 도대체 뭡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그러나 별무신통이었잖아요. 이제 방법을 바꿀 때가 됐다고요. 그리고 독도는 상륙하기 힘들어요. 대마도는 쉽지만.” 달수는 마치 정 선배에게 화난 사람처럼 따지듯이 말했다.
달수의 열변에 정 선배가 잔잔한 미소로 답할 때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오늘은 파도가 높아 여객선이 독도에 접안 할 수 없다고, 그래서 독도를 한 바퀴 선회한 후 울릉도로 돌아갈 것이니 갑판으로 나가서 독도의 풍광이라도 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두 열혈남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입도할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50일 정도라고 하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삼 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오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두 사람도 갑판으로 나갔다. 독도는 아직 작은 점으로 보였지만, 독도에 둥지 틀고 사는 갈매기들이 마중 나왔다.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매기에게 과자 주는 승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저 갈매기가 괭이갈매기야 울음소리가 고양이 소리와 비슷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지. 이곳 독도가 경남 통영의 ‘홍도’, 충남 태안의 ‘난도’와 함께 괭이갈매기의 집단 번식지야.”
정 선배의 말이었다. 갈매기는 다 같은 줄 알고 있었던 달수. 어지러이 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질서를 지키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정 선배가 말을 이었다.
“괭이갈매기는 평생 짝을 바꾸지 않는다네. 일부일처제인 거지. 암컷이 알을 품는 일을 전담하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가면서 알을 품지. 부화한 뒤에도 교대로 새끼를 돌본다네. 독도의 주인은 저 괭이갈매기야”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 정 선배의 독도 사랑 앞에 달수의 고개가 숙어졌다. 정 선배야말로 독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의 주인이 괭이갈매기란 말에는 낯도 조금 붉어졌다.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배는 기어이 접안 하지 못했다. 우리의 관심이 부족해 독도가 서운했던 걸까? 일본이 망발할 때만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잠잠해지면 금세 잊어버렸으니 독도가 섭섭해할 만도 했다. 그래서 좀체 입도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본적을 독도로 옮기겠다며, 그리고 기회가 되면 독도에서 살고 싶다는 정 선배의 부드럽고 따뜻한 애국심 앞에, 끓는 냄비 같은 자신의 애국심을 부끄러워하며 달수는 또 한 번 낯을 붉혔다.
냄비처럼 급하게 뜨거워지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오래가는 정 선배 같은 사랑을 독도는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렇게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양은 냄비처럼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국민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라는, 자주 오라는 당부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다음을 기약하며 선실로 들어갔다.
저속선이 되어 독도를 한 바퀴 선회한 배가 다시 속도를 높였다. 달수는 앞으로 독도를 자주 찾으리라 다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독도를 자주 찾을 것을 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트에 등을 묻었다. 선창 밖에서 괭이갈매기가 날갯짓한다. 또 오라고. 자주 오라고.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명확해 지겠지요. 우주의 팩트에 의해서, 더욱 건필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