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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1;8-25. 새롭게 전개된 2024년의 경작지와 함께 할 세초부터 세말까지? 2024. 1. 7.
좌우 앞뒤에 계신 분들께 새해 인사를 다시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사랑합니다. 저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새로운 시대입니다. 오늘 신년 첫 주일, 새로운 시대에 진입한 우리의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은총의 산물이고 지명하여 불러내신 존재입니다. 2024년에 파견 되어진 존귀하고 거룩한 지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보는 존재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손이 닿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딛고 있는 발끝에는 평안과 평화가 주어집니다. 여러분, 우리의 비전과 2024년의 소망이 여기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복에 복이 더하고 지경에 지경이 넓어지고 주의 손으로 날마다 도우시는 그래서 환란이 없고 근심이 없는 그런 2024년의 내용이기를 소망합니다요. 어느새 시작과 함께 일주일이 지나 오늘 첫 신년 주일의 예배를 드립니다만 이미 우리는 2024년 목표를 가지고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한 우리 모두 비전과 소망과 목표가 있지요? 지난 목요일, 2024년 1월 4일, 우리교우들의 2024년의 기도제목을 일일이 혼자서 필사를 했습니다. 정성을 드려서 기록을 했습니다. 1년 동안 이 기도제목을 붙들고 기도할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필사를 하면서 한 분 한 분의 소망을 다시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다짐을 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될 소망과 목표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새해 첫 시작과 함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맨 먼저 촛불점화를 하면서 서원의 기도제목을 헌물로 제단에 올렸습니다. 그 소망과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매일 기억하면서 기도하시기로 약속한 2024년의 소망의 내용입니다. 글씨로 나타난 우리의 말이 하나님께 들려지기를 소망했습니다. 결정해서 올려드린 내용에 대하여 이루어지고 그 결정한 길에 빛이 비쳐지기를 소망했습니다. 제단에 올려 드린 하나님을 사랑한 믿음과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의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그래서 건지시고 높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소와 시온에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생각한 모든 것에 넘치도록 주실 것을 믿고 올렸습니다. 올려드린 이 2024년에 대한 소망과 비전과 목표가 이루어지기 까지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 또한 소망합니다. 여러분, 서원기도의 내용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나 간절한 내용입니까?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하여 제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일이 필사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소망과 비전과 목표의 내용은 주님의 말씀처럼 눈으로 본바가 되고 귀로 들을 바가 되고 손으로 만진 바가 될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이 직접 제단에 올려드린, 자신을 불붙이고 태우듯이 촛불로 점화하면서 올린 2024년의 목표를 늘 기억하고 늘 묵상하고 항상 기도하면서 날마다 주어진 영역에서의 삶을 위대하게 살아가셔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이 이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8-12.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우리가 들어가서 차지하려는 땅은 이전의 땅과 같지 않습니다. 들어온 땅은 파종을 해야 합니다. 발로 물대기를 해야 합니다. 산과 골짜기가 있는데 비를 흡수하는 땅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야만 하는 땅입니다.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눈이 이 경작지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2024년에 들어 왔습니다. 새로운 경작지입니다. 파종을 해야 하고 물을 대야하고 그 경작지는 비를 흡수하지만 하나님이 돌보셔야만 하는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이 여기에 있는데 세초부터 세말까지 이곳에 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입니다. 여러분, 이 가나안 땅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표이고 비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목표와 비전을 40년 동안 잊지 않았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표와 비전을 상실하거나 없는 사람들은 이 새로운 땅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과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새로 들어온 땅에서의 삶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무엇이 그럴까요?
