댑싸리 전설(6)
고샅 양쪽 길섶 댑싸리 자리에 잡풀이 잔뜩 솟았다.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도 않는 바랭이가 대부분이다. 풀에 묻혀 댑싸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볼 수 없어 호미로 땅을 찍으며 풀을 뽑아나갔다. 댑싸리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뽑고 있는데 고샅 끝 동네 길로 누가 지나가고 있는 기척이 들린다. 허리도 펼 겸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 운동을 하며 마당을 한참 서성이다가 다시 고샅으로 나가 계속 뽑았다. 댑싸리에 난 풀 뽑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차린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보고 나한테 말을 걸어올까 봐서다. 거기 풀은 왜 뽑느냐, 곡식도 아닌 댑싸리를 뭐 하려고 그리 힘들여 가꾸느냐며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댑싸리를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심을 때도 그들은 그걸 왜 그리 심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재미로요.’ 하고 웃기만 했다. 지금도 재미로 그런다고 하면 되지만, 늘 그렇게만 말하기도 민망하다. 아내가 댑싸리를 좋아하던 생각이 나서 이렇게 심고 가꾼다는 말을 하기가 열없기도 하고, 말을 하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 아릿한 것이 솟아오를 것 같기도 하다.
풀을 다 뽑고 보니 댑싸리 모양이 들쑥날쑥하다. 손바닥만 한 것도 있었지만, 작은 것은 땅을 기는 듯한 것도 있고, 자라다가 만 것도 보인다. 작년보다는 잘 자라지 못했다. 가꾸는 중에 올해가 가장 잘못 자란 것 같다.
저것도 뭘 아는 걸까. 난 지금 난병難病을 앓고 있다. 겉보기는 멀쩡해도 치료를 안 하고 두면 치명까지 우려된다는 진단을 받은 병이다. 내가 그런 병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이들도 알고, 안쓰러워하느라 이리 못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내가 댑싸리를 가꾸는 까닭과 심정을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옆집 부부다. 연배들도 비슷하여 나도 그 집 남편과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아내는 부인과 더 가깝게 지냈었다. 아내가 댑싸리 씨를 뿌려 가꾸려 했던 걸 알고 있다.
아내는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워 파랗게 솟아오를 때, 몸이 성치 않다며 대처 아이들 집으로 갔다. 그러고는 댑싸리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 집에 있으면서 나에게 좀 크거든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옮겨 심어달라고 했었다. 그 말을 사 년째 지키고 있다.
그 부부는 그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왜 가꾸려 했는지는 나도 그들도 모른다. 아내가 들려주지 않아서다. 복슬복슬한 모습이며 가을엔 발갛게 물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무슨 약재로도 효용이 있다는 걸 알고 그리 쓰기 위해서였을까. 그런 짐작만 할 뿐이다.
제바닥에 떨어진 씨앗이 올봄에도 옹기종기 싹을 틔웠다. 그것을 한 줄로 가지런히 옮겨 심었다. 옮겨 심고 나서 내가 집을 비워 물을 못 줄 형편이면 옆집 친구가 와서 물을 주기도 했다. 올해는 잘 자라지 않는 걸 보고. 농사를 잘 아는 그는 연작의 폐해일지도 모르겠다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내가 몸이 온전치 못한 걸 저들이 따라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친구의 권대로 성장을 촉진하는 비료도 주어 보고, 약물도 뿌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것은 오히려 말라 죽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밭을 옮겨서 다른 곳에 심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꾸지 않은 것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 것 같다. 고샅 이웃 밭에도 나고, 밭둑에도 솟아나서 크고 있다.
아내가 짓던 밭이었지만, 아내가 간 뒤 농사를 잘 짓는 옆집 부부에게 지으라고 주었다. 댑싸리가 그걸 알았을까. 그래도 밭에 난 것은 이웃에게 미안해서 내가 몰래 뽑아내기도 했다. 밭두렁에 난 것은 그대로 두었는데, 그게 탐스럽게 잘 자라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길에까지 씨가 날아가 길 틈서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도 있다. 그걸 보면 내년에는 땅을 바꾸어 볼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아내의 뜻과는 다를 같다. 내 병이 완치되면 잘 살 수 있을까도 싶지만, 그건 망상에 지나지 않을 기대다.
그런데 저 밭둑에서 사는 것들이며 길 틈서리에 난 것들은 누가 가꾸는 것인가. 하늘이 바로 가꾸는 게 아닌가, 그래서 쑥쑥 저리 잘 크고, 고샅의 것은 심신이 고단한 내가 가꾸는 것이라 잘 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그래도 이제 땅 기운을 앗아 먹던 잡풀들을 다 뽑아 주었으니 좀 달라지지 않을까. 이리 애타 하는 마음을 이것들도 좀 눈치채어 주지 않을까. 아내도 이것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저들도 이러저러한 마음들을 잘 알아 때가 되면 곱게 물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붉게 물드는 날이면 아내가 와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본다면 미소라도 짓겠지.
풀을 뽑아낸 댑싸리에 마음 모아 물을 뿌린다. ♣ (2026.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