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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7 - 순애보
S#1 은영 회사 빌딩전경 (낮)
자막. 1년 후. 1998년 3월.
S#2 대형 회의실 (낮)
넓은 회의실 한쪽 모서리에 은영과 부장이 앉아있다.
권고사직 개별면담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 영 (놀라며) 저보고 퇴직신청을 하라구요...?
부 장 (착잡한) 어쩔 수 없잖아. 재벌이 무너질 판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룹 전체인력의 15%, 2만명 이상을 감원해야
돼. 비용을 줄이자니 만만한 게 홍보부고...
은 영 (속상한) 만만한 게 홍보부가 아니라, 여직원이겠죠...
부 장 최은영씨...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착잡한 듯 일어
나 서성거리며) 내가 아끼던 후배라 어떻게든 남아있게 하려고 애
썼어.
은 영 이건 너무 해요, 부장님. 전 열심히 일했어요. 사실...
퇴직이 아니라 승진을 원했다구요... 저보다 뒤에 입사한 장상두씨
는 대리 달고, 저한테는 일할 환경도 마련해주지도 않고서, 이젠
나가라니... 정말 잔인하시네요.
부 장 (옆에 앉으며 어깨를 안으며) 은영씬 집안도 괜찮고 먹
고 살만 하잖아. 다른 사람들은 가장이고, 형편도 안 좋아. 여기서
나가면 바로 노숙자 되요.
은 영 전 못해요. 순순히 사표는 못써요. (일어나 걸어나온
다.)
부 장 (안되겠다는 듯, 뒤통수에 대고) 버텨봐야 언제 또 퇴
출될지 몰라. 그나마 특별위로금 주면서 나가라고 할 때 떠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대로 나와버리는 은영.
S#3 회의실 밖 복도 (낮)
걸어나오는 은영.
문 밖에 모여 서성이던 서너 명의 직원들이 불안한 듯 은영을 돌아
본다.
벽엔 '명예퇴직자 자원신청 받습니다.' 공고가 보인다.
남직원1 (은영에게) 어떻게 됐어?
여직원1 (후배, 고졸 여사원) 뭐래요, 언니?
은영 말없이 착잡하게 그냥 걸어나온다.
그 뒤로 또 다른 직원이 회의실로 들어가는 게 보이고...
은 영 (N) 청춘이란... 인생이라는 티켓을 들고 혼잡한 대합
실에 서있는 것과 같다. IMF까지 덮쳐서 가까운 미래마저 알 수 없
었고, 정말 혼잡한 대합실 그 자체였다.
S#4 홍보실 (낮)
착잡하게 자리로 오는 은영,
등판에 '꽃배달'이라고 적힌 남자가 은영을 비껴 지나간다.
은영 무심코 와보면, 책상 위에 빨간 장미꽃다발과 카드가 놓여있
다.
은 영 (급하게, 의아한) 저기요, 아저씨! 이 꽃 누가 배달 시
켰어요...?
배달맨 (돌아서며) 글쎄요... 전화로 들어온 주문이라...
은 영 그래두 결제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배달맨 난 배달만 하는 사람이라서요... (나간다.)
남직원2 (배달맨이 빠져나가는 근처에서) 은영씬 좋겠어?
쑥스러운 표정 지으며, 의아해서 카드를 펴보는 은영.
'은영씨와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
고 인쇄된 글자가 찍혀있다.
여직원2 (고졸. 와서 보며, 감탄) 벌써 몇 번째야? 정말 누군
지 짐작도 안가요?
은 영 (난감한 미소) 응...
여직원2 (속삭이는) 언니, 혹시 이 안에 있는 남잔 아닐까? (간
다.)
그래? 하는 표정으로 사무실 내 남자들을 유심히 보는 은영.
남자들, 무관심하게 각자 일한다. 복사하고, 전화 받으면서 컴퓨
터 자판 두드리고, 광고시안 들고 의논하고, 신문보고... 대리자리
의 상두도 스쳐지나가며 보인다.
은 영 (N) 누굴까...? 일주일에 한번씩 꽃을 보내오고 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니, 다소 위안이 되었
다.
설레는 듯 꽃다발 내려다보는 은영.
S#5 소제목
책상 위에 놓인 꽃다발 밑에 떠오르는 소제목.
7. 순애보(殉愛譜)
S#6 여자 화장실 앞 입구 (낮)
은영, 꽃다발과 화병을 들고 들어서려는데,
안쪽에서 여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멈춰 듣게 되는 은
영.
여직원1 (E. 소근소근) 부장사모 생일까지 챙겨야 되고, 증말
짜증나.
여직원2 (E) 그럼 어떡하냐? 부장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퇴
출 안 당할라문 선물이라도 갖다바쳐야지.
여직원1 (E) 현옥이 그년이나 나갔으면 좋겠는데... 은영언닌
상무님이 이뻐하니까, 부장이 감히 손을 못 댈거구... 아무래두 난
가봐...
여직원2 (E) 그래, 다들 그냥 형식적인 면담이지, 고졸인 우리하
구 같겠냐?
은 영 (듣다가 안되겠는지, 들어가서) 왜들 그래? 나두 권
고사직 받았어. 이런 때일수록 여직원들끼리 단합을 해야지!
화장을 고치다 말고 뻘쭘하게 시선 피하는 여직원1, 2.
S#7 홍보실 (낮)
부장에게 선물을 내미는 남직원1.
남직원1 사모님 생신 축하드려요.
부 장 아이, 뭘 이런 걸 다...
남직원1 별 건 아닙니다. (쑥스럽게 가고)
부장 그 선물을 책상 옆 쇼핑백에 넣으면 이미 가득 차있는 선물
들.
부 장 (나직이) 어이, 장대리.
장상두 (깍듯한) 예. 부장님.
부 장 (차 키 넘겨주며) 이거 내 차에 미리 좀 갖다놓지.
장상두 예. (쇼핑백 들고 나간다.)
그런 장상두를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이내 괴로운 듯 고심하는 은
영.
화병에 꽂힌 꽃이 보이고...
안되겠는지, 은영 핸드백에서 지갑만 챙겨들고 얼른 나간다.
S#8 백화점 여성속옷매장 (낮)
죽 진열된 여자 속옷들을 보다 골라 드는 은영. 괴로운 표정이다.
점 원 중년여성들이 좋아해요. 그걸루 하시게요?
은 영 아뇨, 잠시만요. 사야될지, 생각 좀 더 해보구요...
여점원, 은영이 못마땅한데,
이때 매장 안쪽에서 점원을 부르는 남자손님의 실루엣.
남 자 (E) 저, 여기요!
여점원 남자손님에게로 가고,
골랐던 속옷을 들고 망설이는 은영. 그 위로 들려오는 남자손님의
목소리.
남 자 (E) 사이즈를 몰라서 그러는데요... 가슴은 아가씨 정
도 되구요...
이때 은영, 결심했는지 여점원을 향해 돌아서며,
은 영 (급하게) 이거 좀 빨리 포장해주시겠어요? (하면서 보
면)
남자손님이 경수다. 양복차림에 말쑥해졌다.
여점원의 가슴근처에 손모양을 만들어 설명하고 있던 경수도 은영
을 보게 된다.
은 영 (순간 외면하며 진열대 사이로 숨는) 어? 쟤가 왜 여깄
지...?
경 수 (점원에게) 잠시만요... (자세히 보려고 은영에게 다가
온다.)
은 영 (다가오는 낌새 느끼며. 속옷 손에 든 채 슬금슬금 도
망하는) 어떡하지? 미치겠네...?
경수, 의아해서 점점 빨리 따라오고,
은영, 걸음 더 빨라지며 매장 밖으로 향하는데,
여점원 (놀라서, 달려오며) 아니, 저 여자가? 아가씨! 어디 가요?
도둑이야!
