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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대민(주일낮)
내가 살아있는 동안(시104:33-35)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시 104:33-35,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잉태 되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낙태되어 죽는 태아,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으로 죽는 아이, 커 가면서 질병, 사고, 자연사 등 수많은 죽음 가운데 지금 살아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것 즉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마태복음16장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세상에서 좋다는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은 사람도 막상 그 생명을 잃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옛날 마게도냐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은 약관 20세에 제왕이 되어 세계를 제패하였습니다. 당시 세계 곳곳에는 그가 정복한 땅에 자기 이름을 딴 도시(Alexandria)만 70개가 넘게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그처럼 광활한 영토에 찬란한 희랍문명을 꽃 피우는 등 불세출의 인물이었지만,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남으로서 인생의 허무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알렉산더가 바벨론에서 열병으로 죽어가자 그의 부관이 "폐하께서 서거하시면 이 넓은 땅을 누가 맡을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알렉산더는 귀찮다는 듯이 "힘센 자가 다 가지라고 해라"하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진리를 모르고 삽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물질과 성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물질이나 명예를 위해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생명보다 귀할 수 없습니다. 의복보다 몸이 더 중요합니다. 음식보다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길 때, 다른 것도 따라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가치가 있지만 묻혀져 사장(死藏)되어 있으면 그 진가가 발휘되지 못합니다.
생명의 가치는 살아 있는 동안에 뿐입니다.
사실 어떤 때는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 삶의 가치관은 아주 훌륭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목표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주어서 살아 있는 동안 위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습니다. 죽음을 피하거나 거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끝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즉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1.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성도의 본분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또는 설교 시간에 찬양에 대한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진부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진부한 소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50편6절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언제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권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곧 죽을 때까지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실로 숨만 쉴 수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파리하게 여윈 한 여인이 누추한 판자 집에 누운 채 임종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의사는, 의아해 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병으로 앓다가 이제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그때 그녀는 '오, 의사 선생님, 이 누추한 집을 떠나서 하늘에 가게 되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라고 하면서 찬송을 계속 부르다가 임종했다고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들의 감사와 그분을 향한 성도들의 사랑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찬양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무엇보다도 찬양은 경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친양할 때 기쁨이 샘솟습니다. 찬양할 때 마음이 평안입니다. 찬양할 때 성령님이 충만합니다. 찬양할 때 기도가 나옵니다. 찬양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찬양할 때 은혜가 넘칩니다.
자신을 창조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은혜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마음 깊이 찬양할 때 육체적, 정서적 치료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역경 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상황을 초월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함께하심을 깨달았을 때, 너무도 감사하고 기뻐서 찬송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찬양하면서 속상한 마음이 해소되고, 정화되고, 상대를 위해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삶 속에 찬양이 넘쳐나야 합니다.
에베소서5장19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경은 찬양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성경 66권 중에 시편이 있다는 것만을 보더라도 성경이 찬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핵심은 복음을 통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비법만 있으면 되며 정감록처럼 위기에 처하면 어떤 곳으로 피하라는 정보를 제공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시편을 보면 수없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니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시편만이 아닙니다. 바울도 찬양할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 오늘 말씀은 골로새서 3장 16절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경이 이토록 찬양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22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송할 때 임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찬송을 해야 하는 이유이고, 동시에 찬송을 통해서 얻게 되는 능력입니다.
찬송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적 행위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받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편33편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믿음의 사람들은 마땅히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이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을 믿고 영광의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형통하면 감사하여 찬송 드리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호소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믿음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위로를 맛보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듣고 기뻐하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듣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증거 되고 선포됩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어떤 사람이 취미에 대해 우리가 흥분하기까지 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자랑하면 지켜보던 사람들도 역시 같은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난 감격을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고백하여 찬양한다면, 우리를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보짓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내 하나님을 찬양” 하시기를 바랍니다.
2.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성도 된 우리들이 바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즐거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항상 즐겁고 기쁜 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살전5:16 -19)
그런데 사람들은 이 즐거움을 무엇을 소유함으로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고 좋은 것을 소유하여도 갈수록 더 많고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일에 만 매달리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즐기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삶을 즐기는 것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기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더 감사하게 되고 또 생활에 활력을 얻어 더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 하나님의 일들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세상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방탕함에 빠지는 것은 죄악을 행하는 것입니다(엡4:19).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룩한 성전인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하여(시119 : 9) 결코 세상적인 오락과 술취함과 음란의 방탕함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바른 금욕주의는 세상의 놀이 문화를 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세상의 즐거움만을 추구하여 방탕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삶의 즐거움을 누리되 방탕함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더 힘을 내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랜드 주석-디도서1장/참된 금욕주의란]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보통 사람들은 즐거운 인생, 행복한 삶을 소유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많이 소유하는데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소유를 추구합니다. 권력을 소유하고, 명예를 소유하고, 재산과 돈, 사치와 허영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소유했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명예, 혹은 세상 권세가 자신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의 마지막은 언제나 불행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소유하는 것에는 참 만족도, 사람 삶의 참 가치나, 참 행복이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게 하고 몸부림을 치게 할 뿐입니다.
헛된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 인생은 더욱 비참하게 됩니다.
신앙은 기쁨입니다.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교수인 에드 디너(Ed. Diener)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정말 즐겁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되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34절에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하나님의 모든 행하신 일을 묵상해 본 시인은 그 기이하신 행적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 대하여 깊은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확신하며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최후 섭리를 확신하는 시인의 모습 속에서 배울 바가 많습니다. 평생을 여호와께 노래하며 생존할 동안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복된 본분입니다.
내가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알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로서 영원한 세계인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즐거움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겁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송축은 “빠라키”입니다. 이는 “기억하다, 인정하다”의 일차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일이 “빠라키“의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이 일들을 기억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일이 송축의 이차적인 의미입니다. 이는 송축이 막연한 찬양이 아니라 내 삶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고 이를 기억하면서 이를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송하는 일입니다.
시편145편2절에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메튜 헨리는 마음에 하나님이 충만하면 언제든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그 입에서 나온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 영원히는 세대를 이어가면서 송축하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왕이신 하나님을 날마다 영원히 높이고 그 이름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만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해선
먼저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성도답게 살기를 애써야 합니다. 성도답게 살기를 애쓰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욕심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은 직분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 를 받은 사람답게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권면하였습니다.
부모가 부모답게 자녀에게 모범된 모습을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면서 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가 자신의 위치를 지켜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행하고 그것을 자랑치 말되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서 누려야 합니다. 사회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답게 살기를 애써야 합니다.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합니다.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103편1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다윗은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내 전인격을 다 드리고 내 마음을 다 바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송축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영적 생활을 해나가는데도 실패하지 않을 비결은 마음을 다하는 것에 있습니다.
마음을 다한 자가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데 마음을 다하는 것은 성도의 길입니다.
또한 영원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145편2절에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기서 “영원히” 라는 것은 일생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누구든지 어느 한순간 잘하기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더 나아가 일생동안 변함없이 그 일을 계속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변함없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생활이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긴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고 곤고한 날도 많은 것이 사람의 일생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은 그의 다짐처럼 일생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나 나이 많은 노인이 되었을 때나, 비천한 양치기였을 때나 천하를 호령하는 대왕의 옥좌에 앉았을 때나, 가난했을 때나 부귀가 극에 달했을 때나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짓누르는 문제가 있어도 일단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분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생각을 떨쳐 버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피곤하고 지쳐도 하루종일 아무 열매를 거두지 못했어도 일단 하나님을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루를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1.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33)
2.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34)
3.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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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은 여생동안 숙제 잘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