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야화(14)
산삼
송서방은
머슴살이 십년에 한푼 안 쓰고 모은 새경으로 화전 밭뙈기가 딸린 산을 사 손수 벽돌을 찍어 산비탈에 초가삼간을 짓고, 부엌데기 삼월이와 혼례를 치러 살림을 차렸다.
나무를 베어내고 나무 뿌리를 캐내어 밭을 만들며 살림이 불어나는 재미에 송서방은 달밤에도 밭의 돌을 주워내고 거름을 져 올렸다. 달덩이 같은 아들딸 낳고 밭뙈기는 늘어나 보릿고개에도 송서방네 곳간엔 곡식 가마가 쌓였다.
삼월이도 부지런하기는 송서방 못지않아 아이 젖을 물리며 호미로 밭을 맸다. 보리 심고, 밀 심고, 콩 심어 남는 곡식은 장에 내다 팔아 논도 두마지기나 사 쌀농사까지 지었다.
어느 봄날, 송서방이 산비탈 밭에서 땀을 쏟으며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삼월이가 함지박에 점심밥을 이고 올라왔다.
개울가 멍석바위에 밥 한양푼과 된장 한공기 점심 밥상을 폈다. 송서방이 개울에서 윗도리를 훌렁 벗고 세수할 동안 삼월이는 스무발자국 산 속에 들어가 쌈 싸먹을 곰취를 뜯었다.
“만석 아빠~.”
봄 하늘을 찢는 삼월이의 고함소리에 산돼지가 나타난 줄 알고 송서방은 괭이를 들고 산 속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삼월이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말했다.
“여기 좀 보시오.”
송서방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지난 가을에 맺은 빨간 열매를 아직도 조롱조롱 매단 산삼 밭!
허겁지겁 한뿌리를 캐 마디를 세어보니 백년이 넘었다. 백년근 산삼 스물두뿌리를 캐 이끼로 덮어 삼월이의 치마에 싸 점심상을 차려 놓은 멍석바위로 내려왔다.
송서방은 그중 두뿌리를 개울물에 씻어
“우선 우리 몸을 보신하세”
하며 삼월이에게 내밀었다. 송서방과 삼월이는 산삼 한뿌리씩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송서방은 벌떡 일어나 괭이·삽·호미·지게 그리고 쟁기를 개울 아래 멀리 던지면서
“이제 이 지긋지긋한 농사일은 그만해야지”
하며 감격에 겨워 삼월이를 껴안았다.
산삼을 싸느라 치마를 벗은 삼월이의 고쟁이 사이로 희멀건한 엉덩이가 비집고 나왔다. 둘은 춘정이 발동해 멍석바위에서 미친 듯이 운우의 정을 나눴다.
저자거리, 한의원 방에서 송서방이 산삼 보따리를 풀었다. 산삼 한뿌리를 집어든 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산삼 저 산삼 모두 속이 비어 엄지, 검지로 누르자 납작해졌다.
송서방은 사색이 돼
“조금 전에도 멀쩡했는데!”
라고 말했다. 의원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산신령이 노하실 짓거리를 했나벼….”
송서방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삼월이는 일손을 놓고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송서방네 밭은 잡초로 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