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에 떠난 불한당 사이를 걷다는 태안 몽산포해수욕장부터 안면도 백사장항이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태안 반도의 끝 드르니항까지 걸었다.
드르니 항에서 백사장항까지 조선시대 건설한 운하를 넘는 인도교 공사가 올 안으로 마무리 된다니
다음에 오게 되면 이어서 꽃지까지 노을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군에서 최근에 시로 승격한 태안이 솔모랫길이라 명명한 이 길은 그 이름처럼
바닷가 모래밭을 보호하듯 솔숲이 나란히 함께 한다.
솔향과 함께 걸으려면 솔숲으로 들어가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시간이 만든 수많은 풍경을 감상하려면
모래사장으로 내려서면 되니
하나의 길을 걸으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처음부터 물 빠지는 해변을 따라 걷다보니 태안군이 개설한 솔모랫길을 벗어나
태안반도의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청산포, 마검포, 곰섬 해안을 더 경유하는 명실상부한 해변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만난 몇킬로미터씩 이어진 바닷가 인적끊긴 길 아닌 길은 바람조차 숨죽인 고요의 바다여서
귀기울여야 바다의 속삭임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걷다 순간 파도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 아 여기가 바다였구나 마음이 소스라쳐 깨어나길 여러번
광할한 모래밭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에 눈과 마음이 모두 머문다.
솔모랫길을 지나온 나는 솔모랫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시간 사이에서 시간이 만든 풍경에 빠져 거리의 간극을 메우는 시간 사이를 걸었던 것 같다.

몽산포해수욕장에 펼쳐진 너른 백사장. 차가 달려도 끄덕없는 단단한 백사장
다음에 걷는다면 몽산포 항에서 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백사장 끝 비죽 비어져나온 곶이 항구다

걷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래밭에 그려진 시간의 그림들.
세월에 풍화된 조개의 잔해와 달의 인력을 받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빠져나간 바닷물이 그려 놓은 그림들
정지된 문양속에 숨겨진 시간의 흐름에 마음이 짠하다.

경사에 따라 모래의 질에 따라 물이 빠지며 그린 그림은 다 다르다.
깊게 파인 발자국에서 바닷물에 녹아 든 모래밭 그림이 그려진다.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저기를 걸어간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같은 곳 같은 바닷물이라도 이렇게 다른 형상을 만들었으니
천변만화한 자연의 경이가 아름답다.

한 켜가 한 번의 출렁임이니 한 켜씩 밀려나가는 바다는
부드럽게 들어오니 차마 떨쳐 버릴 수 없어
더욱 매몰차게 뿌리치며 깍아지른 벼랑을 만든다.

닫힌듯 열린듯 미로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이 죽음이라는 출구를 찾아
미로를 헤매이는 것은 아닐까?

고랑마다 쉼터처럼 막혀있어 눈길을 끌었다.

바닷물이 동료와 떨어져 육지로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다가 온기는 떨어지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육지의 추위를 버텨내다 끝내 얼음기둥으로 남은 흔적
사이로 들어선 침입자들

한 때는 바다를 활보했던 불가사리
파도에 떠밀려와
모래밭이 고향인 고동 옆에 잠들어 저 바다를 꿈꾼다.

얼마나 단단히 다물었던 입인가
그 안에 소중히 간직한 모든 것 내어주고
곡장 두른 유택에 누워있다.

누군가의 발을 감싸 주고 바다를 누볐을 장화
바닷가 고운 모래위에 조가비 장식달고 누워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장화가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버려진 그물

인간이 설치한 구조물도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생명의 나무
바다에서 탄생한 생명이 육지를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을 근래에 본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예술은 자연의 모방일뿐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청사포 해변에 설치한 거북이와 토끼상
별주부전의 고향이 이곳이다라는 알박기의 현장
행복한 토끼의 표정에서 용궁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보인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라면 경고일까

바다를 가둬 고기를 잡고자 만든 독살
돌 하나 하나를 모두 져다 날라 만든 인공그물이다.
전통고지잡이 방식의 하나이며 이런 독살 하나 갖고 있으면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되었다는데
파도에 쓸려 저 멀리 사라진 돌을 져 나르던 노고가 보상받았다니 다행이다.

청포대 해변을 걷고 있는 일행들
솔모랫길은 이미 해변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 들고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선지도 모르고 걷고 있다.
저끝 곶을 돌아들면 마검포 해변이다.
길없는 길을 가는 나그네
나그네 딛는 발걸음에 새 길이 열리니
잘못든 길이 어디 있으며
원래 있던 길은 처음부터 길이었더냐
첫댓글 모래사장 위의 장화 하나가 퍽하고 다가오네요~멋집니다~~
청한님 사진으로 보니 퍽퍽한 백사장길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글케 이쁜 불가사리가 있었는지...
바다가 파도라는 힘으로 그려논 주름이 아주 인상적이고....난 그누구에게 절실한적이 있는가...
내가 못가니 좋은 길을 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