은영, 그제야 손에 든 속옷 보며 난감하게 멈춰 서는데,
여점원 (달려들어 뺏으며) 이걸 그냥 들고 가면 어떡해요? 계산을
하셔야죠?
은 영 (난감한데) 아니, 그게요... (다가온 경수 피하며 더 난
감하게) 아이, 씨...
경 수 (은영을 빼꼼이 보며 고개 들이미는) 너였구나...? 어
쩐지...
여점원 (경수에게) 이 여자 상습범이에요?
은 영 (놀라며) 네? 아니요. 그거 훔칠려구 그런 게 아니구
요...
이때 은영을 보며 어처구니없게 웃는 경수.
S#9 백화점 내 커피 전문점 (낮)
경수, 커피를 들고 와 앉으면, 은영이 맞은 편에 앉아있다.
은영과 경수 옆에 쇼핑백이 하나씩 놓여있다.
경 수 너두 참, 내가 그렇게 싫었냐? 도망을 가게?
은 영 아니, 니가 싫긴...
경 수 그때 너 심하더라? 내가 아무리 실업자라도 그렇지, 그
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은 영 어... 어쩜, 내가 전화하지 말랬다고, 그 후로 정말 연
락한번 안했니...? 밥은 사줄라고 그랬는데...
경 수 됐어, 그냥 해본 소리야. (양복 깃의 회사뱃지 보여주
며) 이제 밥은 내가 살께! (우쭐대며, 명함 꺼내주는) 참, 내가 명
함 안 줬지?
은 영 (받아보며 약간 놀랍다는) 어머, 너 대명 그룹비서실
에 있니?
경 수 어, 입사성적이 좋았는지 면접 덕인지, 그룹비서실로
발령이 났더라?
은 영 아이엠에픈데, 너흰 괜찮니? 인력감축 안해?
경 수 하지~. 근데, 그거야 뭐 다른 부서 사람들 얘기고, 비
서실을 줄일 수 있니? 그룹 일은 비서실에서 다 움직이는 건데?
왜, 넌 무슨 문제 있니?
은 영 아냐, 나두 괜찮아. (얼른 화제 돌리며) 근데 너 용타?
취직은 언제 한 거야?
경 수 6개월쯤 됐나?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 줄 아냐? (뿌듯하게) 이번 명절 때는 집안 어른들께 용돈도
드리고, 처음으로 자식된 도리도 했다. 오늘도 엄마 속옷 한 벌 사
가는 거야.
은 영 그래... 잘됐다. 늦었지만 축하해.
경 수 (갑자기 씁쓸해지며) 근데, 아버지가 못보고 돌아가신
게 늘 마음에 맺혀.
은 영 (숙연해지며) 아버지 돌아가셨니...?
경 수 음... (표정 무거워지다가, 갑자기 생각난) 참, 너 그때
일 오해하면 안된다? 나 그때 정미랑 아무 일도 없었어.
은 영 그래, 누가 뭐래니...?
경 수 진짜야! 너 정미 걔가 어떤 앤지 잘 알지? 나 걔 땜에
아주 혼났다. 내가 정에 약하지 않냐. 그래서 일이 꼬인 건데, 이
건 믿어줘야 돼!
은 영 (시계 보며 일어나는) 그래, 믿을게. 저기 나 들어가봐
야 돼. 근무 중에 나왔거든.
경 수 (일어나며) 그래, 나두 빨리 조카내복 사러 가야겠다.
S#10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낮)
나란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경수와 은영.
경 수 (은영을 아래위로 보며, 나직이) 너 다이어트 하니?
은 영 아니.
경 수 지난번보다 날씬해진 거 같다? 예뻐지구.
은 영 (기분 좋다. 쑥스러운 듯 볼 만지며) 그래...?
경 수 너 애인은 있냐?
은 영 애인?
경 수 없구나. 잘됐다.
은 영 뭐가 잘돼?
경 수 너 핸드폰 번호 좀 불러봐라. (펜 꺼내고)
은 영 011에...
경 수 잠깐 잠깐... (종이가 없자, 손바닥에 적을까하다) 가
만 있어봐... (지갑에서 만원권 꺼내, 지갑에 대고 쓰려는) 불러.
은 영 011에 936에 5742.
경 수 (적고, 돈 다시 지갑에 집어넣으며 씩 웃는) 다시 만나
서 반갑다, 야.
은 영 (반갑긴 하다.) 나두...
이때 에스컬레이터 끝나자,
경수는 매장에 남고, 은영은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계속 내려
간다.
경 수 (손들어 보이며) 언제 한번 보자. 조만간 연락할게.
은 영 (손 살짝 흔들며) 그래. (돌아선다.)
은영을 보다가 돌아서는 경수. 기분이 좋다.
혼자서 내려오는 은영. 경수가 서있던 뒤쪽을 힐끔 돌아보며 괜히
미소짓는다.
S#11 유아복 매장 (낮)
진열된 유아복을 보면서, 은영을 만난 기분에 취해 흐뭇하게 웃는
경수.
그런 경수를 보며 다가오는 희정. 눈에 안대를 하고있고, 매니저
명찰을 달고 있다.
희 정 아들이세요? 딸이세요? 첫아이 신가봐요?
경 수 네? 내가 결혼한 것처럼 보여요? (억울하다는) 총각이
에요!
희 정 어머, 죄송해요. 너무 흐뭇한 표정으루 아기옷을 보시
길래...
경 수 (무뚝뚝하게, 여자애 옷 가리키며) 이걸루 주세요. 내
년까지 입게 넉넉한 걸루요.
희 정 그러세요, 잠시만요... (안으로 들어가고)
(시간경과) 계산대 앞. 경수 다시 싱글벙글 생각에 빠져있으면,
희 정 (포장을 마치고 쇼핑백에 담으며) 다됐는데요, 손님?
경 수 아 예, 얼마죠? (하면서 지갑을 연다.)
희 정 4만원인데요...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경 수 (무심코 지폐를 꺼내 내밀며) 네, 있죠. (비밀얘기 하
듯) 좋아했던 여잘 우연히 다시 만났거든요. 쫌 전에.
이때 은영의 연락처가 적힌 지폐도 희정의 손으로 넘어가고,
희 정 (웃으며 쇼핑백 넘겨주는) 어머, 특별한 날이네요. 좋
으시겠어요...
경 수 (속삭이듯) 이번엔 잘 될 거예요.
쇼핑백을 받아들고 기분 좋게 돌아서는 경수.
S#12 홍보실 (밤)
부장이 퇴근을 하고, 직원들 일어나 인사를 한다.
부 장 먼저 들어갈게. 수고들 해!
직원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뵈요...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했던 은영, 나가는 부장을 보며 쇼핑백 손에
들고 어쩔 줄 몰라 낑낑댄다.
부장 밖으로 나가자,
에라 모르겠다, 선물 들고 무작정 달려나가는 은영.
그런 은영을 의아해서 보는 여직원1, 2.
S#13 동 빌딩 주차장 (밤)
달려오는 부장의 차를 막고 앞으로 들어서는 은영.
은 영 저기, 스톱! 부장님, 부장님...!
차 끽 서고, 놀란 부장이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온다.
부 장 아니, 은영씨! 놀랬잖아!
은 영 (숨차서, 선물 내밀며) 저기... 이거요... 사모님 드리세
요...
이때 멀리 따라나온 여직원1, 2이 기가 찬 듯 은영을 보고있다.
여직원1 뭐? 이런 때일수록 여직원들끼리 단합을 해야돼?
여직원2 말이나 하지 말지. 뒷구멍으로 호박씨는 다 까면
서...
S#14 경수 사무실 (밤)
그룹비서실이다. 넓은 사무실 한쪽 칸막이 안으로 가면,
경수 자리에 와 서있는 선배.
