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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월 시인께서
열다섯 번째 시집을 내셨습니다.
칠순을 훌쩍 넘겨 여든 가까이 되셨는데도
중단 없는 열정으로 김천문화원과 백수문학관에서
시 창작 강의도 하고 꾸준히 시집을 내고 계시네요.
『오래 가까운 사이』
‘꽃이 시를 쓰게 할 때가 많지만
그 향기 오롯이 전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하는 말씀에서
꽃을 사랑하며 자연과 함께 하는
노시인의 삶을 오롯이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자연물들은
그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
감꽃의 시간 / 권숙월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감꽃의 시간, 바닥 민
심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듯 위를 버린 꽃이
바닥을 읽고 있다 감꽃 줍는 손 많을 때는 쳐다보는
눈 또한 적지 않았다 배고픈 시절 주전부리로 목걸이
로 사랑받던 감꽃 외면할 수 없다 풋감도 소금물에 삭
히어 먹던 그 시절엔 집집이 감나무 한두 그루 마당
가에 있었지 담 너머로 가지를 뻗어 감꽃 절반은 골
목에 떨어졌지 곶감도 홍시도 만들어 먹는 이 별로
없어 감꽃 필 자리 줄어들었다 그래도 떠나지 못하
여 시골 빈집 지키는 감나무 올해도 어김없이 꽃의
시간을 지켰다
*
능소화 독백 / 권숙월
농염한 눈빛 좀 하였다고 그게 흉인가 이상하게 보
는 눈이 문제가 있는 거지 겉보기엔 어떤지 몰라도 호
락호락하지 않아 누가 뭐래도 내 중심은 내가 지켜 빛
나는 자리라고 기웃거린 적 없고 화환에도 꽃다발에
도 끼어든 적 없지 언제나 기댈 데 있는 변두리를 좋
아하지 주인이 원하는 자리 아니면 앉지도 서지도 않
아 어느 누구에게도 품을 내어준 적 없으나 하늘이 내
려와 안아주곤 하지 스스로 시가 되지는 못했지만 시
인들이 써준 시가 수백 편이지
*
개망초의 농사 / 권숙월
배운 게 농사일밖에 없다더니 일하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밭을 놀리더니 올해도
또, 기운 없어 농사도 못 짓겠다는 말 빈말이 아니었
던가 기름진 밭 버려두고 자식 따라간 것일까 요양원
신세 지다가 그마저도 싫어 일이 없는 곳으로 간 것
일까 농작물 자라는 데는 발붙이지 못한 개망초, 빈
밭으로 버려두면 욕먹는다고 꽃으로 덮었다 사람 손
길 가지 않는 밭을 꽃밭으로 가꾸었다 제발 일 좀 그
만하라는 자식들의 말 귓전으로 듣는 농심처럼, 불볕
더위 이기며 땅을 지킨다
*
엄마 향기 / 권숙월
엄마~ 봄 햇살 같은 말, 여섯 살까지 입에 달고 살
았지만 그 뒤로는 아니다 남편 잃고 두 아이만 보고
살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을까 어린 자식 남겨두고
남의 아내가 된 엄마, 속으로 미워하며 원망을 키웠
다 어느날 밤, 기별 없이 찾아왔을 때도 싫다며 달아
났다 청년이 되어서야 엄마 마음 알았지만 표현할 시
간은 많지 않았다 새로 이룬 가정에서 네 아이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남편까지 하늘나라 보낸 뒤 누나에게
얹혀 말년을 산 엄마, 오십 년 가까이 홀로 띠를 덮고
누운 전 남편 생각에 얼마나 아팠을까 마을 앞산으로
두 눈 감고 돌아오신 날, 아버지 옆자리에 눕혀드렸
다 때맞춰 꽃 피운 아카시아 참 잘했다고 새색시 적
엄마 향기 전해주었다
*
참새 손님 / 권숙월
참새 수십 마리 찾아왔다 날이 새기 바쁘게 놀러
온 조무래기들 제 세상 만난 듯하다 온 데가 놀이터
인 산을 벗어나 또래끼리 놀고 싶었을까 산 아래 작
은 터앝이 눈에 들었을까 목백일홍 능소화 목련......
매실나무 앵두나무 단감나무 손뼉 치며 반기지만 잠
시도 그냥 있지 못한다 고추 고랑 감자 고랑에서 놀
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진다 빈집이 늘어가고
둘이 아니면 혼자서 늙어가는 마을의 끝 집이다 코로
나로 손주 얼굴 보기 힘들지만 참새가 빈자리를 채워
준다 참새들이 안 오는 날은 터앝이 한없이 넓어 보인다
*
비의 등 / 권숙월
곱게 온 비가 어린 손주처럼 사랑스러웠을까 비의
등 도닥여 주고 싶었다는 오십 대 중반, 포도 농사 지
으며 시 공부하는 주부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극심한 가
뭄으로 지친 땅의 마음 알아챈 듯 오기 바쁘게 스며
드는 비, 한 방울도 놓치기 아까운 것 같다 새싹들 다
칠세라 곱게 온 비에 힘이 난 매실나무 꽃소식 전한
다 생강나무 표정은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밝아졌고
수선화는 잊었던 애인을 떠올린 듯 꽃 엽서 서너 장
살포시 내밀었다
첫댓글 축하
축하드립니다
세상에나ㅡ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시인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도합니다 ()
권숙월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 농촌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지지요.
엄마 얘기를 담담히 풀어놓으실 땐 울컥했습니다.
선생님, 촌 시인의 시를 이렇게나 좋게 써주셨네요.
읽으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파란하늘이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정겹고 따뜻하면서도 푸근했습니다.
시 를 읽으면서 제 어릴적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그렇지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도록 안내해 준 글이었어요.
읽는 동안 애잔하면서도 마음이 따스해졌더랬습니다.
제목도 참 좋습니다. 「오래 가까운 사이 」
책 표지도 참 이쁘구요.
우리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보이는 시입니다.
늘 건강하시어 오래도록 건필하셨음 좋겠습니다.^^
김천을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이시지요.
정말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저도 빕니다.
시가 차~~암
정감이가고
우리들이 흔히
겪었던 일들이라
금방 공감이 가는 시군요
이름이 여자이름같았는데 남자분이시군요
김천의 대표 시인이시지요.
글을 읽으니 저절로 고향의 정경들이 생각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