1-1, 목표와 목적을 아는 것은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갖고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고, 목적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49;4,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이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여러분, 가장 큰 비극은 목적 없는 삶입니다. 소망은 삶에 공기와 물만큼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 절망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만 기다리고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삶에 멋진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엡3;20,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님에게, 그러니까? 여러분, 주님은 내가 상상하거나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고, 나의 큰 기도, 욕구, 생각 그리고 나의 소망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을 주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목표가 있어야 기도를 하고 생각을 하고 소망이 불일 듯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생각과 소망과 기도가 주님을 일하시게 하고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1-2, 목표와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추게 되고 삶이 단순해지고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하기 전에 간단히 이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라고 자문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하려하고, 또 이 때문에 스트레스, 피로 그리고 관계에 있어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목표와 목적이 이끄는 삶은 더 단순한 삶의 방식과 분별 있는 계획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지는 공허한 삶이 아니라, 내가 소망하는 삶으로 바꾸어 갑니다. 목표와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주고 사소한 일로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회전판 돌아가는 것처럼 정신없이 계속 회전하기만 할 뿐 어디로 갈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목적이 있고 초점이 맞추어진 삶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용기가 납니다. 특히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의 손에서 받은 목표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주님의 선한 뜻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삶의 지경과 영향력을 넓혀가기를 원한다면 삶의 초점을 맞추고, 첨벙거리지 말아야합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삶에서 주어진 일상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루어질까? 안 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1-3,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되고 더 많은 나중을 준비하게 됩니다. 목적은 열정을 낳습니다. 뚜렷한 목적만큼 힘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삶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느냐가 아니고, 주님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억되기 위하여, 가죽을 남기기 위하여, 명예를 남기기 위하여,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로 주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 2024년에 들어섰고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실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하신 일들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느냐?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2024년에 무엇을 하시렵니까? 모든 계획과 기도제목의 응답과 이루심의 해답은 생명이고 진리이고 길이신, 호도스이신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알 때에 삶의 동기가 유발되고 더 많은 나중을 준비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내가 너에게 은혜와 복으로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 내가 준 은사와 재능과 기회와 에너지와 인간관계 그리고 자원들로 무엇을 했느냐? 창조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였느냐?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굳건하게 세워가려고 했는데 거기에 도달했는가? 이 두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목표와 목적의 입장에서 볼 때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전만 품고 있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비전이 실현되는 것을 못보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끝까지 주신 목표를 향하여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다른 생각을 하고 순간순간 예전으로 돌아가고 후회를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했고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묵상하지 못하고 소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축복에서 벗어납니다.
그런가하면 비전을 품고 40년을 달려왔고 비전 지도까지 받았으나 비전의 땅에 못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신34;1-3, 모세는 하나님께서 비전의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4절에 모세에게 눈으로는 보게 하였지만 비전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하나님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비전을 이루고 보게 하셨고,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더 놀라운 일을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함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비전의 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지파 반입니다.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들입니다. 민34;5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비전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는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습니다. 재산을 보호하려는 자기중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비전의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는 먹고 살만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눈앞에서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됐고, 여기까지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또 한 부류는 계속해서 이어가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역사 속에 사라지는 지파가 있습니다. 