선 배 최근 자동차업계 빅딜동향과 가능한 통폐합 시나리오
별 대책을 문건으로 올려야 되거든? 내일 아침까지 1차 자료 좀 뽑
아 줘.
경 수 예. (싱글벙글)
선 배 (가려다가) 무슨 좋은 일 있어?
경 수 아니요.
선 배 아까부터 왜 그래? 요즘 연애하나?
경 수 아뇨. 실은요 선배님... (지갑에서 돈 꺼내 보여주며)
이게 뭔 줄 아십니까?
선 배 만원짜리잖아.
경 수 아이 참, 선배님은... 이게요... (앞뒤로 보면 아무 것
도 없다.) 이게 아닌가? (지갑에서 다른 지폐들 꺼내 보며) 어? 어
쨌지? (울상이 되며) 이상하네? 어디 갔냐?
선 배 이 친구가 싱겁긴... 내일 아침까지 부탁해! (가버리는
데)
경 수 (낙담해서) 예... (울상이 되어 지갑에 다시 돈을 챙겨
넣는데)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얼른 114에 전화를 건다.
경 수 (기다리며, 볼펜 들고 적을 준비) 대신그룹 본사 홍보
실이요.
S#15 홍보실 (밤)
퇴근 후 몇몇 사람들 남아서 일하고있고, 전화벨이 울린다.
신문을 보고 있던 장상두가 손만 뻗어 전화를 받는다.
상 두 대신그룹 홍보실입니다.
경 수 (E) 저, 최은영씨 좀 부탁합니다.
상 두 (문득 신문에서 시선 떼고) 실례지만 누구시지요?
경 수 (E) 친군데요. 서경수라고...
상 두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문으로 시선) 최은영씨
여기 그만 뒀는데요.
S#16 경수 사무실 (밤)
경 수 (놀라며) 네? 아까 낮에 만났는데, 그런 말 없던데요?
상 두 (E) 그건 제가 잘 모르겠구, 어쨌든 여기 관뒀어요.
(찰칵, 전화 끊긴다.)
놀란 경수, 어리둥절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이때 눈에 들어오는 백
화점 쇼핑백.
경 수 가만있어봐... 백화점이 몇 시까지 하지?
시계 보면서 허둥지둥 나간다.
S#17 백화점 로 비 (밤)
백화점 폐장을 알리는 방송과 경쾌한 이별송이 흐르고,
손님들이 백화점을 빠져나간다. 점원들 줄맞춰 서서 인사를 하는
데,
경수 거꾸로 사람들을 뚫고 매장 안으로 향한다.
점 원1 (부드럽게 경수를 제지하며) 손님, 영업 끝났는데요.
경 수 안돼요. 가야 되요! (허둥지둥 들어간다.)
S#18 동 유아복 매장 (밤)
계산대의 금고를 가로막는 여점원2와 경수가 실강이를 하고 있다.
경 수 그 안에 있다니까요?
점 원2 글쎄 지금 영업 끝났구요, 매니저님 와야 열지, 저 혼
잔 못 열어요.
경 수 아니, 이 아가씨가? 아까 그 아가씨 어딨어요? 나 미치
겠네?
점 원2 저기, 매니저님 오시네요.
경수 돌아보면, 이때 바삐 들어서는 희정.
희 정 어머, 왜 또 오셨어요?
경 수 (마음만 급해서) 아, 아가씨! 내 돈, 아까 내가 준 돈이
요. 그거 다시 내놔요.
희 정 (의아해서) 네?
(시간경과)
조용한 백화점. 여기저기 불도 꺼지고, 경비들이 귀찮다는 듯 보
고 있다.
금고가 열려있고, 희정과 여점원2가 만원권 지폐들을 모두 꺼내 살
펴보고 있다.
경수가 보려하면, 여점원2 혹시 돈이라도 집어갈까 몸으로 막아 경
계하고,
희 정 (점원2에게) 괜찮아. 보시라고 해.
점 원2 (마지막 돈을 보여주며) 봐요. 없잖아요.
경 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희 정 꼼꼼히 봤는데, 여긴 없네요.
점 원2 (돈 다시 챙겨 넣으며, 신경질) 다른 손님한테 거슬러
줬겠죠. 그게 아직까지 있겠어요?
희 정 (점원2에게 나무라는 눈짓하고, 경수에게) 죄송합니
다. 어떡하죠?
경 수 (실망하며) 할 수 없죠. 미안합니다. 괜히 저 땜에 퇴근
도 못하시고... 그럼. (인사하고 가려는데)
희 정 (그런 경수를 보다가) 저기, 그 거 없으면 그 여자분 다
시 못 만나시나요...?
경 수 (잠시 허탈한 미소) 그 여잘 제가 좀 아는데... 그쪽에
서 먼저 연락을 할 거 같진 않네요... (애써 웃어 보이고는 돌아서
는데)
희 정 그럼 잠깐만 밖에서 더 기다려 보실래요? 아까 중간정
산을 했거든요. 사무실에 올라가서 찾아볼게요. (급히 간다.)
경 수 아니, 저...! (부르려다 말고 그런 희정을 본다.)
S#19 인경 의상실 (밤)
맥주를 사들고 힘없이 들어서는 은영.
전면유리에 '가격다운, IMF 세일' 안내문을 붙이던 인경.
인 경 (은영을 보는 순간) 너 혹시 사표 썼니?
은 영 아니. 그냥 집에 같이 갈라구...
인 경 (소파로 가며) 앉어.
은 영 (앉아서 맥주부터 꺼내놓는) 나 오늘 결국 부장 와이
프 생일선물 사다줬어.
인 경 그럴 수도 있지, 뭐. 잊어버려. 우리두 이번 달 매출 마
이너스고, 패션쇼두 다 취소했어. 생산직 몇 명 내보내야 된다고
그러시더라. 나두 어떻게 될지 몰라.
은 영 (건배 없이 마시고) 회사 분위기 살벌하구, 진짜 출근
하기 싫어. 그냥 다 때려치고 시집이나 갈까...?
인 경 시집은 뭐 혼자 가니? 선이라두 보게?
은 영 아니... (기운 없이) 참, 나 오늘 백화점 갔다가 경수 만
났다.
인 경 뭐? 니네 진짜 질기다.
은 영 걔 많이 변했더라.
인 경 어떻게?
은 영 (좀 아까운 기분) 괜찮아졌어. 취직하더니 자신감도 생
기고, 제법 근사해진 거 있지.
인 경 걔가 근사해져 봤자지...
은 영 아냐,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더라. 그때 그렇게 매몰차
게 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제 내가 실업자가 되게 생겼으니, 입
장이 이렇게 거꾸로 될지 누가 알았겠니...?
인 경 너 설마 걔한테 생각 있니...?
은 영 (약한 모습) 아~니. 그냥... 자꾸 만나니까 인연인가~
하는 생각도 들구... 기분도 이상해... 연락 오면 한번 만나볼까
봐... (맥주를 마신다.)
인 경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은 영 (밖을 쳐다보며) 비가 오네?
S#20 백화점 밖 (밤)
셔터를 내린 백화점이 보이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벽에 붙어서 비를 피하며 기다리는 경수.
이때 직원용 출입문에서 희정이 나오고, 경수를 발견하고는 우산
을 쓰고 달려온다.
희 정 (경수에게 우산 씌워주며) 죄송해서 어떡하죠? 사무실
에도 없네요. 괜히 기다리시게만 하고, 죄송해요.
경 수 아닙니다. 그쪽에서 죄송할 건 없죠. 제가 번거롭게 해
드린 거니까... 고마웠어요. (인사하고 가려는데)
희 정 (따로 가져온 우산 내밀며) 저기, 이거 쓰고 가세요.
경 수 (우산을 보고, 희정을 보는데, 의아한 표정)
희 정 (미안한 듯) 벌써 비 맞으셨네...
