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성주의의
기결과 윤석열 5년 ]
- 이강 -
‘윤’의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엣지 있게 느꼈던 대목을 꼽으라면 다들 비슷할거다.
‘반지성주의’ 얘기.
나로선 귀가 번뜩였었던 말. 윤이 이 표현을 여러차례 언급할 때 나는 그가 직접 엄선한
단어였음을 직감했다.
‘반지성주의’가 굳이 이념이나 학설로 이름 붙여줄 건은 아니다. 말 그대로
무식쟁이들이 되는대로 떠들면서 식자층들 기죽이고 사회적 메시지를 압도하는 광경,
대충 흔했던 20세기적 양태들을 가리킨다. 요컨대 윤석열이 콕 짚어 국민 앞에 천명한
'반지성주의’는, 사실 ‘인민주의’이다. 참과 거짓이 과학 대신 다수 인민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철학이 ‘옳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노정이라면, 옳음은 대개 두가지 경로로
확인된다. 첫째, ‘과학적 성찰’. 기름기 뺀 순수이성, 논리, 통계, 계산으로 따져 묻는거다.
자유시장론이 사회주의보다 옳다는 ‘정론’은 숫자로 결과로 옹호된다. 평균수명, 단백질
섭취량, 유아사망률, 국가 GDP와 1인당 소득, 인구 대비 의료진과 병상 숫자 등.
뭐든지 깔끔한 숫자들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것.
두번째는 ‘역사적 축적’이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 대개 멍청한 운동권들 일수록 잠간의
엣지있는 아이디어, 청춘스런 재치로 세계를 재구성하려든다. 혁명꾼들이
엉성한 까닭이다.
이 경우는 오히려
‘순수이성’이 세상을 망치는 ‘반지성주의’로 빨려든다.
옛날에 프랑스혁명을 매섭게 비판한 ‘구스타프 르봉’이 말했다. ‘젊은 청년들일 수록,
그들의 순수이성의 눈에 비취는 사회는 한심해 보이는 법’이라고. 그래서 사회라는
낡은 건물을 못마땅해 하면서 일거에 부수려 든다는 거다. (운동권들의 부동산3법
강행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그러나 이 사회는 똑똑한 소수가 구축한게아니다.
역사 속에서 수없이 이어진 세대와 세대가 다양한 필요 속에 축적한 산물이다.
르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회는 논리의 작품이 아닌 역사의 작품이다.’
윤석열은 검사 출신임에도 의외로 영미권 보수주의의 저작들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하이에크, 포퍼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둘다 20세기 전반을 휩쓴 반엘리트주의적
파시즘에 학을 뗐던 인물이다. 함의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이 지목한 우리 사회 반지성주의는 기결과 로직이 분명하다. MBC나 김어준
같은 프로파간다 장치꾼 들이 군불을 떼고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시민단체들은
피켓 들어주며, 떼로 목청 높이는거 좋아하는 신도시 맘카페, 그리고 사실상 중국 정부의
지휘하달 받는 중국계들이 여론 조성으로 거대한 기결을 이룬다. 거대한 부조리의
흑구름 더미다. 그들은 한세기 한국사회의 성공과 성취들을 떼의 힘, 목청의 힘으로
피갈음하려고 했다.
윤석열은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이다. 수사, 위법척결, 응징에 가장 특화된. 이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해 졌다. 검찰, 경찰, 국세청, 방통위, 금감원, 국정원, 아마 엄청나게
바빠질거다. 큰 싸움의 장이 열렸다. 검찰청 포토 라인에 익숙한 얼굴들이 울상짓는
모습, 지긋지긋하게 보게 될거다.
세상이 꽤 시끄러울 것 같다.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