비전지도가 하나님의 뜻이라 하더라도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가 원하는 지역으로 다시 옮기겠다고 하는 지파가 있는데 단 지파입니다. 이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역을 나누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서 레셈지역을 점령하고 이름을 단이라고 고쳤습니다. 단 지파는 저돌적이고 야망이 있는 지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역으로는 만족을 못하고 자기 뜻을 펼쳐보려고 북쪽으로 다른 지역을 찾아 갔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18; 30,31절 이후에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족보에서 사라졌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단 지파는 자신을 위한 신상을 세우고 따로 그 신상에게 제사를 드림으로 자기 교만, 영적 우월,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크나큰 은혜와 은총을 덧입고 나니까? 그 것이 나의 능력과 나의 힘으로 된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그들의 손이 닿아도 기적이 없고 딛고 있는 발끝에도 평안과 평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새로운 땅에 도전한 지파와 끝까지 하나님의 비전에 순종한 지파들은 모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강대한 나라를 얻었습니다. 발로 밟은 모든 땅이 그 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능히 이길 자가 없었습니다. 손이 닿는 곳에 기적이 일어났고. 딛고 있는 발끝에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누구입니까? 나머지 9지파 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까요? 2024년에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굳게 한 목표로 새로운 땅에서 도전을 하고 끝까지 승계하며 지켜나가시는 그래서 은혜와 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그러면 2024년의 환경이 어떨까요? 여러분, 2024년을 어떻게 보고 어떤 구상을 할까요? 어떤 판단을 할까요? 무엇으로 진단할까요?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애굽의 땅도 아닙니다. 광야도 아닙니다. 새로운 땅, 2024년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무엇이라 진단합니까? 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롯데 신 동빈 회장이 인류가 직면한 인구 변화와 기후 문제는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전망하며 다시 한 번 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신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하여 글로벌 복합 위기 속 대처에 따라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도 좌우될 수 있다며 지속적인 도전과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지난 세월과 땅에서처럼 안주하지 않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위기 속 기회를 만들어야 할 때임을 강조했습니다. 네 가지 사항을 말했습니다. 1)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는 압도적 우위의 핵심 역량을 가진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며 재도약을 위한 각 사업 영역에서의 핵심 역량 고도화를 주문했습니다. 2)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과감히 개편해 줄 것을 강조했습니다. 3) 인공지능(AI) 트랜스포메이션(AI Transformation)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사업 혁신을 당부했는데, AI 트랜스포메이션을 한발 앞서 준비한다면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4) 창의적이고 실행력이 강한 조직문화의 구축도 주문했는데, 실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초 불확실성 시대이기 때문에 2024년의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점에 따라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이 기회를 나의 비전과 목표로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고 들어가게 하신 2024년은 초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를 인정합니다. 예측이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다양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확정적이고 뚜렷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8절 이하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새롭게 전개될 영역에서 3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18 ~ 20,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버리고 지나칠 말씀이 아니고 귀하게 여길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1 ~ 23, 믿음의 증거를 상속 받고 상속해야 하는데 이는 장구한 세월동안 누리는 축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22 ~ 25, 약속의 말씀을 세밀하게 지켜 행하면 3가지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첫째는 강대한 나라입니다. 두 번째는 발로 밟는 것마다 소유가 됩니다. 세 번째는 능히 당할 사람이 없는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슨 운동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더 중요하고, 무엇을 먹느냐 보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보다 무엇을 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믿음이 되면? 믿음으로 본 그 사실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은 2024년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2024년에 강대한 나라를 얻고, 2024년에 발로 밟는 모든 땅이 나의 소유가 되고, 2024년에 나를 능히 당할 자가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역사입니다. 초 불확실성 시대가 전개되고, 확실한 그 무엇이 전개가 되지 않을지라도 이 때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초 불확실성의 시대일지라도 2024년에 시작과 함께 소망과 비전을 제단에 올리면서 목표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확실성의 2024년에라도 기도제목대로 다 이루어지고 성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면 세 가지의 축복이 무엇인가요?