경 수 (우산 받고, 희정의 이름표 보며) 신희정씨... 눈이 예
쁜 거 같은데, 그 안대는 왜 했어요?
희 정 (웃으며) 눈병이 나서요. 그럼... (인사하고 달려간
다.)
그런 희정을 멍하니 보는 경수.
경 수 잠깐만요! 신희정씨!
출입문까지 갔던 희정이 돌아보면,
경 수 (소리치는) 오늘 고마웠어요!
희 정 아니에요.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희정이 들어간 문을 잠시 멍하니 보는 경수.
괜히 기분이 좋아지며 우산을 펴들고 빗속으로 나선다. 알록달록
여자우산이다.
잠시 후 걸어가는 우산이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경수의 목소리 들려온다. ("빗속의 여인" 정
도?)
경수 (노래)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
네~...
경수의 노랫소리 점점 커지면서, 빗속을 즐겁게 걸어가는 경수의
뒷모습.
S#21 백화점 유아복 매장 (낮. 몽타주. 그 노래 음악으로 이어지면
서)
매장 앞에 와서 서는 경수.
경 수 (시침 뚝 따고) 애기 옷 한 벌 사러왔는데요.
희 정 (여전히 안대하고 있는) 어머, 또 오셨어요? 어제 사가
셨잖아요?
경 수 한 벌 더 살라구요. 이놈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크
지 뭡니까?
희 정 (의아하게) 그러세요...
S#22 경수집 마당 (낮. 몽타주)_야외
경수모가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다. (4, 5개월 정도 된 여자아기.)
아기 짐 보따리가 보이고, 경선과 두팔은 외출복 차림으로 놀려온
것이다.
경 선 (아기 옷을 펼쳐보며) 어머 오빠는? 애기옷을 왜 자꾸
사와? 비쌀 텐데...?
경 수 (아기에게 딸랑이 흔들어주며) 괜찮아. 하나밖에 없는
삼촌이 그 정도도 못하겠니?
조 부 (마루 끝에서 전구 들고 서서) 거, 내 옷이나 한 벌 사
와봐라.
경 수 예? (곤란한) ...
경수모 아휴, 아버님도 참, 증손녀한테 시샘하세요?
두 팔 (의자 위에서 처마 밑 전구 갈아 끼우며) 할아버님 옷
은 제가 사드릴게요.
S#23 백화점 매장 (낮. 몽타주)
눈병이 나았는지 안대를 착용하지 않은 희정.
희 정 어세 오세요! (하면서 보면)
희정을 보며 서있는 경수. 눈에 안대를 하고 있다.
경 수 (따지듯) 책임져요! 나 눈병 옮았어요!
희 정 어머, (의심의 눈초리) 정말이세요?
경 수 내가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여요? 빨리 책임져요.
희 정 죄송해서 어떡하죠...?
경 수 대신 저녁 사요.
희 정 (벙 찌는) ?
S#24 레스토랑 (그날 밤. 몽타주)
저녁을 먹고 있는 경수와 희정. 경수는 안대를 하고 있다.
희 정 (튕기는) 저 애인 있어요. 왜 이러세요?
경 수 거짓말. 맨날 혼자 퇴근하던데요?
희 정 근데 정말 조카가 있긴 있어요?
경 수 그럼요. 혹시 노인복은 취급 안하세요?
희 전 네?
경 수 저희 할아버지가 조카 옷만 사온다고 투덜대시네요?
<은영에 대한 대사 추가>
피식 웃고 마는 희정.
S#25 경수집 마당 (낮. 몽타주)_야외
안대를 한 경수가, 할아버지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안대를 해준
다.
경수와 할아버지, 모두 양복 차림으로 어딘가 갈 모양이다.
조 부 어디서 눈병은 얻어 와가지고 나까지 고생을 시키냐?
경 수 (싱글벙글) 죄송해요, 할아버지.
이때 안방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는 경수모. 경수모도 안
대를 하고 있다.
경수모 그러게 말이에요. 온 가족이 이게 뭐냐? 어서 가자. 경
선이네 기다리겠다.
S#26 동네 사진관, 스튜디오 (낮)
아기 백일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한 경수가족들.
경선과 박두팔까지 온가족이 안대를 하고 있다.
경 선 애기한테 눈병 옮기면 안되는데...?
박두팔 형님두 참... 삼촌이 되갖구 눈병이나 옮아오시고, 제
가 요즘 사업상 폼이 안나구 참 죽겠습니다.
사진사 (E) 저기요! 그 안대들 하고 찍으실 겁니까?
가족들 우왕좌왕 얼른 안대 풀면서,
경수모 (동시에) 아니요...
경 선 (동시에) 이거 벗어야지...
조 부 (동시에) 큰일날 뻔했구나... 우리 증손녀 백일사진 버
릴 뻔했네?
얼른 다시 포즈를 취하는 가족들.
안대를 벗은 눈 주위에 모두 벌겋게 안대줄 자국이 남아있다.
그대로 찰칵 사진이 찍힌다.
S#27 도심공원 (다른 날 낮. 몽타주)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고, 벤치에는 노숙자들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이야기를 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경수와 희정. 아직 팔장은 끼지 않
고 어색하게 걷는 정도. 경수도 안대를 풀었다.
희 정 난 담배 피우는 남잔 싫은데...
경 수 끊지, 뭐. 지금부터 끊을게요. 희정씨를 위해서.
주머니에서 담배갑과 라이터를 꺼내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경수.
웃는 희정.
경 수 (N) 우린 한달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만났다.
S#28 백화점 앞 (그날 밤. 몽타주)
경 수 (N)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씩 만난 적도 있었다.
희정이 퇴근을 하면,
기다리고 있던 경수의 팔장을 끼고 어디론가 즐겁게 걸어간다.
백화점 앞에는 남녀노소 길게 줄을 서있고, 'IMF 극복 금모으기 운
동본부' 현수막이 보인다.
경 수 (N)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녀 이외에는 관
심이 없었다.
S#29 은영자취집 거실 (밤. 몽타주)
TV를 향해 시선 꽂힌 채 나란히 앉아있는 은영과 인경. 무료해 보
인다.
인 경 (심드렁하게 봉지 째 과자 먹으며) 경수한테서 연락은
왔었니?
은 영 (힐끔 핸드폰 보며) 아니. 금방 전화할 것처럼 그러더
니, 소식이 없네...? 바쁜가보지, 뭐... (리모컨으로 채널 바꾸면)
인 경 왜 돌려? 그거 재밌는데?
은영 얼른 다시 리모컨으로 채널 바꿔준다.
S#29_1 경수사무실 (밤)
초기 PC통신으로 희정과 채팅하는 경수
S#29_2 희정방 (밤)
경수와 채팅하는 희정
S#30 백화점 유아복 매장 (다른 날. 낮)
계산대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경수와 희정. 은밀하게 숨어있는 느
낌.
희 정 점심 시간 끝났어요. 빨리 회사 들어가요.
경 수 알았어요.
희 정 이러다 회사에서 쫓겨나면 어떡할라구 그래요?
경 수 (초조하게 시계보고, 대답대신 머뭇거리며) 저기, 나
몇 초 후에 희정씨한테 키스할 거예요.
희 정 네?
이때 기습적으로 키스하는 경수.
감미로운 키스에 빠져드는 두 사람.
이때 계산대 너머로 나타나는 희정모의 얼굴. 얼굴 들이밀고 놀라
는 표정.
키스하다 말고 눈을 뜬 희정도 놀라고,
희 정 (얼른 툭툭 치며 밀어내며) 어머, 어머, 경수씨... 우리
엄마셔!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나며 희정모에게 꾸뻑 인사하는 경수.
경 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곱지 않은 시선으로 경수를 보는 희정모.
