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은의 「론리 푸드」감상 / 이수명
론리 푸드
임지은
식초에 절인 고추
한 입 크기로 뱉어낸 사과
그림자를 매단 나뭇가지
외투에 묻은 사소함
고개를 돌리면
한낮의 외로움이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다
나는 이미 배가 부르니까
천천히 먹기로 한다
밤이 되면 내가 먹은 것들이 쏟아져
이상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식초 안에 벗어놓은 얼굴
입가에 묻은 흰 날개 자국
부스러기로 돌아다니는
무구함과 소보로
무구함과
소보로
나는 식탁에 앉아 혼자라는 습관을 겪는다
의자를 옮기며 제자리를 잃는다
여기가 어디인지 대답할 수 없다
나는 가끔 미래에 있다
놀라지 않기 위해
할 말을 꼭꼭 씹어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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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 1980년 대전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1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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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이 론리 푸드일까. 혼자서 먹는 음식일 수 있고, 외로운 상태에서 먹는 음식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외로움 자체가 바로 론리 푸드일 수 있다. 즉 외로움을 먹는 것이다. “식초에 절인 고추/ 한입 크기로 뱉어낸 사과/ 그림자를 매단 나뭇가지/ 외투에 묻은 사소함”은 모두 론리 푸드이다. 나는 그 외로움의 형태들을 하나씩 흡수한다. 집안 곳곳에, “고개를 돌리면/ 한낮의 외로움이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다.” 바라보면 모두 론리 푸드인 것이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배가 부르니까/ 천천히 먹기로 한다”고 할 때, 이미 외로움으로 포만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론리 푸드를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먹은 것을 쏟아내기도 한다. 쏟아내도 론리 푸드는 큰 변형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 부스러졌을 뿐, 외로움은 상하지 않는다. “부스러기로 돌아다니는/ 무구함과 소보로”가 그렇다. 무구함은 때가 묻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외로움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천진한 소보로와 함께다.
이수명(시인)
첫댓글 무구함은 때가 묻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외로움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천진한 소보로와 함께다.
이수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