2-1. 강대한 나라입니다. 23절에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이라. 여러분, 세상에 대해 눈을 감으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세상에 대해 눈을 감으면 영적인 것이 보입니다. 새로운 것이 보이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23절에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여기서 차지한다(dispossess)는 빼앗다. 몰수하다의 뜻입니다. 우리가 2024년 세상 사람들의 손과 권한에 있는 빼앗을 나라, 몰수할 나라, 차지할 나라가 있습니까요? 꿈과 비전은 있지요? 그런데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찌해야 될까요? 우리에게 허락한 모든 영역이고 경작지이고 삶의 모든 분야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내 힘과 능력 밖에 있는 기업과 땅과 사람을 얻습니다. 여러분, 자연계가 무엇입니까? 물리적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4차원의 법칙이 무엇인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하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는 보편적인 순리를 초월합니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miracle maker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심하는 습관을 치유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강대한 나라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나라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많은 은혜와 기적으로 강대한 나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발로 밟는 곳이 나의 소유가 되리니.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니라. 초 불확실성의 시대는 정탐이 꼭 필요합니다. 비젼트립이 필요합니다. 비젼트립이 무엇입니까요? 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여행입니다. 안되면 땅이라도 밟아 보세요. 여러분, 깊게 파기 위하여 넓게 파라! 는 말이 있습니다. 정탐꾼의 사명은 보고 와서 그 비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을 발로 밟은 것을 자세히 그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그 일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파송의 노래 가 있습니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라. 평강의 왕 함께 가시니 너의 걸음걸음 주 인도하시리. 주의 강한 손 널 이끄시리. 너의 가는 길에 주의 축복 있으리. 영광의 주 함께 가시니. 네가 밟는 모든 땅 주님 다스리리. 너는 주의 길 예비케 되리. 주님 나라 위하여 길 떠나는 나의 형제여 주께서 가라시니 너는 가라 주의 이름으로 거치른 광야위에 꽃은 피어나고 세상은 네 안에서 주님의 영광 보리라. 강하고 담대 하라. 세상 이기신 주 늘 함께 너와 동행하시며 네게 새 힘 늘 주시리, 그러면 2024년 발바닥으로 밟아야 할 땅, 우리가 소유해야 할 땅은 어디이며 무엇입니까? 비전을 품어야 2024년의 인생의 삶에서 승리합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싸움이 없고, 싸움을 시작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렵기 때문입니다. 손이 닿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딛고 있는 발끝에 평안과 평화가 있기를 원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려드린 기도의 제목대로 초 불확실성의 2024년일지라도 여러분의 발로 밟는 땅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3. 2024년에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2024년입니다. 25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나는 싸움할 능력이 없고 감당할 힘이 없고, 이길 수 있는 지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초 불확실성의 2024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줄 믿습니다. 창 35:1 ~ 4.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벧엘에 올라가기 위해 제단을 쌓는데 이방신상과 귀고리들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다 묻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그들 앞에 벌어지는가?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누구의 힘과 능력입니까? 야곱의 아들들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세상의 적들이 두려워하는 길이 열리고 추격하는 자들 앞에서 없는 새 길이 열립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한 시각과 판단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숫 사자와 암사자의 모습이면 상대는 이미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분, 뒤로 가지 말고, 멈추어 서지 말고,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진로 때문에, 사업 때문에, 관계와 교제 때문에 겁먹지 마시고 말씀 가지고 출발하고 약속을 붙잡고 시작하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시도하고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주변을 두렵게 만드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빌 4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히메지 비전교회 성도 여러분! 제발! 내 힘에 부치더라도 내 생각에 불가능하더라도, 내 능력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세요. 기도제목에 기대를 하세요. 그 때에 내 힘에 넘치는 기업을 차지하게 됩니다. 누가 싸움에서 이기는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왜 싸움에서 이기는가? 믿음 안에 목표와 비전이 있고, 목표와 비전 안에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열정과 믿음의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할 수 없는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인지하는 것이 스펙이고, 할 수 있는 것 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고 인정하는 것이 경험입니다. 여러분,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겨우 살아가는 젊음과 겨우 견디는 신앙이 되지 말고 기도제목에 물들어 살아가는 젊음이 되어야 합니다. 목표와 비전을 품기까지는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말씀으로 목표와 비전을 품으면 그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이룰 열정과 믿음을 주십니다. 나에게 평범한 재능과 비범한 인내가 있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고,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한 목표와 비전이 말씀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때에 그들에게 기업이 될 땅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방입니다. 그런데 이 비전의 특징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땅의 경계선을 그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지파의 축복이고 이것이 너희공동체의 분깃이고 이것이 너의 분깃이라는 말씀입니다. 손이 닿는 곳에 기적이 일어났고. 딛고 있는 발끝에는 평안과 평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2024년에는 매일 우리 교우들이 7가지 행복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happy look.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고무시킵니다. happy talk. 덕담과 칭찬인데 덕담과 칭찬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밧줄입니다. happy call. 명량한 언어는 상대를 기쁘게 합니다. happy work 성실한 직무인데 열심과 최선은 상대가 나를 신뢰하게 합니다. happy song 즐겁과 기쁘고 흥겨운 찬양과 노래인데 믿음의 찬양과 마음의 노래는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happy note 떠오르는 착상과 아이디어를 기록하면 내 자신이 풍요롭습니다. happy mind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인데 이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 불확실성의 2024년일지라도 여러분의 발로 밟는 땅과 여러분이 행하는 영역과 영향력이 기도의 제목대로 이루어지고 만들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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