경 수 (N) 그녀가 일하는 이곳은 그녀의 엄마가 소유한 점포
였고,
S#31 백화점 지하, 수화물 전용 주차장 (다른 날 낮. 몽타주)
유아복 회사 트럭에서 옷박스를 옮기는 경수와 희정.
휴일인지 간편한 복장의 경수, 마치 자기 일은 듯 열심히 한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희정모, 그런 경수를 힐끔 보고,
트럭 위 회사직원과 장부를 보며 대금결제를 하고있다.
경 수 (N) 그녀의 엄마는 수완이 좋았다. 같은 브랜드의 점
포를 지방 백화점에도 몇 개 더 가지고 있다고 했다.
S#32 고급 한식당 룸 (다른 날 밤. 몽타주)
여종업이 시중을 들고있고, 희정모와 희정, 경수가 식사를 하고 있
다.
희정모도 슬슬 경수를 맘에 들어하는 눈치다.
경 수 (N) 그녀는 엄마하고 둘이서 살았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희정모 (은근한 눈빛으로) 자네, 우리 집 데릴사위 하면 어떻
겠나?
경 수 (당황해서) 예? (망설임이 느껴지나) 그러죠, 뭐. 어머
니.
히죽 웃으며 좋아하는 희정.
S#33 경수집 안방 (다른 날. 낮)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아버지의 영정사진 옆에 나란히 거
는 경수.
경 수 아버지, 올해 저 장가갈지도 몰라요. 왠지 느낌이 그래
요. 조만간 인사시킬 게요.
S#34 홍보실 (낮)
다른 사람들 눈치보며, 부장자리에 조심스레 다가오는 은영.
부 장 (일하다 말고 보며) 왜?
은 영 저기, 다음 달에 아드님 결혼하신다면서요.
부 장 그런데?
은 영 (종이 내밀며) 그래서 청첩장 초대문구 몇 개 뽑아봤어
요... 아드님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놓고 돌아선다.)
부 장 (그런 은영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고마워, 은영씨....
이때 은영, 바닥의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얼른 자기자리로
향하는데,
여직원1 (한쪽에서 복사하다, 은영을 보며) 호박씨.
여직원2 (옆에서 거들며) 여시.
상 두 (서류 들고 지나가며) 최은영씨, 팩스 와있던데?
은 영 그래요...? 팩스 올 데 없는데...? (간다.)
은영, 와서 팩스통에서 긴 감열지 주워들고 보면, 커다란 글자로
한 자 한 자 이어지는 내용. (6부에서 경수가 보냈던 팩스와 형식
이 똑같다.)
'나의 마음은 오늘도 은영씨에게만 머뭅니다. 오직 너를 생각하
며...'라고 쓰여있다.
인써트. - 6부 46씬. "은영아 보고싶다. 언제 시간 나니?" 팩스를 받
아본 은영.
은 영 (순간 감 잡으며) 그러면 그렇지... (웃음 피식 나온
다.) 팩스 보내는 은영.
그런 은영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상두.
S#35 카페 (낮)
막 들어온 경수가 앉으면,
은영이 세침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은영이 마신 주스잔이 반쯤 비
어있다.
경 수 야, 니가 먼저 연락을 하다니! (매우 안타깝다는) 근데
진작 좀 하지 그랬냐? 왜 이제 했어?
은 영 (다짜고짜 긴 팩스용지 죽죽 펴 들이대며) 너 이게 뭔
지 알지? 왜 이런 장난하니?
경 수 그게 뭐냐? (집어서 본다.)
은 영 사람 놀리구, 이게 재밌어? 지난번에도 내가 그런 거
회사루 보내지 말랬지.
경 수 야, 너 왜 그래? 나 너한테 이런 거 안 보냈어?
은 영 (갑자기 무안해지며) 그래...? 니가 꽃도 보내고, 익명
으로 편지도 보내지 않았니?
경 수 아니.
은 영 (머쓱한) 그래...? 그럼 누가 보냈지?
경 수 누가 너한테 꽃 보내고 연애편지 보내냐?
은 영 (끄덕이면)
경 수 야, 아주 고전틱한 방법인데?
은 영 (다시 확인) 정말 너 아니야?
경 수 아니야. 난 좋아하는 여자 있어!
은 영 (갑자기 얼떨떨한) 너 지난번엔 애인 없다며?
경 수 생겼어. 그 사이에. (씩 웃으며) 니 덕분에.
은 영 (못 믿겠다는 듯) 그 사이에? 내 덕분에?
경 수 응. 결과적으로 보면 너 때문에 만나게 됐는데, 얘기하
자면 길고, 요즘처럼만 인생이 풀린다면 진짜 행복할 거 같다. 내
가 그 끊기 어려운 담배도 끊었다는 거 아니냐. 우리 희정이 때문
에. (웃는다. 행복한 느낌이 묻어난다.)
은 영 (다소 섭섭한 기분) 묻지도 않았는데... 애인 있다고 밝
히는 걸 보니, 정말 좋아하나 보네?
경 수 음. 급한 감은 있지만,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
은 영 (의외인) 그래? (좀 궁금한) 어떤 여잔데...?
경 수 너하곤 아주 딴판이야. 나중에 한번 보여줄게.
순간 기분 나쁘면서도 섭섭한 표정이 스치는 은영.
경 수 (조심스럽게) 근데, 너 회사 그만뒀단 얘기, 왜 안 했
냐?
은 영 엉?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회살 관둬?
경 수 니 연락처 잊어먹어서 니네 회사로 전화했더니, 너 관
뒀다고 하던데?
은 영 (갑자기 예민하게) 뭐? 누가 그래?
경 수 남잔데... 나야 누군진 모르지...
은 영 (기분 나쁜) 요즘 우리 정리해고 문제루 분위기 안 좋
아. 누군가 내가 퇴출되길 바라는 거 같은데... (갑자기 화가 나는)
그렇다고 어떻게 멀쩡하게 다니고 있는 사람을 벌써 관뒀다 그러
니?
경 수 (괜히 미안한 듯) 저기... 너무 신경쓰지 마.
은 영 (기분도 안 좋고) 미안하다. 괜히 바쁜데 불러내서. 갈
게. (일어난다.)
S#36 카페 밖 (낮)
은영 기분 안 좋은 듯 나오면, 경수도 따라나온다.
카페 앞에는 북한어린이 돕기 모금함이 있고, 작은 허브화분들이
진열되어 있다.
경 수 (걱정돼서) 야, 너 지금 복잡한 모양인데, 필요한 일 있
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내가 도움은 못돼도 술은 한잔 살게.
은 영 그래. (애써 미소지어 보이고 가려는데)
경 수 (허브화분들 돌아보며) 잠깐만, 잠깐만...
은영 멈춰 서서 보면,
경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모금함에 넣고, 허브화분 하나를 집어
든다.
경 수 (화분 내밀며) 가져가. 책상에 놔둬. 이게 향기도 나
고, 매일 물주면서 가꾸다보면 스트레스가 좀 줄어들 거야.
은영 허브 화분 받고
경 수 혹시 키우다 죽더라도, 인생이 안 좋은 일로 기분 나빠
하고 지내기엔 너무 짧구나, 뭐 그런 교훈 하나쯤은 건지게 될 거
야.
은 영 (유쾌한 기분 아니다) 그래, 고마워. 너두 연애하다 어
려운 일 있으면 물어봐. 내가 여자니까 도움이 되지 않겠니?
경 수 고맙다. 근데 뭐 연락할 일은 없을 거야. 잘 될 거 같
애.
은 영 (그 말엔 좀 섭섭) 그래... 갈게. (간다.)
은영을 돌아보고는 그대로 가는 경수.
길 건너편에서 본 풍경.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
은영은 착잡하게 걸어가고, 경수는 성큼성큼 걸어간다.
은 영 (E. 심드렁한) 걔가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이
제 번듯해. 직장도 있고, 여유가 넘쳐.
S#37 홍보실 (낮)
책상 위 모니터 옆에 허브화분이 보이고,
'불황기에는 오히려 더 광고를 해야 한다.' - IMF시대 광고전략 -
이라는 보고서를 쓰고 있는 은영. 약간 화가 난 듯 굳은 얼굴로 점
점 더 거칠게 자판 두드린다.
인 경 (E) 한마디로 멋있다는 얘기네?
은 영 (E)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애인도 있고, 갖출 걸 다
갖췄어. 걔보단 내가 더 잘 나가야 되는데. 괜히 신경질이 나.
인 경 (E) 걔 잡을 걸 은근히 아깝다는 기분 들지?
은 영 (E) 아니야. 걔가 뭐가 아깝니?
인 경 (E) 그럼 경수는 아니고, 익명의 편지 주인공은 누굴
까...?
이때 불쑥 예쁘게 포장된 사탕 한 봉지가 책상 위로 들어온다.
은 영 이게 뭐에요?
남직원1 오늘이 화이트데이 잖아요.
은 영 근데 이런 걸 나한테 왜 줘요?
남직원1 그냥요. 재밌잖아요. (가는데)
은영, 사탕을 옆으로 치워놓다가, 문득 생각이 들며 남직원1에게
쫓아간다.
은 영 저기, ***씨! 나 좋아해요?
남직원1 예?
은 영 그 꽃두 다 ***씨가 보낸 거 맞죠?
상두도 쳐다보고, 사람들 모두 보는데,
남직원1 아닌데요? (자기 자리로 가고)
은영 괜히 무안해지는데,
여직원1 (들으라는 듯) 그거 다 자작극 아니에요?
여직원2 관심 끌려고 별 짓을 다해. 꽃값 많이 들었겠어요?
(관심 없다는 듯 일한다.)
동시에 웃음소리 잔잔하게 일고, 은영 화가 나서 자리로 온다.
이내 거칠게 서랍 열어, 카드와 편지들 찢어발겨 휴지통에 버리고
나가는 은영.
쳐다보는 사람들과 상두.
S#38 동 홍보실 (밤)
검은 유리창에 비치는 텅 빈 사무실.
누군가 남자의 손이 은영의 휴지통에서 찢겨진 카드 조각을 꺼낸
다.
(시간경과) 남자의 숨소리 뿐.
은영의 책상 위에 조각 조각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카드와 편지
들.
'당신을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힘들어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힘
이 되고 싶습니다.' 등등 책상 위 가득, 카드와 편지들이 완성된
다.
이때 책상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은 영 (E) 거기서 뭐하세요?
흠칫 놀라서 돌아보는 남자. 장상두다.
은영이 성큼성큼 와서 책상을 보고 놀란다.
상두 당황해서 허겁지겁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은 영 이봐요! 장상두씨! 장대리님...!
S#39 사내 식당 (낮)
은 영 (N) 익명의 편지를 보냈던 남자는 장상두였다.
혼자 밥을 먹고있는 장상두.
홍보실직원들과 섞여 밥을 먹던 은영이 조금 떨어진 곳의 상두를
힐끔 쳐다본다.
은 영 (N) 그는 마음을 들킨 것에 상처를 받았는지, 나를 피
했다.
S#40 은영 자취집 앞 (밤)
은 영 (N) 하지만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은영 걸어오면, 검은 차(유리창도 온통 검다.)가 천천히 은영을 따
라온다.
은영 돌아보고 멈추면, 차도 멈춘다.
은영 다시 걸어가면, 다시 따라오는 차.
은영 안되겠는지, 핸드폰 꺼내 전화를 건다.
S#41 동 검은 차안 (밤)
부르르 떨리는 핸드폰.
차안에는 열쇠고리, 액자, 컵홀더, 방석, 마스코트 등, 사내에서 혹
은 야유회에서 찍은 단체사진 속의 은영 얼굴만 오려낸 소품들로
가득하다. (여기서는 언뜻 스치는 정도.) 망설이다 핸드폰을 받는
장상두.
차창 밖으로 은영이 보인다.
은 영 (E) 나와요. 잠깐 얘기 좀 해요.
S#42 은영 자취집 앞 (밤)
차 밖으로 엉거주춤 나오는 장상두. 은영과 눈빛을 맞추지 못한
다.
은 영 (성큼성큼 다가가) 대체 왜 이러세요?
상 두 ....
은 영 이제 꽃 같은 거 보내지 마세요. 편지두요. (가려는데)
상 두 은영씨! 사랑합니다!
은 영 (돌아보며) 네?
상 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사랑했습니다.
은 영 (당황하며) 저기, 장상두씨...
상 두 우린 전생의 인연으로 만났어요.
은 영 (그건 또 뭔 소리?) 예?
상 두 처음 본 순간 알았습니다. 우린 한 몸이나 다름없어
요.
은 영 (기가 차서) 저기, 이보세요...
상 두 그래서 우린 처음부터 통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은 영 (흥분해서) 아니, 우리가 통하긴 뭘 통해요? 난 댁 같
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다신 그딴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
요. (돌아서는데)
상 두 (갑자기 은영 팔을 확 잡아끌며, 얼굴 가까이) 은영씨
도 날 사랑해야 돼요.
은 영 (좀 겁이 나며) 어머, 이거 놔요...! 미쳤나봐... (빠져
나와 종종 걸음으로 가버린다.)
숨을 몰아 쉬며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두.
S#43 호프집 & 희정집 거실 (밤)
사람들로 북적대는 호프집. 음악과 떠드는 소음들 무척 시끄럽다.
영진 회사 근처인지, 기자 출입증을 목에 건 영진과 경수가 술을
마시고있다.
경수가 기분 좋게 취해있다.
영 진 (소리 지르며) 만난지 얼마나 됐는데?
경 수 (역시 소리지르며) 좀 있으면 두 달 되가.
영 진 두 달? 두 달만에 무슨 결혼을 해?
영 진 너무 서둘지 마.
경 수 (안 들려서) 뭐라구?
영 진 너무 서둘지 말라구!
경 수 내가 왜 서두는지, 그 여자를 보면 알아. (핸드폰 꺼내
며) 지금 나오라 그럴까?
영 진 이 시각에 뭘 나오라 그래? 나 가판신문 보러 편집실
다시 들어가봐야 돼.
경 수 그럼, 내가 전화해서 바꿔줄 테니까, 둘이서 얘기 좀
해봐. (전화 걸며) 목소리도 을마나 이쁜데!
영 진 술 취해서 무슨 전화를 해?
경 수 아이, 가만 있어봐. (통화 연결 됐는지, 한쪽 귀 손가락
으로 막으며) 희정이니?
희정집 거실화면 들어오며, (와이프 인)
희정모 나 희정이 에미네.
경 수 (취해서) 그래, 희정아, 오빠가 보구 싶어서 전화했
다.
희정모 지금 우리 희정이 사우나 갔으니까...
경 수 그래, 임마. 오빠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희정모 나 희정이 에미라구!
경 수 그래, 우리 결혼하자 희정아!
희정모 (소리 지르며) 시끄러워서 내 목소리 잘 안 들리나?
경 수 (행복하게, 더 크게 소리지르며) 아니, 난 지금 니 목소
리만 들려! 희정아, 우리 결혼하는 거다!
답답한지 희정모 전화를 끊어버리면서, (와이프 아웃)
경 수 어? 결혼하자 그랬더니, 왜 전활 끊지?
영 진 으이그, 니가 하는 일이 그렇지...
경 수 (흥분해서) 아니, 왜 결혼을 하자는 데 전화를 끊어?
안되겠다. 가봐야겠어. (비틀거리며 허둥지둥 나간다.)
영 진 (급히 일어나며) 아니, 이 시각에 어딜 간다고 그래?
S#44 희정집 대문 앞 (밤)
고급 저택 앞.
골목 한가운데서 경수가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목놓아 희정을 부
른다.
경 수 희정아, 희정아...! 나하고 결혼 해주라! 희정아...!
2층 창가에서 커튼 사이로 내다보던 희정모. 고개를 젓고는 들어
가 버린다.
경 수 희정아, 니가 결혼해준다 그럴 때까지 나 여기서 한 발
짝도 안 움직인다!
대문 앞에 드러눕는 경수. 눈 딱 감고, 희정아...! 결혼해줘!... 주정
하는데,
이때 나타나는 희정. 젖은 머리에 목욕가방 들고 있다.
희 정 (영문을 몰라 달려와서) 경수씨, 여기서 뭐해? 술 마셨
어?
경 수 (발딱 일어나 앉으며 희정 손 부여잡고, 횡설수설) 희
정아! 우리가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하면 말이다, 나는 너를 사랑
하고, 내 인생을 너한테 맡기는 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고, 너를 위
해서 나를 버리는 게 무진장 행복할 거 같다. 그리고 또...
희 정 왜 여기서 그래? 일단 일어나 봐.
경 수 싫어. 결혼해준다 그럴 때까지 못 일어나. (다시 눕는
다.)
희 정 경수씨...?
경 수 빨랑 결혼해 줘!
이때 대문을 열고 나타나는 희정모.
희정모 빨리 결혼해준다 그래라. 동네사람들 다 깨겠다.
희 정 알았어. 결혼할게... (경수 잡아 일으키며) 그만 일어
나...
경 수 정말? (누운 채 희정을 꽉 끌어안는다.) 정말이지?
그 통에 희정, 엄마야! 하면서 경수 위로 엎어진다.
어이없어 웃고 마는 희정모.
S#45 은영 자취집 & 춘천집 거실 (아침)
은영과 인경, 바삐 출근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인 경 누구야? 아침부터? (전화받는) 여보세요? 아, 예, 어머
니세요. 잠시만요.
은 영 (그 소리에 쳐다보면)
인 경 (수화기 넘겨주며, 은영에게) 급한 일이신가봐.
은 영 (전화받는) 나야, 엄마
춘천집 거실의 은영모 화면 들어오며,
은영모 (급히) 은영아, 너 내일 올 때 니 인감도장 좀 갖고 와
라
은 영 인감은 갑자기 왜?
은영모 IMF,라 헐값에 나온 빌딩이 있어서 살라 그러는데, 니
앞으로 사놓을라고.
은 영 그걸 왜 내 이름으로 해?
은영모 얘가? 넌 우리 식구 아니니?
은 영 엄마,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남들 어려워
서 내놓는 건데, 그걸 꼭 신이 나서 사야 돼?
은영모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딨니? 우리가 빨리 사줘야 그쪽
에도 도움이 되는거야.
은 영 어쨌든 내 이름 그런 데 빌려주는 거 싫어
은영모 기집애가 이렇게 협조를 안해요. 갖고 오래문 갖고 와!
은 영 싫다니까? 나 출근해야 돼. 끊어요.
은영모의 화면 아웃되고,
전화를 끊는 은영. 인경과 현관으로 나가는데,
인 경 무슨 일인데 그래?
은 영 (골치아프다는 듯) 아니야... 가자.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
S#46 은영 자취집 앞 (아침)
은영과 인경, 아파트에서 나오면, 기다리고 있다가 서서히 따라오
는 검은 차.
은 영 (팔장 끼고 인경을 빨리 끌고 가려는) 어머, 나 미치겠
네?
인 경 (자꾸 차 돌아보며) 어머, 저 차야? 차 괜찮다!
은 영 얘가? 쳐다보지 마.
이때 두 사람 옆에 가까이 와서 멈춰서는 차.
상 두 (차창 내리며) 은영씨 타세요. 회사까지 안전하게 모시
겠습니다.
은 영 제가 분명히 싫다고 얘기했죠? 왜 이러세요, 정말? (인
경 끌고 가버린다.)
상두의 차 다시 뒤쫓아오는데,
인 경 어머, 인상두 그렇게 나쁘지 않네 뭐? 한번쯤 생각은
해볼 수 있겠다.
은 영 생각은 무슨 생각?
인 경 이 아침에 여기까지 와서 너 모시고 갈래문, 새벽같이
일어났겠다. 난 감동 먹었는데, 넌 왜 그러니? 일류대 출신이겠다,
머리도 좋을 거구...
은 영 꼴통이라니까?
인 경 타자. 저 사람 성의가 있지. 나두 니 덕에 편하게 출근
좀 해보게.
은 영 너나 가서 타. (팔 놓고 가버리면)
인 경 (달려가며) 어머, 같이 가!
속도를 내서 따라가는 검은 차.
S#47 홍보실 (아침)
출근차림의 은영 들어서면,
남직원1 (지나가며) 축하해, 은영씨!
은영, 영문을 몰라 들어가는데,
남직원2 (이내 또 지나가며) 축하해요!
은영,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가는데,
여직원2 (은영이 지나가자, 자기자리에서) 언니, 축하해요!
은 영 뭘? (여직원2를 보면서 자기 자리에 앉는다.)
여직원1 (서류라도 갖다 놓으며) 어휴, 새로운 사내커플이 탄
생했네요? 꼴통하고 호박씨 커플?
은 영 무슨 소리야?
여직원1 사내 인터넷에 좍 올랐던데요?
여직원2 장대리님하곤 언제 그렇게 연애를 했어요? 찐하게?
은 영 뭐? (하면서 자기 컴퓨터 얼른 켜는데, 부팅을 기다
리지 못하고, 얼른 옆 책상의 켜져 있는 모니터로 간다.)
은영, 모니터 화면을 보며 급히 사내게시판을 클릭 하면,
'장상두와 최은영이 결혼합니다. 그 동안 저희 연애의 결실을 축복
해주세요.'라는
알림장이 뜬다.
은 영 (울그락 불그락해지고, 두리번거리며 찾는) 장상두
씨 지금 어딨어? 출근했죠?
여직원1 장대리님 오늘부터 출장인데요?
은 영 뭐라구?
S#48 달리는 검은 차안 (낮)
옆 좌석에서 진동으로 떨리는 핸드폰.
핸드폰을 보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상두.
S#49 빌딩 비상계단 (낮)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기다리는 은영.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안내음
이 들린다.
은 영 (버튼 누르고) 장상두씨. 사이코 아니야? 우리가 무슨
결혼을 해요? 당장 사내게시판에 취소하고 사과문 올려요! 이런 식
으로 나오면 정말 가만 안 있겠어요? (버튼 누르고 전화 끊어버린
다.)
S#50 도심 공원 (밤)
희정이 눈을 감고 있다.
경 수 (상자를 열어 보여주며) 자, 이제 눈 떠.
상자 안에 커플링 두 개가 보인다.
경 수 (맘에 안 들까봐) 비싼 건 아닌데, 괜찮아?
희 정 (감동하는) 어머, 근사하다... 근데 손가락에 맞을까?
경 수 잠깐만...
여자반지를 꺼내 희정에게 끼워주려는데, 이때 반지를 놓친다.
경 수 어? 어디 갔지?
경수와 희정, 벤취 밑으로 고개 숙이고 반지를 찾는다.
이윽고 반지를 찾아들고 빙긋이 웃는 두 사람.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경 수 (핸드폰 꺼내며) 아이, 참. 중요한 순간에... (전화 받
는) 여보세요? (반가운) 성민이니? (뭔가 심상치 않은) 지금? 아
니, 괜찮아... (의아한) 곧 갈게. (전화 끊는다.)
희 정 누구야? 무슨 일인데 그래?
경수 방금 전과는 달리 급하게 희정에게 반지 끼워주고, 자기 손에
도 끼면서,
경 수 어, 성민이라고 친한 친군데, 지금 레지던트 하거든?
근데 갑자기 어딜 간다네? 무슨 일이지? 아무튼 만나봐야 될 거 같
애. (급하게 일어서며) 같이 갈래?
희 정 그래두 돼?
S#51 카페 (밤)
희정과 경수, 성민이 차를 마시고 있다.
경 수 아니 그럼, 레지던트 포기하고 보건의로 간다구?
성 민 음. *** 보건지소로 발령 났다. 오늘 내려가.
경 수 아니, 병원도 좋던데, 거길 왜 관둬?
성 민 (미소지으며) 큰 병원은 나랑 좀 안 맞는거 같애
경 수 그래...? 가면 얼마나 있어야 되는데...?
성 민 3년.
경 수 그럼... 그 여자후배, 수빈씨도 같이 내려가냐?
성 민 (잠시 생각, 착찹하게) 아니.
경 수 왜 같이 안가? 둘이 무슨 일 있냐?
성 민 아니야... 그 친군 자기 꿈이 있는데, 나 따라가면 되겠
니...?
경 수 (걱정돼서) 둘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성 민 (미소 지으며) 사랑한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닌
가봐...(희정에게) 두분은 잘하세요
희 정 (머쓱하게) 네...
경 수 성민아, 너 왜 그래? 그깟 연애에 문제 좀 있다고 인생
을 포기할라 그래?
성 민 포기하는 건 아니고... 내 길을 찾으려고 하는거야.
(말 돌리며) 결혼하면 연락해라. (희정에게) 같이 한번 놀러오세
요. ***는 노을이 멋있다네요.
희 정 네... (갑자기 조심스레) 저기, 제가 다음에 만나면 소
개팅 시켜드릴게요. 위로차원에서.
성 민 예?
경 수 (희정에게) 이 친군 그런 거 안해.
희 정 (경수에게) 안돼, 해야돼. (성민에게) 성민씨 같이 괜
찮은 분이 외롭게 지내면, 우리 같은 사람이 너무 미안하잖아요.
성 민 (싱겁게 웃는) 괜찮습니다.
희 정 아니에요, 기대하셔두 되요.
S#52 카페 앞 (밤)
성민이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경 수 (오토바이 보며) 언제 샀니?
성 민 이번에. (시동 건다.)
경 수 조심해서 가라. 자주 연락하고.
성 민 그래. (희정에게) 만나서 반가웠어요.
희 정 또 뵈요. 소개팅 꼭 시켜드릴게요!
이내 싱겁게 웃으며 출발하는 성민.
경 수 (소리치는) 잘 가라! (걱정되는지 표정 좋지 않고)
죽 멀어지고 금새 사라지는 성민의 오토바이.
S#53 김포공항 (낮. 인서트)
활주로에 내려앉는 비행기.
S#54 춘천가도. 은영부 승용차 안 (낮)
운전기사가 운전을 하고있고, 은호와 은영이 나란히 뒷좌석에 앉
아있다.
은호, 귀걸이하고 염색하고 날나리가 되어있다.
은 영 너 영어 하나도 안 늘었지? 맨날 한국애들 하고만 지내
지?
은 호 아냐. 인경이 누난 잘 있지? 그 동안 찝쩍대는 놈은 없
었구?
은 영 정신차려. 인경인 너 안중에도 없어.
은 호 인경이 누나부터 만나고 갈걸 그랬나?
은 영 (눈 흘기는)
S#55 은영집 거실 (낮)
현관으로 들어서는 은호와 은영. 여행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은 호 엄마 저 왔어요.
은영모 (달려나오며) 그래... 우리 아들. 어디 보자. 오느라고
피곤하지?
은 호 괜찮아.
은영모 (은영에게, 나직이) 너 누구 와있다. (거실 쪽 고개짓)
은 영 누구? (하면서 보면)
거실 소파에 은영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있는 상두의 뒷모
습.
상두가 가져왔을 과일바구니 정도 보이고...
은영부 (은영을 발견하고 웃으며 일어나는) 어이구, 저기 왔
네? (은영에게) 은영아, 너 왜 애인 있다고 말 안 했니?
상 두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순간 기겁을 하며 놀라는 은영.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는데,
은영모 진짜 사귀는 사이니?
은영, 대답 없이 다짜고짜 거실로 직행한다.
은 영 (상두에게) 아니, 우리 집은 어떻게 알구 왔어요? 당
장 나가요.
은영부 아니, 은영아...
은 영 아빠, 이 사람하구 얘기하지 마. (상두에게) 당장 못 나
가요?
그 사이 은영모와 은호도 어리둥절 거실로 오고,
상 두 (은영에게, 마치 애인인양) 우리사이 사실대로 말씀 드
렸어. 좋은 부모님이시네?
은 영 뭐라구요? 은호야, 너 뭐해? 이 사람 좀 끌어내!
은 호 (어리둥절 어쩌지 못하고) 어?
상 두 (은영부에게) 저, 오늘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은영
모에게) 나오지 마십시오. (은영에게) 나중에 봐.
모두 어리둥절 쳐다보는데, 상두 나간다.
은영부 어떻게 된 거냐? 우린, 네가 쓰던 방도 보고싶다고 해
서 다 구경시켜줬는데?
은 영 네? 아니,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사람을 들여?
저 사람 사이코야. 서울서두 맨날 집 앞에 차대고 와있고, 회사에
도 이상한 소문내고, 내가 아주 미치겠어!
은 호 멀쩡하게 생겼는데...?
은영부 그래, 말하는 거 보니 똑똑하고 예의도 바르던데?
은 영 (펄쩍 뛰며) 아빠!
은영모 아니, 너는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 저런 사람이 쫓아댕
겨? 이젠 시집 잘 가긴 다 틀렸네.
S#56 은영회사 소 회의실 (낮)
못마땅하다는 듯 진정서 문건을 던져놓는 부장. 작성자가 은영이
다.
부 장 최은영씨 참 문제 있네?
은 영 (문건 보며) 네?
부 장 장대리가 은영씰 얼마나 좋아하면 그러겠어? 그걸 귀
엽게 받아줘야지, (문건 툭툭 치며) 어떻게 동료를 이런 식으로 징
계를 해달라고 진정서를 올리나?
은 영 아니, 부장님...
부 장 내 얘기 다 안 끝났어.
은 영 ....
부 장 이런 걸 올려도 그래. 직속 상관인 나를 통해야지, 상
무님 책상에 뜩 갖다놓으면 다야? 회사 업무 분위기까지 흐려가
며 이렇게까지 해서 되겠어?
꾹꾹 참으며 부장을 보는 은영의 표정.
부장의 말소리 아웃되고, 호통치는 표정만 계속 된다.
은 영 (E. 침체된) 경수니? 니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아무
도 내편이 없어.
S#57 술집 (밤)
은영과 경수가 소주를 마시고 있다.
경 수 (열 받아) 안 되겠네? 그 꼴통? 내가 만나서 손 좀 봐줄
까?
은 영 고마워.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소주잔 내밀면)
경 수 (건배하고는) 아니야, 진짜 말만해! 내가 근처도 못 오
게 아주 작살을 내놀 테니까.
은 영 됐어. 괜히 일만 커질라.
이때 갑자기 들이닥치는 상두.
상 두 (경수의 멱살을 잡더니) 넌 뭐야? 뭔데, 은영씨 함부
로 만나?
경 수 (겁먹어) 예? 누구세요?
은 영 어머, 왜 이래요? 장상두씨, 그거 못 놔요?
멱살 잡힌 채 어리둥절 상두를 보는 경수.
놀라는 은영. 세 사람의 모습 한 화면에 담기며... (화이트 아웃)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